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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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4.08.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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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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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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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대질서(大秩序)

DUMMY

의부인 벽사존자의 협력을 받지 못한 창정로는 곧바로 다른 사업자를 찾았다. 금민을 찾아갈까 고민도 했으나 그녀의 사업은 창정로가 구상하는 사업과 결이 달랐다. 이에 운청동자, 운양소를 찾아가 고민을 말하니 운양소가 말해주기를.


“일단 나부터가 일은 파견 의뢰나 대질서 관련된 게 아니라면 하지 않으니 식견은 없지만, 인맥은 있으니 소개해 줄 수는 있어! 금민 누님이 마침 제격인데.”


운청동자 운양소는 먼저 금민 누님을 소개하려 했으나 창정로는 이미 금민을 만나보고 협업 계획을 접은 상태였다. 그래서 두 번째 후보가 나왔는데 바로 선광존자, 취소호의 제자인 소사자(小獅子), 전가인(全家引)이었다. 그녀는 과거 취소호가 명성을 떨치게 했던 풍영술인 여율령령(女律玲令)의 가장 깊은 심법까지 모두 익힌 수제자로 취소호만큼이나 그녀 역시 유명했다. 창정로가 그녀의 술법과 공법에 대해 물었다.


술법이란 술사들이 주로 수련하는 힘으로 영근의 특성을 살리는 일에 주력하므로 풍영술, 뇌영술 등으로 불렸다. 반면에 공법은 역사들이 주로 수련하는 힘으로 신체나 병장기의 특성을 살리는 일에 주력하므로 창법, 검법, 권법, 지법 등으로 불렀다. 술사라 하여도 공법을 익힐 수 있었으며 역사라 하여도 술법을 익힐 수 있었으나 양쪽에서 대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사자, 전가인은 그 경지 바로 직전에 있었다. 결정경에 오른 그녀는 술법으로는 여율령령을 비롯한 수많은 풍영술을 익혀 대성했고 공법으로는 지법을 익혔다. 운양소가 말했다.


“일단 그 누님은 세 분 존자의 다른 제자들보다 가장 나이가 많으시면서 아름답지. 그리고 강해. 누님의 입에서 나오는 바람, 즉 명령은 사내와 계집을 가리지 않고 모두 따르게 하지. 그것에 저항하면 체향을 퍼트려 유혹하는데 그 위력을 알려주는 재밌는 일화가 있어.”


운양소가 알려준 일화는 믿기 힘든 것이었다. 전가인이 여율령령의 대성을 앞두고 수행하던 시절이었다. 영술의 위력은 충만했으나 통제가 되지 않아 강력한 체향이 그녀의 동부에 깔려 스승인 취소호를 제외하면 아무도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동부에 있던 바위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동부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취소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율령령은 명령함으로써 외부의 것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는 것에 그 뜻이 있다. 본래 신과 하나가 되고자 노력했던 옛 수도자들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온 것이니 일체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사랑으로써 이끄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전가인은 주변의 바위와 흙마저도 매료했으니 과거의 나를 뛰어넘었다. 원영경에만 오른다면 호령 열도의 역대 풍영근 존자 중 가장 성취가 높을 것이다.”


취소호는 전가인의 동부가 무너져 그녀가 흙과 바위의 사랑을 받았을 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진정 여율령령을 대성했다면 매료한 것들로부터 해를 입을 리가 없었다. 취소호의 생각은 과연 옳은 것이어서 반나절이 지나자 흙더미에서 전가인이 나왔다. 조금도 다치지 않았으나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녀의 손에 강력하게 압축된 흙과 바위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취소호는 그날 이후로 술법만 익히던 전가인에게 공법 또한 배우게 했다. 지법의 달인이 된 전가인은 동급의 토영근 수사가 날리는 바위도 손가락 하나를 대면 간단하게 파쇄할 수 있게 되었다. 운영소가 전가인과 알게 된 건 이때쯤이었다. 운영소가 말했다.


“요수의 신체를 등이나 어깨에 덧붙이거나 자신의 신체와 교체해 역사로서의 역량을 높이지 않는다고는 해도 역사들이 몸을 만들다가 신체가 보기 흉하게 뒤틀리는 일은 다반사! 그때 누님을 도와주라고 선광존자께서 말씀하셔서 이번 화신 후보께 해드린 것처럼 누님의 몸을 만들어드렸었지. 그때 친해졌어!”


“역사로서의 재량은?”


“흠, 아무래도 나는 원래 역사니까 내가 아무리 축기경이고 가인 누님이 결정경이어도 술법만 안 쓰면 내가 이기지. 근데 술법을 쓰면 내가 질걸?”


“역사의 힘만으로 붙는다고 한다면 제압하는 일에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적어도 반나절. 그보다 빠르게는 무리야. 누님이 자신의 영근대로 신체를 강화한 게 아니라서 제 위력은 안 나오지만, 워낙 수행이 깊다 보니 풍영근자인 누님의 토 속성 지건(指鶱)은 아프다고...”


“그 누님을 만나게 해줘. 얘기도 좀 거들어주고.”


“어... 거들기까지 해야 돼? 난 그 누님 좀 눈치 보이는데.”


“네가 쓰는 공법이 어떻게 되지?”


“운장인(雲掌印)이라는 장법을 쓰고 술법은 구름을 굳히거나 부드럽게 하는 기초적인 거랑 뭐 이것저것. 갑자기 그건 왜?”


“법구는 뭘 쓰는데?”


“장법을 쓰다 보니 손에 힘을 실어주는 장갑을 주로 쓰고 보조용으로 차륜(車輪), 바라(哱囉) 등을 쓰지? 차륜은 내가 구름을 움직이는 일이 원활하도록 돕고, 바라는 상대를 가두는 용도인데 가두고 장법을 갈기면 꼼짝 못하는...”


운영소가 신나게 얘기하던 도중이었다. 창정로는 자신의 저물대에서 장갑 하나를 꺼내더니 이내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던 운영소의 손에 씌웠다. 장갑은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새하얗고 질감은 비단과 같았다. 그 자태 역시 범계의 벙어리 장갑과도 같아 희귀해 보였으며 손등 부분에 놓인 자수는 용이나 기린, 비어(飛魚: 날개가 달린 물고기)와 같은 영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운영소가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이게......”


“이전에 나에게 구름을 선물한 보답이야. 내가 직접 만든 것이니 걱정은 말고.”


“아니 법구 제련을 배운 건 얼마 안 되지 않았어? 어떻게 이런 양품의 법구를?”


“그거 기령 법구야. 네가 정신을 잃어도 그 장갑은 대신 싸워줄 거야. 대신 기령을 유지하는 일에 드는 영기는 네가 감당해야 해서 다른 법구보다 영기 소모는 심하겠지만, 나쁘지 않지?”


“기령 법구?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 좋지!”


원혼들을 통해 영술을 쓰는 일에 있어 영력만 충분하면 장애가 없게 되자 법구 제련은 창정로에게 있어 아주 쉬운 일이 되었다. 더군다나 창정로는 원혼을 다룰 수 있어 모든 법구에 제련된 원혼을 넣었다.


“이 정도의 법구를 만들려면...... 사람은 어디서 구한 거야?”


법구 제련에는 수많은 속성이 필요했다. 속성이란 개체의 고유한 특성을 이르는 말로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지만, 관련 있는 속성들을 모아 새로운 개체를 구성하는 일에는 요긴했다. 그러니 법구 하나에 여러 연사가 달라붙어 정성을 다해 제련해야 했다. 연사에서 속성은 단일 속성과 복합 속성으로 나뉘었으며 개중에는 유도 속성이라 분류되는 것들도 있었다. 단일 속성과 유도 속성은 만들려는 법구에 따라 매번 종류가 달랐지만, 복합 속성은 어느 정도 정돈된 것이 있었다. 복합 속성의 예시로는 대질서 여덟째 날에 시체를 태우고자 뇌영근자와 운영근자가 힘을 합쳐 만든 먹구름이 있었다. 연단과 제련이 이리도 복잡할 진데 창정로는 적어도 사람 모을 걱정은 없었다. 지금까지 창정로의 말을 따르도록 금제를 건 원혼은 법구를 만드는 일에 쓰인 원혼들을 제외하면 다섯인데 각각 화영근, 풍영근, 수영근, 뇌영근, 운영근을 지녔고 화영근, 풍영근, 뇌영근은 양기를, 수영근과 운영근 원혼을 통해서는 음기를 뿜을 수 있었다. 창정로가 말했다.


“내가 정성을 다해 만든 법구를 벗에게 선물하는 게 이상한가?”


“하하하, 전혀 안 이상하지! 지금 당장 누님께 가자! 누님이 안 받아주면 내가 과거의 빚을 얘기해서라도 주선해 줄게!”


전가인은 여느 존자들의 제자답게 구 층에 배정된 자신의 동부에서 수행에 힘쓰고 있었다. 다른 존자의 제자들과 비교해도 가장 연장자였으므로 그녀는 현재 결정 후기에 머물며 원영경 돌파의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운양소와 창정로가 찾아온 것이었다. 운양소는 선광존자의 명을 받고 왔다는 말로 출입을 막는 구 층 관료를 비키게 하고 그녀의 동부 앞에서 전음부(傳音符)를 날려 동부 안으로 보냈다. 전음부는 동부의 결계를 통과하고 전가인에게 닿았다. 카랑카랑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동부 앞까지 전해졌다.


“운양소, 무슨 일이길래 나를 찾아왔어?”


“아이 누님, 왜 그렇게 날을 세우십니까?”


“수행 도중 갑자기 찾아오는데 네가 나보다 선학(先學: 선배)이 아니고서야 반길 수 있겠어? 사부님이 와도 싫은 티는 낼 거 같은데.”


“누님 생각해서 성근단 개량한 걸 만들어왔어요. 술법 쪽은 워낙 대성하셔서 역사 쪽으로 영기를 모으고 계시잖아요. 제가 개량한 성근단은 더 정순한 영기로 근육을 구성합니다.”


경지를 올린다는 건 단순히 자신의 신체에 영기를 모으고, 그것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룸에 있었다. 원영경부터는 처음으로 그 영기를 외부로 배출하여 하수인처럼 다스리니 신체 감각이 그 어느 경지보다도 중요했다. 전가인이 말했다.


“...가져와.”


“네!”


“옆에는 누구야?”


“나에게 소중한 기령 법구를 선물한 진정한 벗이지. 누님한테 볼일이 있대.”


“하, 뇌물 받아서 왔구만.”


“우정의 증표를 그렇게 모욕하다니!”


“너는 기령 법구를 받았는데 나는 고작 단약이 전부야?”


전가인이 말하기 무섭게 창정로의 저물대에서 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차륜, 바라, 바구니, 낚싯대, 비수, 장검, 대도, 곤봉, 옥구슬 등 수많은 법보가 있었다. 창정로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저의 재주가 기령 법보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 얘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흠... 상당한 재주가 있구나. 만황(蠻荒)의 요수들도 이런 재주는 없을 터인데.”


“만황이 무엇입니까?”


“아, 지금의 제자 중에는 만황을 알고 있는 이가 나뿐이겠구나. 천사께서 만나자고 하면 곧 알게 될 테니 조바심 내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기능을 설명해 주어야 재주를 판단하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여율령령을 대성하신 분 앞에 서다 보니 저의 재주가 부끄러워 실수했습니다.”


“뭐... 실수까지야. 어서 설명이나 해보거라.”


“차륜은 빠르게 회전하며 영기의 운영을 도와줍니다. 술법을 쓸 때 드는 영기가 줄어들고 시전 속도가 빨라지지요. 기령을 교육하면 기령이 차륜을 이용해 대신 술법을 쓰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 비수는 제가 선배님께 추천드리는 법보로 허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법을 이용해 멀리 공격하실 때 이 비수를 섞는다면 실력이 뛰어난 역사라 할지라도 감히 받아칠 용기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기령을 교육하면 허상에도 영기를 실어 더 뛰어난 허상을 만들 수 있고 영기를 얼마나 싣느냐에 따라 허상이 아니게 할 수도 있습니다.”


“너는 그 법보를 양소에게 선물하면서 여기까지 안내받았지. 네가 그 법보로써 나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여기까지 오면서 양소에게 듣기로는 소사자라는 별호가 선광존자께서 후생가외(後生可畏: 젊은 후학들은 두려워할 만하다)라고 하셔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별호에 맹수의 이름이 들어가니 그 위세가 어떻겠습니까?”


“듣기는 좋다만, 서두가 길구나.”


“크게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업에 범계와 관련된 물품을 추가하시고 제 물건도 대신 세워주십시오.”


“기령 법구는 안 파느냐? 그걸 판다면 네가 직접 사업을 해도 될 텐데.”


“기령 법구를 주로 팔기에는 수량도 부족하고 몇몇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 가끔은 팔 수 있느냐?”


“재료를 조금 대주신다면 그건 가능합니다.”


“좋다! 마침 나도 원영경 돌파 시도에 쓰일 대량의 영석이 필요한 참이었다! 들어오거라! 이름이 무어냐?”


“벽사존자님을 의부이자 사부로 모시고 있는 창정로라고 합니다.”


“벽사존자님의 제자였구나. 양소! 너는 볼일 없으면 성근단만 내놓고 썩 물러가거라!”


운양소는 전가인의 말에 재빠르게 달아나고 동부의 입구를 막고 있던 결계가 창정로에게 열렸다. 한편 그렇게 달아난 운양소는 일 층의 금민을 만나러 갔다가 밖이 소란스러워 금민에게 물었다.


“누님, 일 층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살인이다. 축기경에 오른 운영근자 한 명이 살해되었다고 하더구나.”


“이 천축누각에서요? 누가요?”


“모르지, 일단 사인이 질식사이고 온몸에 수기가 가득하여 수영근자의 짓으로 보고는 있다만 솔직히 알 수가 없다. 뼈와 근육을 비롯한 신체 기관 대다수가 사라졌으니 법구나 단약을 만들기 위해 벌인 짓이겠지.”


“얼마 전에 일어난 짓입니까?”


“우물에 숨겨져 있던 것을 누가 발견했다더구나. 그러니 시체를 뒤덮은 대량의 수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 천축누각마저 흉흉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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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대질서(大秩序) 24.09.16 9 2 8쪽
» 대질서(大秩序) 24.09.10 12 2 13쪽
14 대질서(大秩序) 24.09.08 21 2 15쪽
13 대질서(大秩序) 24.09.04 20 2 11쪽
12 대질서(大秩序) 24.09.02 21 3 12쪽
11 대질서(大秩序) 24.08.28 22 3 17쪽
10 대질서(大秩序) 24.08.25 20 3 16쪽
9 대질서(大秩序) 24.08.25 35 3 13쪽
8 입문(入門) +1 24.08.25 32 5 16쪽
7 입문(入門) +1 24.08.25 26 5 12쪽
6 입문(入門) +1 24.08.25 31 5 11쪽
5 입문(入門) +1 24.08.25 28 5 11쪽
4 입문(入門) +1 24.08.25 33 5 12쪽
3 입문(入門) +1 24.08.25 47 6 12쪽
2 입문(入門) +1 24.08.25 50 5 12쪽
1 입문(入門) +2 24.08.25 104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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