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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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4.08.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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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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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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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入門)

DUMMY

나름의 힘을 얻은 뒤 수도자로서의 생활은 바쁘게 돌아갔다. 비록 원혼을 다루는 힘이지만, 원혼은 저항하지 않으면 보통의 영기와 쉽게 구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원혼을 통해 영술을 펼쳐 물체를 움직이거나 허공을 나는 일은 타인이 보기에 기본적인 영술을 쓸 줄 아는 것으로 보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창정로다. 사고가 있어 뇌영술을 쓰지 못하게 됐고 기억이 온전치 않지만, 양자로 들여 이곳의 일을 돕게 할 것이다. 나이가 어려 아직 대질서를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너희가 선배로서 곧 있을 대질서 준비를 시키거라. 외부인들도 미리 창정로의 얼굴을 익혀 우리 천축누각과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하시게.”


창문운은 자신의 다른 제자들과 지축국의 천축누각에서 일하는 다른 수도자들 앞에서 창정로를 자신의 양자로 소개했다. 외부인도 출입할 수 있는 일 층에서 벌인 일이었는데 창문운의 말이 끝나자 외부인을 비롯한 수많은 군중이 머리를 숙여 화답했다. 좋은 옷을 입었든, 허름한 옷을 입었든, 문파와 산문, 정도와 사도를 불문하고 그의 앞에서 모두가 같았다. 천축누각 일 층으로 호출된 제자들은 다시 일하거나 수련하기 위해 흩어졌고 천축누각에서 상품을 고르던 손님과 그런 손님들에게 호객하던 수도자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창문운이 말했다.


“너는 저기 저 멍청이와 어울리거라. 안 그래도 네가 저놈을 사형이라 불렀다면서?”


창문운의 말에 옆을 보자 군중 속 손을 흔들고 있는 벽아운이 보였다. 벽아운의 옆에는 비파를 든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 둘이 모습을 드러내자 다른 여인들은 벽아운에게 몰렸고 다른 남정네들은 여인에게 몰렸다. 그들 중 금영근과 토영근을 지닌 자들은 방어에 특화되어 같이 다니면 이로울 것이라 말했고 다른 영근을 지닌 자들은 영석이나 법구 등을 보여주며 지축국의 관료이자 천축누각 벽사존자의 제자인 둘에게 안내 혹은 감상을 부탁했다. 벽아운과 여인이 창정로 쪽으로 오려는데 사람이 몰려 힘들어지자 벽아운이 멋쩍게 웃으며 여인에게 말했다.


“하하하, 비행 금지 구역이라 더 난감하네. 부탁해 사매.”


“그러죠. 사형은 너무 물러요. 권위를 못 세우니 사부님이 못마땅해하시고 잡것들이 꼬이죠. 사형만 아니었으면 제가 진작 나섰을 거예요.”


여인의 목소리는 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하고 비파를 잡은 두 손은 잘 다듬어진 가지와도 같았다. 여인이 전축(轉軸: 비파의 현주를 돌려 단단히 하는 일)한 뒤 발현(撥絃: 연주 전에 현을 두어 번 퉁겨 보는 일)하자 다른 수도자들이 놀라 말했다.


“천현낭랑(舛絃娘娘)! 이곳은 비행뿐만 아니라 영술도 금지된 층이 아니오?”


“저희 천축누각의 사람들은 몸에 금제를 새기며 수행하는데 어찌 그걸 모르며, 어찌 그걸 어기겠어요?”


“그런데 비파에 손은 왜 대시오?”


“사부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은 제자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죠. 공적인 일로 부르시는 경우 금제가 발동될 수도 있어요. 저희는 지금 사부님을 뵈러 가는데 선배님들이 이렇게 막아서시니 제 나름의 노력일 뿐이에요.”


기어코 여인이 현을 건드리자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 길을 텄다. 하지만 여인은 조금의 영기도 현에 불어넣지 않았으므로 현 몇 개를 건드렸다가 사람들이 물러나자마자 조롱하듯 악기를 다룰 줄 몰라 소리만 내는 아이처럼 현을 마구 두드렸다. 현이 여인의 손에 닿을 때마다 장대비가 내리는 것처럼 요란했다. 대놓고 조롱당한 사내들은 분노하고 여인들은 시기하였다. 하지만 여인은 그저 고고했고 두 선남선녀는 창문운이 있는 곳까지 와 인사를 올렸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창문운은 창정로에게 벽아운을 포함한 두 사람을 다시 소개했다.


“이쪽은 벽아운, 내 수제자라 별호는 벽사진군이다. 여기는 금민(金珉), 본래 대대로 금영근자를 배출하는 금씨이나 뇌영근자로 태어나 천축누각으로 왔다. 별호는 천현낭랑이다. 둘 다 사백 살쯤인데도 결정경 후기까지 오른 인재들이니 네가 아운에게 했던 것처럼 민도 사저로 모셔 이곳의 일을 배우거라.”


창문운의 말이 끝남과 함께 창문운이 제자들 몰래 전해주는 음성이 들려왔다.


“제자들에게 너에 대해 말한 건 이전과 같지만, 대충 적당한 인재처럼 보이게 지금 나이는 이백이십, 경지는 축기경 후기인 것으로 정했다. 다른 수도자보다 수행 속도가 네 배는 빠른 것이니 알아서 처신하거라.”


창정로는 벽아운과 금민에게 인사를 올렸다. 창문운이 두 제자에게 당부하기를.


“정로는 특수한 신체를 지녀 금제가 통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규율을 지키게 하니 걱정하지 말고 일을 배우게 하거라.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영민한 아이라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


“예, 사부님.”


창문운이 떠나고 금민이 먼저 말했다.


“기억을 잃고 뇌영술은 쓰지도 못한다지? 네가 그렇게 된 경위는 사형께 들었다.”


“예, 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그런 듯합니다.”


“그렇다면 곧 있을 대질서에서 너는 잡일만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사부님의 양자이자 제자가 된 이상 중임을 맡아야 하는 법. 정진하여 네 사형과 사저의 체면을 구기지 않도록 하거라.”


금민이 쏘아붙이듯 말하자 벽아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지난 사십 년 동안은 뭐하고 있었느냐? 기초적인 재활을 했다고 하던데. 잠깐. 그러면 팔십에 이미 축기경 후기였어? 사매, 우리 수련 속도보다 빠른데?”


“사형께서나 그러시겠죠. 저는 결정경 중기까지 난관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중기에서 한 팔십 년 정도 막혀 있었죠.”


“하하하, 대단해~ 그나저나 우리 막내는 궁금한 게 없니? 기억도 잃었으니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저 무심한 사부는 이백 살에 원영경이 된 천재여서 다른 사람한테 기본적으로 기대가 없다. 분명 대충 책 몇 권 던져주고 말았을 거야. 흥미 있는 부분 아니면 그 이상의 관심이 없다니까?”


창정로는 기회가 찾아오자 화수분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아직까지 지축국의 구조와 천축누각에 대한 걸 상세하게 듣지 못했습니다.”


“지축국은 각 대륙과 열도에 하나씩 있는 모든 천축누각을 통틀어서 얘기하는 거야. 사생계에 있는 모든 수도자는 기본적으로 자유롭지만, 백 년에 한 번 천축누각이 주도해서 거행하는 대질서에 참여해야 하지.”


“대질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수행한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듣기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맞아, 경지가 높아질수록 수명이 늘어난다. 본래 범계에서 태어났으면 바로 죽었을 우리에게 수행은 축복이지. 하지만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의 영역으로, 사회에서 세계의 영역으로 관점을 옮기면 수도자가 추구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된다.”


“장생입니까?”


아주 기초적인 얘기와 백아운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에 질색하던 금민은 자신이 백아운의 말을 뺏어 설명했다.


“수도자 개인의 수행으로 보면 결국 수명만 좀 늘리지 큰 관점에서 변화는 없다. 하지만 사생계는 달라. 상고 시대에 네 분의 신께서 요괴들을 위해 목숨으로 만든 이 세계는 유한하다. 대질서는 사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이라 모두를 참여시킬 명분이 있는 거다.”


“어떤 방식으로 세계의 수명을 늘립니까?”


“영기로 이루어진 세상이니 영기를 환원하는 방식이지. 수행자를 바친다. 사내는 심장을 뽑아 영풍에 바치고 계집은 참수하여 영맥에 피를 쏟는다.”


“그걸 모두가 따릅니까?”


“일단 천축누각의 구조를 알아야겠구나. 모든 문파의 조사나 장문인은 원영경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파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모든 천축누각에는 원영경인 뇌영근자 한 명, 풍영근자 한 명, 운영근자 한 명, 총 세 존자께서 머무시나 그분들만으로는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지축국에서만 독점하는 경지가 있지.”


“무엇입니까?”


“원영경 그다음인 구령경에 오르는 방법이다. 모든 천축누각에는 구령경의 강자를 한 명씩 둔다. 그분들은 호칭을 천사로 통일하지. 원영경을 존자로 통일하듯이 말이다.”


“다른 문파에서는 구령경에 못 오릅니까?”


“극비로 취급하는 일이라 자세한 건 우리도 알지 못한다. 듣는다 해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금제를 걸고 듣지. 아무튼 너는 이번 대질서에 참여하되 잡일밖에 하지 못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 할 일은 그때 가서 듣고 수행에 더 신경 쓰거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형과 사저께서는 대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십니까?”


“전쟁 감독이다.”


전쟁 얘기가 나오자 벽아운이 둘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하면서 금민의 말을 뺏었다. 조금 걷기 시작하니 창정로의 머릿속에서 혼이 말하기를.


“관찰하다 보니 영근자들을 구별할 수 있겠습니다. 물건을 파는 이들은 모두 오행에 속하지 않은 영근자, 그러니까 천축누각 소속입니다.”


혼의 말과 함께 벽아운의 말도 들려왔다.


“모든 수도자는 대질서에 참여한다. 사내는 불의 전쟁에 참여하며 여인은 꽃의 전쟁에 참여한다. 두 번의 전쟁 동안 네 명 이상의 제물을 포획한 이는 천축누각에서 포상하며 명예를 드높이게 되는데 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금제를 건다.”


신체를 훼손하면 안 된다.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사적인 감정을 담아서는 안 된다.

대질서의 결과를 이유로 복수해서는 안 된다.

기습은 금하며 오로지 동수(同數)의 정당한 대결만 윤허한다.

무리 지은 이들이 연속으로 한 사람에게 도전하면 안 된다.

동급의 수사에게만 도전할 수 있으며 여기에 중기와 후기 따위의 세세한 경지는 따지지 않는다.

승리한 쪽이나 패배한 쪽 모두 대질서의 결과를 경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승자는 예로써 패자를 대하고 패자는 제물이 될 수 있게 해준 승자를 감사한 마음으로 대한다.


“실제 금제는 이보다 상세하지만, 대략 이렇다. 두 번의 전쟁 동안 네 명 이상을 제물로 잡으면 축기단과 같은 경지를 올리는 단약, 뛰어난 법구와 막대한 양의 영석을 받아 수위가 높아질 기회이기도 하니 자원하는 이도 많다. 원영경의 강자도 참여할 수 있으나 보통 원영경은 수행의 끝이라 출전하기 싫어하지. 그래서 정도든 사도든 문파를 만든 뒤 제자들을 참여하게 한다. 산문은 무조건 참여해야 하기에 산문 중에 원영경인 자는 구령경보다도 드물단다. 산문이었다가도 문파를 세워 대질서를 면피하지.”


“그래도 회피하려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있지. 그래서 각 문파에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할당량이 있다. 채우지 못하는 문파는 해산이다.”


“홀로 떠도는 산문은 어찌합니까?”


“걱정도 태산이구나. 천사께서는 모두 다 보신다. 괜히 산문들이 많이 실종되는 줄 아느냐? 애초에 대륙이나 열도를 모두 관할할 여력이 되니까 천축누각에 한 분씩 계신 거다. 그런데도 나와 사매가 감독을 하는 이유는 금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보는 일도 있겠지만, 아무도 도전하지 않아 전쟁이 멈추면 우리가 수도자들에게 도전하기 위함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사부님께서 우리 막내가 금제에 재능이 있다고 하셨는데?”


“하찮은 재주입니다. 재활 이후로 다시 공부하다 보니 결국 금제가 유지되려면 간간이 영기를 불어넣어야 하고 금제를 건 이보다 더 강한 수행자는 약간의 내상만 감수하면 힘으로 금제를 깨더군요. 더 강한 수행자라는 말도 무색한 게 강하지 않더라도 영기만 많이 불어넣어 금제를 깨면 되니......”


“그래도 미래는 모르지. 우리 중에 구령경에 오르는 자가 나올지도. 그리되면 금제는 절대 못 깨는 게 되는 거지. 하하하, 그나저나 더 궁금한 건 없니? 없으면 우리 천축누각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도 소개하려는데.”


“그건 저도 궁금하군요. 부디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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