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계 천연루키로 착각당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칭송
작품등록일 :
2024.08.21 15:36
최근연재일 :
2024.09.17 07:59
연재수 :
9 회
조회수 :
314
추천수 :
12
글자수 :
40,801

작성
24.09.10 01:58
조회
20
추천
0
글자
11쪽

비공개 신인

DUMMY

사람은 뭐든지 될 수 있다.

동의할까?


"네가 나이가 몇인데 데뷔를 해."


신형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쥔 얼음컵이 떨렸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쯤 입을 벌리고 해탈했다.


"야, 설마 진짜로 너 거기 들어가냐?"


나는 대꾸도 안 하고 질린 낯으로 얼음을 들이켰다. 아그작아그작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 틀렸다. 다 아니다.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나와서 어떻게 몸집을 불려가는 걸까. 어쨌든 내가 생각할 부분은 아니었다.


내가 할 건 분명하다.

이 사업을 굴려가는 것.

사업의 아이템은 무엇인가. 그건 다름아닌 나 자신.

나는 잘 팔리는 아이템일 것인가?


그건 나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왜냐, 음악에 대해 뭘 알아야 판단을 하지.


"네가 생각할 때 말야. 나 수요가 있냐?"


형원이 속을 식히려고 들이키던 얼음을 그대로 뿜었다. 사레가 들려 그가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질 때까지 커다란 기침을 토했다. 이마에 핏줄이 돋은 채로 그가 고개를 퍽 일으켰다.


"뭐라고?"


눈에 실핏줄이 터진 것 같았다.


"아니."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될 거 같냐. 뭐 이런 거지.

그가 눈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책상을 손으로 탁탁 쳐내렸다.


"그래서 지금 이미 계약서에 이름도 썼다 이거지."

"그렇지."

"돈도 받았고?"

"어. 그거까지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형원은 통장 잔액을 볼 때까지 절대 믿어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 때문에 한숨이 나오기는 했지만. 한 번 감지도 않고 뜨고 있는 저 눈 앞에서 화면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자마자 형원의 표정이 한층 유하게 바뀌었다.


"그래."


말투도 더 여유로워졌다. 그가 내 어깨를 잡더니 그대로 일어났다.


"계산은 네가 해라."

"..."


나는 말 없이 떠나려는 그를 쳐다봤다. 그가 날 내려다보더니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뭘 봐. 네가 나한테 뭔 일이 있는지 알기나 해?"

"말이라도 해보던가. 나한테 뭔 일이 있는지는 지금 다 아니까."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그러자 형원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더니 풀어진 얼굴로 내 옆에 다시 풀썩 앉았다. 물론 좀 많이 떨어져서.


부끄럽지만 뭐 도리가 딱히가 없으니 그냥 미친 사람 보듯 보는 직원을 향해 모자를 더 깊게 눌러 썼다. 직원이 유리컵을 보고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숙이려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커진 눈. 벌어진 입. 처음 보는 얼굴이다.

잠깐 그대로 더 그 표정을 오래 보고 싶었다.

마치 스크린처럼 말이다. 그 장면을 돌려보고 싶다.


"맞아요?"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직원이 몸을 낮추고 맞냐는 식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형원이 취객처럼 팔 한쪽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아닙니다."

"아."


직원이 머쓱해하며 내려갔다.

형원이 날 쳐다본다.


"야. 너 뭐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고마워해야하는지 이 놈을 부끄러워해야 되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아까부터 이런다.


"그래. 빨리 말해라. 뭔 일인데."


내 말에 형원이 담백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별 거 아님. 맨날 거절받던 거 한 번 더 거절 받음."

"뭐."

"아니, 나 연주하는 거 아냐?"

"네가 연주를 하는 거였구나."


형원이 억지 웃음을 짓고 날 보며 화를 억눌렀다.

이게 아직도 모르다니, 혹은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까지 다 귀 막고 듣는 척 한 거냐.

뭐 이런 배신감에 휩싸인 얼굴이었으나 사실 그리 지속되지도 않았다.


우리가 친구인 이유가 있다.

그는 별 생각을 하며 나랑 대화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 영재랑 합주를 할 기회가 온 거야. 내가 파일을 보냈다? 떨어짐."


아주 간략하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원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그가 웃다가 울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일주일 동안 30번 엎고 다시 찍은 건데."

"아."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형원의 머리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스윽 모자를 벗어서 그에게 던졌다.

괜히 내 머리에 냄새를 맡지는 않았다. 이미 알 것 같다.


"착하지만 좀 모자란 친구야. 일어나서 나가자. 이젠 다른 의미로 무섭다."


형원이 한 번 더 반복했다.


"아니, 그 영재라니까?"

"그 영재가 뭐야."


고유명사야? 그영재도 아니고 꼭 '그' 영재여야 하나?

신형원을 쳐다보니 그가 당연하다는 듯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일어난 나는 그를 재촉했다.


"어차피 많이 떨어진 거 한 번 더 떨어졌다고 네가 뭐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가? 아니잖아."


형원이 날 쳐다보더니 모자를 눌러쓰고 일어섰다.


"재능러는 이런 서러움을 몰라."

"내가 무슨."

"넌 노력하는 그 에너지를 모른다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형원도 말이 없어졌다.


그가 독이 올라 뭔가 한 소리 하고 싶어하는 얼굴이었지만 형원은 금세 평소처럼 시니컬해졌다.

자가치유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금방 망할 거니까 용서해주도록 하지."


뭐든지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

그게 나의 꿈을 넘어 내 인생의 이유라면 말이다.


형원을 쳐다보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거렸다.

알 수 없다. 이게 뭔지, 어디에 있는 건지. 확실한 건 저기 멀리 아주 어린 내가 악을 쓰며 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는 내가 주먹을 꽉 쥐고 얼굴에 혈관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직 한 가지를 향해서 말이다.


"미안하다."


형원이 날 슥 쳐다봤다.

그가 예민한 눈으로 날 훑더니 테이블에 손을 턱 올렸다. 그 손으로 까딱까딱 테이블을 친다.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는 거지. 어디 거하게 하나 시켜봐."


*


"뭐 얼마나 급하면 그랬을까 싶어서 감형해주는 거야."


형원이 테이크아웃한 무려 5줄 주문의 스타벅스컵을 들고 따라나왔다.


"무엇보다 네가 좀 오피셜하게 좀 그렇기도 하고."

"아. 모자 들이대지 마."

"뭐야."


주변에서 쳐다본다. 그냥 그대로 가기로 했다.

수근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는 정말 이상했다.

그 얼굴이 왜 이렇게 눈에 들어왔지.


"어이. 학생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나와 형원이 고개를 돌렸다. 돌린 건 행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말이라서 안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이 소란스러운 서울의 길거리를 잠재울 수 있는 우렁찬 사자후라니.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 민망할 만한 정도였다.


"도대체 저건 몇 년도 멘트야."

"걸어. 도망가."


유팀장이었다.


"뒤돌아보지 마. 뛰어."

"아니, 그게 더 이상하다고. 너네 형이야. 유지한. 형!"

"알아. 형인 거!"


소란은 그때 시작되었다. 그런 말 있지 않은가.

곰을 만났을 때 뒤돌아서 뛰지 마라. 미친 개를 만났을 때 등을 보이지 마라.

비슷한 말은 되게 많다. 아마 이런 상황이 그래도 흔해서이지 않을까?


"뭐야? 걔 맞아?"

"저기 뭐야."

"뭐야."

"뭔 일이야."


나비효과.

나비의 날개짓이 가지고 온 태풍.


유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뒤를 보니 대참사였고 유팀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빨리 타. 좋은 말로 할 때."


인파를 가르고 차에 탔을 때 유팀장이 나를 힐끗 쳐다보며 소리쳤다.


"유지한."

"유팀장님."


형원이 영혼이 빠져서 뒷 자리에 몸을 그대로 누인 채로 눈만 끔벅였다.


"굳이 이런 체험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


영재는 작업실 의자에 앉아 뒤로 기댔다. 작업실에 세워둔 기타들 사이로 하나를 골라 잡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고심하며 생각해보아도 원하는 사운드는 아니었다.


'이게 아닌가?'


그가 다시 제자리에 두다가 이마를 찌푸렸다.

이게 몇 번이나 반복됐지? 항상 작업이 일사천리는 아니지만. 아니, 그렇지 않은 적이 더 많지만 이렇게 더딘 적도 흔하지 않았다.


"슬럼프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로 덤덤하게 그가 모니터를 쳐다봤다. 그가 파일을 클릭하다가 잠시 동작을 멈췄다. 분명 어젯밤에 확실하게 정했는데.


미간이 조여진다. 아닌가. 이걸로 했었어야 했나. 뭔가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어디가 잘못되었냐고 한다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좋냐고 한다면 어렵다.


'그냥, 뭔가 딱 맞아떨어지는 게 있어.'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은 채로 그가 다시 기타 쪽으로 다가갔다. 뭘 골라야 이 비슷하게라도 느낌이 날지 고민했다.


그가 눈을 떴다.

이상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입꼬리가 위로 픽 올라갔다.


"아, 진짜 계속 생각나네."


지금 한창 이슈인 그 영상이랑도 닮았다. 그쪽도 연습생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프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왜 좋냐고 한다면.


"아. 이 곡 내가 진짜 해야 하는데."


영재가 머리를 잡아뜯었다. 굵은 안경테를 쓴 그가 잠깐 꺼진 화면 위로 소리 없이 아우성을 질렀다.


'이거 진짜 내가 하고 싶단 말이야.'


곡도 잘 나왔다. 멜로디 라인도 좋다. 세션? 당연히 국내 최고로 준비했다.

기타 리프가, 하필 리프가 좀 아쉬워서 여기저기 잘하는 사람한테 받아본 거였다.


파일을 다시 생각하자 허탈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쩌다가 그런 사람한테도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급했고 절실했다.


"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켰는데 다시 그 사람이 나왔다.

그 무대에서 잔뜩 얼어서 마이크 하나만 쥐고 간신히 있던 사람 말이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이상하게 머리에 자꾸 맴돌던 그 사람.


영재는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이제는 진심으로 얼굴 가득 웃음이 지어질 것 같았다.

웃을락 말락 한 표정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진짜 놀랍기는 하다."


일반인은 아닌 거 같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유엔엔터? 거기다가 연락하면 되나?"


그가 여전히 틀어진 영상에서 소리만 끄고 핸드폰을 켰다. 음소거된 화면 속에서 지한이 뛰어가는 뒷모습이 2분 가량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서의 달리기. 숨바꼭질. 술래잡기. 뭐 이런 식의 쇼츠가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으니.


영재가 감탄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뭐가 됐든 평범하지는 않네."


도대체 뭘까. 오랜만에 무거운 머리가 가벼워진다. 저렇게 틀을 깨버리는 사람을 보니까 좀 흥미도 당긴다. 저게 다 계산된 마케팅이라면? 그런 질문이 들어오자마자 영재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런 걸 하려면 어디 액팅스쿨을 다녀야 해."


그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모니터를 쳐다봤다. 미소가 사라지고 진지해졌다.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그때 그 무대 위에서 보여줬던 거의 지나가는 행인 붙잡고 올려둔 것 같았던 모습.


그래, 그런 게.


"여보세요?"


전화가 걸렸다. 영재가 오랜만에 떨려 침을 삼켰다.

장난전화 거는 기분이 든다.


"아, 네네."


누군지 알아본 직원이 잠시 정적이 생겼다.


"...네?"

"아, 유엔엔터 소속이 아닌가요? 뭐, 제대로 나온 게 없기는 하니까."

"아뇨, 네? 잠시만요.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죄송합니다."


그가 헛기침을 했다.


"그 영상 보고 연락드립니다. 한 번 만나보고 싶어서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엔터계 천연루키로 착각당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히키코모리도 이유가 있다 NEW 21시간 전 7 0 9쪽
8 너무 좋은데요 24.09.10 14 1 10쪽
7 누구요? 24.09.10 15 0 9쪽
» 비공개 신인 24.09.10 21 0 11쪽
5 얘 뭐야? 24.09.04 26 1 10쪽
4 수요와 공급. 저도 너무 좋아합니다. 이사님 24.08.24 38 2 10쪽
3 오디션을 보다 24.08.23 48 2 11쪽
2 캐스팅 당하다 24.08.22 68 2 11쪽
1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24.08.21 76 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