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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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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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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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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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걸이

DUMMY

‘조 앞 건물 두꺼비부동산이요? 거기 사장이 돈 욕심이 좀 있어서 그렇지 어디 사기 치고 사람은 아니에요. ’

‘두꺼비부동산이 어디여? 아아, 경수가 하는 복덕방? 경수 그노마가 여기 토박인데 하도 밥벌이를 못하니께 동네 사람들이 불쌍해서 죄다 거기 방을 맡겼제. ’


나름대로 뒷조사 아닌 뒷조사로 알게 된 공인중개사의 평판이다.


뒷조사랄 것도 없이 부동산 근처 가게에서 과일이나 뻥튀기 같은 주전부리를 사며 슬쩍 물어본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가뜩이나 너무 저렴해서 고민이 됐던 마당에 떠나자마자 4천이나 깎는 기행을 하니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 때문에 사겠다는 답장에는 날짜가 적히지 않았다. 두꺼비부동산의 평판과 건물을 사기전 알아봐야 하는 서류를 떼는 시간을 최소한 하루는 벌어야 했으니까.


그 이상은 상대방에게도 민폐다.


장사하는 사람이나, 직장인이나, 시간은 돈이지 않은가?


그리고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내 손에 들린 두 장의 서류다.


『토지대장』, 『일반 건축물대장』


내집마련의 꿈이 이렇게 허무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싼 건물과 땅을 운 좋게 손에 넣었다. 우려했던 뒤가 구린 매물도 아니었고.


팔자에도 없는 전원주택 생활을 하게 된 것도 회사와 집을 쳇바퀴처럼 반복하는 내겐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모험이었다.


그리고 모험은 한번이 아니었다.


“아으, 좋다. ”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늘어진 채 눕다시피 앉아 있는 곳은 그토록 원했던 다방의 창가 자리였다.


며칠 전까지 버젓이 영업하던 이 다방을 나는 정리하지 않았다.


정말 두꺼비를 닮은 부동산 업자가 폐기물처리 업체 명함을 주고 갔지만 안될 일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자리를 즐기려고 산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면 참신한 미친놈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이유.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조금 낡고 오래되었을 뿐 다방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다.


현역시절 사단장이 부대에 방문해도 이렇게 깔끔하게 청소를 하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의자 밑, 카운터 옆에 손이 겨우 닿을 법한 창고 구석까지.


마치 오늘도 문을 열고 영업할 것처럼 집기들과 커피, 냉장고에 있던 식재료까지 모두 유통기한을 넘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다. 아니, 애초에 이 다방이 목적이기도 했고.


참, 그리고 건진 것은 단순히 집기와 식재료만이 아니었다.



【커피 마싯개 타는 방법 】



주방에서 발견한 공책이다. 표지에 학년, 반, 이름이 적히는 초등학생이 쓸법한 공책.


누런 갱지로 변한 이 공책 한장 한장에는 꽤 자세한 레시피가 적혀있었다.



『커피

할바시들 : 둘둘둘+미언 개미눈곱+물 적개

할마시들 : 둘둘둘+미언 개미눈곱+물 마니

아재 : 셋셋둘+미언 개미눈곱+물 마니

···

아가시 : 둘둘하나+미언 개미눈곱+물 적개 』



나이가 들어감에 행여나 잊을까 싶어 적어두신 것일까?


비록 맞춤법은 엉망이지만 정자로 눌러쓴 글씨는 어디에도 찍찍 긋거나 지운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커피를 만들었을 법한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있었기에 소중한 물건이 아닌가 싶어 돌려드리려 부동산에 연락을 해봤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집기는 모두 두고 가기로 했다는 말뿐.


- 호록.


덕분에 나는 도무지 맛볼 기회가 없었던 진짜배기 다방커피를 즐기는 중이다.


32살, 어중간한 나이 덕에 아재와 청년 중 어떤 레시피를 골라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까지 하게 만든 커피는 그야말로 대만족.


아직 아침의 선선한 기운이 한창이건만 이 커피가 벌써 3잔째다.


며느리도 알려주지 않을 법한 비법을 몰래 훔쳐본 기분이 이랄까?


회사에서 졸음을 깨려 샀던 무식하게 큰 리터 단위의 아메리카노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그렇게 주말 아침의 커피를 여유롭게 즐기는 사이,


- 딸랑.


출입문에 걸린 풍경 소리에 무심코 바라본 입구에는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20 초반? 아니면 중반? 나이는 가늠할 수 없었으나 그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다.


훤칠한 키에 어지간한 연예인들의 뺨을 두세 대 정도 칠 이목구비.


하지만 그런 잘생긴 얼굴은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멀끔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계량한복과 머리 위에 달린 귀, 그리고 풍성한 꼬리다.


유명한 코스어이길, 그리고 근방에 코스프레 행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발 그래야만 한다.


아니라면 대낮에 여우 귀와 꼬리를 단 남자가 집안에 들어온 꼴이니까.


“어떻게 오셨어요? ”

“차를 타고 왔느니라. ”

“예? ”


진짜 참신한 미친놈이 나타났다.


고작 창가 자리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다방건물을 통째로 사버린 나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뭘 멀뚱멀뚱 서 있는 게냐? 어서 커피를 내오거라. ”


도대체 무슨 말을 해서 내보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남자는 먹을 메뉴까지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가 중앙에 있던 의자에 앉아버렸다.


이제 장사를 하지 않으니 나가 달라 말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다방이 문을 닫았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표정으로 저리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축객령을 내리기가 뭣했던 까닭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지 않은가?


이전의 다방 주인은 저 아픈 청년을 그냥 내보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복잡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측은지심이 밀려왔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


그래, 아직 커피도 많이 남았으니 한잔 대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하라고 집기를 남겨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포트에 식어버린 물을 다시 데웠다.


어디 보자, 청년은 셋셋셋 물 많이였던가?


내가 마시던 커피는 아재용(?)이었다. 젊은 사람이 귀한 시골 마을이라 40대까지는 총각 소리를 듣는다지만 콕 집어 청년용 커피를 마시기엔 어딘가 양심 한구석이 불편했던 까닭이다.


그 때문에 이 청년 커피는 나로서도 첫 도전이다.


그렇게 남에게 대접할 용도로는 처음 개시한 청년커피가 레시피에 맞춰 더듬더듬 만들어졌다.


나무쟁반에 아이보리색으로 변한 커피잔과 작은 티스푼.


- 딸각.


아마 이렇게 나갔을 것이라 짐작하고 내어놓은 커피잔이 테이블에 차려졌다.


“오호. ”


아픈 청년은 감탄사와 함께 귀를 팔랑이며 코를 커피잔에 박고 연신 킁킁거리기 바빴다.


저 귀는 일전에 너튜브에서도 본적이 있었다.


사람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머리띠 모양의 귀 말이다.


참 세상이 좋아져서 희한한 물건도 많이 나온다 싶었건만 그걸 진짜로 하고 다니는 놈은 처음이다.


그래도 저리 좋아하니 심성이 썩 나쁜 녀석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냥 안 내보내고 커피 한 잔 타주길 잘했네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인제 어쩌지?


커피를 준 다음 일은 사실 생각해둔 시나리오가 없었다.


다방이 문을 닫았는지도 모르는 청년이 불쌍하다는 마음에 차려준 커피니까 말이다.


대충 다 마셨다 싶으면 이제 다방은 망했으니 오면 안 된다 말해야 하건만 그런다고 들을지가 의문이다.


이렇게까지 미친놈을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까.


자연스러운 하대에 사극에나 나올법한 어투,


컨셉이든 원래 저런 성격이든 정신이 아득해지는 건 변함이 없다.


그래도 일단 말은 해줘야겠지?


“응? 어디 갔어? ”


사라졌다.


방금까지 온갖 추태를 부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건만!


출입문의 풍경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상한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앉아 있던 자리엔 빈 커피잔과 돈다발이 놓여있었다.


5만 원권이 두둑하게 묶인 돈다발이.


“일 났네. ”


졸지에 아픈 청년에게 커피를 강매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영업허가도 안 받은 카페에서 무려 500만 원에 말이다!


나는 얼른 돈다발과 차 키를 챙겨 문밖을 나섰다.


젠장, 그냥 쫓아내고 소금이나 뿌리는 건데 괜한 오지랖을 부려선!



***



같은 시각, 진성의 다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고급 세단에는 난데없는 바람이 강하게 일었다.


-휘잉.


창문을 모두 닫아놔 바람이 들어올 리 없건만 바람은 차를 가볍게 흔든 것도 모자라 운전석에 있던 중년 남자의 희끗희끗한 머리를 세차게 나부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년의 남자는 놀란 기색 없이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며 예의 바른 어투로 질문을 던졌다.


“어떠셨습니까, 어르신? ”

“할망구 말이 맞았어. 예전 그 맛 그대로야. ”

“다행이군요. ”

“왜? 다른 찻집을 찾지 않아도 되니 그러는 게냐? 아랫것들을 시키면 될 것을 네놈이 자처한 일 아니더냐? ”

“하핫. 요즘엔 그런 잡일을 직원들에게 시키면 큰일 납니다. ”

“흥, 사람 머리를 가져오라 하는 것도 아닌데 큰일은 무슨. 네놈도 그 국정원장인가 뭔가 하는 나랏일로 바쁘지 않느냐? 젊어서 그리 무리하면 나중에 골병드는 법이니라. ”

“저보고 젊다 하는 분은 어르신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새로 온 찻집 주인이 썩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다른 찻집으로 가자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

“마음에 들기는! 새파랗게 어린 것이 얼굴에 제발 나가 달라 써 놓은 주제에 두 눈 빤히 뜨고 쳐다보면서 접객을 하다니. 쯧! 요즘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


방금 받았던 접객이 영 못마땅했는지 청년은 한복 두루마리의 넉넉한 소매에서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뭣 하느냐? 어서 출발하지 않고? ”


평소라면 눈치껏 움직였을 아이가 도통 시동을 걸 기색이 없음에 어르신이라 불린 청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국정원장직을 맡았다 한 중년의 남자는 되려 말까지 더듬으며 대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을 올렸다.


“어, 어르신. 어르신을 똑바로 바라봤단 말씀입니까? ”

“그렇다니······. 허! 이 맹랑한 놈 보게? ”


‘망할 할망구 도대체 뭘 대려다 앉힌 거야? ’


작가의말

<오늘의 레시피>

커피2스푼 + 프리마2스푼 + 설탕2스푼 + 미원 한 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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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6 3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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