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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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4.08.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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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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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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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입문(入門)

DUMMY

괴뢰는 동아줄에 묶여 구름 위를 달리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괴뢰에게는 제일 명령권자의 명령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따라서 배움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벽사존자 역시 괴뢰를 더 잘 알기 위해 질문을 받아주었으며 되묻기도 했다. 괴뢰가 물었다.


“존자께서는 어떻게 그리 강해지셨습니까? 또한 수명이 아주 긴 듯합니다.”


“요괴들은 원래 오래 사느니라.”


“요괴요?”


“수명이 길고 힘이 강하며 속세의 법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가 요괴 말고 더 있겠느냐?”


“신선이나 천신, 부처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영생하지, 우리는 범인에 비해 조금 더 오래 살 뿐이다. 우월하다는 것이 상대적인 것에 의존된다면 얼마나 덧없는 우월함이더냐. 그게 요괴의 한계다.”


“인간을 낳으셨으니 한때는 인간이셨을 텐데 어떻게 요괴가 되신 겁니까?”


“요괴의 자질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다. 주화입마를 아느냐?”


“인간은 오행(五行)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오행 중 하나가 부족하거나 과하면 주화입마에 빠지고 두 개 이상이 부족하거나 과하면 즉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옳다. 그런데 나면서부터 오행의 조화가 틀어지면 열이 나거나, 열이 없거나, 병에 걸리거나, 의식이 없거나, 육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되면 죽는 게 당연하나 죽기 전에 사생계로 데려가 영기를 흡입하게 하면 각각 수영근, 화영근, 목영근, 금영근, 토영근을 얻게 된다. 수도자에게 영기는 축복이지만, 어떻게 보면 죽었어야 할 것들을 살려놓은 요기(妖氣)나 다름없기도 하다.”


“그런 신묘한 곳이 왜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우선 아기를 데려갈 때는 가짜 시신을 만들어 부모를 속인 다음 데려가기에 범인들에게는 아기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찾지 않는다. 또한 사생계의 영기를 마셔 살게 된 이들은 수위가 웬만큼 높지 않고서야 범계로 나올 수 없다. 원영경 후기인 나 정도면 사생계에서 강자이나 나 역시 이곳에서 며칠만 머무르면 영기가 고갈되어 사생계로 돌아가야 한다.”


“왜 그렇습니까?”


“뻔하지 않으냐. 범계는 평범한 세상이라는 뜻이나 영기로 수명을 연장한 사생계의 수도자들은 평범했으면 죽었을 자들이다. 범계에서 온갖 술법이나 신묘한 현상이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오행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조화라는 것은 자취가 없다는 뜻이다. 신(神)과 귀(鬼)의 차이와도 같지. 신은 조화를 이루기에 위대하나 자취가 없으며 귀는 원념을 가진 탓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떠돌아 조잡하지만, 자취가 있다.”


“범계가 수도자들을 죽게 만듭니까?”


“쉽게 말하자면... 수도자들은 영기가 아예 없게 되면 죽는데 범계는 영력이 없는 세상인 데다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려 수도자들의 영기에 간섭하니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뜻이다. 고갈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지. 하지만 사생계는 영맥이나 영풍 등으로 영기가 충만하여 어디 결계에 오랜 기간 갇힌 게 아닌 이상 그럴 일이 없다.”


“그렇군요.”


“나도 하나 묻고 싶구나.”


“물어보십시오.”


“너의 그 호기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알아야 하기에 알려는 것이냐? 아니면 알고 싶어서 알려는 것이냐?”


“...알아야 하기에 알고 싶습니다.”


“흠 지금의 대답은 그러한가. 수십 년 뒤에 다시 물어보마. 나는 너를 연구하기 위해 데려온 것이니 협조하거라. 대신 나 역시 너의 부탁을 들어주고 돌봐주마.”


“협조하겠습니다.”


“이제 다 왔다.”


구름 위에서 구름의 굴곡이나 아래의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 도착한 곳은 평지가 있고 평지의 주변이 온통 산맥과 안개로 둘러쌓여 있는 장소였다. 그곳은 범계임에도 수도자들이 많았다. 수도자들은 벽사존자를 보자 하나같이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벽사존자는 품에서 붉은 바탕에 금색으로 令가 새겨진 영패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수도자 중 몇몇이 땅을 꺼지게 해 통로를 만들었다. 벽사존자가 말했다.


“보아라, 지금 통로를 만든 자들이 토영근을 지닌 자들이다. 그리고 안개를 유지하는 자들은 수영근을 지닌 자들이지. 범계에서는 영술을 펼치거나 유지하는 것조차 보통 일이 아니기에 이들 전원이 결정경 중기 이상이니라. 십수 개의 조가 교대로 하루씩 이 통로를 맡지. 정파에 속한 문파들이 협력하여 이 통로를 유지한다. 대신 내가 속한 곳에서는 인재를 배분하지.”


“경지가 어떻게 나뉩니까?”


벽사존자가 통로에 뛰어들며 괴뢰의 질문에 답했다. 통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길어 백련교에서 여기로 오는 시간보다 통로를 통과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기본적으로 영근이 있고 이를 느낄 수 있으면 연기경(緣起境)

영기를 신체에 쌓기 시작해 제대로 된 영술을 펼칠 수 있게 되면 축기경(畜氣境)

영기가 신체에 쌓여 결정화되면 결정경(結晶境)

원영이라는 영기로 이루어진 두 번째 혼을 만들어 다룰 수 있게 되면 원영경(湲靈境)


“이외에도 있으나 그건 나중에 공부하거라. 급한 건 이 네 개의 경지이니라.”


“혼이요? 제가 그 혼을 볼 수 있겠습니까?”


“나의 혼을?”


“네!”


괴뢰는 혼에 관련된 지식을 배우고 싶었다. 혼은 지금도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으며 그 자체는 제일 명령권자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러니 벽사존자의 혼을 보고 싶었다.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작용을 하는가 관찰하고 싶었다. 하지만 벽사존자가 말하기를.


“혼백이 하나이거늘 몸에서 혼을 꺼내면 어떻게 살겠느냐?”


“하지만 말씀하시기로는...”


“진짜 혼은 아니지. 영기를 쌓다 보면 더 이상 쌓이지 않아 몸이 다시 영기를 배출하는데 이때 배출한 영기는 혼의 흔적이 있다. 그 영기를 제련하여 혼을 흉내 내고 괴뢰나 사물, 시체에 집어넣으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원영경이 되는 사람은 적으나 수는 은근히 많다. 뒤를 보거라.”


벽사존자의 말에 뒤를 돌아보자 창 세 자루를 든 동남과 삼단으로 된 찬합을 든 동녀가 보였다. 동남동녀가 고개를 끄덕여 웃어 보였다. 벽사존자가 말했다.


“이것들은 너와 같은 괴뢰다. 다만 영기로 빚은 혼을 넣어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처음에는 껍데기만 만들었었지.”


“껍데기만 만들지 않는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저와 같은 수준의 괴뢰가 또 있습니까?”


“그런 경우는 기본적인 금제(禁制)만 걸어놓은 경우다. 예를 들자면 적이 침입했을 때 달려든다. 방에 물건이 많아지면 정리한다. 정도가 있겠구나. 그래서 인기가 없다. 재료는 비싸고 설계는 어려운데 행동은 금제 때문에 단순하지, 더군다나 금제에 일가견이 있는 다른 수도자를 만나면 금제가 깨져 괴뢰를 빼앗길 위험도 있으니 누가 하겠느냐.”


“그러면...”


“됐다. 이제 다 도착했으니 공부는 제대로 된 곳에서 하자꾸나. 명심하거라. 나보다 위에 계신 분들께는 너에 대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힐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아래에 있는 수도자에게는 너를 내 양아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통로를 통과하자마자 아무도 너를 보지 못하게 순식간에 내 동부까지 가서 며칠간 가둘 터이니 그 안에 기본 지식과 예법을 익혀라.”


“알겠습니다.”


통로를 통과하기 직전, 벽사존자는 앞을 향해 입김을 불었다. 입김은 색이 어두웠는데 그것이 공기와 만나자 크기가 커져 먹구름처럼 되었다. 먹구름이 일행을 감싼 채로 통로를 나와 앞이 보이지 않는데 벽사존자가 먹구름에 구멍을 뚫고 영기로 막아 밖을 볼 수 있게 했다. 통로를 나온 밖에는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물고기나 해조류 등의 생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고요했다. 다만 이곳도 통로를 들어올 때 본 것처럼 수많은 수도자들이 바다 위에 성벽을 짓고 令이 적힌 수많은 깃발을 세우고 있었기에 인공적일 가능성이 컸다. 벽사존자는 오기 전에 했던 것처럼 영패를 보였고 수도자들은 깎듯이 인사를 올렸다. 바다 위 성을 총괄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도자는 通이 적힌 패를 허공에 던졌다. 던져진 패는 하늘로 치솟다가 어느 순간 결계에 막혀 나아가지 않았다. 패가 빛나자 바닷바람에 계속해서 펄럭이던 깃발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고 결계 역시 사라졌다. 벽사존자는 영패를 다시 회수한 뒤 하늘로 솟구쳐 구름 위를 날았다. 괴뢰가 말했다.


“우리는 분명 땅 밑으로 꺼지고 있었는데 어느새 하늘이 나오는군요.”


“어차피 가짜다.”


“바다도 가짜입니까?”


“바다는 진짜다. 이참에 지리나 한번 보거라. 지도야 나중에 주겠지만, 사생계에 있는 인간의 영토 전체를 눈에 담는 건 이곳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구름 위를 나는 것도 원영경 이하에게는 금지되어 있으니 흔치 않은 기회다.”


벽사존자는 그 말과 함께 먹구름을 거두고 밑에 있는 구름을 잠시 걷어냈다. 그제야 괴뢰는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보게 되었다. 통로는 사생계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대륙이 넷에, 그보다는 못해도 충분히 거대한 열도가 열여섯 개였으며 하늘 위에서 보일 정도로 거대한 영맥은 모든 육지에 예순하고도 네 개가 있었다. 육지에는 하늘까지 닿는 누각들도 보였다. 영맥은 그 모습이 화산과도 같아 위로는 증기를 내뿜으며 아래로는 땅을 조금씩 들어 올렸다. 이 때문에 오래된 거대 영맥은 실제 화산처럼 높게 솟았다. 마을 하나가 들어설 정도의 작은 섬들은 삼천이백 개가 있었고 그보다 작은 섬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다였다. 괴뢰가 말했다.


“우리가 나온 곳을 제외하면 모든 바다가 거칠군요. 하늘에는 벽력이 일고 풍파가 심합니다.”


“이곳의 바다는 영해라고 한다. 영해의 물은 전부 영기로 되어 있으나 너무 독한 탓에 함부로 마시거나 수행에 사용하면 죽을 위험까지도 있다. 희석하여 사용하려 해도 희석하는 일에 드는 비용이 더 크니 영해는 영해에서 사는 요수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아니면 수도자의 인생에서 비중이 적다. 이따금 영풍과 감응하여 웬만한 문파의 진법도 힘으로 부수는 태풍을 일으키기도 하니 요수를 사냥하는 이들은 목숨을 걸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무용한 건 아니다. 영해가 흐르다 보면 농도가 더 짙어져 서로 엉기게 되는데 이 과정이 진행되면 영해의 물이 영맥이 되고, 영맥이 솟다 보면 다시 흩어져 영풍이 된다. 이 영풍은 또 영해를 휘저으며 영해에 영기를 더하기도 하지.”


“영풍은 무엇입니까?”


“그냥 바람이다. 다만 사생계답게 영기를 품고 있지. 영해와 영맥에 비해 독하지 않고 옅어 연기경이나 축기경들의 수행에 많이 쓰인다. 뿐만 아니라 등 뒤에서 부는 영풍은 수도자에게 영기를 불어넣는다. 앞에서 불면 영술을 펼치는 일을 방해하기는 하나 일상적으로 부는 바람은 그 효과가 미미하여 신경 쓸 것 없다. 어딜 가나 부는 영풍이 있고, 내륙에는 영맥이 솟아 있으니 사생계에서 수도자는 영기가 없어 말라 죽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구경이 끝나자 벽사존자는 다시 먹구름으로 일행을 덮고 빠르게 한 열도를 향해 날아갔다. 어느 정도 도착하여 비행 높이를 낮추자 벽사존자를 발견한 몇몇 수도자들이 인사를 했으나 벽사존자는 다음에 보자는 형식만 갖추고 급하게 자신이 기승하고 있는 백록(白鹿)에게 손을 대 영기를 불어넣으면서까지 속도를 냈다. 먹구름이 감싸고 있었기에 괴뢰에게 보이는 것은 하나 없고 인식할 수 있는 건 속도와 가끔 들려오는 인사 소리뿐이었다. 어느새 도착하여 백록이 멈추고 먹구름이 걷히자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떠다니는 수많은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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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질서(大秩序) 24.09.02 21 3 12쪽
11 대질서(大秩序) 24.08.28 22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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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문(入門) +1 24.08.25 4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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