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48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6,310
추천수 :
386
글자수 :
61,180

작성
24.09.12 18:34
조회
255
추천
25
글자
10쪽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3)

DUMMY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에서 가장 책이 많은 곳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도서관에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린 시절 어쩌다 몇 번 가본 기억이 전부였다.


“이, 이게 전부 훈민정음으로 된 서책이란 말이더냐? ”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까? ”


이미 내 말은 듣고 계시지 않았다.


도서관 메인 홀에 서서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으셨다.


조선 시대를 살아보질 않았으니 임금의,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진 못한다.


다만, 만백성의 어버이라는 임금이라 했다.


부모님께 하는 가장 큰 효도는 당연히 자식이 잘 사는 것이지 않은가?


그래서 도서관으로 왔다.


그대의 자식들이 이렇게 잘살고 있음을, 오직 백성을 위해 밤낮없이 들였던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내 계획은 제법 잘 먹힌 모양이다.


“나비가. 날고. 있어요. ”

“이건? ”

“다람쥐가... 다람쥐가.... 나무에. 올라가요. ”

“옳지! 잘했어! 우리 승호 이제 책도 잘 읽네! ”


“보이느냐? 저 조막만 한 아이가 글을 읽고 있는 것이. ”

“보통 저 나이가 되면 글을 읽고 쓰게 됩니다. 전하 덕분입니다. ”

“허허. 그랬구나. 그랬어. ”


나는 감히 지금 세종대왕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임금이 사라지고 나라가 바뀌어도 백성들은 하나하나가 선비가 되어 글을 읽고 나랏일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분에 관계 없이 누구나 와서 빌려볼 수 있다 했느냐? ”

“예, 돈도 들지 않습니다. ”


전하는 곧장 눈에 보이는 책 몇 권을 뽑아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전하께서 만드셨던 글과 조금 달라졌습니다. 읽으실 수 있으신지요. ”

“신안이 있으니 당연하지 않느냐? 그리고 큰 줄기는 변치 않아 뜻이 통하니 걱정하지 말거라. ”


키만큼 쌓인 책을 다 읽고 가실진 모르겠지만 기약이 없는 독서다.


나도 기다리길 포기하고 적당히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을 뽑아 곁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커헉! ”

“전하? 왜 그러십니까? ”


전하는 뒷목을 잡은 채 마치 먹어선 안 될 걸 먹은 사람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이셨다.


“이, 이게 무엇이냐! ”

“예? ”


나는 전하가 가리키는 책을 펼쳐보았다.



【그놈은 늑대의 도레미였다. 】

『겨울방학이 끝나간다..-_-+

다들 방학이라 칭구들끠리 스키장에 가눈데 난 이게 뭐야!!!!

인젠 할 게임도 없당 ㅠ0ㅠ

....

그래도 접속은 해야쥐! 출첵보상이 있으니깡+_+)/

[T없이맑은i님이 접속하셨습니다.]

늑대꽃미남 : 야, 미쳤냐? 왜이렇게 늦게 들어와?

헉! ㅇ_ㅇ

늑대꽃미남은 우리학교 킹카순위표에 늘 1등을 먹는 뇨속의 아이디다!

이늠은 왜 맨날 접속하면 나만 못살게 구는즤...T-T

T없이맑은i : 왜 미친넘아! 늦게들어올수도 있징!

(실제로 보면 찍소리도 못함 ㅡ,.ㅡ;;)

늑대꽃미남 : 됐다 사냥이나 가자. -_-

T없이맑은i : 넌 맨날 나랑만 가냐?

늑대꽃미남 : 시끄러 -_-^

전교회장까지 도맡아 하는 늠이라 주위에 칭구, 선배, 후배까지 수두둑하겠구만 왜 게임에선 왕따처럼 나랑만 노는건지! 후!

할수 없지 이 누님이 오늘도 이 불쌍한늠을 구제한닷!--)/

.... 』



아. 이 많은 책 중에 하필 골라도 이걸 고르셨네.


“전하, 모름지기 사람은 끊임없이 꿈틀대고 변화하는 것이 본질이니. 그 본질을 거부하지 말라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것이 그 변화입니다······. ”

“아니다! 아니야! 이건 변화가 아니라 이건···! ”


모든 자식이 장성하여 금의환향을 할 순 없다. 때론 이렇게 부모가 감당키 어려운 자식도 나오는 법이다.



***



도서관에 들른 뒤, 우리는 가까운 중고서점에서 양손 가득 책을 사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회원가입을 해도 한 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은 기껏해야 5권, 전하가 책을 읽는 속도라면 며칠 가지도 않을 것 같아 아예 넉넉하게 사버린 것이다. 마도서(?)를 읽은 후유증을 빨리 다른 책으로 덮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책 무게로 저릿한 손으로 힘들게 집 앞까지 와 열쇠를 찾았건만 다방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침입한 범인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두 신수가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었으니.


“다들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

“뭐하긴 네놈 기다렸지. ”

“열쇠도 안 드렸는데 매번 이리 그냥 들어오시면 주거침입입니다. ”

“네놈 집은 저위에 2층인데 주거침입은 무슨, 잔말 말고 커피나 한잔 타오거라. ”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수익적인 측면에서 엄밀히 따지자면 본업보다 이 다방이 더 본업에 가깝다는 사실을.


“방금 들어왔습니다. 숨 좀 돌리고 타드리겠습니다. ”

“물은 이미 올려 놓은 겁니다! ”

“그래 눈물 나게 고맙네. ”

“응? 그런데 이놈은 또 왜 이리 정신이 나가 있어? ”


전하께서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본 구미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별일 아닙니다. 도서관에 갔다가 못 볼 걸 보셔서 그렇습니다. ”

“쯧. 그리 삼라만상에 대해 공부하더니 어째 직접 본 것은 다른가 보구나. ”

“그 정도가 아니었느니라······. ”

“끌끌. 임금이 암행을 나가도 신하들이 앞길로 먼저 달려가 거지부터 치우는 마당에 진짜 세상은 처음이지않더냐? 놀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

“아니 오늘 전하께서 보신 건 그런 게 아니라··· ”

“응? 허면? ”

“아닙니다. 커피를 타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


지금 그 일을 계속 언급해봤자 전하의 트라우마만 더 깊어질 것 같아 나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찬장에 넣어두었던 레시피 공책을 펼쳤다.


커피를 못 마시는 손님이 무려 둘, 이제 새로운 메뉴를 대접해야 할 차례다.


『우유

수까락으로 가루 셋 +꿀 반수까락 +물 』


눈대중으로 훑었던 메뉴 중에 오늘 대접하기로 한 음료는 바로 이 우유.


기껏해야 데워서 내면 그만인 우유에 무슨 레시피씩이나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 눈여겨본 메뉴다.


놀랍게도 다방에서 만드는 우유에는 가루분말이 들어간다! 짐작건대 자판기에서 먹던 우유와 그 궤가 같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단맛을 한참 더 끌어올릴 꿀까지 들어가니 도저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전하와 너구리에게 안성맞춤인 메뉴다.


-찌지직.


과당전지분유이라 적힌 포대를 뜯자 향긋하고 고소한 분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리고 과하게 두툼한 유리컵에 넉넉하게 들어간 분유와 꿀이 더해지고 적당히 데워진 물에 한데 섞인다.


“킁킁. 뭘 만드는 게냐? ”

“커피 냄새가 아닌 겁니다! ”

“우윱니다. 이걸로 드릴까요? ”


어느 틈엔가 주방에 들어와 고개를 쭉 빼고 우유를 구경하던 구미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민이 꽤 되는 모양이다.


“한잔 더 드릴 테니까 커피랑 두잔 드세요. ”

“끌끌. 묘안이구나. ”


어차피 커피값은 차고 넘치도록 받았으니 몇 잔을 대접해도 상관없다. 너무 귀찮게 자주 시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원수보다 조금 많은 컵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한데 모여 앉았다.


“이거 마셔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 ”

“그래, 이건 커피랑 달라서 괜찮을 거야. ”

“호오오오! ”

“고맙구나. ”

“전하의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

“달아서 맛이 좋구나. ”

“흥, 우리에겐 생전 안 하던 예의를 잘도 차리는구나. ”

“세종대왕님이십니다. 한국의 운명을 바꾸신 분이지 않습니까? 수라상을 차려도 모자랍니다. ”

“우리도 그랬다! 천 년 전, 한 주술사 놈이 저승의 문을 강제로 열었을 때도 얼마나 고생을 했다고! ”

“천 년 전에 한 일을 가지고 생색을 내면 제가 알겠습니까? ”

“그럼 오백 년 전, 왜란 때 명나라 주가 놈을 꿈으로 꿰어 조선을 도운 건 어떠냐? 그것도 나와 이놈이 한 일이니라. ”

“그때는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칠 작정이라 굳이 꿈이 아니라도 도왔을 겁니다. ”

“에잇! 네놈이 몰라서 그렇다! 주가 놈은 조선에 왜란이 터진 줄도 모르고 향락에 빠져 지낼 만큼 암군이었느니라! ”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가 식고 있으니 빨리 드세요. ”

“아니 그래도 이놈이! ”


왁자지껄한 밤이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구나. ’


침실로 돌아온 이도는 오늘 있었던 일이 떠올라 자꾸만 미소가 지어졌다.


‘마고할망께 빌린 동경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정말 백성들이 모두 글을 즐겨 읽는다니. 허허. ’


놀라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모두 선비와 학자가 되었어. 산처럼 쌓인 책들은 저마다 저자가 다르니 그자들만 해도 조선 팔도를 가득 채울지도 모르겠구나. ’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저 백성들이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할까 싶어 만든 글자로 모두가 선비가 되어 책을 쓰고 읽을 줄이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진성이라 했던가? 신안을 떴다면 응당 천기를 읽고 앞일을 도모해야 하건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데 쓰고 있었구나. 허허. 갸륵한지고. ’


고작 서른이나 되었을까 싶은 짧은 생을 산 주제에 천계에 가서도 학문에 정진했던 자신을 일깨워준 놀라운 아이였다.


지금껏 바라는 것은 오직 백성의 안위였건만 진성은 그다음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태평성대를 이룬 다음 자신이 하고 싶은 꿈.


그 꿈은 천계에서조차 떠올리지 못한 이도, 자신만의 꿈이었다.


“마고할망께서 하신 말씀이 맞았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지나도 하고 싶은 것이 더 생길 줄은 저도 몰랐지 뭡니까? ”


그날, 조선의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이 머무는 거처에는 새벽까지 먹 가는 소리와 종이에 붓이 스치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오늘의 레시피

가루우유 3 숟가락 + 꿀 반 숟가락 + 물 넉넉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가 중단 되는 겁니다... +1 24.09.14 119 0 -
13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4) +4 24.09.13 190 21 10쪽
»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3) +4 24.09.12 256 25 10쪽
11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2) +4 24.09.11 315 27 10쪽
10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1) +6 24.09.10 377 28 11쪽
9 개업식은 수라장 (3) +3 24.09.09 388 29 10쪽
8 개업식은 수라장 (2) +3 24.09.08 436 28 10쪽
7 개업식은 수라장 (1) +3 24.09.07 521 33 11쪽
6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2 24.09.05 513 33 10쪽
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0 33 12쪽
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69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6 30 10쪽
2 마수걸이 +6 24.08.29 707 33 10쪽
1 작은 일탈 +6 24.08.28 850 3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