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계 천연루키로 착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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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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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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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당하다

DUMMY

"누구세요?"


지한의 말에 서 이사의 표정에 금이 갔다. 그녀가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웃음을 유지하며 시선을 쏘아내렸다.

그에 지한이 움찔거렸다.


"혹시, 그 전화주신 분이신가요?"

"아, 그 분이 맞을 거예요."


그녀가 지한의 말투를 따라하며 약간의 비아냥을 담았다. 그 거만한 시선이 테이블을 내려봤다.


"그래서 누구시죠?"

"유엔엔터 서영화요."

"이름이 되게 영화 같으시네요."


서 이사가 그대로 지한에게 시선을 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유지한 씨 맞으시죠?"

"네."


별 장난을 치는 걸 보니 서 이사는 당장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렇게 농땡이 부릴 시간이 없었다.

데뷔조 애들 쇼케이스는 다음 달이지, 당장에 주가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거만 봐도.


오. 머리가 돌겠다고.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열심히 연락을 했는데 다 안 보시더라고요."

"아아. 유엔엔터."


지한이 수긍하다가 움찔했다. 그가 고개를 숙이다가 그대로 멈췄다.

에. 진짜로?


맞다.

눈 앞에 명함과 함께 손으로 심장도 파낼 수 있을 것 같은 네일이 쓱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그녀가 웃으며 코를 찡그렸다.


"아주 인상적인 첫인상입니다. 유지한 씨."


*


"저는 이게 진짜인 줄 몰랐죠."


지한이 한껏 표정을 굳히고 변명했다. 서영화, 서 이사가 알겠다며 대꾸 없이 웃었다.


"그래서 얼굴을 보니 더 좋네요."


서 이사가 눈을 휘며 눈을 반짝거렸다. 지한이 무지하게 끔벅거리다가 두 잔 째인 커피잔을 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잠시 생각에 번잡해졌다.


꿀꺽꿀꺽.


"마스크도 괜찮네요."


푸흡.

콜록콜록.


"네?"

"얼굴이 잘생긴 편이신 것 같아요."


지한이 티슈로 간신히 입을 가리고 사레에 걸려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콜록콜록!

죽을 것 같다.


"스물 일곱살. 현재 취준생 맞으시죠?"

"누가 알려줬어요?"


개인 정보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가 친절한 미소를 유지하며 더 함박웃음을 지었다.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신나보였다.


명함을 손에 들고 노래 부르듯 말했다.


"유팀장님이죠. 누가 알려줬겠어요."


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삼켰다.


"이렇게 된 거 오디션이라도 보시죠."


서 이사가 명함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지한이 유심히 종이를 쳐다봤다. 영화의 눈빛에 미세하지만 진심 어린 무언가가 어렸다.

재능 있는 젊은이를 보는 노련한 암사자의 눈빛이랄까.


'처음 보겠지, 뭐. 놀라는 것도 촌스럽지 않아.'


그녀가 위로 높게 묶은 검은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주변에서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모자를 쓰려다가 백 안에 있는 모자를 꺼내지 않고 꿋꿋하게 그대로 있었다.


눈 앞에 어벙하게 두리번거리는 이 사람.

잡아야한다.


서 이사가 남몰래 기합을 넣었다.

기세로 잡는 거야.


'기세다. 포스를 보여주는 거야.'


그러던 순간에 그녀의 귓가에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그녀가 눈을 내리깔고 지한의 반응을 기다렸다.

원했던 대로 상황은 흘러가고 있다.


지한은 별 생각 없는 눈빛으로 명함을 아직도 보고 있었다.


'서영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은데. 아닌가. 뉴스에서 봤나.'


아른아른한 걸.


*


가수. 노래하는 직업.

노래라는 재능은 천차만별이다.

쇼비즈니스가 재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본이 지붕째로 왔다갔다하는 사업판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프론트맨.

그 뒤 수면 밑에서 발장구치는 수많은 직업들.


영화는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조금 유명할 뿐.


“내 재능을 알아봐주는 사람, 되게 귀한 거 알죠.”

“알죠.”

“그럼 그 기회 한 번 잡으시죠.”


나는 명함을 다시 봤다. 잉크는 변하지 않겠지. 글자가 변해서 서영화라는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바뀔리도 없다.

그런데 뭘까. 이 찝찝한 마음은.


“진짜예요?”


영화는 질린다는 표정을 숨겼다. 대신 환하게 웃었다.

명함 대신 다른 종이를 내밀면서.


“한 번 오실래요?”


*


비하인드라는 건 말이지. 그거 유튜브에 소속사가 올려주면 보는 거 아니었나?

카메라가 찍고 있는 걸 눈으로 보는 거 말고.


“안녕하세요.”


화려한 눈화장을 한 여자 아이돌이 눈을 깜박거리며 인사했다. 그녀도 뭔가 이상한지 어정쩡하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폴더인사만은 확실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보라색 나시, 천이라고는 안 보이도록 보석으로 반짝거리는 무대의상을 보다가 눈을 돌렸다.


드러난 하얀 어깨.

밝은 탈색모.

그것보다 더 밝은 미소.


뭔가 뭐랄까. 내가 지금 이걸 30cm 앞에서 봐도 되는 걸까?


“저기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카드 있네. 경호원이신가봐.”

“그렇게 안 생겼는데.”

“언니!”


갑자기 우르르 몰려왔다. 여섯 명이 앞에서 조잘거린다.

나는 정신이 나갔다.


너무 예쁜 사람들이 하나에서 여섯 명으로 늘어나서 고장.

갑자기 날아간 내 신원에 고장.

다짜고짜 부른 매니저에 고장.


“아. 연락 받았어요. 서 이사님 지인 분 맞으시죠?”


매니저의 말에 뒤에 있던 걸그룹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녀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서로 쑥덕거렸다. 나를 힐끗거리는 것도 잊지 않고.


머리를 맞대고 원을 만들어 그녀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서 이사님 조카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서 이사님 지인이 있을 리 없어.”


그녀가 무뚝뚝하게 뱉었다.


“있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어.”


오키. 결론.

남은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가 감기에 걸려 코를 킁 들이마시고 고개를 쑥 들었다.

독감 3일차. 리하는 멍했다.


“별 생각 없어보이시는데.”


코맹맹이 목소리로 팩폭이 들어왔다.


“스탠바이요!”

“스탠바이요! 리벨하트 가실게요!”

“정원이 마지막 수정하고 갈게요. 빨리.”


와. 바쁘다.


“저희 팬도 아니시죠?”

“유튜브에서 한 번 봤어요.”

“서 이사님 조카?”

“어제 처음 뵀어요.”


리더, 주한의 말에 리하가 눈을 깜박거리며 지나갔다.


“남자친구는 아닐 거 아냐.”

“너무 연하야.”

“예?”


방금 뭘 들은 거야.


“아무튼 재밌을 거예요! 잘 보고 가세요!”

“서 이사님한테 말 잘해주시고요!”


다들 방방 뛰는데 아무래도 놀리는 것 같다.

웃음기가 가득한 그들이 뛰어가며 소리쳤다.


“저희 곧 빌보드 갈 거거든요!”


빌보드라.

무대로 나가자 암전이었다. 심장박동이 움틀움틀거린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나 모두가 조용하다.


하나만을 보고 있는 이 상황이 신기하다.

영화관. 글쎄.

그거랑은 좀 다른 설렘이야.


“여러분! 우리 보고 싶었어요?”


취소. 귀가 나갈 정도로 환호성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찡그렸다. 입가에 알 수 없는 짜릿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아악.”


짧은 비명이 무대 뒤에서 들린다.


*


“마이크 켜져 있는 줄 몰랐지. 나는.”


서하의 말에 리타가 혀를 찼다. 그녀가 울어 벌게진 눈으로 쏘아봤다.


“언니는 그런 것도 신경 안 쓰면서! 프로가 그러면 되냐고!”

“조용히 해라. 고딩.”

“나 이틀 뒤면 성인이야.”


나는 조용히 웃었다. 무대 밑에서 보는 여섯 사람은 사복차림이었다. 벤에 타기 전까지 같이 걸어가는 중이었다. 대기실에서 나온 리벨하트 전원의 옆에는 분주한 스태프들이 정리하고 있다.


그렇게 파워풀하게 퍼포먼스하던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서로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다.


진짜 비하인드를 보고 있다는 자각 때문일 거다.

아무래도 진짜니까.


“재밌었어요?”


리타가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복도를 걸어가며 암전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느리게 답했다.


“보통 지인 초대 절대 안 하거든요. 서 이사님은.”


안 보인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생각인지.

아까 스피커로 들리던 목소리가 옆에서 조근조근 울린다.


“이게 최후의 수단이예요. 절대 안 온다는 애 꼬드기기 카드.”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리타는 웃고 있었다.

눈 앞에 유리문이 있다. 그녀가 열며 경기장 뒷문이 열렸다. 가로등에 얼굴이 비쳐졌다.


마스크를 쓰고 드러난 눈이 휘어져 웃고 있었다.


“별 생각 없으시죠? 아마 그러니까 우리 공연에 초대했겠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온 건 또 아니예요.”


나는 대꾸했다. 너무 아무 생각 없다, 강조하니까 특히 고3인 그녀 앞에서는 뭐라도 변명하게 된다.

그녀가 말 없이 걸어갔다.


“뭐라 하는 건 아닌데요. 서 이사님 안목을 믿으니까요.”

“전 못 믿겠는데.”

“오?”


그녀가 쪼르르 뒤에 다섯 명에게 달려갔다. 다섯 명이 그녀를 일제히 쳐다봤다.


“연습생이 아니래요!”


서하가 팔짱을 끼고 투덜거렸다.


“나이가 너무 많다니까. 내 말 안 믿지, 이리하.”


리하가 눈을 흘겼다.


“서하 언니 말을 어떻게 믿어요.”

“너는.”


서하가 주먹을 꽉 쥐고 뛰었다. 달려가는 두 사람의 뒤에서 리더, 주한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덩달아 나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애들이 철이 없어요. 에너지도 남아돌고.”

“그, 서 이사님은 언제 오세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봤다.

그것만이었으면 다행이지.


여섯 사람이 동시에 뒤돌아 날 쳐다본다.

여섯 쌍의 예쁜 눈이 깜박였다.


주한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걸리신 것 같아요.”


차 헤드라이트가 날 비췄다. 너무 빛나서 눈을 질끈 감았다. 여섯 명이 입을 벌리고 내게 한 마디씩 던졌다.


“이사님 왔다.”

“어제 콜라보 따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리하가 내게 걸어오며 그대로 지나쳐 문을 열고 나갔다.


“유지한씨!”


어둠 속에서 빛을 뒤로 하고 누군가가 걸어왔다.

홍해가 갈라지듯 스태프들이 양 옆으로 붙었다.


그녀가 날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스탠바이!”


그녀의 말에 스태프들이 황망한 얼굴로 나를 보는 게 스쳐지나갔다.

퇴근 어디 갔어.


‘제가 한 게 아닌데요.’


내가 야근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


“스탠바이요!”

“음향팀! 10분만!”

“서 이사님 오셨습니다!”


누군가가 내 앞으로 와 긴박하게 눈을 마주쳤다.


“팔 드세요.”

“네?”

“달려요! 분장팀!”


그녀가 날 보더니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같이 달렸다. 앞에는 서 이사가 청바지에 티셔츠를 휘날리며 선두로 뛰어가고 있다.


“인이어. 이거 이렇게 키는 거고요.”


그가 내 앞에서 말하며 잠시 현타가 왔다.

나는 심장이 쿵쿵 뛰며 그가 하는 말을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기로 무전이 들리는데요. 고생이 많으세요.”


그가 날 측은하게 보고 눈이 그대로 날카로워졌다. 무전으로 뭐라고 하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슬로우모션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무대 밑에서 그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순간.


“2, 1.”

“가실게요.”


한 발을 딛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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