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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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봉
작품등록일 :
2024.09.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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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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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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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시작점

DUMMY

그 설명할 수조차 없는 일의 시작점은,

프랑스 동레미 라 퓌셀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와 여기가 거기구나?"


장건우는 십년간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퇴직금의 일부를 떼어 나 홀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마지막 챕터는 프랑스였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도 구경하고, 니스의 해변에서 사진도 찍고, 리옹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푸르비에르 언덕도 구경했다.


그 이후로 디종, 콜마르,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파리로 되돌아가기 전에 이곳에 들른 것이었다.


동레미 라 퓌셀.

과거 프랑스-잉글랜드 사이의 백년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끈 장본인인 잔다르크의 고향.


딱히 구경할 만한 게 있어 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포털 사이트 블로그의 여행 경로를 100%따르고 싶지 않다는 데에서 온 객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우는 심장 가득 차오르는 고양감을 느꼈다.


역사에 꽤나 지대한 관심이 있던 터라, 프랑스 구국영웅의 출생지에 발을 들인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것이었다.


"흐음, 힐링!"


건우는 팔을 대자로 펴며 따뜻한 햇살 아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동상 하나가 보였다.

앞쪽의 칼을 들고 있는 작은 처녀상과 뒷쪽의 천사상.


앞쪽에 있는 작은 여인이 잔다르크를 형상화했다는 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Maison Natale de Jeanne D'ARC]


라 쓰여있는 푯말이 보인다.


'잔다르크의 생가'라는 의미다.


푯말 뒷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허름한 생가 하나가 나타났다.


잔다르크에 대해서 건우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중세 프랑스의 구국 성녀.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며,

19세의 나이에 마녀로 몰려 처형을 당한 비운의 영웅이다.


생가의 문이 닫혀 있어 외관만 구경한 건우는 발걸음을 옮겨 생레미 성당을 향했다.


멋들어진 고딕 건축물의 안으로 걸어들어간 건우는 마주친 성당의 신부님을 향해 짧게 목례하고 성당 의자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사람이 많아 기도를 하지 못했다.

여기서 기도라도 할 생각이었다.


기도문 대신 떠오른 것은 자신이 왜 유럽여행을 떠나온 것인지에 대한 이유였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왔다.


중고등학생 때는 만년 2등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1등을 제칠 수 없었다.

경시대회나 과학경진대회를 나가도 매번 1등을 띄워주는 역할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대학교에 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목표가 없는 채 그저 성적에 맞춰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부모님은 파티까지 벌일 정도로 좋아하셨지만, 건우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 가는 군대에 다녀온 후, 대학을 졸업하기 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친구들도 다 하길래 시작했을 뿐이다.

그저 그런 공기업에 취직하고 거기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른 다섯이 된 올해까지, 쉬지않고 일했다.


공기업에 들어가 인생이 좀 폈냐고?


그랬다면 유럽여행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도무지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던 건우는 회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있는듯 없는듯, 그저 가늘고 길게.


누군가는 건우의 그런 성정이 부럽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하고 평범하지 않은 재밌는 삶을 기대했다.


돈을 많이 벌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 또한 기약없는 말임에 틀림이 없었다.


천만원을 모으면 이천만원이 필요하고.

이천만원을 모으면 오천만원이 필요하고.

오천만원을 모으면 1억이 필요했다.


1억으로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선자리는 계속 들어오지만 가슴 뛰게 만드는 여자는 없었다.


차는 있어요? 집은요? 연봉은 얼마나 돼요? 부모님 두분 다 계세요? 형제자매는요? 공기업이면 철밥통이네요? 자녀계획은요? 청약은 들어두셨나요? 보험은 들으셨어요? 아픈곳은요? 부모님 지병 있으신가요?


건우가 생각한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장주임. 어떻게 한 거야? 동기 좋다는 게 이런 건가? 장주임 덕분에 승진했어! 오늘은 내가 소고기 쏜다!"

"동기야. 내가 끌어주고 싶어도 말이야. 네가 두각을 보이는 게 없어서.... 야, 그래도 후임들보다는 빨리 승진해야지. 좀 더 잘 해봐봐."

"아, 이번 승진은 내가 개입을 못했어. 다음엔 좀 더 열정적으로! 너 가끔 보면 너무 힘이 없어. 윗사람들 생각에 열정 없어 보일 수도 있단 말이야."


만년 주임.

동기들은 차장을 달고 팀장까지 달며 승승장구 하는데 자신은 계속해서 주임에 머물렀다.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운명일까, 아니면 못했기 때문일까.


죽쒀서 개준 꼴.

능력은 있지만 아부가 부족해 열심히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전부 동기들만 각광을 받았다.


이제는 지쳤다.

그래서 십 년간 다닌 공기업을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때려치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다.


'주여,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됩니까?'


수 없이 본인을 향해 되물었던 질문들이다.


꿈의 부재.

누군가는 꿈이 있는 것 자체 용기있는 일이라 하던데. 자신의 가치를 찾는 일이라 하던데.


그럼 나는 용기도 없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인가?


"주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매일 기도한 건 아니어도 어렴풋이 믿긴 했습니다. 열심히 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사는게 힘이 들까요? 성당 안 다니면 기도도 안 들어주시는 건가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면서 왜 편애하세요? 이러니 성당 가고 싶어도 못가는 겁니다. 뭐... 물론 그동안 시간 없다는 핑계로 못 오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이쯤 하시면 됐잖아요? 이제 좀 행복하게 해주세요. 네?"


건우는 혼자 중얼거리며 기도문을 쏟아냈다.

기도문이라기보다는 푸념과 원망에 가까웠지만, 평소 성당에 다니지 않는 건우가 그런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한동안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기도라는 형식으로 풀어내던 건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일어나려는데,

맞은편 교회의자에 누군가 당황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건우의 낯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목 쪽에 하얀색의 로만칼라가 있는 걸 보아하니 신부였다.


건우가 낯을 붉힌 이유는, 그의 모습이 프랑스인처럼 생기기 보단 한국사람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신부였다면 혼잣말이 좀 들린 것으로 이렇게까지 창피하지 않았을 텐데.


"크흠,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유창한 한국어가 신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쪽팔려!'


엄마에게 일기장을 들켰을 때처럼 속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 창피했다.


"어, 여행오셨어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꺼낸 말이었다.


신부에게 여행오셨냐니.


"아뇨. 순교 왔습니다만."

"아, 그러시겠네요."


불편한 정적이 지속되었다.

건우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몸을 돌렸다.

이럴 땐 먼저 나가는 게 상책이다.


그런 건우를 향해 신부가 말했다.


"주님께선 형제님 곁에 항상 머물러 계십니다."

"네?"

"삶이 힘들어도 원망하시면 안됩니다. 다 주님의 뜻이니까요. 무슨 일이 벌어지든."


건우는 눈을 끔뻑였다.


앉아 있던 신부가 일어서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십자가가 달린 묵주였다.

손 때가 타 빛이 바래있었다.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오늘 이 생레미 성당에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나타난다 하여 앉아 있었는데. 그게 어쩌면 형제님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신부가 온화하게 웃으며 묵주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주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실 겁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예. 뭐. 감사합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니.

그런 건 성경에나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는 건우를 향해 신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프랑스 구국 성녀 잔다르크께서도 이 동레미 지역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으셨죠."

"아, 네."

"만약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어떤 걸 듣고 싶으십니까?"


건우는 묵주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


어떤 목소리를 듣고 싶으냐고?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거야?


"아주 특별한 삶을 살 것이다. 뭐 이렇게 말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하핫. 스스로 고통의 소용돌이에 들어가시려 하는 분은 또 오랜만입니다."


고통이라.

누군가는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한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니까.


그러나 건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평생을 남을 도우며, 남에게 영광을 돌리고, 공을 갖다 바치는 삶은 두번 다시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신부는 눈을 반짝 빛냈다.


"제가 감히 주님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형제님께서는 분명 큰 일을 해내실 것 같습니다."

"예, 뭐. 감사합니다."


으레 하는 축복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건우는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동향사람 만나서 좋았어요."


건우는 몸을 돌려 생레미 성당을 빠져나갔다.


굳게 닫히는 거대한 성당문을 바라보며 신부는 가만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여, 어린 양이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주님의 계획 안에 쓰임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


밖으로 나온 건우는 잔다르크 생가를 지나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또다른 잔다르크 동상이 있었다.


동상 아래, 알록달록한 꽃더미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몇백 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녀는 프랑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성녀였다.


그 아래, 새로운 꽃을 두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조그마한 고사리같은 손으로 싱그러운 꽃을 두고 있는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무슨 꽃이야?"


짧게 공부한 프랑스어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미안! 놀라게 하고 싶진 않았어."


여자아이는 똘망똘망한 눈을 들어 건우를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수줍은지 저 멀리 뛰어간다.


"...낯을 많이 가리나보네."


그때였다.


부아앙-


저 멀리서 하얀색의 트럭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 길이었음에도 브레이크가 고장난듯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하얀 트럭.


차가 지나는 길에, 아까 보았던 소녀가 있었다.


"위, 위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건우는 빠르게 달렸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죽는다는 생각조차 머릿속에 없었다.

그냥 살려야겠단 생각 뿐이었다.

건우는 몸을 날렸다.


끼이익! 콰앙!!


어린 여자아이가 넘어졌다.

까진 무릎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그런 여자아이의 발치로 검붉은 피 웅덩이가 맹렬하게 전진했다.


주변에 있던 여행객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해져가는 건우의 시야에 묵주가 걸렸다. 아까 신부가 주었던 낡은 묵주.

은으로 된 십자가 부분이 햇빛에 번쩍였다.


'주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하실 겁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죽어가는 건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하나의 음성.

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신부의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건우는 눈을 감았다.


물에 잠긴듯 편안하고 고요한 감각이었다.


***


...편안했었는데.


"뿌애애애애앵!!!"


뿌애앵??


"여자아이 목소리가 뭐 이렇게 우렁차? 기사감이로구나!!"


건우는 눈을 떴다.


"어머, 우리 아들은 울지도 않아?"


눈동자를 또륵 굴려 옆을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푸른 남자 하나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까 뿌애앵! 하고 울은 여자아이를 안아든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요안나다! 요안나 드 아르크!"


요안나.


'요안나... 잠깐. 잔 다르크?'


'말도 안돼!!!'


그제서야, 남자아이가 빼애액 하고 울었다.


1412년 1월 6일.


프랑스 북동부 동레미 마을에서 각각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가 태어났다.


'왜 살아있는 거냐고!! 여긴 또 어딘데!!'


남자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의말

잔다르크는 어릴 따 자네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요안나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고자 합니다. 요안나는 잔의 라틴어식 표기라고 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는 이야기로 보답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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