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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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봉
작품등록일 :
2024.09.03 13:47
최근연재일 :
2024.09.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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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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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사가 될 거야

DUMMY

파악!


조악한 짚 인형을 나뭇가지로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악! 파악!


소리를 낸 주인은 다름 아닌 요셉 르페브르였다.


'삼천삼백칠 번.'


나뭇가지를 내리친 횟수였다.

요셉의 몸에서는 난데 없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일에는 성당엘 간다.

그리고 주일이 아닌 날에는 목장의 돼지들에게 밥을 주고, 돼지 우리를 청소하고, 이렇게 검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잔다르크를 구하려면 이 정도로는 택도 없지.'


훗날, 구국영웅이 되는 요안나.

동시에 마녀로 몰려 노르망디 루앙성 광장에서 화형 당하는 요안나.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했다.


'삼천삼백팔 번!'


따악!


"아얏!"


때마침 나뭇가지가 부러져 요셉의 이마를 때리고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요셉 또한 밭은 숨을 내쉬며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목검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골 마을의 평민이 잘 만들어진 목검을 구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도, 평민이 무슨 검을 연습하냐며 돼지나 관리하라고 역정을 내셨으니까.

부모님께 부탁을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낮은 담장 너머로 손가락이 불쑥 올라왔다.

이윽고 낑낑대며 얼굴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요안나였다.


"요, 요셉! 또 이상한 수련 하고 있었어?"

"이상하다니. 검술 수련이라고."

"에고! 문 좀 열어줘! 여기 너무 높아!"


아직 채 성장하지 않은 8살 꼬마에게 집의 담장은 너무 높았다.


요셉은 후들거리는 팔을 땅에 짚어 일어섰다.

그리고 집 대문을 열었다.


"요안나 등장!"


요안나는 발랄하게도 문지방을 뛰어넘으며 그렇게 외쳤다.


"왜 또 왔어?"

"요셉은 바보야? 어제 성당 같이 가면 놀아주겠다며! 근데 놀아주지도 않고 집에 갔잖아!"

"그건 요안나가 잠에 들어버려서 이사벨 아주머니가 안고 집에 간 거잖아?"

"아무튼! 어제 약속 안 지켰으니 오늘은 약속 꼭 지켜!"


요셉은 그런 요안나가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아직은 좀 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요안나가 제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해?"

"짠!"


곧이어 꺼낸 것은 다름아닌 중세 프랑스의 화폐인 1프랑이었다.

아이리스 꽃이 조각된 고딕 캐노피와 갑옷을 입은 군주가 새겨진 금화.


장 2세가 프랑스로 귀환하며 만들었던 화폐 프랑(franc).

24캐럿의 순금으로 제작된 장 2세의 프랑 아 슈발 (franc a cheval)에 새겨진 그림은 말을 타고 있는 군주였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샤를 5세가 아이리스 꽃이 장식된 고딕 캐노피와 갑옷을 착용한 군주를 새겨낸 금화를 만들었다.


요셉은 요안나가 가져온 프랑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난 건데?

의문은 곧 요안나가 해결해주었다.


"엄마 방에서 가져와써! 번쩍번쩍!"

"이사벨 아주머니 뒷목 잡으시겠네."

"가자!"

"어딜?"

"요셉 목검 가지고 싶다며! 마을 밖에 시장에 가면 목검 파는데가 있던데."


요셉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고마웠지만 이건 요안나의 돈이 아니었으니까.


"요안나. 남의 돈을 훔치는 건 나쁜 거야."

"남의 돈 아닌데? 엄마 돈인데."

"그게 남의 돈이야. 자, 얼른 이사벨 아주머니께 죄송하다고 하고 돌려드리자."


잠시 후-


"어머, 요셉 왔니?"

"이사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요셉은 제 뒤에 숨은 요안나를 억지로 끌어냈다.


"요안나. 요셉이랑 놀러간다더니 왜 여기에 있어?"

"그, 그게...."


요셉은 요안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요안나가 화들짝 놀라며 제 손에 들린 프랑을 이사벨을 향해 내밀었다.


"엄마 미안! 남의 돈을 가져와써!"


이사벨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남의 돈을 가져왔다.

즉, 남의 것을 훔쳐왔다.


그 착하디 착한 요안나가 남의 돈을 훔쳤다니.

이사벨은 오해를 해도 단단히 했다.


요셉은 당황하며 요안나의 말을 고쳤다.


"아, 아니에요. 요안나가 훔친 게 아니라 이사벨 아주머니 방에서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제서야 이사벨은 웃을 수 있었다.


"아아! 난 또 뭐라고. 휴."


그리고는 옆구리에 손을 올리며 짐짓 엄중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요안나. 아무리 번쩍거려도 그렇지 네 물건도 아닌데 손을 대면 어떻게 해?"

"히잉, 엄마 미안......."

"다음부턴 그러지 마?"

"우웅...."


시무룩해진 요안나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던 이사벨은 요안나의 손 위에 올려진 프랑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


요셉을 향해 내미는 것이었다.


"어, 네? 이걸 왜......."

"매번 우리 요안나와 놀아줘서 고마워."


그런 의미라면 요셉은 받고 싶지 않았다.


"친구랑 노는 건 당연한 거죠. 저는 받지 않을래요."

"우리 요안나가 워낙 천방지축이잖니? 목장 관리하랴, 요안나 돌보랴, 내 허리가 허리가 아니었어. 근데 2년 전쯤인가? 요셉 네가 우리 요안나랑 같이 놀아주고 나서부터는 얼마나 편했던지. 아팠던 허리가 다 나을 정도였어."

"그래도......."

"아줌마가 말을 다르게 해야겠네. 친구 해줘서 고맙다고 주는 게 아니라 아줌마 편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용돈 주는 거야. 요안나한테 들으니 목검 사고 싶어 한다며?"


요셉은 요안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모든 걸 다 말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받아줘. 이거면 목검 하나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야."


요셉이 우물쭈물 하자, 요안나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프랑을 빼앗았다.


"요안나가 사줄 거야!"


그리고는 저 멀리 도망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요안나를 보며 이사벨은 웃음기 있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른 가봐. 어째 요안나가 더 신난 것 같니?"


요셉은 감사 인사를 까먹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이사벨 아주머니. 정말 감사해요! 꼭 좋은데 쓸게요!"

"어? 어어 그래."


멀어져 가는 요셉과 요안나를 보며 이사벨은 가만히 웃음을 지었다.


*


마을 바깥으로 향하니 정말로 행상인 상렬이 있었다.


12세기 상품 화폐가 발달하며 돈을 벌 수 있게 된 상인들은 생각했다.

나라가 수백개로 쪼개진 게 아니라 하나라면 통행세, 세금, 서로 다른 화폐 환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다 보니 통일국가를 염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백년전쟁도 표상적으로는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에 지분을 제기하며 벌어진 것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통일국가를 염원하는 세태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요셉과 요안나는 지나가는 행상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아저씨."


마차를 끌고 파리로 향하던 행상인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두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응?"

"목검 있어요?"


요안나는 배시시 웃으며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샤를 5세가 만든 프랑화가 요안나의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행상인은 잠시 생각했다.

목검이야 있지만 1프랑으로는 살 수 없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목검이 어째서 금화보다 비쌀 수가 있나 싶겠지만 이 당시 프랑스는 전쟁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약화 되었으며 제대로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수공업 제품은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나라에서 받지 못한 돈, 사람들에게라도 받자는 생각에서였다.


행상인은 요안나 대신 요셉을 바라보았다.

이 조그만 소녀가 목검을 휘두를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저 남자아이를 위해 목검을 사려는 것인가?


"1프랑으로는 안되는데."

"에에? 이게 더 번쩍거리는데요?"

"하하, 꼬마아가씨. 번쩍 거린다고 다 좋은 게 아니야."


요안나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 보였다.


"히잉, 그냥 주시면 안돼요? 곧 요셉 생일이란 말이에요. 선물하게 해주세요. 네?"


요안나의 귀여운 애교에 그만 행상인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위, 위험하다!'


물건을 팔고 돈을 얻는 상인의 특성 상 마음이 약해지면 안될 터인데.

이 작은 꼬마아가씨를 보고 이리도 마음이 약해지다니.


이번엔 요셉도 가세했다.


"형. 1프랑에 이거 주시면 절대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우리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거든요! 단돈 1프랑에 엄청난 투자를 하시는 거예요!"


요셉은 속으로 이게 맞나 싶었다.


요안나가 하던대로 두 팔을 쫘악 벌리고 귀여운 목소리로 꾸며 말했다.

쪽팔리고 창피했지만 외관은 귀여운 8살 아이.


하지만 요안나를 쳐다보는 것만큼 행상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꼬마애가 투자를 어떻게 알아?'


언제나 그렇듯 단어가 문제였다.


행상인은 고민했다.

투자라.


솔직히 팔고 남은 목검들이 있긴 했다.

안 그래도 전쟁이 한창이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귀족 가문에서 대량으로 주문했던 목검들이 있었다.

그만큼 질긴 나무로 만들어져 품질도 최상급.

그 와중에도 금이 가 있다고 귀족 가문에서 퇴짜를 맞은 물건이었다.


그런게 딱 한 자루가 남아 있긴 한데.

어차피 대량 주문에서 남은 것이기도 하고, 가져가봤자 땔감용으로밖에 안 쓰일 테니 1프랑이라도 받고 팔아?


행상인은 힐끔거리며 요안나를 바라보았다.

똘망똘망 귀여운 그 눈빛에서 별표창이 수십개는 날아와 자신의 심장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남는게 하나 있긴 한데...."

"주세요!"

"에잇, 그래. 기분이다! 자! 1프랑!"

"히야아!!!"


요안나는 행상인이 건네는 목검을 받고는 날듯이 기뻐했다.

어쩜 자신보다도 더 기뻐하는 요안나를 보며 요셉은 웃음을 삼켰다.


"감사합니다!"

"복받으실 거예요! 투자 성공하실 거라고요!"


행상인은 다시 말을 몰았다.

멀어져 가면서도 생각했다.


'뭐 저런 애늙은이가 다 있어?'



*



요셉은 요안나와 함께 마을로 돌아오며 방금 얻은 목검을 휘둘러보았다.


훙- 훙-


손에 착 감기는 굵기.

매끈한 몸체.

물론 살짝 금은 가 있었지만 검술을 연습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좋아, 요셉?"


요안나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요셉을 쳐다보았다.

요셉은 어린 아이에게 별 것도 아닌 걸로 신난 걸 들킨 어른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냥, 뭐."

"헤헤, 생일 선물이야."

"요안나도 생일이잖아? 갖고 싶은 거 없어?"

"나는 요셉이 맨날맨날 놀아주는 거!"

"그건 지금도 하고 있잖아...."

"히히. 그런데 요셉은 그런게 왜 갖고 싶어?"


요셉은 곧게 뻗은 목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널 구하기 위해서는 기사가 되어야만 해.

언젠가 네가 전장에 나가게 될 때, 나도 함께 나가 싸울 거야.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삼키는 요셉이었다.


"나는 기사가 될 거야."

"기사?"

"응."

"멋져!"

"정말?"

"응!"


그때였다.


"크큭, 평민 나부랭이가 기사는 무슨."


앙칼지고, 또 비아냥 대는 목소리.

요셉은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돌아보니, 러셀이 제 따까리 두명을 데리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2년전, 요셉을 어지간히도 괴롭혔던 그 러셀이었다.


작가의말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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