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급 용기사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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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도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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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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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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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알카르(4)

DUMMY

#11



창문이 일제히 깨졌다. 마수병단이 신전에 들이닥쳤다.

다급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서둘러라, 그람의 하울링이다!”

“대장님, 무슨 일···허억.”


주변을 둘러본 병사들이 기겁했다.

어디보다 경건해야 할 공간이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찢어진 제국군의 시체가 사방에 널린 채였다. 불패를 자랑하던 중대장은 다리병신이 되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늑대의 등 위에 엎어져 있던 알카르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흐···왔느냐.”

“대, 대장님을 지켜라!”


상황을 파악한 병사 한 명이 목청 높여 외쳤다.

그들은 멜빌과 레기아를 공격하는 대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진형을 구축했다.


“형세 역전이군. 소년.”


알카르가 웃었다. 어느새 다섯 마수병이 그를 둘러싼 채였다.

느껴지는 분위기로 보아 마수병단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들일 터였다.


“그때의 괴물···!”

“잠깐만. 지금 괴물이 저 애새끼를 태우고 있는 거야?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어째 익숙한데···두건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이는군.”


그들 중 일부는 멜빌과 레기아를 알아보고 있었다.

견적을 살핀 멜빌이 혀를 찼다.


‘인간이 열둘. 마수가 아홉인가.’


꽤 수를 줄였다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었을 줄이야.

멜빌은 괜찮았지만 그의 동반자가 문제였다.


【하아···하아···.】


레기아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알카르의 늑대에게 물린 상처 탓이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한기로 인해 비늘에 서리가 맺히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해 뒀다가는 살이 괴사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때, 늑대에 탄 알카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소년. 투항해라.”


쩔쩔매던 얼굴에 여유가 돌아와 있었다.

좀 살 만해졌다고 시건방져진 꼬낙서니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멜빌이 중지를 쳐들었다.


“이거나 잡숴. 모자라면 특별히 내 발가락을 핥을 기회를 주마.”

“만용을 부리지 마라. 나는 가급적 너를 살려서 돌아가고 싶으니.”


알카르가 큭큭거렸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멜빌을 바라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이제야 알았거든. 네 정체를.”

“뭐라? 정체?”


멜빌의 눈이 커졌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설마 나도 모르는 내 정체를 저 어린 놈이 알아냈을 줄이야.

표정에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차였다.


“그래. 네놈은 필히 해방군 소속이겠지.”

“······그건 또 뭐냐.”

“시치미 떼지 마라. 숲에서 곰을 상대하던 모습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넌 태어났을 때부터 그 범죄자들에게 길러진 살수가 분명하다.”

“아니 씨발.”


멜빌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래에 떨어져서 가장 거지 같은 점이 바로 이런 정보의 격차였다.

만나던 사람마다 식별 코드로 지랄하던 때가 머릿속을 어른거렸다.

다만, 그와 별개로 흥미가 생겼다.


‘해방군이라.’


이름만 들어도 뭐 하는 집단인지 알 것 같았다.

황제를 타도하고, 다카르에게 엿을 먹이고 싶어하는 자들의 집합체겠지.

자신과 같은 소망을 품은 자들이 많다는 것은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알카르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정식으로 포로 대우를 해 주마. 하지만 끝까지 저항할 경우, 나는 네놈을 산 채로 잡아서 붉은 요새의 고문 기술자들에게 던져줄 거다.”

“무섭기도 하지.”

“우습게 여기지 않는 게 좋아. 그 전문가들은 네 작은 머리에 들어 있는 비밀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알카르의 시선이 레기아에게 옮겨졌다.


“그 짐승은. 영물이 아니라 용이군.”

“빨리도 알아차린다.”

“내 상식과 너무 달라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뿔이 작은 건 그렇다 쳐도, 설마 날개 없는 용이 존재할 줄이야.”

【뭐야?】


레기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알카르의 날개 언급이 상당히 심기를 거스른 듯했다.

용이라는 말을 들은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 괴물이 용이라고?”

“설마. 아직 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

“제도의 동물원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멜빌이 입술을 짓씹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야생의 용이 절멸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듯했다.

탐욕 어린 시선으로 레기아를 쳐다보던 알카르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난 저 용을 잡아서 황제 폐하께 바쳐야겠다. 분명 기뻐하시겠지. 중대 전원은···”


정확히는 지시하기 직전이었다.

레기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위협을 감지한 알카르의 늑대가 다급하게 물러났지만 늦고 말았다. 바람이 몰아쳤다.

다시 나타난 레기아가 그들의 뒤에 착지하는 순간이었다.


“크아아아악!”


알카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 대장님?! 허억!”


뒤늦게 몸을 돌린 부하들이 경악했다.

알카르의 왼팔이 있던 자리에서 피분수가 솟구치고 있었다.


“어, 어느새!”

【우와.】


잘려나간 알카르의 팔은 레기아의 입에 물려 있었다.

순식간에 날아와 물어뜯은 것이었다. 숲에서 멜빌을 삼킬 때와 같은 기술이었다.

펫! 침을 뱉듯 팔을 뱉어낸 레기아가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팔 없는 인간도 있네.】

“크흐흐, 성질머리하고는.”


멜빌이 웃음을 터트렸다. 갈수록 이 꼬맹이가 마음에 들었다.

날개 없다고 했다고 팔을 뜯어먹을 줄이야.

급가속을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이 부러질 뻔 했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레기아가 늑대를 노려보았다.


【미안. 머리를 노렸는데 쟤가 피했어.】

“괜찮다. 너도 정상이 아니잖아.”

【···알고 있었어?】

“난 모르는 게 없지. 아주 훌륭했다.”


멜빌이 레기아를 쓰다듬었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려드는 용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절단면을 움켜쥔 채 신음하던 알카르가 고개를 쳐들었다.


“빌어먹을! 잡아! 팔다리 한두 개 정도는 잘려도 좋으니 일단 잡으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잡아라!”


부관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외쳤다. 포위진을 이루고 있던 마수병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절반은 마수를 탄 채 달려들고 나머지 절반은 원거리에서 엄호 사격을 개시했다.

타다다당! 총성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


레기아가 포효했다. 알카르는 이미 측근들 속으로 숨은 뒤였다.

불현듯, 세 조의 마수병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도약하며 덤벼들었다. 재빠르게 상황을 분석한 레기아가 앞발을 후려쳤다.

퍼석!

왼쪽에서 달려오던 여우 마수의 머리가 폭발하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캐액···!”

“죽어라!”


하지만 기수까지 죽이지는 못했다.

여우의 등에 타 있던 여인이 검을 뽑아들며 뛰어올랐다.

레기아가 아닌 멜빌을 노리고 있었다. 제국군의 군도가 반원을 그리며 날아오던 차였다.

빠르게 총알 한 발을 장전한 멜빌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여인의 이마에 바람구멍이 뚫렸다.


“···걱.”


여인의 눈이 뒤집혔다. 뒤통수가 터진 시체가 여우 위로 쓰러졌다.

나머지 두 마수병을 꼬리로 후려친 레기아가 거친 숨을 토했다.


【후으, 후우우···.】


피로가 묻어나는 숨소리였다. 냉정하게 말해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레기아는 부상을 입었고, 적의 병력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었다.

더 멀리서 임무를 수행하던 마수병단. 그들과 마찬가지로 하울링을 들은 3캠프의 보초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결국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멜빌이 입술을 비틀었다. 도망을 제외한 활로는 하나뿐인 것 같았다.

레기아와 자신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라 최대한 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레기아의 등에 손을 얹은 멜빌이 읊조렸다.


[높게 뛰는 돌멩이가 별이 되리니.]


마나가 쑥 빨려나가는 감각과 함께 레기아의 뒷다리가 부풀었다.

기초적인 신체 변형이자, 각력을 강화시켜 주는 도약의 시였다.


【어라.】


변화를 감지한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자세를 낮춘 멜빌이 황제 석상의 머리를 가리켰다.


“일시 후퇴다. 저 위로 가자.”

【응.】


레기아가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못해도 두 번은 딛어야 하는 높이였지만 지금은 될 것 같았다.

힘을 끌어모은 그녀가 지면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콰아아아아앙-!

거미집 같은 균열이 발생함과 동시에, 레기아의 몸이 천장까지 떠올랐다.


【우와!】


레기아가 감탄했다. 꼭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석상의 정수리에 가볍게 착지하는 순간, 먼 발치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황제 폐하의 머리를 밟다니. 저런 불경한···!”

“사격 중지! 사격을 멈춰라!”


놀란 것은 제국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닭 쫓던 개처럼 석상을 올려보고 있었다.

알카르의 늑대를 제외하면 멜빌이 있는 곳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마수는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총을 쏘기에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때, 우물쭈물하는 병사들 뒤편에서 알카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놀라나. 격발하라.”

“하, 하지만. 그랬다가는 폐하의 용안이···.”

“저 둘을 놓치는 것이 폐하께 더 큰 무례다. 석상은 고치면 그만이야.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어떻게든 끌어내려라.”

“···알겠습니다. 전원, 격발하라!”


명령이 떨어졌다. 다시 총을 들어올린 마수병단이 사격을 개시했다.

타타타타탕! 빗발치는 총성과 함께 석상 곳곳에서 파편이 튀었다.

무른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상이라 부서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멜빌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쉽지 않군.”


머리가 어지러웠다.

고작 각력 한 번 강화하는데 마나의 절반을 쓰고 말았다.

다시 감응하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마나통 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레기아가 물었다.


【멜빌. 괜찮아?】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뱀처럼 똬리를 뜬 채 멜빌을 감싸고 있었다.

비늘을 뚫지 못한 총알이 빗소리를 내며 튕겨나가는 중이었다.

시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자기 걱정이나 할 것이지.

멜빌이 레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그런데 솔직히 이대로는 힘들어. 적도 적이지만 네 상태가 가장 큰 문제야.”

【나. 더 싸울 수 있어.】

“웃기지 마라. 꼬리는 몰라도 등의 상처는 꽤 깊어. 알카르의 창에 맞았을 때보다 더 심한 부상이다.”

【하지만···.】

“이대로 싸움이 길어지면 크게 덧날 수도 있다. 내가 남아 있는 마나로 치유하더라도 적의 머릿수가 너무 많아서 금방 상처가 벌어질 거야. 그람이라는 늑대놈도 보통은 아니군.”


레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친 건 다친 거였으니까.

애초에 제대로 된 전투 경험도 없는 새끼용이 강한 마수와 싸워서 비기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럼. 우리 진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저딴 놈들한테 지기는 누가 져.”

【에? 하지만 멜빌이 방금···】

“안 진다. 싸움이 길어지면 상처가 덧난다고 말했을 뿐. 빨리 끝내면 해결되는 문제야.”


멜빌이 아래를 슬쩍 내려보았다.

대략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이 석상을 둘러싼 채 총을 쏴재끼고 있었다.

예상대로 마을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들까지 몰려든 채였다.

잘 됐군. 안 그래도 한 명씩 찾아가기 귀찮았는데.

레기아가 갸웃거렸다.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나?】

“불을 뿜어야지.”

【···응?】


레기아가 멈칫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알카르를 노려보던 멜빌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과거를 잊은 잡놈들에게, 다시 용의 공포를 일깨워 주는 거다.”


레기아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상처에 입을 가져다댄 멜빌이 피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미끄러지는 순간, 멜빌의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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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제3캠프 +3 24.09.08 624 1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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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조우 +3 24.09.04 701 26 18쪽
3 3. 불시착 +1 24.09.03 811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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