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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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4.08.25 14:54
최근연재일 :
2024.09.18 0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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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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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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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입문(入門)

DUMMY

벽사존자는 그곳을 장서각이라고 했다. 서재는 전체적으로 어둠이 내려앉아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수단은 떠다니는 등불뿐이었다. 허공에 등불이 아무리 많이 떠다녀도 눈높이보다 한 칸 위나 아래에 있는 장서들이 안 보였고 바로 옆 책장에 있는 목간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만이 보였다. 동남동녀는 백록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향했고 벽사존자만이 남아 괴뢰의 손을 잡은 채 안내했다.


“여기는 내가 진법을 설치한 곳이라 언제나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소리가 퍼지지 않는다. 이외에도 많은 함정이 있어 모든 장서와 책장의 위치를 알고 있어야 화를 당하지 않는 곳이니 내 곁에서 벗어나지 말거라.”


“집에 이런 진법을 두셨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일하는 곳이지. 나는 여기 있는 장서들을 수호한다. 내 별호인 벽사존자의 벽사 또한 이곳을 침입한 자들을 내쫓는다는 뜻이다.”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 젊은 사내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벽사존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사부님이셨군요.”


“그래, 내가 기별을 넣는 걸 잊었구나. 이제 다시 내가 맡을 테니 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거라.”


“옆에 계신 분은?”


“내가 양자(養子)로 들인 놈이다.”


“네? 양자요? 갑작스럽지만, 뜻이 있으시겠지요.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어...... 성은 창씨고 이름은 괴(魁)로 정했다.”


“창괴...? 사부님은 미리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니 분명 지금 이 자리에서 지으신 거죠? 너무 이상합니다. 차라리 작명가를 찾아가십시오. 당장 친우이신 선광존자(選鑛尊者)께서도 작명을 잘하는 분이신데...”


“으뜸 괴라고 해도 이상하냐?”


“이름을 사망으로 지어도 뜻이 좋으면 괜찮겠습니까?”


“에이 이놈아! 너는 어서 일하러 가거라.”


“지금 당장 물러나면 사부님의 양자분이 이름을 망치는데 제자 된 도리로서 어떻게 물러납니까! 그리고 경지를 올리면 대외활동도 하실 텐데 이름이 괴... 사문을 욕보이는 짓입니다. 그러고 보니 경지가 어떻게 되시지요?”


벽사존자의 제자가 예를 갖추어 괴뢰에게 직접 말을 걸자 괴뢰도 그의 행동을 따라 움직여 어떻게든 답하려 했으나 벽사존자가 막아섰다.


“경지는 비밀이다! 네 이름은 얼마나 잘났길래 그래?”


“저는 다행히도 이름을 짓고 나서 사부님을 만나 성은 벽(霹)씨에 이름은 아운(芽芸)이지요. 사부님도 창(昌)씨에 이름은 문운(文運)이니 상당히 길한 이름 아닙니까? 차라리 제가 양자분의 이름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어후, 그래 알았다. 알겠으니까 밑에 내려가서 지어라.”


“네!”


벽아운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창문운은 괴뢰와 같이 돌아다니며 장서 십수 권을 뽑아 들었다. 그것들은 예법이나 영기에 대한 이해와 같은 기초적인 것들이었다. 괴뢰가 물었다.


“이런 것들을 이렇게 보관합니까?”


“진짜 중요한 것들은 여기서 더 숨겨져 있지. 다만 네가 내 양자 행세를 하려면 이곳의 다른 이들이 입문할 때처럼 목표로 할 공법을 내 안내에 따라 여기서 찾는 게 절차다. 그러니 그 제자 놈도 의심 없이 돌아가지 않았느냐. 오히려 내가 비밀스럽지 않은 곳에서 이런 것들을 사고 너를 양자로 받았으면 소문이 돌았겠지.”


“어디서 읽습니까?”


“일단은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전부 숙지하고 있거라. 나는 상부에 보고하고 올 테니.”


괴뢰는 그렇게 어둠 속에 홀로 남아 기초적인 지식과 배경, 벽사존자가 자신을 데려온 곳에 대해 읽었다. 다른 것은 오면서도 설명을 들은 것이었으나 벽사존자의 배경은 상상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다. 인간 요괴들은 모두 자유롭게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수련하여 산문 생활을 하거나 자유롭게 규율에 얽매여 문파를 세우거나 들어간다. 단 하나의 법칙, 대질서(大秩序)로 불리는 것만 지킨다면 기본적으로 수도자들은 살인마저도 자유로웠다. 살인에 대해 처벌받는다는 선택에서도 자유로워 개인의 선택에 따라 같은 죄를 저질러도 벌을 받는 이가 있고 받지 않는 이가 있었다. 벽사존자의 배경은 바로 이러한 대질서를 관할하는 곳으로 유일하게 문(門)이 아니라 국(國)을 썼다. 모든 대륙, 모든 섬, 모든 문파, 모든 수도자들이 바로 이 하나의 國에 속했다. 벽사존자는 그런 나라에서 하나의 열도를 관리하도록 한 시설의 관료였다.


“백, 누가 오고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혼이 말을 걸어왔다. 괴뢰와 운영체제는 서로를 백과 혼으로 부르기로 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괴뢰는 혼의 말을 듣자마자 주변을 경계했다.


“사부님! 이름을 정했습니다!”


다가오는 인물은 벽아운이었다. 그는 종이에 이름 두 자를 적은 채 어둠 속에서 실실 웃으며 나타났다. 괴뢰는 책에서 본 예법에 따라 왼손으로 오른손을 포갠 다음 두 엄지가 보이지 않게 해서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벽아운도 웃으며 같은 자세로 화답했다. 벽아운이 말했다.


“사부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상부에 보고할 게 있으시다고 잠깐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아! 양자를 들인 걸 보고하러 가신 걸 겁니다.”


“사형(師兄)도 여기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사형? 제가 왜 사형?”


벽아운은 웃음이 헤픈 사내였고 벽사존자는 그 반대였다. 오히려 화가 많았으니 괴뢰는 둘을 절충하여 조금의 미소만 보였다.


“비록 자식이 된 몸이나, 배움은 사형께서 먼저 하셨는데 당연히 사형이시지요. 말도 놓으십시오.”


그러자 벽아운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감동하였다.


“이런 개념 찬! 지축국(地軸國)에서 어느 문파든 규율에 충실한 채 살아가는 이들은 많아도 속내는 다들 경지를 올리기 위해 음흉하기 그지없는데 눈물이 다 나는구나! 너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내가 규율이 엄격한 이곳에서 일한다. 사부님도 화가 많아 괴팍한 구석이 있긴 해도 좋은 분이시고.”


비록 사생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나 괴뢰에게는 범계의 지식이 있었다. 괴뢰가 이곳의 법도에 맞춰 예를 보이자 벽아운은 즐겁게 대화하며 창문운을 기다렸다. 벽아운이 널브러진 장서들을 살피다가 물었다.


“근데 이 장서들은 뭐야? 사부님이 공법을 골라주는 거 아니었어?”


“아, 제가 배울 공법을 스스로 골라보고 싶은 마음에 골라봤더니 이런 것만 잡히더군요. 아버지도 웃으셨습니다.”


“하하하, 그야 그렇지. 괜히 사부가 안내하는 게 아니거든.”


“그나저나 제 이름은?”


“아 기존의 이름이 뭔지 몰라서 조금 반영해볼까 하다가도 그냥 내가 지어버렸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말해.”


벽아운이 준비한 이름은 정로(正路)였다. 올바른 길이란 뜻으로 간단하지만, 의미가 좋은 이름이었다. 괴뢰가 머릿속으로 혼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의미가 좋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명을 다하란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저에게도 그렇게 보입니다.”


창정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예의를 다해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앉아 있던 벽아운도 일어나 과례(過禮)라며 창정로를 달랬다. 둘 다 자리에 앉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벽아운이 물었다.


“우리 사제(師弟)는 어떤 공법을 배우고 싶은가? 내가 선배로서 추천해 주겠네.”


“어떤 공법이 있습니까?”


“여기 장서각에는 천하의 모든 공법이 다 있지만, 지축국의 대질서를 수호하는 수도자들은 전부 다 돌연변이지. 뇌(雷)영근자이거나 풍(風)영근자이거나 운(雲)영근자다. 사부님의 양자인 자네도 뇌영근자일 텐데 그쪽에서 찾아야겠지.”


“목, 토, 금, 화, 수의 다섯 영근과 다르게 뇌영근을 지닌 자는 범계에서 태어나면 바로 벼락을 맞아 찾기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에이, 그것도 옛날 얘기고 요즘은 수도자들 수가 많아져서 그냥 사생계에서 태어나는 뇌영근자들이 많아. 나도 벽(霹: 벼락 벽)씨가 아니냐. 우리 가문은 엄격해서 범인이 태어나면 바로 버리고 뇌영근자만 일원으로 친다. 일손이나 실험체가 부족한 경우에만 범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살리지.”


창정로는 벽씨에 대해, 그리고 사생계에서 태어나는 이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창정로가 물었다.


“범인이 얼마나 태어납니까?”


“수도자끼리 혼인해도 열에 아홉은 범인으로 태어나는데 참 마음이 안 좋지. 나보다 먼저 죽은 형제들이 얼마나 많겠냐. 이마저도 옛날보다는 좋아진 거라더라. 예전에는 수도자끼리만 혼인하고 근친혼을 해도 영근자는 천에 한 명이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도 보면 혼인 자체를 많이 하거나 첩을 많이 들인다.”


“그렇군요.”


“아무튼 뇌영근을 포함한 모든 공법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뭐가 있지?”


“하나는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고 개조하는 역사(力士)의 공법, 강한 영력으로 영술을 부리는 술사(術士)의 공법, 역사든 술사든 수도자 전원이 쓰는 단약이나 법구, 부적을 제작하는 연사(練士)의 공법이 있습니다.”


“그래, 하지만 뇌영근자는 대부분 술사를 택한다.”


“이유가 있습니까?”


“그야 공격을 막아내지도, 피하지도 못하니까 그러지. 뇌영근자의 공격은 동급의 수사가 무슨 수를 써도 막지 못한다. 수행을 포기하고 자신의 경지보다 더 강한 힘을 끌어온다면 모를까 다른 수로는 어림도 없다. 공격 한 번만 성공하면 이기는 세상에서 무조건 뚫는 창이 있는데 왜 굳이 역사를 하고 연사를 하겠냐. 죄다 술사야 죄다. 공법도 공격과 관련된 게 대부분이다. 당장 사부님도 술사고.”


그 말을 듣는 창정로는 흥미로운 한편 미리 벽아운이 할 말을 생각해 변명할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혹여나 시연이라도 시킨다면 큰일이었다. 머릿속에서 혼이 말했다.


“저는 영기를 흡수만 하지 다루지는 못합니다.”


“아까 장서를 보니 그건 육신이 해야 하는데 정작 저는 영기를 증기 형태로 볼 수만 있고 그 이상은 하지 못하니...”


“그러니까 하늘이 내린 완벽한 육신이지요. 혼도 아닌 육신이 영기를 느낀다는 거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창정로가 벽아운에게 물었다.


“그렇게 강해서야 다들 두려워하겠군요. 어떻게 대하나요?”


“동급의 수사를 필살(必殺)하니 모든 뇌영근자는 지축국의 관료이자 신관이 되어 엄격한 규율을 지키지. 몸에 금제까지 걸어가면서 감시받는데... 이걸 몰라? 너 어디서 뭐하다 왔니?”


기적적이게도 그때 창문운이 도착해 식겁한 기색으로 자신의 제자에게 말했다.


“너 여기서 뭐해?”


“이름 지어줬죠. 대화도 좀 하고. 근데 얘는 어디서 데려왔어요? 뇌영근자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던데요?”


“...호령천사(號令天使)님이 따로 키우던 아이인데 일이 있어서 지금 몸도 그렇고 기억이 온전치 않다.”


“네? 천사님이요? 그분은 구령경(救靈境)이시잖아요. 애를 낳거나 누군가를 기르는 게 금기이실 텐데.”


“이놈아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감싸지. 그분의 실험에 협조했다가 이렇게 된 거다. 입단속이나 잘해!”


“아! 이런 불쌍한 놈! 내가 정말 잘해주마! 그런데 기억을 되찾았더니 싸가지가 없어지지는 않겠죠?”


“알았으면 내려가!”


“네! 아흐흑!”


벽아운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창문운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에휴, 헤픈 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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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3 소설천민
    작성일
    24.08.27 11:40
    No. 1

    벽아운은 수도자 치곤 인성이 바른 인물 같네요. 그래도 위험요소는 있는 거려나요 ㅇㅁㅇ)a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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