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계 천연루키로 착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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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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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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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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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을 보다

DUMMY




3화 오디션을 보다


“오디션이 이런 거였어요?”


경기장에 내 비명소리가 퍼졌다.

무대 위에 올라간 내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관객 석에 다크서클이 내려온 서 이사가 예민하게 가죽 재킷을 입고 팔짱을 꼈다.


“음향팀 됐어요? 조명 내려주고. 그냥 다 셋업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삐이이.


소음이 한순간에 울린다. 내가 귀를 막고 눈을 찡그렸다.

그 후에 잔잔하게 서 이사의 목소리가 퍼졌다.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침착한 표정. 화장기 없는 피부. 핏기 없는 입술.

입이 움직인다.


“그럼 제가 이 정도 검증도 안 해보고 다짜고짜 와달라고 하겠어요.”


사실이 아니다.

그 당시 눈이 돌아갔다.


“여기도 다 과정이 있는 곳이예요.”


사실이 아니다.

‘나는 이 일이 너무 좋아’ 하고 엉엉 울고

독기로 미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온 사람.


과정보다 열정으로 드글드글거리고 있었다.


“저는 제 일이 너무 좋거든요.”


이것만은 사실.

아니, 너무 확실해서 20년을 여기까지 끌고 온 마음.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

모자 밑에서 마른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시작하죠. 큐.”


포기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전쟁터인데.

내가 왜 포기해야 해. 나는 내 전쟁터를 고를 그 행운이 있었을 뿐이다.


*


“시작하죠. 큐.”

“지금요?”


심장이 떨린다. 목소리도 떨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관중석들을 보고 공연한 거야?

새삼 그 여섯 명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웃고 뛰며 손 흔들었던 게 보인 전광판.

분명 행복해보였는데.


압도된다.

거대한 검은 색의 허공.

난 이 공간의 그저 먼지에 불과해보였다.


“마이크 들어오죠?”


뒤에서 아까 인이어를 준 담당자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준비됐어요?”

“아뇨.”

“지금 해요. 마음준비.”


서 이사가 날 물끄러미 보고 말을 던졌다.


“녹음할 때는 안 떨렸어요?”


그녀의 말이 울린다.


*


서 이사는 방금 자기가 했던 말을 취소했다.

눈이 저 무대 위에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빛난다.


‘와. 물 만난 물고기네.’


눈을 꼭 감은 저 얼굴이 전광판에 보인다. 서 이사가 날카롭게 화면을 확인했다.


‘괜찮네.’


눈을 감았다.

귀에 들려오는 이 목소리.


허술하지 않은 실력이다. 그래. 파일로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큰 게 있다.


공간을 바꾸는 힘.

목소리로 설득시키는, 아니, 헤쳐나가는 저 힘.


노래가 끝났다.


서 이사, 서영화는 눈을 떠도 감은 듯 했다.

방금 유지한이 보여준 건 네 시간의 콘서트보다 더 거대했다.


영원히 반복되는 기억 같은 노래.


그녀가 중얼거렸다.


“제대로 찾았다.”


*


그래. 꿈꿨던 적이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어떨까, 이 정도의 어린 애 수준 말고.

버스킹 하는 가수들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아. 저 사람들 좋겠다.


그냥 막연하게 난 절대 될 수 없는 저 자리를 ‘좋겠다.’ 혹은 ‘좋다.’라는 마음으로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한 것도 없으면서 바라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그런 건 사실 몇 명의 사람만 될 수 있다고 다시 나를 자각시켰다.


수없이 노력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마냥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나가는 건.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때였다. 서 이사의 목소리가 날 깨웠다.

경기장은 고요했다. 내 목소리가 사라진 그 곳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검은 공간에 비친 조명. 그 뿐이었다.

내가 봤던 건 뭐였지?


홀로 생각한 공허한 환상이었을까.


“유지한 씨. 내가 말해줄까요?”


서 이사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녀의 모자 밑으로 얼굴이 보였다.

흥분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가라앉아서 오히려 차갑게 머리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유지한 씨 왠만한 가수들보다 노래 잘해요.”


이런 칭찬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칭찬인가?


서 이사의 표정이 냉랭했다. 그녀가 숨을 잠깐 멈추고 내뱉었다.


“가수 왜 안 해요?”


헛웃음을 뱉듯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 작은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갔다는 게 문제지만.

커다랗게 스피커를 통해 경기장에 울린 마지막 말.


“노래는 타고나는 거거든.”


관중석에서 서하가 물끄러미 무대를 올려다봤다. 전광판에 잡힌 지한의 얼굴이 창백하다. 옆에서 리하가 고개를 가까이 하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언니는 어때?”


서하가 그녀를 멍하니 보고 귓가에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뭐?”


리하가 화들짝 놀라 있다가 욱하고 화를 냈다. 서하가 고양이 같이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궁시렁궁시렁거리는 리하를 옆에 두고 그녀가 모자를 더 깊이 눌러 썼다.

어떠냐고?


전광판에 하얀 피부에 그가 잡히고 있다.


체크 셔츠. 그 안에 흰 티셔츠.

평범한 키에 평범한 체격.

길거리에서 지나가며 봤어도 돌아보지는 않을만한 얼굴.


‘빛난다.’


조명이 비쳐서 빛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자리가 누구보다 어울리는 사람이다.

웃고 춤추고 달리며 소통하기보다, 공연장을 꽉 채우는 마음이 있다.


“우리 과는 아냐. 확실히.”


서하가 읊조렸다. 리하는 혀를 차며 속닥거렸다.


“여기 과도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말라가. 저 분.”

“응. 그렇네.”


별 반응 없이 서하가 대꾸했다.


말 그대로 전광판 안에서 줌인된 지한의 얼굴은 창백하게 마르고 있는 건조 오징어가 따로 없었다.


*


‘죽여줘.’


안돼.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취업도 해야 하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전사할 수는 없어.

적어도, 몰라.


‘몰라. 모르겠다.’


일단 여기는 아냐.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서 이사가 물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과거의 자신을 비웃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사장에게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 유엔엔터 그 명성에 안 들어올 사람이 있겠나.

내 경력에 못 설득시킬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자신만만했다.


그때였다. 상상치도 못한 말이 돌아왔다.

유지한이 침을 꿀꺽 삼키고 바들거리며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여기를 어떻게 믿어요.”


순간 모든 스태프가 얼어붙었다.

서 이사가 웃는 얼굴로 표정에 금이 갔다.


“유엔엔터 말고 더 높은 급을 원한다는 거지.”


수근수근.


“서 이사님 레벨로는 안 되는 거야.”

“야. 그러면 해외레이블을 보나 봐.”


뭐가 됐든 몸을 사리자.


“못 믿으시겠다.”


막 미국 비행기에서 내린 서 이사가 입술을 깨물고 말을 늘렸다.

웃고 있지만 검은 오우라가 물씬 퍼져나왔다.


하하하.

못 믿겠다. 그래. 가보자.


*


“이런 상황에 말하기 죄송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말할 것 같습니다.”

“왜 못해. 왜.”


그녀가 다리를 꼬고 화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저는 연예인 체질이 아닙니다.”

“그 체질, 어디 한의원가면 만들어준답니까? 그런 거 없어요. 원래.”

“너무 불안정한 직업이예요.”

“이 불경기에 다른 건 평생직업이예요?”


안 뚫리는 방패.

할 말을 잃은 창.


무대 위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스태프들이 텅 빈 눈으로 응시했다.

마음의 소리는 이랬다.


그냥 해라.

뭐 얼마나 더 네고를 하겠다고.


그들 눈에 지한은 그저 자신감에 넘친 신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 이사는 아니었다. 이제 알 것 같아.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왜 이렇게 본인을 못 믿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머리를 맞은 듯 그대로 서있었다. 울컥하여 핏대를 솟으며 말했다.


“제 나이대에 자기한테 확신 있는 사람이 누구 있대요?”


원래 이 나이에는 다 불확실하고. 다 모르겠고. 그런 거 아니냐고요.


서 이사가 지긋하게 날 보며 재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눈 앞에 화면이 보인다.


그녀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어깨를 위로 올리며 모른다는 제스쳐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관심가지지 말라는 말이죠? 아무 관심도 안 가질게요.”

“이런 식으로 사람 놀리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겁니다.”


그녀가 고개를 까딱 꺾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정도요? 내가 어제부터 따라다니는데 놀리는 걸로 보여요?”


서늘해졌다.

그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내가 이렇게 설설 기는데 놀리는 것 같아요?”


그녀가 이를 꽉 물고 더 환하게 웃었다.


“취업 같은 소리하네. 내가 손에다가 합격증 쥐어주고 있는데 지금.”

“···”


그녀가 빵긋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자기를 너무 모른다. 유지한 씨.”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낮게 목소리를 낮췄다.


“머쓱하죠? 그러면 그냥 말 없이 따라와요.”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말마따나 민망하다.


그녀가 뒤를 돌고 날 봤다. 우두커니 서서 무표정으로 나를 몇 초간 본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눈을 제대로 봤다.

휩쓸리는 것만 같은 이 며칠 사이에 가장 진중한 때인 것 같았다.


내 두 발이 땅에 붙은 걸 실감하는 중력이 제대로 돌아온 기분.


“얼마나 실망하고 산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유지한 씨. 이 세상은 소비자라는 게 있거든요.”


그녀가 내게 턱짓을 하며 물었다.

마치 초등학생 퀴즈쇼를 하는 듯 했다.


“그럼 또 뭐가 존재할까요?”


*


나는 홀린듯이 벤에 탔다. 그녀가 운전석에 타며 어두운 차내에 불을 켰다.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밤 12시.

도로에 벤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회사를 입력하고 뒤를 돌아 내게 말했다.


“생산자.”


그때였다.


“이게 뭐야.”


폰을 붙들고 있는데 그대로 메세지가 솟구쳤다.

처음 보는 내 화면에 폰을 떨궜다.


툭.


모든 것 일시정지.

고개만 빼서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쉴 틈도 없이 뜨는 메세지.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화면이 깜박거리더니 그대로 꺼졌다.


아무래도 그때 무대를 본 건 서 이사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간과한 것은 그 잠깐의 10분이 온 경기장 밖까지 들렸다는 것이고.


리벨하트가 깜박한 것은

그들이 이 특별 이벤트에 참석하는 바람에,

행보가 오리무중이 되었다는 것.


인터넷은 뜨거워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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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얘 뭐야? 24.09.04 2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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