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 후 천재 코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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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7 10:17
최근연재일 :
2024.09.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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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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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의 인생 (1)

DUMMY

“성우야. 짐 싸야겠다.”


감독님 호출로 들어온 감독실.

모자를 벗고 인사를 제대로 드리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가 내부를 울렸다.

그대로 굳은 내 머리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운동장에서 한창 훈련 중이었기에, 내 몸에선 열기가 빠지지도 않은 채였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됐다.”


조금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것쯤은 예상했으니까.


내 나이가 벌써 28이다.

그때까지 1군 콜업은커녕, 지금 있는 2군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적도 없다.

그렇다고 드래프트에 뽑힌 유망주인 것도 아니다.

간신히 2군에 합류한 신고 선수.

애초에 언제 쫓겨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처지였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담담히 답했다.


“그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감독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우야.”

“예.”

“너무 낙담하지 말고. 내가 살아보니까 야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너처럼 뭐든 열심히 하는 녀석이면 뭘 해도 성공할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그래.”


감독님은 그렇게 말하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의 입에서 뿜어지는 연기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감독실을 나왔다.


복도를 지나가는 몇몇 선수들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들은 내 표정을 보곤 별말 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두들겨 주며 ‘수고했다’라고 짧게 말해줄 뿐.

나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운동장으로 돌아와 코치님께 인사를 드렸다.

내가 호출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하아··· 아니길 바랐지만 그렇게 됐구나.”


코치님이 고개를 떨구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여기에 너처럼 노력하는 애가 어디 있다고···.”

“···.”


그 말에 씁쓸히 웃었다.

노력이라···.

많이 하긴 했다.

하지만 내겐 가장 중요한 재능이 없었다.


어딜 가도 나보다 발 빠른 놈, 잘 치는 놈, 수비 잘하는 놈이 널렸다.

필사적으로 공부해 타격폼을 수정해 봐도 TV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담장 뒤로 타구를 보낼 수 없었다.

남들보다 훈련량을 두 배, 세 배, 네 배 늘려도 마찬가지.

무슨 짓을 해도 앞서 나가는 녀석들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더라.


오죽하면 투수로 전향까지 해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쩌면 내 야구 인생에도 빛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고 구속으로 141km를 찍었거든.

그러나 나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타자 때와 마찬가지로 내 실력은 그 이상 늘지 않았다.


그래도 2군에서 7년 정도를 버텼으니 재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닌가?


누구는 신고 선수로도 못 뽑히는 마당에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들이나 나나, 1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건 똑같은데.

이래서 애매한 재능이 잔인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사람에게 끊임없이 희망이란 약을 주며 생명을 갉아먹으니.

그래도 여태껏 운동하며 한 번도 부상당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몸은 타고났다고 봐야 하려나.

···모르겠다.

이제 와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럼 가보겠습니다.”


짐을 다 싸고는 꾸벅 인사했다.

그리곤 운동장을 나서려는 그때였다.


“볼, 볼, 볼, 볼! 피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어?”


어느덧 내 눈앞까지 날아온 타구를.


빠악!


시야가 번쩍이고 하늘이 기운다.

정확히는 공에 맞아 그대로 쓰러진 것이었다.


“···우야!”

“···성우야!”


마치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귀가 먹먹하다.

어느새 달려온 코치님이 내 몸을 일으켜 뺨을 두들겼다.

덕분일까.

정신없이 흔들리던 시야의 초점이 점점 맞춰지는 것 같다.


“박성우! 정신 차려 괜찮아?”

“···코치님.”

“정신이 드는구나! 누구 아무나 빨리 응급팀에-”

“코치님. 저 괜찮습니다.”


나는 맞은 부위를 부여잡은 채 그를 말렸다.


“그래도 검사는 받아봐야지!”

“정말로 괜찮아요.”


지금도 욱신거리고 있지만 심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야구하면서 어디 한두 번 맞아본 것도 아니고.

빗맞은 타구라 그렇게 세지도 않아 이 정도면 단순 타박상이다.

며칠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나 특이한 게 있다면 걱정돼 몰려온 몇몇 선수들 몸에서 이상한 색이 보인다는 정도?


가만 보니 누구의 어깨에선 초록색 빛이, 누구의 무릎에선 빨간색 빛이, 누구의 팔꿈치는 노란색의 빛이 뿜어지는 중이다.


무슨 신호등처럼 말이다.

섬광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어째 조금 선명하긴 한데, 이것도 별일 없을 거다.

금방 사라지고 말겠지 뭐.


무엇보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유니폼을 입고 운동하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거든.



***



“어후 은퇴식··· 아니 방출식 하나 화려하게 하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괜히 혹을 꾹꾹 누르며 집으로 향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뭐 해 먹고 살아야 하냐.’


나이 28살. 백수. 고졸. 스펙 없음.

할 줄 아는 거. 공놀이.

특징. 그마저도 잘 못함.


음··· 이렇게 보니 처참하기 짝이 없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레슨장이라도 열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디 쉽나.

요즘엔 워낙 유명한 선수들도 레슨장 하나씩은 다 차려서 나 같은 신고 선수 출신은 명함도 못 내민다.

가르치는 건 둘째 치고 회원도 제대로 못 모을걸?


그럼 답은 정해져 있네.

튼튼하고 젊은 몸 뒀다 어디에 쓰겠나.

몸 쓰는 일이라도 해야지. 처음엔 좀 힘들겠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터였다.

지금보다 돈도 더 벌 수 있을 테고.


우우웅-


전화가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최윤철 선배였다.

내가 서울 드래곤즈에 입단했을 때부터 같은 경지고등학교 출신이라며 이것저것 잘 챙겨주던 형이었다.

1군에도 종종 콜업됐을 정도로 충분히 경쟁력 있는 투수였는데 하필 부상이 찾아와서···.

그래도 지금은 모교의 투수 코치로 잘 지내는 중이다.

그런데 이 시간엔 어쩐 일이지?


“네 형.”

[야, 얘기 들었다. 방출됐다며?]


이거 때문이었구만.

새삼 한국 야구판 참 좁다는 생각이 든다.

방출된 지 얼마나 됐다고 내 소식이 고등학교 코치 귀에 들어가냐.


“뭐··· 그렇게 됐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겪은 일이라, 나는 아무렇지 않은 투로 답했다.


[드래곤즈도 너무하네. 너처럼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애가 어디 있다고.]

“에이 됐어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된 거면 재능 없는 거지. 오히려 그래서 후회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다른 구단 테스트 보거나 할 생각은 없는 거냐?]

“아무래도 그렇죠? 당분간 야구 생각도 안 하려고요.”


말은 이렇게 했어도 내일이면 또 야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다.

그만큼 야구는 내 인생에서 큰 자릴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러지 않았다면 힘든 2군 생활을 7년이나 버티지 못했겠지.


[그럼 이제 뭐 하려고?]

“일단은 택배 배달을 하던지 최대한 몸 쓰는 쪽으로 생각을-”

[야야.]


윤철이 형이 내 말을 끊었다.


[그러지 말고 이왕 몸 쓸 거면 여기 와서 써라.]

“네? 여기요? 거기가 어디···.”

[어디긴 어디야. 우리의 모교 대(大)경지고등학교지!]

“경지고요? 갑자기 그게 무슨···.”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어차피 백수라 시간 많잖아?]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반항심 생기는데요. 확 약속 잡아버릴라.”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경지고 앞에 부대찌개 집 알지? 거기서 보자고.]



***



“이모 여기 부대찌개 4인분이랑 소주 두 병만 주세요!”

“아니 뭔 대낮부터 술이에요. 애들 훈련 없어요?”


나는 식당 시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오후 2시.

주말이면 모르겠는데 월요일부터 술 마시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철이 형은 어느새 나온 술 뚜껑을 따며 말했다.


“응 없어. 어제 시합해서 오늘 쉬거든.”

“어쩐지. 평소라면 자고 있을 사람이 전화도 하더라.”

“네가 혈기 왕성한 애들 관리해 봐라. 좀 지치는 게 아니야.”


챙-


일단 빈속에 소주를 때려 넣고는 물었다.


“그래서. 경지고에서 몸 쓰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대충 눈치채지 않았어? 코치하라는 거지. 마침 자리가 하나 생겼거든.”

“설마 했는데.”


후우.

나는 한숨을 내뱉곤 그대로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아, 오늘따라 잘 들어가네.

진짜 인생이 써야 술이 달게 느껴지는 건가.


“반응이 왜 이래? 너도 알겠지만 이거 보통 기회 아니다?”

“알죠. 당연히 알죠.”


고등학교 코치 자리가 어디 쉽게 비나.

설령 공석이 생기더라도 보통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코치에게 먼저 연락이 간다. 가령 중학교 야구부에서 경험을 쌓은.


이렇게만 보면 윤철이 형 말대로 좋은 기회인 건 확실하다.

방출돼서 마땅히 할 일도 없는 백수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거니까.


문제는 내가 지금껏 누구도 가르쳐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다못해 초등학교나 리틀 야구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봤으면 모르겠는데 시작부터 바로 고등학교 코치?


“그거 괜찮은 거예요?”

“뭐 어때. 너 야구하면서 후배들 곧잘 봐주곤 했잖아. 아는 거 많아서.”


많기야 하다.

온갖 시도를 다 해본 만큼 연구해 보지 않은 폼이 없으니까.


“심지어 너는 투수 타자 안 가리잖아.”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거야 그냥 조언해 준 거죠. 코칭이랑은 결이 좀 다를 텐데요.”

“에이 내가 해봤는데 똑같아. 별 차이 없어. 처음에만 좀 낯설고, 하다 보면 금방 적응해.”


윤철이 형은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부담가질 필요 없는 게, 우리가 막내 코치한테 뭘 바라겠냐. 끽해야 펑고 쳐주고 가끔 배팅볼 던져주는 게 다지.”


그런가?

하긴. 코치가 나 혼자인 것도 아니고.

윤철이 형을 비롯해 다른 코치님은 물론 감독님까지 있다.

나는 형 말대로 몸 쓰는 일 하고, 애들 지도는 경험 풍부한 선배 코치님들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배우는 거 아니겠는가?


“성우야. 우린 나이 먹어서 이제 오래 펑고 치기 힘들어. 내가 뭐 옛날처럼 몸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사람이 좀 도와줘라.”


윤철이 형이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대놓고 궂은일을 맡기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하물며 백수 된 후배 챙겨준답시고 가장 먼저 연락해 준 사람이다.


‘이걸 어떻게 거절해.’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이상 더 고민할 건 없었다.


“알겠습니다. 할게요.”

“그래야 우리 성우지! 잘 생각했어.”


그제야 윤철이 형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잔을 부딪치고 그대로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크으, 좋다! 믿음직하고 성실한 후배랑 같이 일하게 되니 좋네.”


부대찌개가 나온 것도 그쯤이었다.

안주도 나왔겠다.

윤철이 형이 바로 잔을 채워주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 왜? 빈속에 너무 빨리 달렸나?”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나는 대충 물로 입을 헹구곤 말했다.


“어후, 갑자기 술이 확 쓰네요. 더는 못 마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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