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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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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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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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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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개업식은 수라장 (2)

DUMMY

“어디 보자. 대통령 지지율이 67%니까. 레임덕이 안 오면 남은 임기가 2년 4개월······. 한 달에 3천이니까 합이 8억4천! ”


8억4천.


내가 다방을 여는 조건으로 받을 돈이다.


영업시간도 내 마음대로에 손님은 기껏해야 오늘 온 2~3명이 전부, 말도 안 되는 거래다.


하긴, 말이 안 되는 것으로 치자면 요괴들과 국정원장이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게 더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달에 3천만 원이라는 순수익이 생기는 순간, 이런 괴력난신의 불가사의한 일들은 모두 극복 가능한 시련으로 변했다.


모아둔 돈을 조금 더 보태면 딱 10억이 떨어진다.


대출만 잘 땡긴다면 진짜 서울 신축 아파트 입성도 더 이상 꿈이 아니다.


- 슥슥.


『서초포스타2단지202동 매매13억 8,000

방배아트샾1단지 109동 매매14억 3,000

···

성현신도아파트 115동 매매 12억 5,000 [♥] 』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 깔아본 부동산 어플의 매물 목록을 슥슥 올려본 나는 아슬아슬하게 금액대가 맞아떨어지는 아파트 몇 개를 눌러 찜 목록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요즘 10억이 돈도 아니라지만 내 나이에 서울에 자가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첫 달 정산도 아직 받지 못했으니 머나먼 계획이지만 말이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큰돈이 들어온다는 생각에 잠시 딴짓을 해버렸다.


계약은 계약이니, 당장 내일부터 다방을 오픈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정식으로 사업자도 내고 보건증에 이런저런 필증과 증명서까지 발급받으려면 이렇게 한가롭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일도 올지 모르는 손님들에게 불법으로 영업을 할 순 없으니 말이다.


나는 얼른 차키와 지갑, 혹시나 졸음이 올까 싶어 진하게 탄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시내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 툭. 투툭.


차 위로 만개한 벚꽃잎이 하나, 둘 떨어졌다.


뭐지? 이상기온 때문인가?


이 초가을에 벚꽃이라니. 심지어 벚꽃만 핀 게 아니었다. 코스모스, 장미, 개나리, 이름 모를 들꽃.


가로수와 덩굴이 올라간 담장, 그리고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공간에는 여지없이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이상함은 그뿐만이 아니다. 풍경과 함께 차를 달리던 길도 달라졌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는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흙길로, 풀이 무릎만큼 자란 들판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 끼익.


나는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웠다.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차를 돌리려 뒤를 돌아봐도 보이는 건 눈앞의 풍경과 큰 차이가 없는 들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을 겪으면 어찌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겠지만, 그 짧은 사이 예방접종(?)을 너무 강하게 맞아버렸다.


구미호와 말하는 너구리를 만나고 국정원장에게 명함까지 받은 상황이지 않은가?


달리던 차가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와버린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생소한 옷차림의 이 할머니도 말이다.


“오는 길이 험하진 않았는가? ”

“예, 꽃잎이 흐트러진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

“다행이구먼. ”


방긋 웃는 할머니의 얼굴에 나이에 맞는 자연스러운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나는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여기는 천계겠군요. ”

“오호. 그럼 내가 누군지도 아는가? ”

“마고신께서 제 눈을 띄워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마고신이시겠지요. ”

“내가 잘 고른 게 맞구먼. 총기가 대단하구나. ”

“총기랄 것도 없습니다. 그저 들은 이야기가 그것뿐이라 그렇습니다. ”

“겸손하기까지 하구나. ”


나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조금 오래된 경차를 몰고 천계까지 온 것이다.


“그래, 와보니 어떤가? ”

“글세요. 조용하고 푸근한 느낌입니다. 조금 심심할 것 같기도 하고요. ”

“재미없는 도인들이 오는 곳이라 그런게지. 홀홀. ”


무례한 답이나, 신 앞에서 거짓을 말하기도 뭣해 그대로 감상평을 뱉어버렸다. 보고 느낀 바가 그러했으니.


마고신이 손을 가리킨 들판 아래는 소박한 볏짚을 엮어 올린 초가집이 군데군데 보였다.


벼가 금빛으로 넘실거리는 논과 소달구지며 이름 모를 채소가 자라고 있는 밭은 영락없이 어느 시골 마을의 풍경이다.


“참,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

“커피? ”

“마침 한잔 타왔습니다. ”


- 쪼르륵.


보온병 뚜껑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이 채워졌다.


“금이가 좋아하던 그 커피로구나. 자, 괜찮으니 앉거라. ”

“네. ”


커피를 받아든 마고신이 바닥을 한번 훑자 들풀이 앉기 좋은 방향으로 누웠다.


“내게 할 말이 많을 터인데? ”

“그래서 이리 부르셨습니까? ”

“부르기는. 홀홀. 그저 네가 오겠거니 하고 기다린 게지. 천계에 오게 된 까닭은 내가 아니라 그것 때문이지 않겠느냐? ”

“아. ”


마고신이 가리킨 호주머니 속에는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호주머니 속 지갑의 나뭇잎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 그 속에 신의 안배는 없었다.


너구리가 커피값이라 내민 잡동사니 중 나뭇잎을 고른 것은 내 선택이었으니.


이번만은 마고신의 말이 맞은 것이다.


“서러웠나보이? 신의 바람대로 살아온 것이? ”

“원망 아닌 원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었을 테니까요. ”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야속하게도 그 미래의 편린은 좀처럼 내가 원하는 순간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책장 끝을 넘겨 원치 않게 결말을 봐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 투정 섞인 한탄을 들은 마고신의 대답은 달랐다.


“그건 네가 틀렸구나. 네가 아니면 안 되었단다. ”

“제 그릇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

“눈을 뜬 아이들 모두가 그리 말했지. 허나 아이야 잘 듣거라. 그중에 네가 제일 특별하단다. 수많은 아이의 눈을 띄워주었지만 이리 내게 와 손수 마실 것을 건네줄 만큼 운명의 실타래가 자유로운 아이는 네가 처음이니 말이다. ”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원망치 않습니다. 마고신조차 바람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제가 바람대로 살겠다는 것은 욕심이니까요. ”

“그걸 어찌 아는고? ”

“기껏 천계로 데려왔더니 다들 저리 심심하게 농사나 짓는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

“홀홀홀. 네 말이 맞구나. 참으로 지혜로우이. ”


다르지 않았다.


천외천(天外天)의 존재인 마고신조차도.


대단한 신이라기보다 이리 인심 좋은 할머니의 모습을 한 연유도 아마 그런 까닭일 것 같았다.


그저 커피 한잔을 내어주면 맛있게 마시는 평범한 할머니다. 사는 이야기를 조금 길게 들려줄 법한.


그 사실이 내겐 별것 아닌 위안이 되었다.


순리니 운명이니 하는 것은 어쩌면 그저 이리저리 얽힌 각자의 바람이 만든 허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에잇! 급하니 다방 앞에 그냥 세우거라! ”


- 끼이이익.


우회전 한 번 만 하면 널찍한 주차장에 나오기에 속도를 줄이며 깜박이를 켜던 백마현 국정원장을 구미호가 나무랐다.


그렇게 차에서 허둥지둥 내린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마리의 너구리는 다방을 향해 뛰어들어가다시피 내달렸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심지어 불이 꺼진 다방 안에는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나간 모양인데요? ”

“밖에 차도 없는 겁니다. ”

“일단 들어가자. 신목잎은 두고 갔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


- 휘이잉. 딸랑.


“어서 들어오거라.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진 구미호가 다방 안에서 잠긴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렇게 함부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다방 주인이 알면 언짢아할 텐데요? ”

“시끄럽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란 말이다! 빨리 찾아야 한다! ”


- 달그락. 달그락.


세 사람은 그렇게 흩어져 주인 없는 빈 다방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찬장, 카운터, 2층 안방까지.


누군가 본다면 영락없이 물건을 훔치러 온 도둑의 모양새였으나 실상은 이들 모두 다방의 주인인 진성을 구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연유를 아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구미호뿐인듯했지만.


“없느냐? ”

“예, 이쪽엔 보이지 않습니다. ”

“여기도 없는 겁니다. ”

“더 찾아보거라. 더! ”

“그런데 그 신목의 잎사귀가 어떤 물건이길래 그러십니까? ”


자신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까마득한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고작 그런 일로 호들갑인 게냐? 오백 년 전만 하더라도······. ’라는 레퍼토리로 오히려 자신을 타박하던 분이었지 않은가?


그런 어르신이 자신과 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찾는 중이다.


사안이 급한 것과는 별개로 호기심과 궁금증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신목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신이 내려오는 나무니라. 양껏들은 세계수니 뭐니 하는 모양이다만 중원까지 가도 온전히 살아있는 신목은 여기 계룡산 신목 하나뿐인 게야. 그래서 저놈이 지키고 있는 것이고. ”

“엣헴! 막중한 임무인 겁니다. ”

“그 막중한 임무 중에 왜 멀쩡한 잎사귀를 떼다가 그놈에게 줬냔 말이다! ”

“나는 구미호처럼 돈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커피값으로 대신 주려고 그런 겁니다······. ”

“아이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느냐! 신목잎은 말 그대로 신력이 깃들어 있다. 그걸 인간이 지니고 다니면 신계로 가려 하는 괴력난신들이 그냥 두겠느냐! ”

“다방 주인이 죽는 겁니까? 안되는 겁니다! 흐아아앙! ”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

“모른다. 승천하겠답시고 천년 넘게 기도만 올리는 미친 이무기도 있는 마당에 신계의 냄새가 나는 인간을 붙잡아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냔 말이다. ”

“당장 직원을 풀어 찾겠습니다. ”

“우리도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가서 얼른 찾아보자꾸나. 에잇! 어째 이놈을 다방에 앉히고서 매번 우리만 이리 뻔질나게 뛰어다니는 게야! ”


이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 나뭇잎 하나로 졸지에 인간이 신계까지 가버린 대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심지어 남들은 속세에 작은 미련까지 버리고 득도를 해야만 갈 수 있는 그곳에 차까지 몰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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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업식은 수라장 (1) +3 24.09.07 521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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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0 33 12쪽
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69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6 3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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