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48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6,319
추천수 :
386
글자수 :
61,180

작성
24.09.09 23:57
조회
388
추천
29
글자
10쪽

개업식은 수라장 (3)

DUMMY

대화는 길지 않았다.


평소 ‘신을 만나면 물어야 할 질문 리스트’ 따위를 준비한 것도 아니고 묻는다 해서 마고신이 다 답을 해줄 의무도 없지 않은가?


사실 딱히 궁금한 게 없다는 것이 짧은 대화의 가장 큰 이유였다.


이쪽 세상의 이야기는 꽤 수다스러운 구미호가 굳이 묻지 않아도 일러주었으니까.


들판에 앉아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보는 것도 슬슬 지겨워질 무렵,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빈 보온병을 조수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넣었다.


“가려느냐? ”

“예, 구경은 충분히 했으니까요. ”

“별나구나. 말이라도 이곳에 있어도 되겠느냐 물어 볼법하거늘. ”

“되지 않을 일에 곤란한 거절을 하시게 되지 않습니까. ”

“홀홀. 그렇구나. 배려심이 깊은 아이야. ”

“그럼, 가보겠습니다. ”

“옛다. 커피만 얻어먹고 빈손으로 보내긴 그러니 이거라도 가져가거라. ”

“커피값은 괜찮습니다. ”

“가져가래도. ”


내가 한사코 거절하자 마고신의 손에 들린 작은 무언가가 퉁겨져 내 손으로 들어왔다.


반지다. 옥으로 만든 얇은 반지.


“커피값으로 받기엔 너무 귀한 물건입니다. 선물은 이미 다방을 싼값에 받았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

“그래서 주는 게야. 필요할 게다. 사특한 기운을 막는 것이다. 금이와 산이가 잘 지켜주겠지만 그래도 제 몸 하나는 건사해야 하지 않겠느냐. ”

“그렇다면 다방을 할 때까지만 잠시 빌리겠습니다. ”

“어째 주는 이보다 조건이 더 붙는구나. 홀홀. 이제 가보거라. 늙은이가 주책맞게 너무 붙잡고 있었으이. ”


나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올린 뒤, 들어올 때 들판에 눌린 타이어 자국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종종 들르거라. )


“네? 그게 무슨······. ”


- 화악.


‘제가 어떻게 여길 또 오겠습니까?’라는 물음조차 미처 다하지 못하고 달리는 풍경이 어느새 익숙한 도로로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옆에는 익숙한 검은 세단이 나와 나란히 달리는 중이었다. 구미호가 타던 차다.


나는 창문을 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물었다.


“다들 어딜 그렇게 가십니까? ”

“어? 다방 주인인 겁니다! ”

“네놈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게야! 이럴 게 아니다. 어서 돌아가자! ”



***



그렇게 혹을 하나 달고 다시 돌아온 다방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온갖 물건이 널브러진,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도둑이라도 들었던 겁니까? ”

“크흠. 이게 다 이놈 때문이니라. ”

“아야얏! 아픈 겁니다! ”


분에 겨워 너구리의 양 볼을 잡고 한껏 잡아당긴 구미호의 모습에 그제야 나는 이들이 왜 이렇게 다급히 차를 타고 나섰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것 때문이죠? ”


나는 지갑에서 나뭇잎을 꺼내 들어 보였다.


“옳거니! 그걸 들고 용케 아무 일이 없었구나! ”

“실은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

“뭣이? 무슨 일? 혹 다른 요괴라도 만난 것이더냐? ”

“요괴는 아니고 천계로 가서 마고신을 만났습니다. ”

“······. ”


셋 다 썩 볼만한 표정들이다.


입을 쩍 벌리고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휘둥그레진 얼굴들.


“노, 농인게지? ”

“그 정도로 심각한 일입니까? ”

“정말 다녀왔단 말이더냐! ”

“예, 이 나뭇잎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

“허! 천계는 평생을 수련한 도사들과 신수들도 감히 가지 못하는 곳이다. 헌데 인간인 네가 다녀왔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아 그런 것이다. ”

“딱히 대단한 일도 아니고 잠시 머물다 온 것뿐입니다.”

“그게 천지가 개벽할 일이니라! 내 평생 살면서 천계에 마실을 다녀왔단 인간은 처음 봤다. 어디 이상한 요괴에게 홀려 속은 게 아닌가 싶구나. 이거 원 믿을 수가 있어야지. ”

“기념이라기엔 뭣하지만 마고신께 이것도 받았습니다. 사특한 기운을 막아준다 하셨습니다. ”

“어? 이건 신석으로 만든 겁니다! 신석은 천계에만 있는 돌인 겁니다! ”


반지를 본 구미호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녕 다녀온 게로구나. 허허. ”

“신석은 처음 보는 겁니다! ”


반지를 들고 앞발로 이리저리 반지를 돌려보는 너구리를 두고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느냐? 여기 앉아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르지 않고! ”

“그러라 하실까 봐 일어났습니다. 그냥 잠깐 다녀온 것인데 뭘 더 말합니까? 정 궁금하시면 거기 폰에 사진을 좀 찍어 왔습니다. 이거라도 보세요. ”

“사진? ”

“네, 마고신께 허락을 맡고 풍경을 좀 찍었습니다. 또 올 것 같진 않아서요. ”

“보고 싶은 겁니다! ”

“오른쪽으로 넘기면서 봐. ”

“호오오오! 여기가 천계인 겁니까? 엄청난 겁니다! 마치···마치···천년쯤 전 마을 같은 겁니다! ”


그때였다.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헬멧을 쓴 배달원이 문을 두들겼다.


- 똑똑.


“배달이요! ”

“네. 잠시만요. ”


나는 그제야 귀찮은 질문세례에서 겨우 벗어나 큼지막한 봉투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그건 무엇인 겁니까? 좋은 냄새가 나는 겁니다! ”

“족발이야. ”

“쪽바리? ”

“아니, 뭔 소릴 하는 거야. 족발이라니까. 돼지족발. 자, 가서 테이블에 올려놔. 나도 즉석밥 좀 데워 올게. ”

“흥, 이건 또 언제 시킨게냐? ”

“아까 주차하면서 시켰습니다. 이 난리를 피우시느라 밥도 못 드셨을 테니까요. ”


다들 아침부터 다방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덕분에 아마 밥때를 놓쳤을 터였다. 나도 때마침 출출하던 차였고.


메뉴는 이 시골깡촌까지 배달되는 유일한 배달음식, 족발이었다.


그렇게 전자레인지에 즉석밥까지 데워 나오니 테이블에는 젓가락 놓을 공간도 없는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잔칫날 같은 겁니다! ”

“흥, 그냥 평소처럼 커피나 내올 것이지 뭘 이리 잔뜩 사왔느냐? ”

“아직 서류가 더 남긴 했는데 따지고 보면 오늘이 개업일이니 축하도 할 겸 해서요. ”


구실을 대자면 그러했다.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승인된 등록증이지만 그래도 축하할만한 날이지 않은가?


“그래, 따지고 보면 이 다방을 여는 것도 우리 덕분이지 ”

“어르신, 정확히는 저희 수행비 덕분입니다. ”

“시끄럽다. 개국공신이 어디 하나뿐이겠느냐. ”

“그런 겁니다! 우리는 한신과 팽월인 겁니다! ”

“아니 그놈들 말고! ”

“그럼 순욱인 겁니다! ”

“ 그··· 조선 사람 중에! ”

“정도전인 겁니다? ”

“됐다. 고기나 먹거라. ”


모두 개국공신이긴 했다. 나라를 세운 뒤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던.



***



진성이 떠났던 천계의 들판.


마고신은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진성이 떠났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고할망이시어. 그자는 갔습니까? ”


젊은 사내가 밭을 갈던 괭이를 어깨에 걸친 채 다가와 물었다.


“홀홀. 그래. 훌쩍 가버렸구나. ”

“궁금하시면 동경이라도 보시지요. ”

“놔두거라. 신안을 뜨고 스스로 천계까지 온 아이인데 어디 그런 기운을 모르겠는가? 그저 잘 지내겠거니 하는 것이지. ”

“그래도 너무 큰 힘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혹, 세상을 어지럽히진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

“홀홀. 그래서 그 두 녀석이 딱 달라붙어 있지 않느냐? 한 녀석만 있어도 능히 나라의 주인까지 바꿀 녀석들이 말이다. ”

“해서 더 걱정입니다. 그 두 신수 역시 진작 천계로 왔어야 할 존재, 그런 순리에서 벗어난 것들에게 그자를 맡긴 격입니다. 마고할망께서도 그자가 언제 올지 몰라 이리 오래 기다리셨는데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

“홀홀. 득도했다는 녀석이 어째 천계에 와서 근심만 가득해졌구나. ”

“죄송합니다. 아직 수련이 부족했습니다. ”

“죄송은 무슨. 만물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그 애심이 너의 본질이거늘. 너무 심려치 말거라. ”

“역시 따로 걸어둔 방도가 있으시군요! ”

“당연한 걸 묻는구나. 가만히 앉아 떨어지는 천도복숭아를 받아먹으려 하기에 내 슬쩍 심술을 부려놨지. ”

“예? ”

“정 궁금하면 한번 내려가보거라. 아주 재미있을 게야. 홀홀. ”

“천계에 있는 제가 어찌 현세로 가겠습니까? ”

“누가 길이라도 열어두면 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 ”

“자꾸 뜻 모를 말만 하시니 제가 아직 배움이 부족한 듯합니다. ”

“배움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그런 게야. ”



***



- 우드득.


무슨 소리지? 또 누가 왔나?


오랜만에 마신 맥주의 취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나는 평소보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 우드득. 우지끈.


누가 온 인기척이 아니다.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머리맡에 둔 지갑이었다.


지갑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던 것이다!


“이런 미친! ”


나는 이불 속으로 뿌리를 파고드는 나무를 얼른 뜯어내 창밖으로 던졌다.


-구르르르.


그러자 작은 묘목은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랗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땅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세상에······. ”


나는 그제야 머릿속에 울렸던 마고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우리 집 뒷마당에 갑자기 솟아난 커다란 나무, 그리고 그 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익숙한 기운이 무얼 뜻하는지도.


신목이 자란 것이다. 여차하면 신계를 오갈 기운을 품은 신목이.


나는 폰을 열고 이 일을 알려야 할 유일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백마현입니다. )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조금 급한 일이 생겼는데 혹시 세 분 다 이쪽으로 다시 와주실 수 있을까요? ”

(무슨 일이시죠? )

“집에 나무가 하나 자랐는데 이게 아마 계룡산에 있다던 신목과 같은 나무 같습니다. ”

(우당탕)


전화기 너머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끊겨버렸다.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음은 분명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새벽에 연락한 나도,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은 국정원장도, 그런 예의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가 중단 되는 겁니다... +1 24.09.14 120 0 -
13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4) +4 24.09.13 191 21 10쪽
12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3) +4 24.09.12 256 25 10쪽
11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2) +4 24.09.11 316 27 10쪽
10 천계로 가는 하이패스 (1) +6 24.09.10 378 28 11쪽
» 개업식은 수라장 (3) +3 24.09.09 389 29 10쪽
8 개업식은 수라장 (2) +3 24.09.08 436 28 10쪽
7 개업식은 수라장 (1) +3 24.09.07 521 33 11쪽
6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3) +2 24.09.05 513 33 10쪽
5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2) +4 24.09.04 541 33 12쪽
4 두 번째 손님은 너구리 (1) +2 24.08.31 570 33 10쪽
3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1 24.08.30 647 30 10쪽
2 마수걸이 +6 24.08.29 707 33 10쪽
1 작은 일탈 +6 24.08.28 852 3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