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맥봉
작품등록일 :
2024.09.03 13:47
최근연재일 :
2024.09.11 17:59
연재수 :
8 회
조회수 :
820
추천수 :
50
글자수 :
38,373

작성
24.09.11 17:59
조회
51
추천
4
글자
13쪽

7. 오를레앙 전투(1)

DUMMY

요 며칠 요안나는 자꾸만 자신을 괴롭히는 이상한 소리에 밤잠도 설치는 중이었다.


집에 누워 있으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창문을 닫았음에도 귓가에 머무는 바람소리 때문에 요안나는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요안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주여, 악마의 속삭임에 놀아나지 않게 도와주시옵고......."


열세살의 소녀는 더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과거 요셉을 보내버렸던 러셀도 이제 자신에게는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다.


왜 매일같이 쳐 맞으면서도 위병들에게 신고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이 바람소리만큼은 무서웠다.

두렵고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그런 것일까?


며칠 밤을 고민하던 요안나는 동레미 마을에 있는 작은 성당을 찾았다.


그동안 요셉을 돌려달라고 하도 욕을 많이 해서 벌 받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에 고해성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드르륵- 탁!


고해실의 작은 문이 열리고, 반대편 방에 앉은 신부가 방금 들어온 소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요안나구나?"

"고해성사 하려고요."

"무슨... 고해를 하려고?"


고해실에 찾아온 성도들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신부가 왜인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찌 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다짜고짜 뭘 말이냐?"


요안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감히, 제가 감히... 주님께 욕을 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난 또 뭐라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면 주실 것이다. 마음 깊이 반성을 한다면......."


요안나는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닦으며 신부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너무하신 건 맞잖아요?"


맞은편 방에 앉은 신부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어째, 조용하고 차분하게 고해실에 들어오는가 싶더라니.

신부의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너 고해 하러 온 거 아니지?"

"아니, 맞잖아요. 솔직히. 어떻게 그 착한 애를 데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안 알려줘. 뭐 들어준 기도가 있기는 합니까? 예? 그래놓고 뭐? 이제와서 욕 조금 들었다고 벌? 어쩜 이렇게 이기적이실까요? 우리 주님은."

"얌마! 요안나!"

"솔직히 오 년동안 쥐죽은듯이 조용히 성당 나와서 기도 했으면 된 거지 뭘 더 바래요? 에? 신부님? 하느님이 뭐래요?"

"누가 기도 하랬냐! 주님 좋으라고 기도하는 건 줄 알어!"

"그럼 누구 좋으라고 해요?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 섬기는 거 좋아하는 거 맞잖아!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성당 데려오려고 하는 거잖어!"

"아이고, 머리야."


신부가 이마를 짚었다.

한두 번이 아니다.

고해실에 와서 깽판을 친 것이.


"나 나간다."

"아니 신부님이 고해 들어주다 말고 어디가세요?"

"고해가 아니라 고역이다. 고역."

"신부님! 하느님이랑 대화가 되면 좀 물어봐달라고요! 왜 그러셨는지! 다 계획이 있다면서요!!"


쾅!


신부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고해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몸을 일으키면서까지 소리를 쳤던 요안나는 풀썩 의자에 몸을 주저 앉혔다.


"물어봐...달라고요. 왜 그랬는지. 그 어린 것한테 뭔 잘못이 있다고 그랬는지...."


이제는 눈물 조차 나오지 않는다.

얼굴도 까먹었다.

지금쯤이면 어떤 남자가 되어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다시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휘이잉-


또다시 요안나의 귓가에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람소리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면. 그래서 네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창문도 전부 닫혀 바람 조차 불 수가 없는 고해실 안에서 요안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후, 요안나는 매일 같이 고해실을 찾았다.

처음에는 가만히 들어주던 신부님도 요안나가 떴다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요안나는 고해를 하기 위해서 고해실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점점 뚜렷해지는 바람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

처음 몇 번이야 진짜 고해를 위해 찾았지만, 찾을 수록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저 귀를 간지럽히던 바람소리가 이제는 꽤나 선명해졌다는 것.


"찬송가...?"


그래.

이제 그것은 더이상 바람소리가 아니었다.

아아- 하고 울리는 성스러운 찬송가 소리.


전에는 자기 전에도, 길을 걷다가도 아무때나 들려오던 소리가 이제는 고해실 안에서만 들려오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건 신부님께 물어보는 것일 테지.


요안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고해실 안으로 들어섰다.


드르륵- 탁!


신부는 작은 나무 창을 열더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놔. 오늘은 베드로 신부님이 고해실 박차고 나가면 혼난다 그랬는데.'


요안나만 오면 도망치듯 나가버리는 탓에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부는 어쩔 수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물었다.


"요, 요안나구나? 무엇을 고해하기 위해... 왔니?"


또 욕만 했단 봐라.

밖에 베드로 신부님도 있으니 다 일러주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요안나가 입을 열었다.


"...신부님."

"응?"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이건 또 무슨 수작이란 말인가.

신부는 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서 또 하느님을 원망하는 말을 쏟아내겠지.

사탄의 속삭임이 마음 속에 파고 들 것이야.


'오, 주여. 왜 제게 이런 크나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아, 아니, 원망한 거 아닙니다.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요안나의 악마같은 속삭임에 빠져들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신부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무슨 소리인데?"

"신부님은 안 들리세요? 여기만 들어오면 아주 잘 들리는데."

"무, 무슨 소리? 하하...."

"찬송가."

"찬...송가? 성가대는 다 집에 가고 없는데?"

"성가대가 아니에요. 이건 성령의 목소리?"


요안나는 제 귀에 들려오는 기이하고 축복가득한 멜로디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몸이 붕 뜨는 느낌.

머릿속을 괴롭히던 어떤 걱정이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

온 몸에 소름이 돋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동시에 찾아왔다.


"...안나? 요안나? 괜찮니?"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요안나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고해실 안, 나무로 된 벽.

그 위에 천천히 무언가가 쓰여지고 있었다.


확실하게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것마냥 나무로 된 벽이 패이며 글자가 완성되어가기 시작했다.


"......신부님? 나무 판자에 저절로 글이 써지기도 하나요?"

"그건 또 무슨 정신 나간 소리... 헙! 크흠. 그, 그럴리가 없잖니? 요안나."


하지만 요안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무 벽 위에 천천히 글씨가 쓰여지는 광경을.


요안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가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나무 벽을 쓸었다.


'진짜다.'


패인 나무 벽은 진짜였다.

손가락으로 쓸면 까끌까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나무가시가 튀어나와 손가락을 찌른 것도, 그 통증도 전부 진짜였다.

꿈일 수가 없었다.


귓가에서는 계속해서 성령 충만한 찬송가가 들려오고 있었다.


요안나는 동공을 떨었다.


기적.


이럴 수는 없는데?

나 맨날 원망만 쏟아냈는데?

하느님 욕만 엄청 했는데?


이윽고, 글씨는 다 쓰여졌다.


요안나는 벽에 새겨진 글씨를 읽고서 제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그리고 천천히 읽었다.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요안나의 음성이 삐져나왔다.


"프랑스...왕을 구해라...?"


[프랑스의 왕을 구해라.]


그것이 잔다르크가 받은 첫번째 계시였다.



***



잔다르크가 첫 계시를 받은지로부터 3년 뒤인 1428년.


잉글랜드 헨리 6세의 섭정 베드퍼드 공작이 움직였다.

트루아 조약의 이행을 위해 부르주에 본거지를 둔 프랑스의 도팽, 샤를 7세의 군대를 끝장내기 위함이었다.


솔즈베리 백작이 이끄는 잉글랜드 군대 5000명은 오를레앙 성 주변을 포위했다.

오는 길에 물자 보급로를 확보했으며, 오를레앙 성으로 접근하는 루아르강 일대의 경로에 대한 통제권 또한 확립했다.


도팽 샤를은 비보에 침음했다.

오를레앙이 무너지면 끝이었다.

오를레앙이 무너진다면 샤를이 본거지로 두고 있는 부르주까지 잉글랜드 군이 진격할 것이고, 자신이 포로로 잡히는 순간 프랑스는 끝이었다.


이에 오를레앙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두 국가간 가장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다.


누가 먼저 오를레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가 프랑스 왕위 결정에 대한 관건이었다.


오를레앙 성이 포위 된 10월.

요셉 또한 오를레앙에 있었다.


"알로인 백작님. 교외의 모든 민가와 밭을 불태워야 합니다."


평민 출신의 일반 병사. 요셉의 정신나간 소리에 알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면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쩌고?"

"그대로 남겨두었다가는 적에게 물자를 제공하는 꼴 밖에 더 됩니까?"


요셉은 전쟁을 겪어본 적은 없었으나, 군대를 다녀온 현대인이었다.

후퇴를 할 때 물자를 전부 남겨 두고 온다면 적에게 도움이 된다는 기본적인 전술을 모를 리가 없었다.


"벌써 올리베 마을이 약탈 당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었던 음식과 물자로 저들은 오를레앙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알로인은 요셉의 말을 곰곰히 생각했다.

아예 틀린 소리는 아니다.

현재 오를레앙은 포위되었으며, 적들은 북부에서부터 오를레앙으로 향하는 길목을 전부 공략한 상태.

물자의 수송도 편리할 뿐더러, 교외의 마을에서까지 약탈을 감행한다면 오를레앙 성은 계속해서 고립될 것이 뻔했다.


본국에서 언제 수송물자가 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적에게 빼앗기기만 했다가는 정말로 오를레앙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알로인은 민병대장을 향해 물었다.


"어찌하고 싶으냐? 민병대는 어떤 생각이지?"


민병대장 몽프가 요셉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민병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지금만 생각해야겠지요. 교외의 마을들에는 수많은 경작지가 존재합니다. 거기를 그대로 두고 왔다가는 적들은 삼년, 아니 오년도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안에 갇혀서 독안에 든 쥐처럼 말라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적에게 물자를 제공하느니 차라리 다 파괴해버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알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워렌이 말했다.


"문제는 누가 하느냐는 겁니다. 성문을 열고 나가서 파괴한 후 다시 들어와야 하는데, 밖에는 오천이나 되는 적군이 있습니다."


알로인이 말했다.


"전부 나가서 싸울 수는 없다. 그건 성을 버리고 전면전을 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적은 병력으로 확실히 교외의 모든 주택과 농지를 황폐화 시키고 돌아와야 한다."


알로인은 침음을 삼켰다.

누구에게 시킨단 말인가.


기사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한 일일 뿐더러, 기사도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몇 안되는 기사들이 당장에 나가서 정면으로 맞붙자고 성화인 마당에 쥐새끼처럼 숨어 나가 적의 은신처가 될만한 것들을 전부 파괴하라는 명령에 움직일 리가 없었다.


그때, 요셉이 자신있게 손을 들었다.


"300명만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알로인은 화들짝 놀라며 요셉을 바라보았다.


"네가?"


알로인은 요셉의 눈을 쳐다보았다.

처음 봤을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눈빛이다.


처음에는 어린 놈이 무슨 전쟁이냐며 돌려보내려고 했었지.

하지만 이를 악물고 덤비는 놈에게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라고 섣불리 말하지 못했다.


요셉은 크고 작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기까지 했다.

열여섯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전장에서는 용맹했으며, 동료들에겐 자애로웠다.

그의 손에 살아난 동료 병사들이 도대체 몇 명이던가.

요셉은 이미 한 사람을 뛰어넘는 역할을 톡톡히 해준 병사였다.


그러니, 더더욱 아끼고 싶었다.

기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장에서 죽지 않게는 해주고 싶었다.


결국 모든 전쟁이 끝났을 때, 부모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직접 나서서 작전을 수행한다니.


"할 수 있겠나?"


걱정이 되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요셉이 아니라면 할 만한 인재도 없었다.

그걸 알기에, 알로인은 심장이 미어짐을 참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말을 내뱉었다.


"일주일."


요셉은 알로인을 보며 자신감에 찬 웃음을 보였다.


"뭐?"

"일주일만 주시면 제가 저 놈들을 물러가게 만들겠습니다."


잉글랜드 - 프랑스 백년전쟁의 전환점이 되는 오를레앙 전투.

전쟁 한 번 겪어보지 않았던 현대인 장건우이자, 잔다르크의 소꿉친구인 요셉 르페브르.

그는 난생 처음 겪는 전쟁 속에서 두려울 때마다 항상 한 가지를 생각했다.


요안나를.


[지금쯤이면 주님께서 요안나를 설득하셨겠죠.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죽지 않는다는 걸 믿습니다. 그게 바로 주님께서 제게 부여한 역할이니까요. 주여, 제게 주님을 믿고 나아갈 용기를 주시옵소서.]


요셉은 주머니 속의 빛바랜 십자가 묵주를 꽈악 쥐어보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잔다르크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7. 오를레앙 전투(1) 24.09.11 52 4 13쪽
7 6. 서막 24.09.10 59 6 10쪽
6 5. 선고 +1 24.09.08 75 6 12쪽
5 4.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24.09.07 92 5 14쪽
4 3. 기사가 될 거야 24.09.04 111 4 11쪽
3 2화. 친구 +2 24.09.04 137 9 11쪽
2 1화. 시작점 24.09.03 145 8 12쪽
1 프롤로그 +2 24.09.03 150 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