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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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4.08.25 14:54
최근연재일 :
202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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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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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入門)

DUMMY

창위의 동료 호법이 창위가 머무는 봉우리를 떠나고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사태가 일단락되자마자 괴뢰는 창위에게 말했다.


“국가는 청나라, 여기는 백련교였군요. 대충 상황은 알았습니다. 지금 연호가 어떻게 됩니까?”


“아아 안된다. 너는 이곳에 속하게 두지 않을 것이니 관심도 보이지 말거라. 들려도 귀머거리처럼, 보여도 장님처럼 살아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알겠느냐?”


“창위님의 말씀을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어쩌다가 들킨 겁니까?”


“내가 늘 들고 다니던 보검이 사라진 걸 안 무위호법(撫慰護法)이 캐묻길래 그냥 내가 말해준 거다.”


“왜 말해주셨습니까?”


“비록 지금은 뜻이 갈리나 반평생을 함께한 동지들이고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형제들이다. 더군다나 백련교의 교리에 거짓을 금하는 규율이 있으니 내가 어찌 거짓을 말함으로써 형제를 속이고, 침묵함으로써 오해와 분란을 야기하겠느냐. 그나저나 보검은?”


“창위님께서 저를 잡동사니에 숨길 때 부러졌습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렸군요.”


창위는 기겁하며 괴뢰의 몸을 살폈다. 그러나 흠집 하나 없고 입고 있는 옷에는 구겨짐 하나 없었다.


“그게 부러졌다고?”


“네.”


“내가 급한 마음에 잘못 밀어 넣었다지만, 그게 무언가를 자를지언정 절대 부러질 만한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러졌습니다.”


“어디 한번 보자.”


창위는 무위호법이 헤집어 놓은 잡동사니들을 다시 헤집었다. 보검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그것은 반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곳에 있었다. 손잡이가 있는 부분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손잡이가 없는 부분은 의자의 다리를 관통한 채 꽂혀 있었다.


“아니... 이 귀한 것을......”


그때 봉우리를 감싸고 있던 구름이 훤히 열리고 무위호법과 키가 웬만한 장정보다도 크고 기골이 장대하면서 수염을 비롯한 온몸의 털이 많은 노인이 점잖게 경공술을 펼치면서 왔다. 그런데 노인만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도 봉우리를 감싼 구름이 걷히고 교도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비록 경갑을 입고 검을 검집에서 빼내지 않았으나 무장한 상태였다. 창위는 노인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노인은 괴뢰를 보더니 무위호법을 향해 말했다.


“저 아이인가?”


“그렇습니다. 기창호법(基昌護法)에게 듣기로는 금강불괴보다도 더한 신체에 자율적인 사고가 가능한 괴뢰라고 합니다.”


“금강불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그런 말이 나오는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창위는 괴뢰를 자신의 뒤에 서게 하고 자세를 잡았다. 등은 굽었고 왼손은 앞으로, 오른손은 조금 더 뒤에서, 약지와 소지는 접은 뒤 나머지 세 손가락은 구부렸다. 창위의 자세를 본 노인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일갈했다.


“너에게 소림의 용조수를 전수한 사람이 바로 이 멸절진인이거늘! 감히 반청(反淸)의 맹세를 깨고 백련교에 반기를 들어? 안 그래도 정지룡(郑芝龙)이 당왕(唐王) 주율건(朱聿鍵)을 가황제(假皇帝)로 옹립하여 시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건만!”


멸절진인이 노하자 창위와 괴뢰를 포위하고 있던 백련교도 중 한 명이 검을 뽑고 검기를 발했다. 백련교도는 곧바로 창위의 뒤쪽에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창위의 뒤쪽에는 괴뢰가 있었다.


“제이 명령권자를 보호하겠습니다.”


괴뢰는 검에 머리를 들이대고 손을 뻗었다. 검은 부러지고 교도의 목이 괴뢰의 손에 잡혔다. 목이 잡힌 교도는 목이 꺾일 위험에도 계속해서 반항했으나 괴뢰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교도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이 광경에 멸절진인을 비롯한 백련교도들은 눈을 부라렸고 창위는 식은땀을 흘렸다. 창위가 말했다.


“멍청한 놈! 여기서 네 성능을 보이면...!”


멸절진인은 괴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창위에게 말했다.


“......저것이면 된다. 창위야, 저것이면 된다. 저것이면 남경(南京)을 점령하고 온 국토를 더럽히고 있는 청군을 몰아낼 수 있다. 더러운 배신자의 후손인 주씨의 힘 따위는 필요 없다.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구나!”


창위가 말했다.


“드릴 수 없습니다.”


“저 괴뢰는 간령(姦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간령은 초절정에 이른 무인만이 받는 직제(職制), 저 괴뢰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보다도 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지, 검기를 머리로 받았으니 화경보다도 확실히 강하다. 저 괴뢰를 양산한다면...”


“제조법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창호법!! 지금 여기서 그런 거짓말이 먹히겠는가!?”


멸절진인의 손짓에 백련교도들이 검을 뽑아 전원 검기를 발한 뒤 검을 겨눴다. 점차 좁혀오는 포위망에 괴뢰는 손에 잡고 있던 백련교도를 다른 곳에다 던졌다. 두 손으로 자유롭게 해 싸울 준비를 했지만, 창위가 외쳤다.


“백련교도를 죽이라고 널 만든 게 아니다!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마라! 날 지킬 필요도 없다. 수호할 필요도 없다. 그저 네가 만들어진 바를 다하거라!”


“제일 명령권자의 명령은 현재 불명확합니다. 제이 명령권자의 말이 우선됩니다.”


창위의 말에 괴뢰는 아예 멈춰버렸다. 창위가 명령을 내리지도 않고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말라고 하니 제일 명령권자의 명령을 모르는 괴뢰로서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창위가 멸절진인에게 말했다.


“저는 이 괴뢰를 이미 제 운조부(雲祖父: 구대손이 할아버지를 부르는 호칭)께 바쳤습니다! 그분은 원영경에 오른 수도자이시니 이 괴뢰를 데려갔다가는 화를 당할 것입니다!”


수도자라는 평범한 단어에 다른 백련교도는 개의치 않았으나 멸절진인은 그 단어에 놀라 백련교도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수도자? 그들은 속세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느냐?”


“가문에 수도자가 계시면 재물이 모이는 법. 후손으로서 마땅히 근본 되는 분께 받은 만큼 바치는 재물이거늘 속세의 일이라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일은 아닙니다.”


“그 괴뢰는 우리 백련교의 신물이며 청군에 맞설 영웅이 될 것이다. 어찌 속세와 관련이 없다고 하느냐!”


“그렇게 보는 이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뿐. 그러니 모르는 척하십시오. 수도자라는 족속들은 여기 모인 이들을 다 죽이고 사적인 일로 만드실 수도 있다는 걸 알지 않으십니까?”


“그렇다고 해도 수백 년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이 구대손의 행적을 알 리가 없을 터! 서둘러 자넬 죽이고 다른 진인과 호법, 간령들만 이곳에서 터를 옮긴다면 꼬리를 자를 수 있네! 그러니 허튼 생각 말게.”


그 순간 괴뢰의 눈에는 자신이 부러트린 보검과 같은 종류의 보검이 순식간에 날아와 멸절진인의 입술을 그어 네 갈래로 만드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한 듯했다. 멸절진인의 입술은 피 한 방울 없이 베였다가 잠시 후 베인 피부가 붉어지더니 피가 흘렀고 멸절진인 역시 입술에서 느껴지던 이질감이 고통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신음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도자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속여먹겠다니 대담하구나.”


햇빛 이외에는 푸르기만 하던 맑은 하늘에서 빛이 산란하더니 길고 흰 수염, 노인의 모습, 정갈한 적삼, 긴 소매, 모든 요소가 신선을 떠올리게 하는 이가 나타났다. 그는 흰 사슴에 기승하고 있었는데 그의 주위로는 열여섯 자루의 보검이 탱화(幀畵)에 나오는 부처의 후광처럼 신선의 뒤에 자리 잡았고 그의 오른손에는 자그마한 종(鐘)이, 왼손에는 손바닥만 한 거울이 들려 있었다. 그보다 더 뒤에는 동남동녀(童男童女: 남아와 여아)가 각각 나무로 만든 창 세 자루와 세 단으로 쌓인 찬합을 들고 있었다. 이러한 신선의 모습을 본 창위는 엎드려 절했다.


“못난 후손이 운조부님을 뵙습니다. 몇 주는 걸리실 줄로만 알았는데 어찌 이리 빨리...?”


“너희 범인(凡人: 평범한 사람)들은 재앙과 동거하며 화마와 동침해도 자신의 발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 뛰지 않는 족속이니 일부러 몇 주는 걸린다고 말했었다. 그래야 선구안이 생겨 나를 일찍 부르지 않겠느냐. 그나저나 이것들 때문에 부른 것이냐?”


“아닙니다. 제가 운조부님을 부른 이유는 여기...”


창위가 괴뢰를 앞으로 내밀자 운조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괴뢰? 범인인 네가 만든 것이냐?”


“예, 하지만...”


창위는 처음 괴뢰를 만들게 된 경위와 지금까지의 일들을 조그마한 일도 누락시키지 않고 전부 전했다. 운조부가 관심을 가진 건 보검이 부러진 대목이었다. 그러고 보니 괴뢰가 부러트린 보검과 운조부의 뒤편에 있는 보검들의 생김새가 같았다. 운조부는 즉시 보검 중 하나를 움직여 괴뢰를 노렸다. 보검의 주위로는 먹구름이 일고 작은 섬광이 먹구름 사이로 드러날 때마다 천둥소리가 울렸다. 보검을 날렸다.


“오 정말 버티는구나.”


괴뢰는 보검을 맞고 봉우리 밖으로 떨어져 나가려 했으나 흠집은 조금도 없었다. 운조부는 저 멀리까지 날아가려는 괴뢰를 향해 손거울의 빛을 비췄다. 그러자 시간이 멈춘 듯 날아가던 괴뢰의 몸도 허공에 고정되었다. 운조부가 손짓하자 괴뢰가 다시 봉우리로 천천히 날아왔다. 운조부가 괴뢰에 관심을 보이니 멸절진인은 급하게 절을 올리고 자신의 내력을 밝혔다.


“송구하오나 그 괴뢰는 저희 백련교가 청군을 몰아내기 위해 사용할 예정이었습니다. 또한 저 역시 수도자분을 현조부(玄祖父: 오대손이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로 모시고 있으니 속세의 일에는 여기까지만 관여해 주십시오.”


“네 현조부의 내력이 어떻게 되더냐?”


“자세히는 알지 못하옵니다. 워낙 사는 시간대가 다른 분이시다 보니...”


“그거 아느냐? 나의 일격도 가뿐히 견디는 괴뢰가 범계(凡界)에서 나왔다면 나는 벽사존자(辟邪尊者)로서 네 현조부를 죽여서라도 입막음하고 저 괴뢰를 데려가야 하느니라.”


벽사존자가 손짓하자 뒤에 있던 동녀가 찬합의 뚜껑을 열었다. 찬합 안에는 구름이 들어 있었고 그 구름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봉우리 전체를 가득 메웠다. 그 구름을 흡입한 자들은 기억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창위는 서둘러 괴뢰에게 말했다.


“그날 꿈에서 너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너는 구궁진인의 적법한 후계이며 무생노모의 영원한 사제(司祭)이니. 생명의 형태를 갖추어라. 그것이 너에게 주어진 진언이다.”


그 말에 괴뢰가 반응했다.


“제일 명령권자의 명령을 받듭니다. 제일 명령권자의 단서가 제이 명령권자에게 존재합니다. 제이 명령권자의 신변을 보호합니다.”


“안돼! 너는 여기서 그냥 가거라. 내가 전해준 게 전부이니 기억을 지킬 필요도 없다.”


“...받듭니다. 현재 본 기체의 주변에 명령권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합니다.”


“나의 운조부님을 명령권자로 따르면서 그곳에서 생활하되 절대 너에게 주어진 진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벽사존자를 제삼 명령권자로 새롭게 받듭니다. 실패했습니다. 제일 명령권자의 동의 없이 명령권자를 추가할 수 없습니다. 자율 사고를 계속합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가서 자유롭게 살거라. 어서!”


“받듭니다.”


벽사존자는 동녀가 들고 있는 찬합의 두 번째 단에서 동아줄을 꺼내더니 그것을 던져 괴뢰를 묶었다. 괴뢰는 그대로 벽사존자에 의해 허공을 달려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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