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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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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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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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DUMMY

“흐어어어엉! 속인 겁니다! 돈까스를 먹는다 했는데 속인 겁니다! ”

“미안해. 그래도 돈까스는 먹잖아. ”

“흐어어어엉! 아직 안 먹은 겁니다! ”

“곧 먹는다고 곧. 금방 해줄게. ”


돌아오는 길에 서럽게 우는 너구리를 달래느라 어떻게 운전해서 왔는지도 모를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침에 문을 여는 돈까스집이 없어 부랴부랴 마트에서 냉장 돈까스와 식용유를 사 오기까지 했다.


울고 싶은 사람은 어젯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침부터 돈까스를 튀기게 된 나다.


“자, 만드는 동안 앉아서 이거 보고 있어. ”


나는 훌쩍이는 너구리를 창가 자리에 앉혀 놓고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때맞춰 들어오는 햇빛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은 너구리는 어느새 그렁그렁했던 눈물도 잊고 동영상에 푹 빠져버렸다.


-부스럭 부스럭.


비닐에서 급하게 골라온 돈까스 재료가 하나 둘 주방 스테이지로 올라온다.


아침이라 할인 딱지도 붙지 못한 생등심 돈까스 한 팩,

양배추와 드레싱과 식용유,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큰마음 먹고 고른 고급 돈까스 소스.


마트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되는대로 집어온 것치고는 준수한 수확이다.


돈까스 집들이 영업을 시작하는 점심까지 기다렸다가 배달을 시킬까 잠시 고민을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되지 않을 일이다. 시라는 행정구역이 무색할 정도로 외진 이곳까지 배달을 오는 음식점은 족발집이 유일했으니까.


게다가 저리 서럽게 울어댔는데 또다시 점심시간까지 기다려달라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월차까지 내고 아침부터 팔자에도 없는 요리를 하게 생긴 것이다.


물론 나는 아주 모범적인 자취생이라 요리는 큰 관심이 없었다. 가스 불로 기껏해야 라면이나 햄 따위를 구웠고 그마저도 설거지가 귀찮아 어지간해선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생활을 고집했다.


하지만 괜찮다.


세상이 좋아져서 돈까스 정도는 너튜브 영상을 보면 금방······. 아!


(오늘은 바로 특대왕돈까스 먹방~ 바로 시작해보겠습니다이~ )


깜빡했다.


이미 너튜브 영상을 볼 내 폰은 이미 너구리의 심신을 진정시키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을.


“다 된 겁니까? ”

“아니, 같이 만들면 더 빨리 되는데 좀 도와주지 않을래? 어때? ”

“그런데 난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겁니다······. ”

“같이 하니까 괜찮아. ”

“그럼 도와주는 겁니다! ”


- 톡.


의자에서 달랑이던 너구리의 다리가 바닥에 ‘톡’하고 닿았다.


“여기 화면에 나오는 대로 따라 할 거야. 그러니까 잘 보이게 들고 있어 주면 돼. 할 수 있지? ”

“맡겨 주는 겁니다! ”


나는 자연스럽게 너튜브 영상을 돈까스 요리로 바꾼 다음 다시 쥐여주었다.


(돈까스의 재료부터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우선은 식용유와 돈까스용 등심······. )


“이러면 잘 보이는 겁니다! ”

“그러네. ”


마치 벌을 서는 것처럼 힘껏 앞발을 위로 올린 모습이 퍽 귀여워 나도 모르게 머리를 몇 번 쓰다듬은 뒤에야 우리는 조금 늦어버린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식용유는 많이 넣으라 한 겁니다! ”

“그럼 아끼지 말고 부어볼까? ”


조수의 조언은 절대적이다.


잠시 냄비를 꺼내고 돈까스의 비닐을 벗기는 자잘한 일을 하는 사이 놓친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주는 덕분에 큰 실수를 막았다.


대충 기름을 뿌려 구우면 안 된다. 속여서 주사까지 맞았는데 그런 평범한 돈까스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터.


오늘 먹고 다시 쓰이지 않을 기름이 그렇게 냄비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적당한 열기가 손등으로 느껴질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냄비 안으로 패티를 흘려 넣었다.


- 자르르르.


“호오오오! 아까 보던 장면입니다! ”

“위험하니까 너무 가까이 가진 마. ”


고기가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에 취해 자꾸만 냄비 곁으로 가는 너구리를 한 손으로 막고 패티를 이리저리 뒤집길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노릇한 돈까스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



“어르신 이제 곧 도착합니다. ”

“알고 있느니라. ”


혹시나 눈을 감고 있는 어르신이 잠들까 싶어 슬쩍 흘린 말에 구미호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다방 주인이 정말 항복하겠습니까? 귀찮아서 다시 건물을 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


‘그렇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지. ’


대한민국 국정원장인 자신이 어르신이라 깍듯하게 모시는 이 구미호는 삼국시대를 넘어 아득한 세월을 살아온 신적인 존재였다.


그것도 망조가 든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몇 번이나 신묘한 힘을 빌려주었던 고마운 신이다.


감히 그런 어르신이 세운 작전에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낼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의 우려대로 정말 다방 주인이 집을 팔아버린다면 그 커피 맛이 아니라는 억지에 기약 없는 괴롭힘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어지간한 관료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는 자신이나, 그 밑에 직원들이나 말이다.


그리고 멀찍히 차를 세워 확인한 다방 안 상황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오래된 다방은 나름 오픈주방인 덕에 다방 주인과 너구리가 무언가 즐겁게 만드는 모습이 창문에 비쳤다. 이는 구미호가 호언장담했던 시나리오와 조금도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방 주인이 그다지 곤란해 보이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어르신 작전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

“뭣이? 어디보자! ”

“어르신은 이런 게 없어도 잘 보이시지 않습니까? ”

“신안을 뜬 놈이 사는 곳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 한 줄 아느냐? ”


백마현이 품에서 꺼낸 쌍안경을 냉큼 뺏어 든 구미호가 조리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다방 안을 지켜보다 이내 슬며시 떨구었다.


바짝 눈앞에 당겨 본 쌍안경 때문일까? 아니면 예까지 오며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탓일까?


구미호의 눈앞이 흐려졌다.


그리고 흐려진 시선에 아득한 세월 속 추억 하나가 튀어나왔다.



***



어스름한 새벽 해가 뜨는 산골.


누가 살까 싶은 이 험준한 산세에도 작은 초가집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초가집의 얼기설기 엮어놓은 지붕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름은 끼니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 끼이익.


낡은 경첩이 우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나던 부엌에서 젊은 아낙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곤 누군가를 찾는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손을 모아 큰소리로 외쳤다.


“금아! 금아! 어휴, 밥때가 됐는데 아침부터 어딜 간 게야? 금아! ”


산골짜기를 따라 메아리치던 아낙의 외침이 얼마나 깊게 타고 들어갔을까?


이내 깊은 숲 사이에서 앳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어머니! ”


금이라 불린 아이인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라기엔 무언가 이상했다.


형편이 어려워 펑퍼짐하게 몸만 가린 옷가지를 입었으나 품이 맞지 않는 탓에 드러난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에는 금빛 털이 빼곡하게 나 있었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어설프게 옷을 입은 꼴.


그러나 금이라 불린 아이는 구태여 네발이 아닌 두 발로 서서 위태롭게 산기슭을 따라 걸었다. 자기 몸집만 한 물통을 위태롭게 들고서.


“다친다 녀석아! 물통은 내려놓고 오거라! ”

“괜찮아요. 이제··· 끄응, 다 왔어요. ”


- 우당탕.


아이는 몇 걸음을 앞에 두고 결국 넘어졌다.


“어휴, 다친다니깐. 홀딱 젖었네. ”

“으앙! 다 왔는데! ”


냇가에서 기껏 길러온 물이 모두 바닥에 쏟아졌다는 서러움에 꺼이꺼이 우는 아이를 아낙은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뚝! ”

“뚝······. ”

“엄마가 뭐라고 했지? ”

“사내는, 훌쩍. 울면 안 돼요. ”

“그래, 이제 들어갈까? 아직 추우니까 아랫목에 이불 꼭 뒤집어쓰고 있거라. ”


치맛자락으로 아이의 몸을 대충 닦은 아낙의 말에 아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또 길러 가게? 아서려무나. ”


아낙이 아이의 엉덩이를 툭툭치며 방으로 보냈다. 하지만 아이는 몸이 젖어 콧물이 주르륵 흐르는 와중에도 아낙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나도 도울래요! 보리밥도 하고, 나물도 무치고, 또······. ”

“알겠다. 알겠어. 어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셀까? ”

“엄마! 헤헤헤. ”


닮지 않았다.


여느 고을을 빨래터를 지나도 수십은 마주칠 법한 평범한 아낙과 금빛 털로 덮인, 머리 위에 뾰족한 귀와 주둥이가 길게 나온 아이는 조금도 피가 이어지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웃음만은 동경을 비춘 것처럼 닮아있었다.


아낙은 아이의 머리를 몇번 쓰다듬고는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곁에는 쓰이지도 않을 국자며, 부지깽이를 잔뜩 든 아이를 꼭 붙인 채.



***



“어르신? ”

“응? ”


구미호는 자신을 재차 부르는 백마현 국정원장의 물음에 희미하게 감았던 눈을 떴다.


“쯧. 오래 살면 죽어야 하는데 꼭 이렇게 옛날 일이 튀어 나온 다니까. ”

“어찌하시겠습니까? ”


백마현은 으레 물었어야 할 ‘어떤 일 말씀입니까?’라는 질문 하나를 건너뛰었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않던 어르신이 눈가에 선명한 눈물 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자신이 어르신을 모시며 한번도 보지 못했던 눈물이었다.


“들어가자. 저 너구리 놈한테도 저리 음식을 해주는데 커피 한 잔 정도는 타 주겠지. 너도 같이 가자꾸나. 오늘은 조금 오래 있을 테니까. ”

“저는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

“에끼 이놈아! 언제는 통화랑 인터넷으로 다 되는 일이라며 출근도 잘 안 하는 놈이 이럴 때만 바쁘더냐? 잔말 말고 따라오거라. ”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차에서 내려 한창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다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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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2 24.09.05 513 33 10쪽
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0 33 12쪽
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69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6 3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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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일탈 +6 24.08.28 850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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