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다방에 거물들이 몰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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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초
작품등록일 :
2024.08.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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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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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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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식은 수라장 (1)

DUMMY

이렇게 냄비에 기름을 듬뿍 부어 무언가를 튀겨본 적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사죄의 마음이 담기지 않았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시도.


따로 전문적인 장비가 있는 건 아니기에 비쥬얼이나 맛은 보장하지 못한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모두 기우에 그쳤다.


“이게 돈까스인 겁니다! 봤던 거랑 똑같이 생긴 겁니다! ”

“정말 그러네. 얼추 비슷한걸? ”


접시에 담긴 잘 튀겨진 돈까스, 얇게 썬 양배추에 드레싱, 그리고 고슬고슬한 즉석밥까지.


실제로 무언가 처음부터 만든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제아무리 집밥이 맛있다지만 팔려고 석박사들이 모여 만든 기성품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


“그런데 많이 남은 겁니다. ”


언제 또 기름에 이렇게 튀기는 수고를 할지 몰라 미리 다 튀겨버린 남은 패티들을 보며 너구리가 입맛을 다셨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돼. 배탈 날지도 모르니까 많이 먹지 말자. 알겠지? 아프면 또 병원 가야 해. ”

“이것만 먹는 겁니다! ”


넉넉하게 줘도 상관없지만 이미 지금 접시에 담은 것 만해도 저 작은 덩치가 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


괜한 배탈로 하루에 두 번씩이나 병원을 오가는 건 나도 사양이다. 이미 야생동물을 불법으로 키우는 게 아닌지 하는 의심을 잔뜩 받은 상태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진짜 어쩌지?


아침은 거의 안 먹고 저녁도 회사에서 먹고 들어올 때가 많다. 냉장고에 넣어놔도 사나흘 뒤에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곧 쓸데없는 걱정이 되어버렸다.


- 딸랑.


손님이 늘었다. 두 명으로.


“어? 구미호인 겁니다! ”

“크흠. ”


입구에는 너구리의 말대로 지난번 만난 구미호 청년과 운전기사가 멋쩍은 얼굴로 서 있었다.


사실, 곧 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했었다.


애초에 곱게 포기했다면 이리 너구리를 보내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 구미호 청년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잔 것도 모자라 아침부터 병원에 돈까스까지 튀긴 마당이다. 뭐라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색하게 볼을 긁으며 헛기침을 할 만큼 불편하면서도 굳이 찾아온 사람을 다시 매정하게 쫓아내기란 꽤 단오한 각오가 필요했으니.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세요. 많이 했어요. ”

“커피만 먹으면 되느니라. ”

“다 드시고 타 드릴 테니 앉아 계세요. ”

“정말인게냐? ”


나는 공연히 똑같은 문답이 계속될까 싶어 대꾸 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돈까스 두 접시를 더 들고 왔다.


그렇게 우리 넷은 햇살이 깊게 들어오는 다방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호오오오오! 맛있는 겁니다! 이건 달콤하고 이건 고소한 겁니다! 그리고 이건 밥이랑 먹으면 맛있는 겁니다! ”

“알았으니까 천천히 먹어. ”


나는 큼지막하게 썰린 돈까스를 한입 베어먹고 감상평을 거창하게 늘어놓느라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너구리를 억지로 다시 의자에 앉혔다.


“내 진작 알아봤건만 요리 솜씨가 제법이구나. ”

“나도 도운 겁니다! ”

“네가? ”

“인간을 돕는 건 당연한 겁니다. 엣헴! ”

“흥, 그게 어디 당연한 일이더냐? 다른 놈들은 죄다 세상에 찌들어서 인간인지 요괴인지 모를 지경이다. ”

“비슷한 분들이 더 있나 봅니다. ”

“당연하지! 예전만 해도······. ”

“어, 어르신! ”

“뭐? 인제 와서 신안을 뜬 놈에게 숨길 것이 있더냐? 끌끌. ”

“그걸 신안이라 하는군요. ”

“그래. 헌데 그 좋은 눈으로 어찌 그렇게 살고 있느냐? 이놈처럼 나랏일이나 하던지, 아니면 사업을 하던지, 뭐라도 이뤘어야 하거늘. ”

“세상은 그런 사람을 싫어합니다. ”

“그렇지. 영특하구나. ”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감이 좋은 편에 속했다. 단순히 그리 여기고 살았다.


무언가가 보일 때면 억지로 눈을 비벼 흐리게 만들었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은 데자뷰라 넘겼다.


그것이 이런 괴력난신까지 보는 눈임을 깨달은 것은 최근이었다.


‘너 어떻게 알았어? 누구한테 들었지? 똑바로 말 안 해? ’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사고는 무슨. ’

‘김진성씨, 자꾸 이렇게 모르는 일이라 하시면 나중에 재판에서 불리해져요. 자,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왜 불을 지르려 했습니까? ’


뭐 이런 이유에서다.


나는 그렇게 평범함을 미덕으로 살아온 것이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부작용은 없습니까? 단명하거나 아니면 말년에 미쳐버린다던지 하는 부작용이요. ”

“끌끌. 귀찮은 객 취급을 하더니 또 그건 걱정되느냐? ”

“아시다시피 물어볼 때가 없었으니까요. ”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요괴를 데리고 동물병원까지 갔지 않은가?


이미 일반인의 시선에선 미친놈이나 다를 게 없다.


“당연히 있느니라. ”

“무엇입니까? ”

“신안은 말 그대로 신이 띄워준 눈. 만물에 쓰임이 없는 것이 없듯 신안을 뜬 자에게는 그자만의 운명이 있느니라. 이 땅에선 조선의 명줄을 엮은 이도, 그 아이가 그러했고 그전엔 고구려의 연씨 대막리지가 있었지. ”


설마 이도? 세종? 고구려의 연씨 대막리지는 연개소문을 말하는 건가?


“끌끌. 이제 좀 실감이 나느냐? ”


아니다.


되려 현실감이 하나도 없는 답이기에 머리가 차게 식었다.


대단한 업적과는 별개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들이다.


그저 직장에 오래 붙어있다 넉넉한 퇴직금을 받고 은퇴 후에는 소일거리나 하며 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너도 곧 그런 일을 하게 될 게다. ”

“그러기엔 핏줄이 너무 볼품없지 않습니까? 저는 세자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니까요. ”

“흥, 그놈들의 핏줄은 어디 귀한 줄 아느냐? 위로 아비 몇만 거쳐도 들판에서 양이나 치고 농사나 짓던 것들이다. 개의치 말 거라. 그저 순리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이미 그리 살고 있지 않느냐? 다방 주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

“이곳은 제가 원해서 산 것입니다. ”

“해서 이리 우리도 오게 된 것이지. ”

“사필귀정······. ”

“역시 영특하구나. 끌끌 ”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간다.


내가 홀린 듯 매매가 붙은 다방을 인수한 것도, 그 때문에 이 요괴들이 오게 된 것도, 모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순응하여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내 노력조차 아무런 상관없이 결국 이리 되었다고? 신안은 그저 중히 쓰임이 있어 뜬 눈이고?


어림없는 소리.


“그럼 그리 알고 다 먹었으니 커피나 한잔 내 오거라. 앞으로의 할 일은 이 나랏일 하는 놈과 천천히 상의······. ”

“싫습니다. ”

“응? ”

“신안이라 부르시는 건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뜸 값을 미리 줬으니 순리대로 따르라 하면 제가 고분고분 따라야 합니까? ”

“아니,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되기로 마고할멈이······. ”

“일단 이 다방만 열어주시면 월에 천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어떠신지요? 영업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


구미호가 나랏일을 한다던 중년 남자가 말을 끊고 갑자기 엄청난 조건을 내걸며 명함을 내밀었다.


이름과 전화번호 외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명함이다.


“국가정보원장 백마현입니다. 돈은 저희 국정원에서 지급을 보증하겠습니다. ”


요괴와 같이 다니니 어렴풋이 높은 직급이겠거니 했건만 국정원장일 줄이야.


게다가 조건으로 월에 천만 원을 내걸었다.


이것들 봐라? 거절할 줄 미리 알고 있던 눈치다. 순순히 그리하겠다 했으면 내밀지 않은 돈이기도 하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 순간, 취할 것과 양보해야 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사천, 그 자리에 계속 계신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 정돈 받아야겠습니다. ”

“저희도 수행비에 절차와 한도라는 게 있어서 천만 원 이상은 조금 힘들 듯합니다. ”

“그럼 삼천으로 하겠습니다. ”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시죠. ”


나는 국정원장이 내민 손을 맞잡고 급작스러운 거래를 마쳤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은 필요치 않았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구미호의 바람대로 다방을 열게 된다는 뜻이다.


순리를 거스르느냐? 지금껏 그 잘나신 존재가 바라는 대로 해주고 내 몫을 챙기느냐?


당연히 선택은 후자다.


국정원장은 내가 기억하기에 한 번도 임기를 채운 사람이 없다.


길어야 2년.


그 사이 정치계에서 굵직한 일이 터지면 책임을 통감하며 사직서를 내는 자리가 국가기관 장급 공무원의 역할이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곳에 달에 3천만 원씩 빠져나가는 돈을 새로 임관한 경쟁세력의 인사가 그대로 두고 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최대한 빨아먹고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그만두겠다.’라는 명분까지 챙길 작정이다.


뜻대로는 해주는 것이다.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거대한 흐름이 그러하다면 말이다.


다만 유통기한이 있을 뿐이다. 그 유통기한은 신안의 운명 따위가 아닌 내가 정하는 것이고.



***



두 사람과 너구리 한 마리는 그림자가 짧아진 정오가 되어서야 다방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하여간 마고할멈은 좀 고분고분한 놈들에게 신안을 줄 것이지 왜 매번 저리 다루기 힘든 놈들만 고르는지 모르겠구나. 에잉. 쯧. ”

“그래도 이제 마음껏 커피를 드실 수 있지 않습니까? ”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네놈이 사퇴할 때까지만 하겠다 저리 으름장을 놨는데 마음껏 먹기는! ”

“하핫. 그렇게 되는군요. 그런데 제가 사퇴하면 거래가 끊긴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

“네놈도 신안을 어설프게 떴지 않느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가 신안을 띄워주지 않을 걸 이미 간파한 게지. 2년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구나. ”

“바보들인 겁니다. 나뭇잎을 주면 되는데 왜 걱정을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


보조석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통통 두들기던 너구리가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사뭇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나뭇잎? ”

“커피값으로 나는 나뭇잎을 준 겁니다. ”

“이, 이놈 설마 신목의 잎사귀를 줬단 말이더냐? ”

“그런 겁니다. 나뭇잎은 이마아안큼 있으니 커피도 이마아안큼 마실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난 안 마시는 겁니다. 맛있지만 잠이 오지 않아 죽을 뻔한 겁니다. ”


양발로 도무지 그 양을 가늠할 수 없는 개수를 표현한 너구리의 두서없는 대답에 구미호의 동공이 갈 길을 잃고 심하게 흔들렸다.


“일 났구나. 차를 돌리거라! 빨리! ”


- 끼이이익.


계룡산을 향하던 검은 세단이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으아악! 어지러운 겁니다! 토할 것 같은 겁니다! 우욱! ”

“어르신 막아주십시오! 세차비는 영수증 처리가 안 됩니다. ”

“지금 그게 문제더냐? 빨리 밟으래도!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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