구마록(驅魔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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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빠마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8.20 00:18
최근연재일 :
2024.09.15 20:5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78
추천수 :
26
글자수 :
135,461

작성
24.09.0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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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단으로(2)

DUMMY



그 동안 어둠을 보는 내 능력은 항상 비슷한 조건에서 발동했었다. 인간에 기생하는 어둠을 가까이에서 마주했을 때···.


하지만, 근래처럼 이렇게 느닷없고 제멋대로 발동 되었던 적은 없었다. 단 한번도.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서 어둠의 기운을 느낀적도, 동물과 연결된 어둠의 힘을 쫓아 그 근원인 제단을 찾은 것도 처음이다.


어떻게 보면 내 능력은 더 많은 힘이 있지만, 내가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처럼···.



“잠깐! 김 신부!! 멈춰!!”



갑자기 바뀌어 버린 시야는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마치 세상의 밝기를 누군가 임의로 낮춰버린 듯, 주변의 색감이 빛을 잃고 무채색으로 변했다.



급작스럽게 바뀌어 버린 시야 때문에 놀라 자리에 멈춰서, 앞서가는 김 신부를 불러 세웠다. 시야가 바뀌었다는 것은 곧 어둠이 근처에 있다는 뜻.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곳에 그를 앞서 들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



“강 신부님? 괜찮으세요?”



나를 향해 돌아 선, 김 신부의 모습도 빛을 잃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말들이 귓속을 웅웅 울리며 그 뜻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능력의 발현되면서, 내 신경은 온통 낯선 감각을 찾고 있었다.



주위에 있을 불결한 낯선 감각.



그러던 찰나,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김 신부, 놀라지마···. 여기 뭔가 있다. 김 신부! 이쪽으로 와!”



김 신부가 어리둥절하며 움직이자, 곧 달라진 세상에 귓가를 스치는 기묘한 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은 뜨겁고 끈적했으며 불결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강 신부님? 이게 다 뭐······죠?”



불결함을 느낀 김 신부도 주변을 돌아보며 놀란 눈으로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데, 이 놈이라고 안 그렇겠어?”



“천년 묵은 똥개라···. 진짜 대단한 놈이네요.”



그 사이 바람은 점점 거세졌고, 풀잎과 나뭇가지들이 마구 휘날리며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산 전체가 태풍에 휩싸인 것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요동쳤다.



“······단단히 화가 났나 본데요?”


“그래도, 지가 별 수 있겠어?”



바람에 얼굴을 가리며 버티고 선, 김 신부의 눈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다 곧 품에 손을 넣고 성수병을 꺼내 들었다.



“···강 신부님, 성수라도 뿌릴까요?”



김 신부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으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악의 실체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지 않는다면, 놈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릴 수도 있었다.



“아니, 놈을 잡아야 해, 도망가게 두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



내 말 뜻을 이해한 김 신부는 곧 눈을 감고는 성수를 자신의 머리에 찍어 바르며 성호경을 그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선 주님에게 보호를 간구하는 기도문이 흘러나왔다.



“전능하신 주님, 저희를 어둠 속에서 지켜 주시고······.”



김 신부의 기도가 시작되자 우리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바람의 세기가 약해졌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바람이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성스러운 힘이 바람의 힘을 밀어낸 것이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바람으로 우리의 접근을 막는 다는 것은 분명히 놈과 가까워졌다는 뜻, 게다가 내 능력이 발현되고 있는 이상 이곳 어딘가에 놈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휘날리는 수풀 사이로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까마귀 뒤로 길게 이어졌던 어둠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놈은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접근을 막고 싶어 했다. 이 바람이 그 증거이고···.



다시 단서를 찾고자 수풀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쿵쿵 땅을 울리는 소리가 수풀 너머에서 들려왔다.



커다랗고, 무겁게 땅을 울리는 소리.



그 소리는 마치 포식자가 사냥감에게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것처럼, 우리를 향해 빠르게 가까워 졌다.



지축을 뒤 흔드는 소리가 커지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던 김 신부의 기도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더 크게 주님께 찬양하라며 소리쳤다.



“김 신부! 더 크게 해!”



그러나, 내 외침에도 불구하고 기도 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미카엘!!”



그를 정신 차리게 하려 소리 쳤지만, 돌아보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굳어 버린 김 신부의 모습이었다. 그의 두 눈동자는 겁에 질려있었고, 두려움에 손발을 떨어 댔다.



더 이상 그의 입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기도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를 보호해주는 주님의 손길이 사라진 셈이다.





“김 신부!! 정신 차려!”



나는 그의 어깨를 세게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하지만 김 신부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얼빠진 눈으로 “네!? 뭐···뭐라고요?” 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누구나 처음이면 그럴 수 있다. 아무리 믿음이 강력한 자라 할지라도, 눈 앞에서 실체 같은 허상이 자신을 향해 달려 든다면, 겁먹을 수 있다. 다만, 나야 기괴 하고 징그러운 악령의 실체를 벌써 수차례 목격한 터라 익숙했지만, 김 신부는 직접 어둠을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


도망가지 않고, 주저 앉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바람은 힘을 줄이지 않고 강력하게 우리를 향해 불어왔지만, 어느 틈엔가 우리를 잡아먹듯이 달려들던 괴물의 발걸음 소리가 한 순간 사라졌다.


커다란 소리로 김 신부를 시험에 들게 한 놈의 간교한 술책에 나는 짜증이 치밀었다.



‘교활한 자식···.’




나는 속으로 놈을 욕하고 김 신부가 들고 있는 성수를 빼앗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거세게 부는 바람을 향해 사방으로 성수를 뿌렸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불결한 기운은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감히 주님의 종 앞에 맞서지 말지어다!”



곧이어 헛 것처럼 바람 소리에서 ‘끼에에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거세게 불던 바람이 잠잠해졌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지금이 기회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풀고 재빨리 안에 들어있는 소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축복받은 소금.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김 신부의 상태부터 호전시키는게 우선이었다.



한 주먹 가득 쥐어진 소금을 우리 주변으로 뿌리기 시작했고, 곧 성스러운 결계가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를 향해 거세게 불어 닥친 바람은 거짓말처럼 우리를 통과하지 못했다.



바로 눈 앞에 풀과 나무들은 이리저리 휘날리며 거친 소리를 냈지만, 결계 안은 잠잠하고 고요했다. 그리고 이 기묘한 고요함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우리 주위를 거세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한 순간에 잦아들었다. 순식간에 주위는 정적이 내려앉았고 그때, 머리 위에서 ‘푸드득’ 소리와 함께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눈을 가진, 일반 까마귀보다 서너 배는 큰 거대한 까마귀가 하늘을 두어 바퀴 돌더니 공중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놈의 몸이 한순간 점점 괴상하게 변하였다.



머리는 까마귀의 것으로, 몸은 사람의 것으로. 그것 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놈의 왼손에는 검은 깃털이 빼곡한 부채가 들려 있었다.




“······인간···. 더 접근······못 한다. 내 영역으로······. 한 걸음도··· 들어올 수······ 없다.”




거대한 몸을 가진 놈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와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놈 뒤로 길게 이어진 어둠의 기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을 뿐.



놈은 그 뒤에도 협박 같은 말들을 쏟아 냈으나, 나는 그것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내 시야는 이미 수풀을 너머 놈의 기운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접근···한다···면···. 죽음······. 그···것······뿐이다.”




녀석의 입에서 섬뜩한 말이 튀어나올 때,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녀석의 제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곳을 둘러보던 중. 나는 뜻밖의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검은 기운에 가려 어렴풋이 제단의 형상만 눈에 들어왔다면, 지금 눈에 들어온 것은 제단으로 향하는 검은 기운들. 그 기운들은 제단의 한 곳을 향해 움직였다.



커다란 항아리.



사방에서 이어지는 검은 기운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불길하고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어둠의 심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불길함에 소름이 끼쳐 얼른 시야를 거두었다.



그리고 별안간 그것이 무엇인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사방에서 어둠을 빨아들이는 장치. 그것은 최 신부님이 말씀하신 악령이 힘을 모으는 장치가 틀림 없다.



눈 앞에서 사람의 말을 토해내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보며, 어떻게 이름도 없는 악령이 현실에 소환되어 이렇게 큰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전부, 사악한 항아리에서 나오는 힘이 분명했다.




계속해서 허튼소리를 지껄이던 놈은 죽인 다라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하더니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기이한 녀석의 외형보다, 녀석의 협박보다, 내 머리 속에 남은 것은 악의 심장 같은 그 항아리였다.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 사악함의 근원.




김 신부는 여전히 멍하게 서 있었다. 겁에 질린 그의 입에선 “말도 안 돼···.”라는 말만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그의 반응으로 봐서는 그도 말 같지도 않은 괴생명체의 모습을 본 게 틀림없다.



“정신차려!”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자리에 주저 앉혔다.



“김 신부! 나야! 나 좀 보라고!”



“네···? 아······ 아··· 아!! 강 신부님···.”



멍하게 초점을 잃었던 그의 눈동자에 서서히 힘이 돌아왔다.



“물 좀 마시고 정신 좀 차려 봐.”



차가운 물병을 받아 든 그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에야 입을 열었다.



“강 신부님, 그런데 저 이상한 걸 봤어요. 머리는 까마귀인데 몸이 사람이예요. 세상에······. 저만 본 게 아니죠?”



나는 그를 향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 앞에는 팔뚝만한 칼을 든 황소 같은 놈도 봤는데···. 혹시?”



그러나 이번에 나는 그에게 물음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놈은 소리로 사람을 괴롭힌다. 책에서도 확인한 내용이었고, 그간의 놈이 보여준 일화에서도 나타났다. 김 신부는 놈의 계략에 당한 것이다.


마치 거대한 괴수가 돌진하는 것처럼 그 소리를 부풀려 실체도 없는 허상을 보게 만든 것이다.



“제가···. 이상한가요?”



한 없이 풀이 죽은 그는 움직일 기력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미카엘, 정신차려! 악의 시험에 그만 놀아나라고···.”



짧은 탄식을 뱉어낸 김 신부는 바닥을 응시하며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김 신부.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어. 처음이면 더더욱 그럴 수 있고, 그런데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지. 우리는 주님의 종이야. 물러서도 안 되고 물러 설 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자네가 더 잘 알잖아. 아냐?”



그는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소리에 놀라 허상을 본 것 뿐이야. 앞으로도 놈은 집요하게, 괴롭혀 올 거야.”



물끄러미 나를 올려보는 그의 눈에는 다시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걱정 하지마. 할 수 있는 건 그것 하나밖에 없는 놈이니까. 놈은 절대로 우리를 해치지 못 해. 알고 있잖아. 우리는 주님의 하나 뿐인 종이라는 걸. 주님은 우리를 절대 버리시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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