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존자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판타지

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4.08.25 14:54
최근연재일 :
2024.09.18 00: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00
추천수 :
62
글자수 :
96,747

작성
24.08.25 16:18
조회
30
추천
5
글자
11쪽

입문(入門)

DUMMY

통로로 떨어지자마자 혼원성곤에게 잡아먹힌 창정로는 아직 자신이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혼원성곤의 뱃속이든 혼원성곤이 있는 곳이든 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혼원성곤의 위장에 있는 물은 소화액으로, 많은 이들이 녹아 대량의 한기(寒氣)를 지닌 영초를 먼저 혼원성곤에게 먹인 뒤 들어가야 그나마 안전했다. 하지만 창정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도, 알 필요도 없었다. 창정로에게 혼원성곤의 소화액은 그저 여타 다른 물보다 조금 더 걸쭉할 뿐이었다.


“백, 이곳은 아무래도 혼원성곤이라는 물고기 요수의 위장인 듯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백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으나 저의 눈에는 보입니다. 영기를 비롯해 수많은 원혼이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만약 혼원성곤이 있는 장소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원혼이었다면 저는 통로에 빠지기 전부터 원혼의 존재를 알았을 겁니다.”


“일리가 있군요. 하면 어찌합니까? 진심을 담아 길들여야 하겠지만, 위장에 있는 데다 저는 혼원성곤의 모습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사십 년 동안 위장에만 있을 수도 있겠군요.”


“시도는 해보아야겠지요. 그보다 원혼들이 금제를 방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보이지 않습니다. 원혼들은 어떻습니까?”


“백치(白癡: 지능이 낮은 바보)와도 같습니다. 살아생전의 기억은 이제 거의 없고 죽기 직전의 고통만이 남아 육신이 위액에 소화됨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달려들더니 지금은 또 얌전하군요.”


“이미 달려들었었단 말입니까? 혼, 어찌 되었습니까?”


“무슨 걱정을 그리하십니까? 당신이 완벽한 육신이라면 저는 완벽한 혼입니다. 올라가서 보십시오.”


창정로는 자신의 혼이 무엇을 보라고 하는지 몰랐으나 곧 알게 되었다. 발을 움직여 위액의 위로 떠오르자 희뿌연 증기가 가리고 있었다. 위장벽에 별처럼 박힌 영석에서 나오는 희미한 빚뿐이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는데 소화액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던 증기가 조금씩 걷히더니 묘하게 창정로만을 피해 걷혔다. 창정로가 혼에게 물었다.


“혼, 혹시 원혼이라는 게 이 증기입니까?”


“그렇게 보이십니까? 제가 보는 것과 좀 다르긴 하지만 시각화가 된다니 다행입니다.”


“혼의 눈에는 어찌 보입니까?”


“바다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그날 바다도 우리 둘의 눈에 다르게 보인 듯합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진정한 생명이 되면 제가 본 것 또한 보일 테니까요.”


“지금은 금제가 시급하니 그 문제로 넘어가지요. 원혼 중에 적당한 대상이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요수보다는 그쪽이 더 쉬울 듯합니다.”


“지금 바로 정면에 적합한 원혼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원혼입니까? 사람입니까?”


“해조류입니다. 사생계의 해조류라 이것도 영초인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는 되는 듯합니다.”


창정로는 곧바로 입을 열고 혼은 입으로 영기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증기 형태의 영기가 입에서 거세게 뿜어져 나오자 소화액이 격렬하게 반응해 창정로를 감쌌다. 발을 잡힌 듯한 느낌이 무수히 들고 창정로의 몸은 소화액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영기를 계속 뿜고 있는 입 주변만은 맑았다. 곧 영기에 창정로의 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길들인다는 것은 군자가 소인을 대하는 것과 같고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과 같으며 곧 조화를 일으켜 길들인 자가 아무 말 없어도 길이 든 자가 뜻을 알고 행함이다. 그러니 나는 너를 자식 대하듯이 대할 것이며 너 역시 나를 부모 대하듯 대해야 한다.”


그러나 해조류는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


“길들인다는 것은 연인이 되는 것과 같으며 남녀가 일체 된 것과 같다. 길들인다는 행위를 깨닫고 우매한 중생을 길들이려 속세로 가도 이미 남녀구정만물화생(男女構精萬物化生: 음양의 조화가 만물을 낳는다)이라. 전할 게 없고 길들일 게 없었다. 있어도 알 필요가 없으니 없는 것이며 없어도 그 존재는 아니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조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다만 혼이 전해주기로는 말을 듣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으며 이미 죽었음에도 소화액을 두려워한 채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창정로는 금제의 묘리를 깨닫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적용했다. 실질적인 의미만 간략하게 전달해 보기도 하고 대환법(代換法: 문장 속 어구의 위치를 바꾸는 수사법)이나 도역논법(倒逆論法: 논리적 전후 관계를 도치하는 수사법)을 적용하여 길들인다는 단어 하나의 의미로 수 시간 동안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설득할 수 없었다. 해조류는 애초에 창정로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기에 말은 금제가 될 수 없었다. 혼이 말했다.


“백, 대상이 너무 우매한 듯합니다. 차라리 사람의 원혼을 찾아서 다시 해보지요.”


“아닙니다 혼, 잊었습니까? 우리는 만물을 구원해야 합니다. 지금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해조류 하나 다스리지 못해서야 어찌 범계의 진짜 해조류를 구원하며 돌이며 바람이며, 만물을 구원하겠습니까.”


“옳습니다. 그리하지요.”


창조된 것에게 부여된 운명이란 고집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운명에 가까워질수록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되었다. 창정로는 주어진 사십 년 중 대부분을 이 해조류에게 쏟았다. 더 이상 쏟을 말이 사라질 때까지 내뱉다가 말이 멈추게 되자 그제야 간신히 방법을 찾았다.


“제사로써 구천을 떠돌지 않게 하고 너의 안식을 되찾아 줄 테니 내 말을 듣거라.”


단 한 마디, 수백 마디 설득과 위로의 말보다 구원의 약속이 해조류를 움직였다. 해조류가 듣기 시작했고 창정로는 구원을 빌미로 금제를 더해갔다.


“만약 네가 ~한다면 제사 지내리라. 만약 네가 ~하지 않는다면 제사 지내지 않으리라.”


창정로의 금제는 증기 위에 글자들이 실타래처럼 엮였다가 사라지는 현상으로 보였다. 금제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보증이 없었으나 혼은 금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제 위에 금제를 또 추가하며 덧대어 가는 창정로의 머릿속에서 혼이 말했다.


“그런데 금제를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요? 분명 이전에는 괴뢰와 같은 무생물에도 금제를 건다고 들었는데 설득이나 동의가 필요하다면 무생물에는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요수를 길들이라고 던져놓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창정로는 입으로 금제를 계속 추가하면서 머릿속으로는 혼의 말에 동감했다.


“의부님의 언행도 제가 강제로 요수를 굴복시키길 바라는 눈치셨지요. 어쩌면 혼을 길들이는 일의 특징일 수도 있겠습니다. 자아가 있는 것에게 금제를 거는 일의 특징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후자인 경우이길 바라야겠군요. 전자일 경우 이 원혼에 금제를 걸어도 혼원성곤에 금제를 거는 일과는 다를 테니까요. 차라리 그 원혼에 금제를 건 후 다른 원혼들을 상대로 계속합시다.”


“...문제가 있습니다.”


“뭡니까?”


창정로가 손짓하자 증기 형태로 소화액 위를 떠돌던 원혼이 창정로가 가라앉아 있는 곳까지 내려와 창정로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를 직접 받고는 대량의 한기를 내뿜어 주변 소화액을 모조리 얼렸다. 그제야 창정로의 몸을 속박하던 기운이 사라지고 위장벽에 박힌 영석들도 불이 꺼져 완벽하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혼원성곤의 위장에서 곧 화기가 일어나 한기를 몰아내고 소화액을 다시 녹이고자 했다. 창정로는 원혼을 부리면서 이때를 노려 곤약처럼 된 소화액을 계단 형식으로 파내 위로 올라갔다. 소화액에서 벗어나 위장벽에 붙은 창정로가 다시 원혼으로 하여금 한기를 뿜게 하자 이번에는 위장벽마저 얼어붙었다. 요수가 괴로움에 몸을 비틀고 울음소리마저 내었으나 창정로는 개의치 않았다. 혼에게 말했다.


“금제를 건 원혼이 저를 따르기는 하나 실상은 촘촘한 금제로 이루어진 기계에 원혼이 동력 역할만 할 뿐입니다. 자아가 없을 정도지요. 애초에 구원 말고는 아무것도 듣질 않으니 이렇게 금제를 걸지 않으면 명령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혼이 어리석은 탓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다음에는 사람의 원혼을 그 대상으로 해보시지요.”


창정로는 혼의 의견을 따라 다음에는 사람의 원혼을, 혼원성곤에게 먹힌 다른 요수의 원혼을, 영물의 원혼을 다스리고자 했으나 모두 해조류의 원혼과 같이 될 뿐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모두 다른 영근을 지녔을 터인데 한기만을 다룬다는 점이었다. 원혼들은 영기를 얻자마자 지독한 한기를 내뿜고 싶어 했다. 이 점을 탐구하려고 할 때쯤 혼원성곤의 배가 열리더니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빛이 보였다. 창정로가 위장벽에서 내려온 뒤, 얼어붙은 소화액 위에서 절을 올렸다.


“자손이 의부님을 뵙습니다.”


“혼원성곤이 죽어 있더구나. 어찌한 게냐? 금제로 죽인 게야?”


창정로가 아무런 숨김 없이 있었던 일을 전부 전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문 또한 전했다.


“금제라는 것이 원래 이렇습니까?”


“그럴 리가. 금제는 저항하지 못하는 무생물이나 생물에게 거는 것이다. 지친 상대를 향해 읊고 또 읊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지. 철이나 돌과 같은 것을 대상으로는 더 쉽다. 그것들은 저항하지 않으니 그것들에게 금제를 거는 일은 철을 두드려 검을 만드는 것과 같다.”


“혼령은 생물과 다릅니까?”


“방금 죽었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혼령은 사후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을 잃는다. 대화는 불가능한데 외부 자극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는 존재가 되지. 금제가 걸리기도 전에 소멸해 버리기 때문에 혼령에 금제를 거는 일은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방금 죽어서 정신이 멀쩡한 것도 결정경 이상의 존재만 가능한 일이다. 범인이나 축기경 이하의 경지는 죽자마자 원혼이 이성을 잃는다.”


“제가 이 힘을 다뤄도 되겠습니까?”


“금기도 아닐뿐더러 대개의 경우 육신을 떠난 혼백은 자연물로 전환되기 때문에 사람의 본질은 육신에서 온다고 본다. 일단은 그 힘이 네가 앞으로 사생계에서 살아갈 힘이니 잘 갈고닦아 보거라. 금제가 특기인 수도자를 한 명 소개해 줄 테니 평범한 금제도 배우고.”


“감사합니다 의부님.”


“오냐. 사십 년 동안 수고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면벽존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대질서(大秩序) 24.09.18 6 2 9쪽
16 대질서(大秩序) 24.09.16 8 2 8쪽
15 대질서(大秩序) 24.09.10 10 2 13쪽
14 대질서(大秩序) 24.09.08 20 2 15쪽
13 대질서(大秩序) 24.09.04 19 2 11쪽
12 대질서(大秩序) 24.09.02 21 3 12쪽
11 대질서(大秩序) 24.08.28 20 3 17쪽
10 대질서(大秩序) 24.08.25 20 3 16쪽
9 대질서(大秩序) 24.08.25 34 3 13쪽
8 입문(入門) +1 24.08.25 31 5 16쪽
7 입문(入門) +1 24.08.25 24 5 12쪽
» 입문(入門) +1 24.08.25 31 5 11쪽
5 입문(入門) +1 24.08.25 27 5 11쪽
4 입문(入門) +1 24.08.25 33 5 12쪽
3 입문(入門) +1 24.08.25 46 6 12쪽
2 입문(入門) +1 24.08.25 49 5 12쪽
1 입문(入門) +2 24.08.25 102 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