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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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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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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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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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DUMMY

검은색 블라인드가 빈틈없이 쳐진 20평 남짓한 회의실.


-삐. 삐. 삐.


이 평범한 회의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직원들이 손에 든 도청감지기로 바닥과 천장, 그리고 회의실 내부를 이리저리 훑었다.


“거, 매일 누가 엿듣는다고 그 난리더냐? 이미 내가 다 막아 놨으니 시답지 않은 짓은 그만하고 빨리 시작하거라. ”

“예, 어르신. ”


어느 틈에 들어온 것일까?


커다란 모니터 화면이 정면으로 보이는 상석에 여우 귀를 한 청년이 앉아 심드렁하게 말했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의 무례한 언행이 제법 자주 있었던 모양인지 감지기를 거두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동요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당산리 다방 건물의 실 소유주, 김진성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발표자가 작은 리모컨을 눌러 모니터에 김진성의 얼굴과 약력이 적힌 화면을 띄웠다.


“나이는 32세, 명선대학교 컴퓨터공학을 나와 현재 LTN그룹 모바일부서에 재직 중으로······. ”


그때였다.


“어이쿠, 늦었습니다. ”

“화면 가리지 말고 빨리 앉거라. 젊은 놈이 매번 제시간에 오는 꼴을 못 봤다. 그리 꽁꽁 싸매고 혼자 일 처리를 하면 아랫것들은 뭣 하러 뽑았느냐? ”

“예예, 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 이 청년이군요. 사진보다 실물이 낫습니다. ”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곁에 앉은 백마현 국정원장은 꾸지람이 길어질까 싶어 얼른 화면에 떠 있는 김진성으로 화제를 돌렸다.


“자네들도 알고 나도 아는 이런 자료 말고 빨리 조사해서 나온 것들로 넘어가지. ”

“네, 그럼 바로 다음 화면을 보시겠습니다. ”


- 삑.


“인터뷰 및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학창시절, 병 생활, 직장 모두 평범하게 보낸 것으로 파악됩니다. 직장 내부의 인사고과도 점수가 다소 높은 것을 제외하면 크게 눈에 띄는 사안이 없습니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119 신고 접수 건수입니다. ”


발표자의 타이밍에 맞춰 스피커에서 잡음이 심하게 섞인 통화내용이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119죠? 여기 강모빌딩 구내식당인데요. 가스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요. )


“2022년 방화 의심 용의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기 전까지 무려 스물세 건의 신고를 했고 모두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

“어르신,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안을 떴다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인데 고작 하는 일이 119에 신고라니요. ”

“해서 너도 우리가 띄워준 신안으로 주식이나 하지 그러냐? 녹봉에 수천 배는 벌 터인데. ”

“어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주머니를 찰 만큼 찼는데 굳이 그렇게 벌어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 자리에 있으면 차도 마음대로 못 바꿉니다. ”

“그거다. ”

“예? ”

“마고 할망구가 노망난 것도 아니고 멍청한 놈에게 날 때부터 신안을 띄워주겠느냐?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야. 신안을 그리 쓰면 안 되는 것을 말이야. 사리사욕을 탐하는 놈이 신안을 뜨면 세상천지가 인외마경일 게야. ”

“보기보다 소박한 친구라는 뜻이군요. 오백만 원도 그걸 확인하시려고 주신 겁니까? ”

“그랬겠느냐? 신안을 뜬 줄도 모르고 커피만 맛있게 먹고 모양새 빠지게 나왔구먼. ”


구미호는 지난 일에 자존심이 퍽 상했는지 ‘에잉’ 하는 추임새와 함께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네놈들도 행여나 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어설프게 이용하려 들면 저승에서 꽤 고단해질 게다. ”

“잊으셨습니까? 엊그제 어르신 등쌀에 못 이겨 계룡산에 다녀왔습니다. ”

“크흠. 아 그건 그놈이 하도 매몰차게 쫓아내길래 그런 게지! ”

“해서 기분이 좀 풀리셨습니까? ”

“당연하지. 고생깨나 할 게야. 너구리 놈이 어떤 놈이더냐? 거짓말도 통하지 않고 뭘 해달라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마고할멈조차 말리지 못하느니라. 끌끌. ”


‘그건 어르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


백마현 국정원장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쓰게 삼켰다.



***



-토닥토닥.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


오밤중에 일어나 지쳐 잠든 너구리의 등을 토닥이는 꼴이 퍽 우습다.


사실 긴가민가하긴 했다. 요괴건 뭐건 일단 커피를 마시기에 조금 무리가 있는 동물이지 않은가?


아니, 커피를 처음 마셔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말렸어야 했다.


나도 어린 시절 어른들이 마시던 커피를 몰래 마시고 아침까지 뜬눈으로 보냈던 날이 뒤늦게 떠올랐으니 말이다.


다행히 펑펑 울던 너구리는 연거푸 마시게 한 뜨끈한 보리차에 겨우 잠이 들었다.


등을 토닥여주는 손을 잠시라도 멈추면 끙끙 앓으며 뒤척이기에 정작 내가 뜬눈으로 밤을 세우게 됐지만.


-짹짹


때마침 창틀에 참새 몇 마리가 날아와 한참을 저희끼리 지저귀었다.


시골의 아침 알람치곤 제법 신사적이다.


나는 너구리에게서 슬쩍 손을 떼고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당장 이상이 없어 보인다 해도 이상 유무는 내가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애완동물 관련 게시판에 물어본 답이 그러하기도 했고.



【너구리가 커피를 마셔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 제가 타 놓은 커피를 잠깐 한눈판 사이에 너구리가 마셔버렸습니다.

열이나 구토는 없었고 계속 안자고 울다가 이제 겨우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병원 문 여는 대로 가긴 할 건데 심각한 거면 24시간 병원 가보려고요. 』

┗ ㅇㅇ : 다시 타야지. 바보냐?

┗ ㅇㅇ : 하루만 기다리면 루왁커피 개꿀. ㅋㅋㅋ

┗ ㅇㅇ : 새벽이라 또라이들 밖에 없네. 물 많이 먹이고 아침에 바로 동물 병원 가봐. 잡식이니까 커피믹스면 막 그렇게 위급하진 않을 거야. 그런데 그거 키우는 거 불법 아냐?

┗ (작성자) : 답변 감사합니다.



정확히는 너구리의 모양새를 한 무언가지만 일단 최대한 두루뭉술한 질문으로 답변을 받아낸 결과다.


“흐음. 여기가 어디인 겁니까? ”

“일어났어? ”


옷을 갈아입는 사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 너구리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 무방비한 모습에 하마터면 앞으로의 계획을 이실직고할 뻔했다.


다방을 들어오면서도 그리 울어댔는데 병원을 가자하면 순순히 따라갈 리가 없지 않은가?


“맞다! 잠이 안 와서 온 겁니다! 덕분에 살았던 겁니다. ”

“사례는 됐어. ”

“하지만······. ”


나는 또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려던 너구리를 말렸다.


“그 대신 같이 아침밥 먹지 않을래? 혼자서 먹으러 가면 심심하거든. ”

“아침밥인 겁니까? ”


- 꼬르륵.


밥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너구리의 배에서 우렁찬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아마 잠이 안 오는 시점부터 한 끼도 먹지 못했을 터.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혹시, 돈까스 먹어봤어? ”

“안 먹어 본 겁니다. 인간의 밥은 산에 잘 없는 겁니다. ”

“그래? 자, 이거 봐봐. ”


나는 얼른 너튜브 동영상을 하나 검색해서 틀어주었다.


“맛있겠지?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거야. ”

“호오오오오! ”


걸려들었다.


돈까스는 아이들에게 내린 시험의 주문이다.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치과에 갈 때도.


사내아이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야만 했던 곳에 갈 때도······.


덫인 줄 알면서도 미끼에 취해 순순히 어망으로 들어가는 물고기처럼 그렇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가게 만드는 주문이 바로 돈까스다.


심지어 돈까스를 실제로 먹는 빈도가 꽤 높았기에 매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병원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도망치기엔 너무 늦은 그 순간 말이다.



이번엔 더욱 쉬웠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돈까스는 너튜브의 고화질 동영상으로 만드는 과정까지 너무나 자세하게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푸드포르노라는 말이 괜한 호들갑이 아니었다. 차에 순순히 올라 안전벨트를 하는 순간까지도 너구리는 두 손으로 꼭 잡은 휴대폰 화면에서 정신이 팔려있었다.


“흠흠∼ 돈까스는 언제쯤 먹을 수 있는 겁니까! ”

“차 타고 금방이야. 참, 내가 말한 거 기억하지? ”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밖에선 인간 말고 너구리처럼! ”

“그래. 사람으로 있으면 돈까스를 못 먹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해. ”

“조심, 또 조심하는 겁니다. ”


사실 바지만 벗겨놔도 알아차릴 사람이 전무 하겠지만, 만에 하나가 병원에 도착해서 말이라도 했다간 큰 낭패였기에 나름의 보험을 들었다.


너구리로 변해야 돈까스를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 것은 미안하지만 이미 돈까스대신 병원에 가는 마당이다.


원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는 법이고 죄책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에 막무가내로 커피를 달라 하지 않았다면 안 가도 될 병원이니까.



***



10분 정도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대형마트 안에 있는 작은 동물병원.


그나마 이 시골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리뷰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생생동물병원】



조금 이상한 네이밍센스만 뺀다면 말이다.


“일찍 오셨네요? 예약하신 분인가요? ”

“아니요. 급하게 오느라 예약은 따로 하지 못했습니다. ”

“어머! 그럼 어서 들어오세요! ”


오픈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던 탓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건만 금방 불이 켜진 병원 안에서 수의사가 얼른 들어오라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컵라면 상자를 들고 병원으로 한발짝 들어서는 찰나,


- 파르르르.


상자 안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제야 깨달았구나. 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나 멀리 와버렸단다.


구미호 청년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도술을 부리지 못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순간이동은커녕 사람으로 변하지도 못하니까 말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꼼짝없이 너구리 행세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너구리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제가 탄 커피믹스를 몰래 마셔버렸는데 혹시나 문제가 될까 싶어서요. ”

“호호. 원래 너구리과 애들이 식탐이 좀 있어요. 흐음. 물진 않죠? ”

“네. 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건 처음이라서요. 제가 잡고 있을까요? ”

“아뇨. 소미야! 장갑 좀 가져와! ”


수의사는 직원이 가져온 두툼한 벙어리장갑을 끼고 능숙하게 너구리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눈을 까뒤집고 청진기를 대보거나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의사와 환자 같아 보였다.


“별 이상은 없어 보이네요. 건강해요. ”

“감사합니다. ”

“그런데 따로 정기검진은 하시나요?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죠? ”

“잘 모르겠습니다. 집주변에 맴도는 녀석이 마셔버려 곧장 데리고 온 거라······. ”


야생동물을 키우는 건 엄연히 불법이다. 그 때문에 거짓으로 둘러대기가 민망해져 말끝이 자꾸만 흐려졌다.


지금껏 한 대답 중에 유일한 진실은 커피를 마셨다는 정도다. 나이는 3천200살, 주운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야생동물도 아니다.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의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어머! 안돼요! 야생동물은 병이 많아서 꼭 검사하셔야 해요! 그리고 오늘 다른 건 몰라도 심장사상충이랑 광견병 예방접종은 꼭 하고 가세요. 아셨죠? ”

“네? 예방접종이요? ”


큰일 났다. 주사는 계획에 없었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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