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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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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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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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1)

DUMMY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곳이 낮에도 차가 몇 대 다니지 않는 외진 시골길이라는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나마 대신 수습해줄 수 있는 존재가 둘씩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눈 깜빡 한 사이에 자라난 신목 주위에는 묘목을 관리하는 인부로 변장한 국정원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측정하는 중이다.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세 명도 그런 신목을 보며 저마다의 감상평을 내뱉었다.


“호오오오! 정말 계룡산에 있는 신목과 똑같은 겁니다! ”

“인제 더 이상 놀라고 싶지도 않구나. ”

“저도 그렇습니다. ”

“신목잎으로 속까지 뒤틀린 요괴들이 꼬일까 싶어 걱정했더니 아주 여기 천계로 가는 길이 있다 광고를 하는 구나. 쯧. ”

“뭔가 죄송하네요. ”

“그래도 다행히 일반인의 눈에는 그냥 평범한 도토리나무로 보입니다. 방사능 수치나 다른 유해물질 수치도 측정되지 않습니다. ”

“그런 상서러운 것을 뿜어내면 그게 신목이겠느냐? 어지간하면 저것들도 헛짓거리 그만하고 신목 주변에 좀 앉아 쉬게 하거라. 모르긴 몰라도 지친 영혼과 육신이 제법 정화될 게다. 요근래 이놈 때문에 모두 생고생이지 않느냐?”

“하핫. 그래야겠군요. ”


가시방석이다.


이 지경인 와중에 변명을 하기도 뭣하다.


우리 집 뒷마당에 신목이 자라게 된 데에는 정황상 마고신의 개입이 있었던 것 같다고 고자질을 할 순 없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심증인 데다 신을 팔아도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이할꼬. ”

“그런데 딱히 문제가 될 게 있겠습니까? 어차피 어지간한 요괴들은 구미호 어르신이 있으면 얼씬도 못 할 테니까요. ”

“해서 나더러 지금 이곳에 지박령이라도 되란 말이더냐? 고얀 놈 같으니. 나도 나랏일 하는 이놈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일이 많으니라. ”

“계룡산은 자주 비우지 않습니까? ”

“거긴 군인들이 대신 지키고 있어 잠깐은 비워도 괜찮은 겁니다! 도력이 있는 인간들도 와서 기도를 올리니 신목 주위에는 나나 구미호가 아니면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겁니다! ”

“골치 아프게 됐군요. ”

“이제사? ”

“저는 세 분이 어떻게든 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


강을 건너는 게임과 같다.


너구리는 신목을 지켜야 하고 구미호도 나름 바쁜 모양이다. 굳이 두 번째 신목을 지키고자 한다면 너구리의 말대로 집에 군인과 무당들이 깔려야 한다.


외통수.


결국, 이 신목을 지키려면 신석으로 만든 반지를 낀 내가 있어야 했다.


구미호의 말대로 꼼짝없이 신목의 지박령이 되게 생긴 것이다.


그럴 순 없다. 내일이면 휴가도 끝나고 회사로 출근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



같은 시각, 천계의 한 이름 모를 들판에는 진성의 타이어자국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이가 있었다.


‘배움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그런 게야. ’


젊은 사내는 마고신의 말을 수백, 아니 수천 번은 되뇔 만큼 번뇌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책을 읽기 시작하면 종이가 너덜너덜해져 낱장으로 찢길 정도로 반복해 읽었다.


논어, 맹자를 비롯한 사서삼경(四書三經)은 물론 깨닫고 배울 것이 있다면 법전과 낙관도 찍히지 않은 출처 불명의 잡서도 가리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글공부를 꽤 했단 것들이 개똥철학으로 아무렇게나 끄적인 내용을 확인하려 직접 독초를 먹고 고관대작들의 무관심에 진절머리가 나 똥바구니를 들고 직접 비료를 뿌리기까지 했다. .


맹목적인 배움이 아닌 오직 민본애민(民本愛民)으로 행한 기행들로 인해 천계에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끝없는 수련으로 득도를 이룬 도인들에게는 번뇌가 없었으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곳에 와 세상 만물의 존재까지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걱정과 염려는 젊은 사내의 본질과도 같았다.


천계에 다다라 온몸을 옥죄던 병환이 낫고 육신이 다시 젊어졌으나 그 번뇌까지 사라지게 하진 못한 것이다.


‘그자가 걱정이다. 주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자들이 올바른 길로 가기란 득도보다 어려운 법이니. 작금의 조선이 있기까지 이미 그 이름조차 여러 번 잃지 않았는가? ’


그렇게 사내가 들판에 눌린 바퀴 자국을 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있던 순간,


- 화아아아악.


눈앞에 거대한 푸른빛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문이다. 마고할망의 말씀대로 현세로 내려가는 문이 생겨났구나! ’


사내는 고민하지 않았다.


천계에 오게 된 연유도 영생과 득도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마고신의 허락이 있었기에 내딛는 발에는 망설임이 담기지 않았다.


‘정 궁금하면 한번 내려가보거라. 아주 재미있을 게야. 홀홀. ’

“예, 마고할망이시어.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습니다. 현세로 내려가 제 부족한 힘으로나마 그자를 바른길로 인도하겠습니다. ”


이는 겸양이었다.


천계에 들어온 그 누구도 가진 능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한명 한명 모두 신이라 추앙받는 존재들이었으니.



***



“파내죠. ”

“뭐라? ”

“파내자 했습니다. 파내서 계룡산 옆으로 옮겨야겠습니다. ”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신목을 파내자는 것이 정녕 천계까지 다녀온 네놈 입에서 나올 말이더냐? ”

“어차피 계룡산에 하나가 더 있지 않습니까. 아무래 생각해봐도 이건 계륵 같은 겁니다. 요괴들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하셨는데 그런 후환을 계속 여기 남겨둘 이유가 없습니다. ”


어찌 보면 계륵보다 더 심했다.


막말로 너구리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감당키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하물며 그에 버금가는 요괴가 신목을 보고 올지도 모른다 했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악몽이다.


마고신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굳이 그런 신목이 우리 집 뒷마당에 있을 필요는 없다. 아니, 있어선 안 된다.


“그러다 잘못되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

“설마 신목인데 파낸다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얼른 계룡산으로 들고 가 다시 심으면 되지 않을까요? 정 불안하면 파서 바로 요 앞까지만 한번 옮겨 보시죠. 중간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멈추면 됩니다. ”


시도해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 나무 하나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사달과 저울질 하자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구나. 신목을 파내는 꼴을 볼 줄이야. ”

“해보는 겁니다! ”


허락 아닌 허락.


두 신수가 동의했으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 팍. 팍.


국정원 직원들이 변장 용도로 들고 온 삽과 곡괭이가 조심스럽게 신목의 주변을 따라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 땅을 국정원 직원들이 모두 파낸 뒤, 가장 중요한 바닥과 이어진 땅을 파는 작업은 나와 구미호, 그리고 너구리가 맡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모두 삽에 흙을 한가득 퍼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여차하면 후다닥 다시 묻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신목이 잘못되면 누군가 혼나는 겁니다. ”

“응? 당연히 말을 꺼낸 이놈이겠지. ”

“연대 책임입니다. 연대 책임. 결정은 같이해놓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

“그럼 나도 혼나는 겁니까? 싫은 겁니다! ”

“마고신께서는 인자하셔서 괜찮을 테니 걱정마. ”

“이게 어디 인자함으로 넘어갈 문제더냐? 신목을 파내는 꼴을 보면 성불한 부처도 몽둥이를 들고 쫓아올 게다. ”

“예. 그때가 되면 제가 두 분 대신 부처님께 맞겠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좀 파주세요. 어째 저 혼자만 일하는 것 같습니다. ”

“내가 제대로 파보는 겁니다! 이야아아압! ”

“어어, 조심하거라! 조심! ”

“잠깐만! ”


앞발로 부지런히 땅을 파던 너구리가 내 말에 의욕이 샘솟았는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다급히 말리는 우리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너구리는 그대로 신목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커다란 구덩이를 남기고서.


그리고 그 구덩이는 당연하게도 신목을 떠받치는 흙이 있던 자리였다.


설 자리(?)를 잃은 신목은 제아무리 신성하다 해도 결국 물리법칙을 이겨내지 못했다.


- 쿠우우웅.


“애구구, 너무 깊게 판 겁니다. ”

“이··· 이··· 망할 너구리 놈이! ”

“으아악! 왜 또 때리는 겁니까! ”

“몰라서 묻느냐! 저걸 이제 어쩔게야! ”

“어? 신목이 넘어가 있는 겁니다······. ”


망했다.


신목을 쓰러뜨렸다. 게다가 넘어간 신목에게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한 푸른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일단 다시 일으켜야겠습니다! 빨리요! ”


말은 다급하게 했으나 미리 대기시킨 포크레인에 줄을 걸고 세우기엔 시간이 한참 모자랐다.


“에잇, 안 되겠다! 주변에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

“예, 어르신! ”

“다들 비키거라! ”


신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이 점점 약해지는 걸 본 구미호가 모두를 물렸다.


뭘 하려고 그러시지?


모두가 신목에서 멀찍이 떨어진 찰나,


- 우우우웅.


20살이 갓넘은 미청년에서 바람이 한번 일고는 진짜 구미호가 눈앞에 나타났다. 덩치가 덤프트럭만 한.


“지금입니다! 빨리 땅을 메꿔야 합니다! ”


갑자기 나타난 구미호를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나는 다급히 외쳤다.


-탁탁. 깡.


“응애! ”


깡? 응애?


그렇게 다시 일으킨 신목 주변의 땅을 삽으로 다지다 흙 속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아까 신목이 쓰러졌던 자리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땅을 파자 그 안에는 이제 젖이나 겨우 뗐을 것 같은 아이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삽에 맞아 생긴 이마의 혹을 문지르며 서럽게 우는 아이.


우리는 일순간 사고가 정지되었다.


그리고 상황을 가장 먼저 그럴싸하게 추리한 사람은 바로 너구리였다.


“신목이 새끼를 낳은 겁니다! ”

“제발 미친 소리 좀 그만하거라. 나무가 어찌 애를 낳는단 말이냐? ”

“그럼 이건 뭐겠습니까? ”

“그야······. ”


구미호도 답하지 못했다.


쓰러진 신목을 일으킨 자리에 나타난 갓난아기,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이 신목이 낳은 아이다.


“응애! 빠아아! 빠아! 우으갸! ”

“뭔가 욕을 하는 것 같은 겁니다. ”

“삽으로 머리를 얻어맞으면 나 같아도 욕이 나오겠다. 그나저나 진짜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 아이인 게야? 너도 짐작 가는 것이 없느냐? ”

“예. 처음 봅니다. ”


처음 본다. 신목에서 튀어나온 이 아이도, 그리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기가 원망 섞인 눈으로 옹알이를 하는 기괴한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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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1) +6 24.09.10 378 28 11쪽
9 개업식은 수라장 (3) +3 24.09.09 388 29 10쪽
8 개업식은 수라장 (2) +3 24.09.08 436 28 10쪽
7 개업식은 수라장 (1) +3 24.09.07 521 33 11쪽
6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2 24.09.05 513 33 10쪽
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1 33 12쪽
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69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6 30 10쪽
2 마수걸이 +6 24.08.29 707 33 10쪽
1 작은 일탈 +6 24.08.28 851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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