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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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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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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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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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탈

DUMMY

- 끼익.


“또 걸렸네. ”


남양주 외곽에서 출퇴근하며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는 이 사거리의 신호등은 단 한 번도 파란불을 바로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반강제적으로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운명, 머피의 법칙, 아니면 나도 몰랐던 별난 신호 체계일지도 모른다.


그래 봤자 하루에 2분 남짓.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꼭 마주하는 풍경이 있다.



【당산리 다방】



2층짜리 낡은 벽돌 건물에 그리 적혀있다. 아니, 적혀있었던 것 같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얼마나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간판에는 이미 글씨가 모두 지워진 상태였으니까.


출근길 아침 햇살에 희미하게 비치는 얼룩이 그리 보여 짐작한 명칭일 뿐이다.


요즘 시대에 다방이라니?


게다가 이곳은 신도시개발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차보다 트랙터와 경운기가 더 많이 다니는 길이다. 짐작건대 손님이라곤 어쩌다 들리는 토박이 어르신들이 전부일 터.


그런데 이 간판의 글씨도 다 떨어져 나가고 없는 오래된 다방은 언제나 문이 활짝 열린 채로 여전히 영업 중이다.


러시아워를 피해 이른 아침부터 신호등 앞에 서 있는 나보다 더 일찍 말이다.


나는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찰나, 이 다방을 바라보는 것을 퍽 좋아했다.


아침 해가 뿌연 안개를 지우며 낡은 다방을 비추는 그 순간은 어딘가 아련한 추억 속 사진을 마주한 기분을 들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방이라곤 가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익숙한 풍경에 사뭇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매매·임대 문의』



응? 드디어 내놓은 건가?


분명 그리 적혀있다.


에이포 용지에 수련한 궁서체로 직접 쓴듯한 글귀.


아마 내가 아침마다 이곳을 지나며 했던 오지랖 넓은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 장사가 될 리가 없지.


언젠가 봤던 너튜브 영상에서도 줄을 서서 사 먹어야 겨우 인건비나 건진다는 업종이 바로 카페였다.


하물며 이런 시골 촌구석에 다방은 오죽하랴?


잠깐, 그렇다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건데······.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얼른 폰을 열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진성 대리입니다. ”

(어, 김 대리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

“혹시 오늘 오전에 반차를 좀 써도 될까요?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는데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 영업인 것 같아서요. ”

(하여간 별나. 그냥 대충 타이어 펑크났다 그러면 될 걸 꼭 이실직고한다니까. )

“나중에 어설프게 들키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

(그래, 우리 김 대리 매번 깔끔해서 좋아. 다녀와. 프로젝트도 엊그제 끝났잖아? 요 며칠 야근도 빡세게 했는데 쉴 땐 쉬어야지! 점심 먹고 한두 시쯤 느긋하게 나오면 되겠네. 끊는다. )

“네, 들어가세요. ”


통화가 끝나는 동시에 때마침 신호등도 파란불로 바뀌었다.


공식적으로 농땡이가 승인되었으니 더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핸들을 힘껏 돌려 평소 가던 길에서 벗어나 다방 뒤쪽 공터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혹시나 영업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입구에서 조금 어색한 인사말을 건넸다.


“계세요. ”

“으잉? 어떻게 오셨나? ”


다방에 커피를 마시러 왔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되레 왜 왔냐는 질문을 하는 중년의 남자에게 딱히 설명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은 까닭이다.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에,


- 딱.


남자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매물 보러 오셨구나! 이야, 하여간 요새 젊은이들은 소식이 빨라요. 어째 아직 어플에도 안 올린 매물을 이리 보러 오셨어, 그래? 들어와요! ”


남자의 이리 들어오라 하는 손짓에 팔목에 굵은 금팔찌가 눈살을 찌푸릴 만큼 번쩍였다.


오늘 반차를 각오한 작은 일탈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내가 한발 늦은 모양이다.


으레 이런 시골 가게는 매매·임대를 붙여놓고도 팔릴 때까지 장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번에도 그렇겠니 넘겨짚었던 탓이다.


“아, 거기 서 있으면 구경이나 제대로 하겠어요? 이리 들어오래도. ”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


분명 저 부동산 업자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는 아니나, 이 기회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얼른 다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둘러봐요. 나는 잠깐 전화할 때가 있어서. 여보세요? 아 백 사장, 왜 이렇게 통화가 힘들어. 지난번 호평동에 그 공장부지 있지? 거기가 말이야······. ”


오히려 잘됐다.


호객꾼처럼 붙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살 생각이 없었던 내 죄책감이 더 커졌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주인 없는 다방을 홀로 여유롭게 거닐 수 있었다.


과하게 화려한 물결무늬가 들어간 오래된 패브릭 소파와 광택이 반들반들한 엔틱 테이블, 그리고 이런 가게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두꺼비 장식품이며 누런 달마 액자까지.


어쩌면 내 나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까마득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다.


나는 그중에 가장 구석진 창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길 이제야 앉아보네. ”


사실 이 자리에 앉는 건 내 작은 버킷리스트였다.


사거리에 차를 세우면 보이는, 지금처럼 햇살이 비치는 이 창가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시간을 죽이는 일 말이다.


커피 두어 잔을 시켜놓고 종일 느긋하게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은 잔인하게도 출근 시간에 걸린 신호등 앞에서 가장 강하게 들곤 했다.


물론 주말에 시간을 내서 오면 된다지만 또 그렇게까지 간절한 바람은 아닌 탓에 지금에서야 이루게 되어버렸다. 프림이 잔뜩 들어간 다방 커피는 빠졌지만.


하지만 아쉽게도 낯선 자리에 앉아서 느낄 여유는 신호등을 기다리던 찰나처럼 짧았다.


“어휴, 미안합니다. 급한 전화라서. 그래, 어떻게 좀 둘러보셨나? 여기가 좀 외져서 그렇지 살기엔 또 이만한 곳이 없어요. 2층은 주인세대고 1층은 요 창문 밖에 담만 올리면 그냥 거실이랑 주방이라니까. 노후주택이라 용도변경도 쉬워요. ”


과하게 두른 금붙이가 얼마나 노련한 부동산중개인인지 대변했기에 물 흐르듯 나오는 멘트에 딱히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여기 사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어제까지만 해도 장사하셨던 것 같은데 갑자기 안 보이셔서요. ”

“응? 아아, 어르신은 이제 허리가 안 좋아서 어젯밤에 따님 집으로 갔습니다. 원래 진작 내놓은 건물인데 금방 팔릴 거라면서 오늘 붙이라지 뭡니까? 나 참 어르신 똥고집하고는. ”


다행히 내가 걱정하던 그런 사고는 아니었다.


하긴, 돌아가신 다음 날 바로 매물로 나오는 집만큼 인정머리 없이 차가운 매물이 어디 있겠냐 만은.


“참, 이층은 둘러보셨나? 여기 2층이 또 올 수리라 기가 막혀요. 테라스가 있어서 1층만큼은 평수가 안 나와도 한 17평은 넓게 뽑혔어요. ”


노련한 부동산 업자는 다 봤으니 이제 괜찮다 대답할 여유 따윈 주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카운터 뒤편 계단으로 걸어간 남자는 또다시 힘차게 올라오라 손을 흔들어댔다.


“2층 짐은 애 진작 빠졌는데 리모델링은 또 왜 했는지 모르겠더라고. 여, 여 봐봐요. 에어컨이랑 보일러도 이주 전인가 들어가서 아직 비닐도 안 뜯었잖아. 막말로 그냥 몸만 와서 살면 되는 집이지 이게. 으이? 안 그래요? ”


흥분을 하면 반쯤 반말이 튀어나오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설명하면서 충분히 흥분할 만한 집이었다.


오랜 자취 생활로 월세방을 전전한 나도 이만한 매물은 신축 건물이 아니면 보지 못했을 정도니까.


“얼마라 하셨죠? ”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이 중요한 가격을 말씀 안 드렸네. 매매가 1억 4천! 에누리 없이! 딱 그 가격에 나온 매물이지요. ”


1억 4천.


그냥 너무 뜨내기손님처럼 보일까 싶어 물어본 가격인데 생각지도 못한 가격이 튀어나왔다.


리모델링 비용만 해도 3천은 넘게 들었을 것 같은데 고작 1억 4천이라니?


심지어 내가 주차한 공간에는 널찍한 텃밭도 있었다.


“어때요? 빠곰하신 분 같으니까 내 말씀드리는데 워낙 매물이 좋아서 내가 안고 있다가 2억 5천까지 올려 보려고 했거든요. 허허. 그런데 뭐 당장에 나도 저기 재개발하는 땅에 돈이 다 묶여있어서 피눈물로 파는 거라니까. ”


뒤에 내용은 들을 가치가 없는 부연설명이다.


장사꾼들의 밑지고 판다는 호들갑만큼 공허한 말도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 호들갑을 떠나서 구미가 당기는 집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부동산에 거의 문외한이다시피 한 내가 봐도 과하게 저렴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다.


이렇게 금붙이를 많이 두를 정도로 수완 좋은 부동산 업자가 일면식도 없는 내게 이런 좋은 매물을 보여줄 리가 없지 않은가.


딱히 돈을 쓰는 취미도 없는지라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입금할 수 있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각오로 내지를 금액은 아니다.


“조금 생각해보고 오겠습니다. ”

“어? 그냥 가신다고? 아니, 청년! 사장님! 그 혹시 모르니까 명함이라도 줘요! 내 또 조건 바뀌면 알려줄 테니까. ”



***



진성이 떠난 뒤, 남자는 저만치 사라지는 진성의 자동차를 확인하자마자 얼른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르신, 접니다. ”


세상 정중한 자세로 받는 전화는 남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청년 왔다 가긴 했는데 살지 안 살지 모르겠는데요? ”

($^@^^%%@#)

“아잇. ”


갑자기 폰 너머에서 큰 소리가 들렸던 탓에 얼른 귀를 땐 남자는 보이지도 않는 상대방에게 다급히 손을 가로저었다.


“아니아니, 그냥 간 게 아니고 고민을 좀 해보겠다는데 보통은 저러면 다시 안 오거든요. 아, 나는 최선을 다했지! 없는 말 있는 말 다 지어내서 보여줬구먼! 그러게 그냥 내가 산다니까. 뭐요? 1억으로 내리라고요? 그게 무슨··· 여보세요? 여보세요? ”


진작 통화가 끊겨 메인화면이 떠 있는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자는 그제야 말하지 못했던 본심을 혼잣말로 털어놨다.


“참네. 살다 살다 파는 양반이 살 사람 정해놓고 4천을 깎는 건 또 처음 보네. 1억에 거저 넘길 거면 나한테나 팔지. 쯧”


- 톡.톡.톡.


솥뚜껑같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문자를 보낸 남자는 그렇게 진성이 떠난 길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기약 없는 연락을 기다리며.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띠링.


『제가 사겠습니다. 』


“옳거니! 아니, 잠깐. 이거 내가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안 팔리면 내 건데? 에이씨!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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