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맥봉
작품등록일 :
2024.09.03 13:47
최근연재일 :
2024.09.11 17:59
연재수 :
8 회
조회수 :
816
추천수 :
50
글자수 :
38,373

작성
24.09.10 19:02
조회
58
추천
6
글자
10쪽

6. 서막

DUMMY

"신입이 들어온다며?"

"들리는 소문으로는 귀족 아굴창을 한 대 갈겼다는데."

"뭐래. 목검으로 대굴빡을 쳐서 대가리를 두 동강 냈대. 그 귀족 놈 죽었다는군."

"목검? 시발 평민이 목검을 어디서 구해? 자꾸 거짓말 할래?"

"나뭇가지 튼실한 거 하나 깎으면 그게 목검이지."

"어디서 들었는데? 어? 너 아니면 뒤질 줄 알아라."

"감자나 캐 먹다 온 놈이 뒤지긴 뭘 뒤져. 땅이나 더 뒤져. 감자나 먹게."

"킥킥킥!"

"푸하학!"

"이 씨벌럼이 말 다했냐? 술찌꺼기나 주워 먹던 놈 주제에."

"술찌꺼기가 아니라 술지게미."

"그게 그거지 어차피 쓰레기 주워 먹는 건 똑같은데. 내가 버린 술도 주워 먹었냐? 맛 어땠냐?"

"시벌. 그런 쓰레기 아니라니까!"


새로 들어온다던 신입, 요셉 르페브르에 대한 이런저런 말이 한창인 가운데, 평민들로 이루어진 병사 무리에서 높은 언성이 들려왔다.


병사들을 교육하고 감독하는 기사 알로인은 요란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평민 병사 두 명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을 하고 있었다.


"어이, 거기!"


알로인이 다가갔음에도 이미 한창 달아오른 분위기는 쉬이 꺾이지 않았다.

주변 놈들이 더 했다.

'이기는 편 내 편!' 이라는 희대의 망발까지 싸지르며 둘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아주 힘이 넘치는 모양이군. 좋다. 석식 없이 세시간 더 훈련시켜주도록 하지."


알로인은 평민들을 다루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못 배워먹은 무식한 놈들에게 말로 타이르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니까.

가뜩이나 부실한 저녁이었지만 그마저도 주지 않고 훈련을 시킨다고 하면 알아서 주먹다짐을 멈추는 것이 그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서로 잡았던 멱살을 풀고 항의하듯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교관님! 그건 아니죠!"

"그래요! 이 새끼가 먼저 시비 걸었는데 왜 제가 같이 벌 받아야 하는 건데요?"


알로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끝까지 상황파악도 못하고 나대는 것은 평민의 특성인가?


"그러게 누가 싸우래? 너희 어제도 싸웠지? 이제 얼굴과 이름까지 외우겠군. 바흘, 워렌."


술찌꺼기를 먹는다던 남자가 바흘.

감자 캐 먹다 온 놈이 워렌이었다.


두 사람은 별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보며 한숨을 지었다.


그때였다.


"신참 받아라!"


떠밀리듯 연무장 한 켠으로 들어온 요셉이 휘청거렸다.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눈에 봐도 자신보다 열댓살은 더 많아보이는 사람들 뿐이었다.


놀란 것은 연무장에서 쉬고 있던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무 어리잖아···?'


이곳에 있는 평민 병사들 또한 제각각 사연이 있었다.

개 중에는 요셉처럼 죄를 지어 온 사람들도 있었고, 기사와 싸움이 났다가 잡혀 온 사람, 돈이 없어 자원한 사람, 돈을 갚지 못해 팔려온 사람 등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나이가 어느정도 있었다.


가장 어린 병사가 열일곱.


하지만 지금 연무장에 들어온 아이는 끽 해야 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완전 어린아이였다.


신입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던 병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어린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부터,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기사 알로인이 연무장 한가운데 나타난 요셉에게로 걸어갔다.


"이름은?"

"...요셉 르페브르입니다."


알로인은 자신을 쳐다보는 소년의 눈빛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불쾌했다.

이런 정열적이고 단단한 눈빛은.


둘 중 하나였다.


죽거나, 꺾이거나.


알로인 또한 전쟁 속에서 태어났고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

그런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이 목격했다.


"가서 갑옷으로 갈아입고 와라. 너에게 맞는 갑옷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잠시 후, 요셉은 갑옷을 걸치고 나왔다.


"풉."

"저 어린애가 뭔 죄가 있다고."

"그건 갑옷을 입은 게 아니라 안에 들어갔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군가의 말처럼 요셉에게 갑옷은 너무나도 컸다.

갑옷의 어깨가 거의 관자놀이까지 올라와 있었고, 투구는 눈을 전부 가렸다.


"쯧, 애송이를 도대체 어쩌라고."


알로인은 들리지 않게 혀를 찼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검을 손에 쥐었다.


"교관님? 뭐 하시려고요?"


워렌이 놀란 눈을 뜨며 물었다.

알로인은 대답 대신 요셉을 쳐다보았다.


'호되게 패면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울고불고 할지도 몰라.'


전장은 생각보다 참혹한 곳이다.

불에 타는 살 냄새.

여기저기 찢겨 튀는 피.

그리고 동료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내장.

어제까지 대화하던 동료가 한순간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리는 곳이 바로 전장이다.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약탈당한 마을만 봐도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곳.

그런 광경을 여덟살 짜리 꼬마아이가 버틸 수는 없을 터.

솎아 내려면 지금이 적기일 것이다.


아이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동료를 지켜줄 수 있는 강인한 병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여덟 살의 요셉은 아직 너무 어렸다.


"목검을 잡아라."


수많은 병사들이 이상하다는 듯 알로인과 요셉을 쳐다보았다.

요셉 또한 이상함을 느끼고 반문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터업!


아무런 말도 없이 목검을 잡았다.


알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두렵지 않은가?"


요셉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알로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당연히······."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알로인은 왼쪽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제 역할이라.

그 역할에 검을 쥐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리인가?

일반적인 여덟 살 꼬맹이가 아니었다.


"제 역할이라니?"

"친구를 구하는 것입니다."

"사내로 태어나 겨우 친구를 구하는 것이 너의 역할이라고?"


요셉은 생각했다.


겨우라.


예전에는 이 말에 크게 분노하고 자신의 삶을 한탄 했겠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이미 요안나는 요셉의 세상이자, 목표였다.

요안나를 잡아야, 자신 또한 살 수 있었다.


"겨우가 아닙니다. 이제는요."


요셉이 목검을 꼬나 쥐고 그 끝을 알로인을 향해 겨누었다.

알로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비웃음이었다.


"말을 못했군. 프랑스에 너 같은 어린 병사는 필요 없다. 곧 죽을 놈 뭐 하러 키우나? 맞아서 불구 되기 전에 알아서 돌아가라."

"검을 쥐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요. 프랑스의 고결한 기사 나으리께서 설마 도망가시는 겁니까?"


알로인이 목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도망?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감히.


알로인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선다.


"한 번이라도 내 몸에 네놈의 목검이 닿는다면 그땐 너의 승리다."

"예."


알로인은 움직이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 이긴다면 뭘 어쩔 셈이냐? 그 어린 몸으로 전쟁이라도 참여하게?"

"기사가 될 겁니다."


요셉의 말에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이윽고, 폭풍같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으하하핫! 평민이 기사래!"

"쪼그만 놈이 못하는 말이 없어!"

"큭큭큭, 재미는 있네. 교관! 저 녀석 광대 포지션으로 고용하는 건 어때?"


수많은 비아냥 속에서도 요셉의 눈빛에 실린 의지는 가벼워지는 법이 없었다.

알로인 조차 피식 웃었지만, 그 눈빛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뭐, 기사는 차치하고 닿을 수 있을지나 의문인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죠."

"먼저 들어와라."


요셉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요셉이 원한 순간은 아니었지만, 도움이 되는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 매일매일을 수천 번씩.


그렇게 연습했던 내려치기가 작렬했다.



***



"요안나. 요즘 들어 교회에 자주 나오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요안나는 가볍게 인사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요즘 들어 요안나는 하루도 빠짐 없이 성당에 와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누가 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요셉이 잡혀 가고 일주일.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다.

요안나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신밖에는 없었다.


'하느님 나빠요. 요셉 돌려주세요. 제발 요셉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요안나의 기도문은 항상 같았다.

언제나 요셉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느님에 대한 원망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은 알지만 어린 마음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요안나는 요셉의 말을 생각해냈다.


'내가 말했던 거 잊지마!'


요셉이 말했던 거.

거창한 것은 없었다.

그저,


'주일마다 꼭 교회 가기,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니까 절대 기죽지 말기.'


그 두 가지 뿐이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잡혀가는 와중에도 당부하듯 말했던 것일까?

요안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일마다 교회를 꼭 가야, 기죽지 않고 살아야 다시 요셉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라도 되는 것일까?


'요셉. 네 말대로 살게. 그러니까 제발 죽지 말고. 돌아와···. 돌아와서 같이 놀자.'


톡- 토옥!


매번 요안나가 앉는 자리의 의자 가죽은 눈물이 스며들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자리에는 앉지 않았다.

친구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클지 모두 알고 있었기에.

말을 하지는 않지만, 요안나의 밝은 표정 뒤에 어떠한 그림자가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 자리만큼은 요안나의 슬픔을 위한, 기도를 위한 자리로 남겨 놓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흘러, 5년이 더 지나고 요안나가 열세 살이 되던 무렵에도,

그 자리는 오로지 요안나만의 것이었다.


그리고,

1425년 6월 어느 날.

요안나와 요셉이 13살이 되고도 반년 정도가 더 지났을 무렵.


고해실 안으로 얼빠진 표정의 요안나가 들어섰다.


드르륵- 탁!


"요안나구나. 무엇을 고해하기 위해 왔니?"

"...신부님."

"응?"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영웅 잔다르크의 서막이, 동레미 마을의 작은 성당 고해실 안에서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추천 댓글 선호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잔다르크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7. 오를레앙 전투(1) 24.09.11 51 4 13쪽
» 6. 서막 24.09.10 59 6 10쪽
6 5. 선고 +1 24.09.08 75 6 12쪽
5 4.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24.09.07 92 5 14쪽
4 3. 기사가 될 거야 24.09.04 110 4 11쪽
3 2화. 친구 +2 24.09.04 137 9 11쪽
2 1화. 시작점 24.09.03 144 8 12쪽
1 프롤로그 +2 24.09.03 149 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