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계 천연루키로 착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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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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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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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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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뭐야?

DUMMY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다. 뭐든지 그 상황에 처하면 마음이 변한다.

아, 그때 그럴 걸. 뒤에서는 생각이 불쑥 나지만 당장에는 나지 않는다.

가장 최악의 내가 상황 키를 잡아버리는 게 인생이랄까.


그런 점에서 유지한은 뒷걸음칠 이유가 없었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도 자의가 아니었던 것처럼.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것도 기회는 기회니까요."


서 이사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한참 지나 입을 뗐다.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건 아니죠."

"제 인생인데요. 누구보다 제가 진심일 걸요."


직원은 서 이사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는 속으로 학을 떼고 있었다.

요새 불경기가 이렇게 심하던가.


'눈빛이 장난 아니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연예계가 정글이라지만 저런 눈은 또 처음이었다.

맑은 눈의 광인을 넘어 철저한 비즈니스적 건조한 눈.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같은 건 안 배웠어요?"


지한은 태도를 바꿨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망설이지?


"저 안 되는 매물인가요?"


서 이사가 사레에 들렸다.

그녀가 콜록콜록거리며 의자를 간신히 붙잡았다.


뭐? 안 되는 매물?


"아니, 제발 우리 회사에 오라고 애원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이러세요?"


지한은 천천히 사무실을 둘러봤다.


"자신 없으신가봐요."

"..."


서 이사는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가 생각하려고 잠시 멈췄다.

요 며칠 그렇게 찾았던 유지한이 회사에 제 발로 걸어왔다. 서 이사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이 '너 자신 없구나?'라고 도발을 할 수 있을까.


기함을 토할 일이었다.

이게 일반인이 아니라 기업의 일이라도, 어떤 기업인이 배포 좋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서 이사는 물끄러미 유지한을 바라봤다.

나이를 지긋하게 먹고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회장님들이나 허허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주름진 온화한 얼굴에 숨겨진 이리 같은 눈빛.

손자를 안고 있지만 그 뒤에 서 있는 아들을 째려볼 수 있는 이중성.

그럼에도 노인의 다정함을 모조리 이용해주는 영리한 머리.


'왜 그런 게 생각나는 거지.'


서 이사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가 머리를 흔들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퍼졌다. 그녀의 높게 묶은 긴 머리가 찰랑거렸다.


자신 없냐고?

자존심에 금 가는 소리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유엔엔터가 아이돌에 주력하고 있긴 하지만, 아시죠."


그녀가 높은 콧대를 치켜들었다. 회사에 모아 놓은 전국의 페이스들 사이에서도 서영화는 빼어났다.

소수의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바로는 사장의 첫번째 아티스트가 그녀라는 소문도 있었다.


"원래 첫 스타는 솔로 가수였던 거."


지한이 맹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서 이사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맞다.'


이 사람, 멀쩡하게 생겼지만. 아무것도 몰랐지.


서 이사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서영화의 커리어에 먹칠하는 소리가 또 나고 있었다.

내 이십대를 바친 대한민국의 엔터계의 획을 그은 이 노고를 몰라?


"아. 좋아요."


좋다 이 말이야. 영화는 한 수 접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이런 점에서 유지한이 캐릭터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머리를 쓸어넘기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본 모습은 이 모습이랑 완전 다르긴 했는데.'


뭐가 진짜일까.

이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천진한 천재 캐릭터. 아니면 게임메이커?


유지한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 어찌 됐든 서 이사에게 독이 될 일은 없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난 건 축복이니까.


"일단 우리 프로듀서부터 만나고 시작하죠."


지한이 멀뚱히 그녀를 봤다. 서 이사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뭐지? 왜 이 초짜한테 긴장을 하는 거지?


당혹스럽다. 그녀가 멍해진 동안 지한이 눈을 끔벅거리며 물었다.


"프로듀서요?"


**


형원을 만나러 왔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카페 구석에 박혀 있었다.


"신형원."


나는 손을 들고 입구에서 다가갔다. 그의 어두운 오오라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왜인지 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저 음침함이 옮는 것 같기도 했다.


왜 이렇게 죽상이람.


"너 때문이잖아. 유지한."


그가 아메리카노를 수혈하듯 빨며 으름장을 놓았다.


"넌 내가 입은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야 돼."

"나도 못 받았는데 네가 무슨 보상이냐."


형원이 입을 닫았다. 그의 눈이 더 진지해졌다. 그의 한숨이 평소보다 더 깊었다.


"너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아냐?"


형원이 뚱딴지 같은 소리를 던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카페 안에서도 몇 사람들이 힐끗거리는 게 느껴졌다.


움츠려든다. 저 시선이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형원이 그걸 보고 굳었다.


그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안 감은지 일주일은 된 것 같은 기름 번지르르한 머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대로 더러운 모자를 내 머리에 깊숙하게 씌웠다.


이게 뭐지. 나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가.

저 더러운 머릿기름이 나한테 오는 거에 악독함을 느껴야 하는 건지.

그나마 친구라고 측은해하는 저 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사람들은 연예인이 실수하는 걸 싫어해."


그가 혼자 원맨쇼를 벌였다. 두 팔을 벌리더니 어쩌라는 식으로 눈을 까뒤집는 게 아닌가.


"근데 또 실수하면 겁나 좋아해. 아주 좋아서 물어뜯어. 아니, 어쩌라고."

"요점을 말해라. 요점을."


찝찝해.


"너가 그 실수라는 거야. 이 자식아! 리벨하트의 오점!"

"내가 뭐 사귀었어? 사귀면 차라리 억울하지도 않겠다."


형원이 돌처럼 굳었다.


"야."


그가 들숨을 한 번 들이키고 내게 말했다.


"너 진짜냐?"


나는 은은하게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기다렸다.


"야. 뭐. 어떤 거. 내가 리키 전남자친구고 현 리타 애인이라는 거. 아니면, 사장 아들이라는 거."


형원이 눈을 끔벅거리다가 인상을 팍 썼다.


"아니. 너는 어쩌다가 거기에 가게 된 거냐고."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냐.”


그를 쳐다보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같이 내쉴 수는 없어서 난 입을 다물었다.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하품처럼 입을 벌렸지만.


그가 그때 정적을 깨고 날 돌아봤다. 정확하게 정면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영화관 화면마냥 고화질로 보였다. 그게 문제였다.


“야. 너는 네가.”


호흡을 멈추더니 근심가득한 얼굴이 한순간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일그러졌다.

생각해보니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리키, 뭐, 리타? 아주 입이라고 나오는 대로 말하는구나.”


나는 멍하니 그를 보다가 허허실실 실 없는 웃음을 뱉었다.

실성이었다.


“그럼 뚫린 입을 나오는 대로 뱉지. 사람들은 안 그랬나.”


말할 수록 울컥한다.


“거기는 뭐 나무위키 다 검색해보고 적었나. 아니 나무위키는 커녕 맞춤법도 안 맞추고 올리면서!”

“아우.”


형원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 같아 나는 입을 벌렸다.

경악스럽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눈을 찡그리고 그를 쳐다봤다.


신형원.

아무리 그래도 내 친구 중에서는 그나마 생긴 것 멀쩡하고 속도 멀쩡한 놈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졸업 안 시켜준다고 학교에 열불을 내면서 딴짓을 열성적으로 하는 게 모순적이기는 했지만.


그 딴짓이 문제인 듯 했다.

그가 말 없이 내 앞에서 얼이 빠져 앉아 있었다. 둘 다 이제 얼음만 남은 컵을 올려놓고 허공을 쳐다봤다.

그가 나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만약에 지금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하면 너는 뭐라고 할 거냐.”


바람 빠진 소리가 나왔다. 주변에서 카메라를 몰래 들던 사람들도 이 대화를 듣는다면 “미친 건가.” 중얼거리며 자리를 뜰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이 순간에 더 정신이 분명해졌다.


“글쎄다.”


그가 대꾸하지 않았다. 정적이 찾아왔다.

화창한 이 점심시간에 남자 둘이 카페에 앉아 멀뚱히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

나는 머리 위로 앉은 그림자를 굳이 올려다보지 않고 앞만 봤다.


기가 차는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게 이거였다.


며칠을 안 감았는지 모를 신형원의 초록색 모자 하나가 주는 그림자.

그 안에서 멍청하게 카페 벽만 보고 있는 것.


“지금도 일만 주면 뭐든 하겠습니다, 이러지는 않을 거 아냐.”


신형원이 친구 아니랄까봐 실 없는 소리를 실실대며 던졌다.

나는 중얼거렸다.


“글쎄다.”


그가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뜻이었다.


“글쎄다. 진짜로.”

“애가 정신이 나갔나. 왜 이렇게 알맹이가 없어.”


그는 날 보고 있었다. 다시 조금은 근심이 스며든 그 낯빛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어울리지 않게 정말.


“나 취업했다.”


형원이 할 말을 잃었다.


“나 데뷔함.”


형원이 그대로 정지했다. 숨만 쉬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 찌라시들이 백만 개가 인터넷 댓글처럼 태풍치듯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중 뭐가 진짜인지 몰라 형원의 홍채만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게 드럼 박자라도 되는 듯 흥미롭게 봤다. 뭘 꺼내볼까 입을 달싹거리면서.


“야. 나.”

“그만.”


형원이 숨을 멈추고 간신히 내 입을 막았다.


“뭐?”


그의 얼굴이 오만상을 찌며 구겨졌다.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유인원의 표정에 난 주름처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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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히키코모리도 이유가 있다 NEW 21시간 전 7 0 9쪽
8 너무 좋은데요 24.09.10 14 1 10쪽
7 누구요? 24.09.10 14 0 9쪽
6 비공개 신인 24.09.10 20 0 11쪽
» 얘 뭐야? 24.09.04 26 1 10쪽
4 수요와 공급. 저도 너무 좋아합니다. 이사님 24.08.24 38 2 10쪽
3 오디션을 보다 24.08.23 48 2 11쪽
2 캐스팅 당하다 24.08.22 67 2 11쪽
1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24.08.21 76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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