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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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봉
작품등록일 :
2024.09.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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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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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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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고

DUMMY

프랑스 발루아 왕가이자, 광인왕 샤를 6세의 막내아들 샤를 7세는 신경질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카앙!!


그 바람에 샤를의 검술 스승이던 가스파르 남작의 검이 심하게도 튀었다.


"왕자 전하. 마음을 다스리셔야 합니다."

"어떻게!!"


1420년 5월 21일.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체결 된 트루아 조약의 여파로 샤를은 왕위 계승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자신의 누나인 캐서린이 잉글랜드 왕 헨리 5세와 결혼을 하러 떠났다.


이제 그 사이에서 아이가 나온다면 자신은 찬밥신세가 될 터.


영민하고 꾀가 많은 샤를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아버지는 도대체 왜!"


17세의 샤를은 발을 쾅쾅 굴렀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광정이 날로 심해져 가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당연히 프랑스 국민들은 샤를 7세가 얼른 왕위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샤를 또한 국민들의 바람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도팽의 칭호를 물려받는 줄 알고 있었는데.


웬 이상한 약속으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와 왕위를 놓고 싸워야 한다니.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북부가 전부 저 섬나라 놈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왕께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셨다면 프랑스는 설 자리가 없었을 겁니다."

"싸워야지! 되찾아 와야지!"


샤를은 한동안 불같이 화를 내더니 검을 내렸다.


여기서 이렇게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건 그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연무장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바르공국 위병이었다.


"프랑스 왕자 전하를 뵈옵니다."


샤를은 여전히 짜증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위병을 흘겼다.


"무슨 일이냐."

"바르 공국 위병 세르톤이라 합니다. 공국 내 동레미 마을에서 일어난 귀족 폭행사건의 범인을 잡아왔습니다."


샤를은 미간을 찌푸렸다.


"허! 귀족씩이나 돼서 평민에게 쳐맞다니. 그나저나 바르공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면 공국 내에서 자치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지 왜 나한테까지 오는 거야?"


샤를의 말에 위병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것이.... 그 자가 샤를 왕자님을 꼭 만나야겠다고 했습니다. 분명 샤를 왕자님께서 자신을 부를 거라고 하였습니다."


샤를은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평민을? 뭐하러?"

"그게 아니더라도 이 범죄자가 파리 고등법원의 판결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은 무죄를 주장하며 왕자전하의 입회 하에 판결을 받고 싶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죄 추정이라."


샤를은 잠시 고민했다.


귀족을 폭행한 사건은 중죄다.

하지만 샤를은 그것을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귀족에게 검술 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그는 귀족들의 힘이 약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만 봐도 그렇다.

광정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지방 영주들이 얼마나 득세했던가.


왕이란 자고로 왕이라는 사실 하나로 위엄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주변 영주들에게 휘둘리는 왕이라니.

샤를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귀족들의 힘을 꺾고 싶어했다.


당연히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꿈이자 목표였다.


왕권을 강화해야만 지금 같은 대전쟁의 화마 속에서 프랑스라는 국가를 건실히 유지할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샤를은 깊게 고민했다.


아직 도팽의 칭호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잉글랜드 왕에게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 자신이 왕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럴 때 공명정대한 판결을 도와준다면 차기 왕으로서 입지를 한 번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범죄자가 자신을 직접 찾는다니, 명분 또한 충분하고.


샤를은 고민을 마치고 검을 집어 넣었다.


스승 가스파르 남작이 말했다.


"왕자 전하. 한낱 범죄자의 청을 모두 들어줄 필요는 없사옵니다."

"가스파르. 한 명의 억울한 국민이 내게 도움

을 청하지 않는가."


샤를이 위병을 향해 말했다.


"데려오게. 그 억울한 국민을. 내 앞으로. 당장."



***



요셉은 위병에게 거칠게 이끌려 거대한 문이 딸린 방 앞에 섰다.


위병들에게 맞아 여기저기 부어올랐으며, 멍까지 들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죽지 않았다.


"왕자 전하. 범죄자를 데려왔습니다."


안에서 들어와도 좋다는 기별이 들리자, 위병은 요셉을 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멋있는 장식품과 깔끔한 대리석 바닥이 드넓게도 펼쳐진 이곳은 평소 샤를 왕자가 집무를 보는 공간이었다.


고등법원에서 판결을 받기 전에 샤를이 먼저 불러낸 것이었다.


벽을 보고 있던 샤를이 뒤를 돌아 방금 들어온 요셉을 바라보았다.


"많이도 맞았군. 바르 공국의 위병은 프랑스 성왕께서 공표하신 무죄추정 원칙을 모르는가?"


13세기, 프랑스의 성왕 루이 9세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도입하고 고문을 완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죄가 성립되기 전까지는 죄인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얼굴은 완전히 넝마가 되어 있었으니 샤를이 화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죄, 죄송합니다."

"쯧. 남겨두고 자네는 물러가게."

"물러가겠습니다."


위병이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손이 뒤로 묶인 요셉은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위대하신 도팽, 샤를 왕세자 전하를 뵙습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데려온 것인데, 샤를은 화들짝 놀랐다.


아직 왕세자의 칭호인 도팽을 물려받지도 못하였는데, 이 조그만한 아이가 왕세자의 칭호를 언급한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샤를은 기분이 좋았지만, 동시에 경계했다.


예로부터 입에서 달콤한 말을 내뱉는 놈들 중 제대로 된 자는 없었다.


"무엄하구나. 아직 왕께서 공식적으로 도팽의 칭호를 내려주신 적이 없으신데. 너는 왕정의 질서를 무시하려 하는 것이냐?"


짐짓 엄중한 어조로 꾸짖었으나, 눈앞의 여덟살 어린이는 전혀 풀이 죽지 않았다.


"어찌 질서를 무시하겠나이까. 저는 그저 이것이 옳게 된 질서라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옳게 된 질서라.

과연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하며 샤를이 한걸음 다가섰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귀족을 폭행했다면서? 정말이냐? 귀족을 폭행한다는 건 중죄에 해당한다. 네가 그렇게 옳다고 울부짖는 질서를 깨는 행위란 말이다."


요셉은 샤를의 발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샤를 7세는 왕이 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워낙 두뇌가 총명하고 또 영민하여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 인물.

그래서 자신의 대관식을 거행할 수 있게 도와준 잔다르크까지 버렸던 인물.


그리고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지방 분권화 된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중앙집권화 시켜 왕권을 강화했던 인물이다.


그의 어린 시절까지 요셉은 알지 못했지만 짐작은 가능했다.


그 정도의 개혁을 추진했던 인물이라면 지방 영주들의 강한 힘을 탐탁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겠다는 짐작.


요셉이 말했다.


"질서는 왕에서부터 시작해 왕으로 끝나는 거라 알고 있습니다. 어찌 몰락해 평민들 틈으로 도망친 귀족이 질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요셉은 뜸을 들였다.


샤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더 해보라는 듯 턱을 치켜들고 있었다.


침묵을 확인한 요셉이 계속해서 말했다.


"게다가 그 녀석은 제 친구를 때리고 발로 밟았습니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국민을 그 어떤 권위도 가지지 못한 귀족이 제가 귀족이랍시고 제 멋대로 힘을 과시한 것입니다. 저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방어를 했을 뿐입니다."


샤를은 뒷짐을 지었다.


여덟살 꼬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또 눈빛에 힘이 있었다.


정말 죄를 지었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저리 말을 잘 할 수 없을 테니까.


샤를이 말했다.


"고개를 들라."


요셉은 처음엔 거절했다.


"내가 허락한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거라."


그제서야 요셉은 고개를 들어 샤를과 눈을 마주했다.


샤를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저 지방 촌구석에 쳐박혀 살던 평민에게서 나올법한 눈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눈빛은 목표가 확실한 눈빛이었다.

그 잘 벼려진 시선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다지 싫어하는 눈빛은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목표가 확실한 녀석이 발을 맞춰 걷는다면 그만한 철갑기사도 없겠으나,

만약 조금이라도 발걸음이 틀어진다면 그만한 잘 벼려진 검도 없는 법이었으니까.


"네 말이 맞다. 죄도 없는 사람에게 귀족이랍시고 함부로 힘을 행사해서는 안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또 잘못인 것은 아니다. 계급은 확실하고, 그걸 위배하는 것은 중죄가 맞으니."


자, 어떻게 나올 것인가.

샤를은 기대하기 시작했다.


요셉은 샤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세계사에 대해 조금은 공부를 해놨던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도팽께서 만드실 프랑스는 어떻습니까?"

"뭐라?"

"저 극악무도한 섬나라 놈들을 전부 쳐내고 도팽께서 만들어 가실 프랑스에서는 감히 왕명에 토를 달고 왕처럼 행동하는 귀족들이 존재합니까?"


샤를은 미간을 구겼다.


짜악!


다짜고짜 요셉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건방진 놈이로구나. 멍청한 건지, 용기가 가상한 건지."

"죄송합니다."

"네놈의 입으로 시인했으니 너는 중범죄자가 맞다."


샤를은 홱 몸을 돌렸다.


처음부터 용서해줄 생각은 없었다.


귀족의 발만 밟아도 중형이 선고되는 이 프랑스에서 귀족을 폭행한 범죄자를 자신이 용서한다면, 수많은 귀족들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저 억울할 수 있는 평민을 친히 불러 문답을 하고 적절한 형량을 부과하면 그만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샤를은 이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멍청한 평민 나부랭이가 지껄이는 뜬구름잡는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드는 프랑스라.'


그 말이 주는 울림이 상당했다.


샤를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그 용기를 가상하게 여겨 왕자의 권한으로 직접 형을 선고하도록 하마. 본래라면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합당하나."


샤를은 고개를 살짝 돌려 요셉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네가 말한 섬나라 놈들과 전쟁이 한창이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긴 하지만 또 언제 야금야금 프랑스 땅을 먹으러 들어올지 몰라. 감옥에서 여생을 썩히는 것 보다는 전장에 나가 네 운을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샤를이 외쳤다.


"여봐라!"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위병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왕자 전하."

"직접 형을 선고하겠다. 지금 즉시 이 범죄자를 데려가 훈련시켜라."

"예?"

"네 놈이 운이 좋다면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네놈의 죄는 묻지 않겠다."


요셉은 눈을 들어 샤를을 쳐다보았다.


전혀 동요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눈빛.

전장에 나가 죽을 수 있었음에도 힘을 잃지 않는 눈빛이라.


샤를은 불쾌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샤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라."

"언젠가 왕자 전하를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꼭 한 번 그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샤를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예언가를 자처 하려는 것이냐? 또 한 번 중죄를 저지르려는구나?"

"예언이 아닙니다. 그저 흘려 들으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요셉이 할 수 있는 것은 훗날 잔다르크를 구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정해진 역사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듣지 못했어야 할 이야기들.

원래라면 만나지 만났어야 할 사람. 요셉.


이미 이때부터 조금씩 세상에 균열이 가해지고 있었다.

요셉의 존재 자체가 균열의 증거였다.


"데려가라."

"예."


그 길로 요셉은 위병의 손에 이끌려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샤를은 제 집무실에 난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동레미 마을에서 온 눈빛이 이상한 사내는 빠져나가고 없었다.

애당초 오래 머릿속에 담아둘 만한 가치가 없는 평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그 이상한 평민이 남긴 말은 가슴에 새겨졌다.


'내가 만드는 프랑스. 내가 만드는 프랑스라....'


샤를의 왕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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