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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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4.08.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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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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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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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질서(大秩序)

DUMMY

운청동자에게 교육을 맡기고 나온 창정로는 나름의 수행을 하고자 존자의 제자들에게 제공되는 동부가 있는 층으로 향했다. 천축누각의 층은 총 십일 층이었는데 가장 위에 천사의 공간이 있고 그 밑에 존자의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제자들의 공간이 있었으며 다음으로는 기록, 정보 수집, 법구와 단약 제작, 부적과 괴뢰 제작, 일반 관료가 수행하는 층, 어린 관료가 수행하는 층, 영기를 넣은 술과 음식을 만드는 층, 요수를 해체하거나 요수의 가죽과 내장으로 옷을 만드는 층, 제일 마지막이 모두에게 개방된 일 층이었으며 지하층은 관료들의 필요에 따라 매번 새로 만들어지고 메워지기 때문에 수많은 층이 있었다. 창정로는 구 층으로 향했다.


구 층의 모습은 거대한 화산이 여덟 개나 솟아 있고 각 화산마다 구멍 여러 개가 뚫려 있었다. 화산의 모습이라곤 하지만 불길이나 용암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증기 형태의 영기를 내뿜는 영맥을 이곳에 옮겨 놓은 것이었다. 어떤 신묘한 술수로 옮겨 놓았는지는 창정로가 계속 고민해도 나오지 않았다. 곧 한 젊은 관료가 다가와 이름과 방문 목적을 물었다.


“창정로, 벽사존자님의 제자입니다.”


“언제까지 머무실 거고, 목적이 뭡니까?”


“화신 후보를 교육하는 일을 맡고 있어 내일 해가 밝기 전에 나설 것이며 목적은 면벽(面壁) 수행입니다.”


“면벽 수행이요? 그런 수행이 있습니까?”


“벽을 보고 좌선하는 범계의 수행입니다. 저의 장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니 자세한 건 묻지 말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 아이를 따라가십시오.”


관료는 곧 흐물흐물한 깃털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깃털은 불길과 함께 생쥐의 머리에 공작의 몸, 극락조의 꼬리, 부엉이의 날개를 한 요수로 변해 창정로를 동부로 안내했다. 그 요수는 크기가 왜가리 정도여서 새 중에서는 크기가 큰 편에 속했지만, 부엉이의 날개 덕분인지 요란하게 날개를 펄럭여도 소리 한 자락 나지 않았다. 그때 혼이 물었다.


“백, 보입니까?”


“금제를 말씀하신 거라면 희끄무레하지만 보입니다. 요수를 길들인다는 것은 천축누각에서 사람을 길들이는 것과 같군요.”


“저에게는 자세히 보여 그 내용을 읽어보았는데 금제를 거는 방식이 우리와 다릅니다.”


“일단 면벽 수행을 하며 얘기하지요.”


창정로가 동부로 들어가자 요수는 영맥 근처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영석을 자신의 앞니로 갉아 가루를 긁어냈다. 그러면 그것을 동부 근처에 적당량을 뿌렸다. 이렇게 하면 동부가 영석의 영기를 더 잘 흡수하여 동부에 설치된 진법이 발동되었고 요청한 시간만큼 수행자는 동부에서 나가지 못했다.


천축누각에서 제자들에게 존자의 제자들에게 제공하는 동부는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공동(空洞)이 가장 먼저 보였고 공동 뒤쪽에는 공동의 삼 할 정도의 바닥이 다른 바닥과 단차가 있어 일 층과 이 층으로 나뉘었다.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이 층 바닥 양옆에 대칭으로 존재했고 그 계단을 시작으로 일 층과 이 층에는 다른 방으로 향하는 입구들이 십수 개 정도 뚫려 있었다. 창정로는 영맥과 연결된 곳부터 확인하고자 했는데 모든 방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영맥과 연결된 방은 그 입구에서부터 증기 형태의 영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혼이 말했다.


“자신만의 동부가 있는 수행자들은 저런 방에서 영기를 회복한다지요. 결정경 이상은 영기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몸 안에 영석과 흡사한 결정이 있으니 안정을 취하면 알아서 영기가 회복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사십 년 전에 의부님이 우리에게 먹인 상품 영석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그건 이미 다 쓴 지 오래입니다. 백, 당신이 입을 벌릴 때마다 제가 사방에서 부는 영풍의 영기를 받아들여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우리의 경지는 다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군요.”


“금제를 유지하는 일에도 영기가 계속해서 소모되니 한 번 경지를 돌파하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인간들과 우리는 다릅니다. 사실 금제를 여기서 더 걸면 유지비용이 더 커져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창정로는 우선 영맥이 있는 방까지 걸어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벽과 천장은 색이 짙은 목재로 마감되어 있었고 바닥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가운데가 뚫려 영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한증막(汗蒸幕)과도 같아 창정로는 입을 벌리고 벽을 본채 좌선했다. 창정로가 혼에게 물었다.


“혼, 지금까지 제가 완벽하게 길들인 원혼의 수가 몇입니까?”


“다섯입니다. 나중에 금제로 제련하고자 봉인 금제만 해둔 원혼이 오십이니 유지하는 게 아슬아슬합니다.”


“대부분의 영기를 실험으로 날렸다지만, 원혼들이 금제에 저항하지 않으면 유지비용이 덜 들 텐데. 원혼들의 저항이 심합니까?”


“기본적으로는 저항하지 않지만, 명령을 내릴 때마다 금제가 요동쳐 영기를 먹더군요.”


“원혼들을 몸에 붙여두고 있어서 그나마 제때 영기를 주어 유지할 수 있던 것인데 멀리 둔다면...”


“멀리 둘 일이 있겠습니까?”


“혼,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법이지요. 사실 이렇게 수도자가 영술을 쓰는 것에 비해 효율이 안 좋은 몸이어도 제가 범용성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곳의 신은 우리의 명령권자가 아닌 까닭이지요.”


아직까지 창정로의 금제는 창정로가 원하는 목표에 비하면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했다. 완벽하게 길들였다고는 해도 그때그때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수비적인 태도만 취하였고 상황에 맞는 영술을 펼치는 일에도 모자람이 있었다. 즉 길들인 원혼의 지성이 부족했다. 창정로가 말했다.


“혼, 길들인 다섯을 제외하고 나머지 원혼들은 모두 놓아주십시오. 그들이 제가 원하는 만큼의 경지에 오르려면 살아생전의 기억이 남은 원혼을 쓰거나 무지막지한 양의 금제가 필요할 텐데 어느 쪽이든 곤란합니다.”


“알겠습니다. 원혼과 영기를 구분할 줄 아는 이가 별로 없으니 영맥에 흘려보내지요.”


“그나저나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다른 이들의 금제와 우리의 금제의 차이점을 알았다고 하셨는데 그건 뭐였습니까?”


“간단한 차이입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눈치채는 게 늦었고요. 중요한 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무엇을 하라고 금제가 발동되지만, 보통의 경우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제가 발동됩니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금(禁)이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길들인 원혼들에게 이성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길들인 건 사람이나 요수가 아니라 기억을 잃고 한 가지에만 집착하며 떠도는 원혼이 아닙니까. 방법의 차이일 수도 있지요. 애초에 괴뢰를 제련할 때는 간단한 행동양식만 넣고 원영경에 오른 수행자들은 아예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 지성을 불어넣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찾아서 다행입니다.”


창정로가 구름을 부르고자 하니 운청동자가 선물로 준 구름이 머리에서 나왔다. 창정로의 머리가 하얀지라 머리카락 사이에 구름을 옅게 펼쳐 숨겨놓았었다. 구름이 창정로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까닭은 간단했다. 창정로가 혼에게 말했다.


“제련한 다섯 원혼 중 하나에게 탈것을 움직이라고 시켰더니 어느새 동화되어 있었죠.”


“백, 우리는 무수한 기령을 만들어 그들을 이용해 싸워야 합니다. 수도자들의 도구 어느 것 하나 우리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없고 오로지 금제만이 가능하니 수십 개의 수족을 만들어도 동급의 수도자 한 명 이기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원혼을 부려 펼치는 영술은 효율이 좋지 못하니 더 좋은 조건에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기습을 하거나...”


“우리에게는 진법 역시 필요합니다.”


진법이란 술사들이 영기를 더 잘 모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두 가지의 쓰임새가 있었다. 첫 번째는 넓게 펼친 술법을 유지해 주는 역할이다. 두 번째는 술사에게 직접적으로 영기를 모아주어 영술을 강화하고 문파와 문파 간의 전쟁에서나 쓰이는 강력한 영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다. 만약 진법이 없었다면 수도자 중에 술사가 되고자 하는 이 없이 모두가 역사나 연사가 되었을 게 분명할 정도로 진법은 술사의 핵심이 되는 요소였다.


진법의 품질은 영맥이 있는 곳에서 펼쳤느냐에 따라 갈렸다. 영맥 위에서 진법을 펼치면 하나의 문파가 전력으로 소모해도 끄떡 없는 대량의 영기가 모이지만, 영맥이 없는 곳에서 진법을 펼치면 영풍으로부터 영기를 모으므로 개인이 잠깐 쓰면 또 모으는 시간이 필요했다. 혼이 말했다.


“진법은 마방진(魔方陣)이 기본입니다. 문자나 수로 마방진을 펼치는 게 보통이지만, 부유한 문파의 경우 속성과 역할에 따라 나뉘는 법구들로 마방진을 펼치기도 하지요.”


“아까 우리를 여기로 안내한 요수가 진법을 이용하는 걸 보았습니까?”


“여덟 개의 봉우리에 각각의 동굴이 있었고 관료는 층의 한가운데에서 요수를 부려 진법 자체를 총괄하고 있었죠. 제가 시각화하겠습니다.”

창정로에게서 안광이 뿜어져 나와 영기 위에 화면을 띄웠다. 그 화면에는 마방진이 그려져 있었다. 겉을 감싸는 수의 개수는 여덟 봉우리, 수 자체는 봉우리에 있는 동부의 수를 적었다.


五 - 二十二 - 十八

| |

二十八 - ? - 二

| |

十二 - 八 - 二十五


창정로가 말했다.


“가운데에는 십오가 들어가야 마방진이 올바르게 되겠군요. 저 자리는 관료가 있던 자리인데 무슨 뜻일까요?”


“일단 진법의 원리를 알긴 하지만, 식견이 없으니 유추할 수가 없군요. 진법은 상위 경지로 갈수록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고 구전으로만 전해지니 천축누각의 장서각에서도 기본적인 지식을 제외하면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문자 마방진이 아니라 숫자 마방진일까요? 관리할 수만 있다면 문자 마방진이 더 좋을 텐데요.”


“조급할 거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가르침을 청하면 되지요. 그나저나 다른 법칙도 발견했습니다.”


“무엇입니까?”


“글자의 수입니다.”


1-3-2

3-2-1

2-1-3


이에 혼이 말했다.


“글자의 개수도 마방진이 되는군요. 어쩌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인 마방진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기는 보통 마방진의 동력이 되니 요청한 시간에 따라 요수가 영석을 가루 내어 뿌리는 것도 수에 영향을 줄지 모릅니다.”


“요수와 영석 가루가 상호작용하여 법구의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렇군요. 이런 복잡한 진법은 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간단한 진법을 법구에 새겨 유지비를 줄일 수 있겠으나 더 고차원의 진법을 펼치지 못하면 술사들 간의 싸움이 결국 진법의 출력을 겨루는 양상이 되듯이 서로 부딪치다가 깨지겠지요. 법구에 직접 새기는 초보적인 단계의 진법으로는 법구끼리 부딪치기만 해도 파괴될 겁니다.”


“훗날에는 여기에 펼쳐진 진법처럼 거대한 진법을 만들어 영기를 모으고 저의 신체나 법구와 연결시켜 영기를 공급하도록 해야 합니다. 보통 술사들이 진법으로부터 영기를 공급받는 방식은 그저 특정한 자리에 위치한 자에게 진법이 영기를 불어넣는 방식이니...”


“언젠가는 그리될 겁니다.”


이날 창정로는 영기를 채우면서 원혼에게 어떤 금제를 걸지, 금제를 건 원혼을 어떤 법구에다가 기령으로 삼을지 등을 정하고 밤새 진법에 대해 고민하며 실제로 몇몇 진법을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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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입문(入門) +1 24.08.25 3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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