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아이 스코프 :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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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밀빵
작품등록일 :
2024.08.25 03:21
최근연재일 :
2024.09.2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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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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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앞통수 조심해, 총알 날아간다!


로건이 5명의 갱중 한 명을 깔끔히 죽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동료가 바로 앞에서 쓰러져 죽어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저 로건을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서로의 거리가 50m로 좁혀지자 콩알만 하던 그들의 모습이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천을 얼굴에 둘러 입과 코를 가리고 모자 챙이 양옆으로 쭉 뻗어나 있는 카우보이 모자, 너절하고 찢어진 옷을 두루 껴입고 꼬질한 때가 묻은 피부. 전형적인 무법자의 얼굴이었다.


로건은 레밍턴 소총의 해머를 젖히고 약실을 개방한다. 탄피가 밖으로 튕기듯 나오며 그 자리에 작은 회색 연기가 분출된다. 그는 허리춤에 찬 탄알집에 30구경 총알을 하나 꺼내어 약실에 넣는다.


'제길···! 어서··· 총알아, 들어가라고!'


갱들의 고함이 선명한 목소리가 되어 로건의 귓속으로 들려온다.


"하, 시발! 쥐새끼들처럼 바위에 숨어서 쏘는 꼬락서니하고는! 얘들아 상대는 겨우 둘이야! 어서 죽여버려! 돈이든 총이든 뭐든 가져가자고! 오늘 술값은 벌어야 할 거 아니야?!"


로건이 약실에 총알을 넣었을 땐 이미 갱들이 그가 숨어 있는 울퉁불퉁한 바위 코앞까지 와 있었다.

로건이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갈색 말의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무법자가 로건을 향해 눈웃음을 짖는다. 살의에 찬 눈빛, 누굴 죽여도 절대 죄책감이란 걸 갖지 않을 눈빛, 이것이 자기 삶의 방식이라는 눈빛이었다.


무법자의 오른손에 든 리볼버의 총구가 로건의 머리통을 향한다. 이 정도 지근거리라면 굳이 가늠쇠에 눈을 가져다 댈 필요도 없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분명 몸통 어디든 맞는 거리다. 로건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탕!, 탕!, 탕!, 탕!'


그리고 정확히 네 번의 총성이 울렸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겨우 알아차릴 정도로 말이다. 로건은 자신의 온몸을 더듬거린다. 아무런 감각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뜬다. 자신의 눈앞에 네 명의 갱들이 얼굴을 땅바닥에 파묻은 채 쓰러져 있다. 그들 모두 뒤통수가 깔끔히 터져있다. 사방에 뇌의 살점, 뒤엉킨 힘줄과 두개골의 조각이 나뒹군다. 로건은 고개를 돌려 리암을 쳐다본다. 그의 총구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리암은 '열네 발'이라고 작게 혼잣말을 내뱉는다.


리암이 로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일으켜 세운다.


"내가 저번에 말했지? 넌 행동이 너무 굼뜨다고. 모든 건 한순간에 판가름이 난다. 총과 총으로 싸우는 이곳에서 총을 한순간에 뽑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면 죽는다. 그리고 그 순간에 죽이지 못해도 죽는다. 어찌되었든 잘 살아남았으니 이 순간이 네 뼈에 새길만큼 좋은 경험이 됐으면 좋겠군."


리암은 44구경 윈체스터를 등 뒤로 짊어진다. 로건이 그의 행동에 다급하게 손짓을 하며 말한다.


"리암! 왜 총을 집어넣어요?!"


그의 물음에 리암은 고개를 까닥이며 검지손가락으로 로건의 등 뒤를 가리킨다. 로건이 몸을 돌리고 바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보았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15명의 갱이 황야의 벌판을 무덤으로 선택했다. 길잃은 양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말들은 주인이 죽은 자리를 둥글게 돌다가 이내 멀리 떠나버린다.

전쟁이 끝난 자리엔 오직 패자의 유품과 승자만이 남아있다. 리암은 휘파람을 불며 시체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갱들이 가지고 있던 배낭의 지퍼를 연다.


"크... 오늘은 풍년이구나. 이 녀석들좀 봐라? 꽤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잖아? 뭐야 이건··· 데린저 권총 아니야? 계집애들이나 지니고 있는 걸 뭐하러 가지고 다니는 거야?! 로건, 너도 와서 좋은 것들 좀 챙겨라. 나 혼자서는 벅찰 것 같으니까."


리암이 호탕하게 웃으며 죽은 시체들의 안주머니를 뒤진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술, 쓸만한 총까지 모두 빼내어 자신의 배낭 안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는다. 그의 행동에 로건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도 죽은 사람들이잖아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은 들지 않는 거예요?"


리암은 그의 얘기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일어선다.


"하여튼 쓸데없이 신경쓰기는. 꺼림칙해? 저 녀석들은 단둘이 있는, 심지어 누가 봐도 어려 보이는 너까지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다. 멀리서 우릴 보면 먼 길을 걸어가는 불쌍한 부자지간으로 보였을 텐데 말이지. 그리고 싸움은 저 녀석들이 먼저 걸었고, 결과는? 보다시피 참패지. 가끔 그런 녀석이 있더라고. 아무리 나쁜 새끼도 교화시킬 수 있는 줄 아는 긍정적인 녀석들이. 그런데 난 그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상과는 맞지 않아. 이유가 어찌 되었든 쓰레기는 땅에 묻어야지. 이런 얘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죽음 뿐이다."


리암은 걸음을 옮겨 다른 시체의 안주머니와 허리춤에 찬 파우치를 뒤적거린다. 그의 말에 로건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야 무법자들을 죽이지 못했다면 이 바닥에 시체가 되어있는 건 저들이 아닌 로건과 리암이었을 테니까.


로건은 죽어있는 시체에 다가간다. 시체의 허리춤에 찬 45구경 스코필드 리볼버가 로건을 지켜줄 자신이 있다는 듯 권총집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로건이 침을 삼키며 손을 서서히 리볼버에 뻗자 리암의 외침이 들려왔다.


"좋아! 이제 끝! 난 다 챙겼어. 밤이 되면 죽을 정도로 추워지니까 서둘러 출발하자고."


리암이 한가득 터질듯한 배낭을 짊어진다. 그의 말에 로건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로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암의 뒤를 따라간다.


잠깐의 소란 이후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리암은 무거워진 배낭에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로건이 눈동자를 굴려 리암을 흘깃 쳐다보더니 먼저 얘기를 꺼낸다.


"저도··· 당신처럼 될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리암이 눈을 내리깔며 그를 째려본다. 허튼소리는 한 게 아닐까, 로건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간다.


"계속 느끼곤 있었어요. 당신을 언제쯤 따라잡을 수 있을지... 사실 사람마다 차이란 게 있잖아요? 누군 더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 당신이 14명을 상대할 동안 전 겨우 한 명이었어요. 단 한 명 죽이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그냥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데드 아이 스코프엔 당신 같은 사람들이 많겠죠. 그런 조직에 저따위가 들어가도 될까요···"


그의 말에 리암은 짧은 헛웃음을 한번 내뱉곤 입을 열었다.


"비교 대상이 잘못됐군. 어제의 넌··· 아니지, 2년 전의 넌 어땠지? 총을 쏘기는커녕 제대로 쥘 수 있었나?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정확하게 표적을 노릴 수 있잖아. 이 세상에서 너보다 잘난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 총을 쏘는데 몇십 년을 가져다 바친 사람도 있어. 겨우 2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려고 들지마.


넌 과거의 너를 비교 대상으로 여겨. 네가 10분에 한 발을 쏠 수 있었다면 다음날에는 9분 59초에 한 발을 쏠 수 있게 하란 말이다. 단 1초밖에 단축이 안 되었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넌 못 쏘는 사람에서 덜 못 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거야.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고, 특별해 지려고 하지마. 넌 언제나 틀렸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 그저 덜 틀린 사람이 되도록 거듭나는 수밖에 없어. 그 사실에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한탄이나 하고 있다니··· 쯧, 가던 길이나 마저 가자고. 이렇게 시답잖게 얘기로 남은 기력을 소모하긴 싫다."


리암의 얘기에 로건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후 한탄 섞인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고 한숨조차 쉬지 않았다. 그는 리암의 등 뒤를 바라보며 모기처럼 딱 붙어 갈 뿐이었다.


그들은 한참을 걸었고 울퉁불퉁한 능선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수십 번 반복한다. 군데군데 절벽으로 이루어진, 폭이 매우 짧은 길을 위태롭게 지나가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대지에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와 함께 신발을 달구던 뜨거운 열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젠 추위가 그들의 온 몸을 훌고 지나가고 있었다. 밤하늘에서 까마귀가 그들을 보며 두어 번 운다. 마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까마귀가 그들의 상공에 빙글빙글 맴돌다 사라진다. 뼈를 얼어붙게 하는 바람에 로건은 코를 훌쩍거린다. 그는 파랗게 질린 두 입술을 때며 말한다.


"리암... 저희 야영은 안 하나요? 이러다가 진짜 얼어 죽는 거 아니..."


리암은 우뚝 멈춰 선다. 그의 등 뒤를 바짝 쫓아가던 로건은 얘기를 끝마치기도 전에 그의 우람한 등판에 코를 박는다.

리암이 손가락으로 무언갈 가리킨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시선을 옮기자 어둠 속에 타오르는 성냥의 불씨처럼 마을 하나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쩐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했지. 다 왔다. 저기가 바로 내가 사는 마을이자 고향인 '유타'다. 사막 한 가운데서 피어난 꽃이자 파리지옥같은 곳이지."


작가의말

통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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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아이 스코프 : 1875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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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24.09.18 3 0 10쪽
16 15화 24.09.17 4 0 10쪽
15 14화 24.09.16 6 0 10쪽
14 13화 24.09.13 5 0 10쪽
» 12화 24.09.11 8 0 10쪽
12 11화 24.09.10 7 0 10쪽
11 10화 24.09.07 7 0 10쪽
10 9화 24.09.06 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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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24.08.29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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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화 24.08.26 1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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