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계 천연루키로 착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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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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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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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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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너무 좋은데요

DUMMY

장난스러웠던 조금의 기색마저 사라졌다. 남은 건 놀랍도록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이영재라는 사람도, 그 이름도 남지 않는.


쌓아올리면 쓰러지는 게 만사의 법칙. 영재는 피사의 탑처럼 비스듬하게 살아남았다. 완벽한 외모도, 굳건한 팬덤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이 몸뚱아리 뿐.


"왜 나한테 안 어울릴까요?"


본질적인 질문에 서 이사가 할 말을 잃었다. 음악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영재는 덤덤했다.


"난 노래를 하면 안 되나?"


그 질문은 아주 옛날부터 하던 거였다.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차트인이 말해줬나?

통장에 꽂히는 저작권료가 말해줬나?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지금의 집 평수가 말해주나?

내가 원하던 꿈에 나는 도달했나? 이게 내가 원하던 거였나?


다 짜증난다. 영재는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했다. 그 얼굴가죽에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아서 보는 사람들이 더 가슴이 답답했다.


"뭐, 보다시피 이래서. 도움을 좀 얻고자 왔습니다."


그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완전히 의자에 기대어 그가 손 마디마디를 뚝뚝 끊었다. 왼손에는 검은 손목 보호대가 언제나처럼 착용되어 있었다.


"누가보면 참 잘난 놈인 줄 알겠어요."


그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가 다시 들어보라며 자리를 일어났다.

문 밖에 나가는 영재를 보면서 서 이사는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때요?"


그 반짝이는 눈빛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떠냐니. 느끼는 감상으로는 방금 이름도 몰랐던 저 사람이 한 말이 참 무거웠다.


"어. 뭐에 대한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형원이 입을 닫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품고 있던 기타는 여전히 소중하게 잡고 있었다. 그가 일어나 뛰어갔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일단 영재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저기."


영재는 묵묵히 그를 응시했다. 그가 시선을 피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괜히 마음이 터져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걸 다 말하고 말았다.


"제가, 저 곡, 그, 파일을, 파일, 보냈었거든요?"

"네?"


형원이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일단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비장한 얼굴이었다.


"가시죠. 다시."


*


"이게, 무슨 일이야."


형원이 중얼중얼거리며 녹음실 부스 뒤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 녹음실 부스 안에는 내가 있었다.


"만나면 재밌겠다 생각은 했는데.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영재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가 버튼을 누르고 내게 말했다.


"도대체 이 회사는 어떻게 굴러가는 거죠?"

"저도 신입이라 잘 모릅니다."


영재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그 잘난 재능 한 번 보죠."

"아. 제 재능이요?"


나는 말하면서도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재능이라는 게 있었던가. 아니, 있었다면 진작에 알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어릴 때 그 싹수를 알아보고 어디 학원에 보냈다던가.


서 이사의 얼굴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일말의 초조함도 없었다.

팔짱을 끼고 있었다. 급하게 나와 입은 회색 맨투맨에 초록색 볼캡. 오랜만에 완전히 푼 검은 생머리.


그녀의 검은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완벽한 신뢰를 바탕으로.


멍해진다. 뭐가 저렇게 확신에 차있지.


'참 대단한 여자긴 해.'


영재는 기다렸다.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뭐가 됐든 여기까지 왔으니까 보고 가세요."


대답이 없다.

음악이 흐른다.


부스 뒤에서 서 이사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그녀가 소리 없이 웃을 때 영재가 기가 차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방금 들었어요? 보고 가래.


"장날이야 뭐야."


서 이사가 자신감에 차서 그 콧대를 높이고 영재를 비스듬히 내려봤다.


"저희 아티스트입니다. 재밌죠?"

"재미요? 재미라."


영재는 턱을 괴고 눈썹을 모았다.


"뭐가 있어야 저런 게 재미라도 있지."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대로 끊겼다. 테이프를 가위로 싹둑 자르듯 그저 중지됐다.

놀라는 기색 같은 건 없었다. 숨이 멈췄다.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키보드를 쳤다. 녹음이 되고 있다.

흘러가는 그 일종의 선 같은 것이 유유히 모니터를 가로질렀다. 지금 귀로 듣고 있는 게 여기 녹음되고 있는 게 맞는지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듣고 있는 걸 남들도 듣고 있는지 알고 싶다.

뒤를 돌았다.


형원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앉은 채로 얼어붙었다. 서 이사만이 침착하게 손으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노래가 참 발칙하다니까.'


그녀가 영재를 슬쩍 훔쳐봤다. 어디서 저런 사람이 굴러들어왔을까.

눈을 찌푸렸다. 짜릿하게 미간이 조여진다.


너무 좋아서 인상이 써지는 기분이었다.


'참 이런 것도 어울리네.'


나는 눈을 감았다. 그 사람을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올라서 목이 막힌다.

저런 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고개를 느리게 좌우로 흔들었다. 희미하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저렇게 생각이 무거운 거에 비해 노래는 참.


'참.'


웃음이 지어진다.


"예쁘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비트.

가이드보컬로 만들어놓은 멜로디.

변주되는 브릿지 파트.


뭐 하나 빼먹을 게 없다. 와중에 내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뭔가 이상했다.


"됐어요."


영재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들렸다. 부스에서 나오자 그가 머리를 싸매고 나를 마주했다.

눈이라도 마주치지 이건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음악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제멋대로인가.

서 이사를 쳐다보자 그녀가 나를 응시하고 생수를 내 손에 쥐어줬다.


"쉬세요."


형원이 멍하니 날 쳐다본다. 나는 그에게 생수병을 건넸다.


"너 입이 이렇게 컸냐?"

"..."


형원이 대답하지 않고 나를 마저 쳐다봤다.


"이렇게 볼 거면 우리 돈을 내고 보는 걸로 하자."

"싫어."


형원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나는 아쉽게 입을 다셨다.


"일초에 10원으로 하면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유지한이 맞네."

"생긴 것부터 나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부끄러우니까 제발 좀 입 다물어 줄래?"


그가 머리를 싸매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대로 쓰러졌다. 누운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 참 천재이신 건 같습니다. 어떻게 노래가 이렇게 좋을까요."


국어책 읽듯 영재의 뒤에서 메아리처럼 말을 걸었다. 영재가 모아이 석상이 뒤를 돌 듯 뻣뻣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요?"

"넵."


나는 어색하게 그를 보다가 손을 올렸다.


"아마 분명히 차트를 휩쓰실 겁니다. 분명히."

"얘가 이래도 듣는 귀는 좀 있어요."


형원이 벌떡 몸을 일으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눈을 질끈 감고 그가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진짜 너무 좋아요."


나는 그에게 거리를 뒀다. 그가 나를 냉담한 시선으로 노려보더니 영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애수의 찬 눈을 보라.

나는 혀를 찼다.


"아.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옆에 있는 다른 생수를 그 앞에 뒀다. 그가 멍하니 날 쳐다봤다.

나는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이건 뭐 돈 주고 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보고 싶은대로 보십쇼.


"진짜 재능인 거죠?"

"아. 잘 모르겠어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빠르게 말을 채갔다.


"그런데요."


세상이 어떻게 다 천재로만 굴러가겠어요.

그리고 어디 노래가 사람 하나만 일해서 나온답니까. 산업은 뭐 한 명만 고생해서 이루어진답니까.


눈을 찡그렸다. 좀 멋있는 말이 하고 싶은데 그런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뇌의 한계인가.


입을 벙긋거렸다. 영재가 날 향해 보는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다.

땀이 흐를 것 같다.


그의 눈이 오늘 보는 중에 가장 살아있는 것 같았다.

동태처럼 어딘가 초점이 나가있는 것 같던 말과 행동이 지금은 확실히 생생했다.


-슬럼프를 처치하였습니다. 데미지 -5


예?


"그러니까."


-슬럼프를 처치하였습니다. 데미지 -5

-유저의 신뢰도가 +1 증가했습니다.

-남은 시간 9:59


"영재 씨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유저의 신뢰도가 -1 하락했습니다.


"물론 지금 나이에 뭐든지는 좀 무리겠죠?"

"뭐라는 거야."


형원이 순수하게 혐오의 시선을 보내왔다. 그가 일어나 말을 막으려고 했다. 나는 다급하고 단호하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영재 씨. 저 놈을 보세요. 영재 씨 노래에 참여하고 싶어서 일주일 동안 머리도 안 감았답니다."

"더러운 거 아닌가요?"

"맞아요."


형원이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사람은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 말이 먹히기는 하려나?


문 뒤에 서 이사가 등을 기대고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시선을 바닥으로 낮추고 조용히 웃었다.


'그래. 뭔가 달랐다.'


처음부터 달랐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 앞에 리하가 기웃거렸다. 서 이사가 민첩하게 몸을 돌렸다.


"이사님?"


그녀가 벽을 보고 눈을 끔벅였다.


"숨는다고 지금 뒤도신 거 아니시죠? 다 보이는데요."


*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이상한 것들을 다 건너뛰고 앞에 있는 이영재를 봤다.


"할 말이 없네요. 책 좀 읽어둘 걸."

"..."


그가 말 없이 픽 입꼬리를 올렸다.


-슬럼프가 해제됩니다.

-유저 '이영재' 카드를 얻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나는 멍하게 할 말을 잃었다.


이영재가 다시 의자에 앉아 앞에 둔 아메리카노를 들고 빨았다. 시원하게 숨을 뱉더니 그가 나를 쳐다봤다.


"다시 들어가요. 어디 가려고?"

"네?"

"녹음 해야지."


나를 보며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입꼬리가 시원하게 찢어진다.


"녹음실에서 한 번 울려봐야지."


나는 눈 앞에 빛나는 '확인하겠습니까?' 창을 보고 시선을 빼앗겼다.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에게 대답하는 건지, 혹은 저 말에 대답하는 건지 몰랐다.


"네."


무언가가 일어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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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히키코모리도 이유가 있다 NEW 21시간 전 7 0 9쪽
» 너무 좋은데요 24.09.10 14 1 10쪽
7 누구요? 24.09.10 14 0 9쪽
6 비공개 신인 24.09.10 20 0 11쪽
5 얘 뭐야? 24.09.04 25 1 10쪽
4 수요와 공급. 저도 너무 좋아합니다. 이사님 24.08.24 38 2 10쪽
3 오디션을 보다 24.08.23 48 2 11쪽
2 캐스팅 당하다 24.08.22 67 2 11쪽
1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24.08.21 76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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