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네크로맨서의 수석 언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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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3 14:54
최근연재일 :
2024.09.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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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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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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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86

작성
24.09.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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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부활

DUMMY

빌어먹을 세상은 언제나 끔찍했다.


인간은 다퉜고, 인류는 싸웠다.


그럴때마다 세상엔 언제나 피와 시체가 쏟아져내렸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가.


인류는 수많은 피와 비극 속에서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꽃을 피워냈다.


세기의 천재들이 심어, 만들어낸 꽃봉오리를 이었다. 그렇게 피운 꽃으로 인류는 번성해왔다.


처음엔 강철을 얻었고, 다음엔 오러를 얻었으며, 마침내는 마법까지 얻었다.


피로 쓰여진 역사에는 언제나 그 피를 마시고 자란 천재들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터업.


한 여인이 책을 덮으며 피식 웃었다.


"뻔한 역사서네."


피를 먹고 자란 천재들이라...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게 나는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안타깝지만, 그녀의 재능은 그 천재들에 닿지 못했다.


그녀는 네크로맨서였다. 아마 인간으로서는 유일한.

그렇기에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너야말로 천재에 가까운 존재가 아니냐고.


허나 달랐다. 고작 시체를 되살리는 고유 마법을 얻은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한 적의 시체를 한순간에 되살리면 되지 않느냐고?


풋. 가볍게 비웃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했다.


'내 마법은 미완성이니까.'


강령을 위해선 시간과 제물이 필요했다. 쓰이는 마력도 가볍지 못했다. 아무렇게나 일어나란다고 시체는 일어나주지 않았다.


쓸만한 마법이 아닌 나사 빠진 부족한 마법의 주인. 그게 그녀였다.


이 역사서가 말하는 천재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천재도 아니고, 조연 1의 위치에 속한 그녀임에도.


'단 한 번 정도는.'


시간을 들인다면. 평생을 건다면.


여인이 자신의 눈 앞에 그려진 복잡한 수식들을 정리한다. 여러 피로 물든 마법진이 얽히고 얽혀, 빛을 낸다. 책을 펼치며 입을 연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강령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강령."


바람이 분다. 짙게 모이는 핏방울이 중앙으로 모인다. 매개체로 보이는 사체의 반지에 흘러들어갔다.


마력이 뭉텅뭉텅 빠져나간다. 한 번에 개시된 여러 마법들에 세상이 멈춘 듯 하다.


육신과 피가 섞이며 흐른다. 천천히 심장을, 혈관을, 내장을, 근육을, 그렇게 인간의 몸을 이루게 한다.


피와 제물로 이뤄진 육체가 완성된다.


허나, 주문을 끝내지 않는다.


"부활."


천장에 붙어있던 마법진까지 함께 빛나기 시작한다.


콰릉.


마치 번개가 치듯 마법진에서 흑색 번개가 내리쳤고.


그녀는 마력 탈진에 주저앉았다. 흐르는 땀을 가볍게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하하..."


그녀는 자신의 앞에 완성된 흑발의 언데드를 보며 웃었다. 정확히는 언데드가 아닌 썩지 않는 시체.


강령의 최종 형태인, 부활 마법에 성공했다.


***


기분 나쁜 꿈을 꾼 듯 했다. 인간과 마족이 뒤엉켜 싸우고, 마법과 오러가 부딪쳤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았던 그는, 어느새 어설픈 마법을 마족에게서 빼앗고, 흉내내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것이 전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최대한 수많은 마법을 흉내내 남겼다.


투박한 감각으로 흉내낸 마법이다보니, 정리되지 않은 수식과 감각에 의존한 문서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흉내내야할 마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인간의 수명은 턱없이 짧았으니까.


-안타깝구나.


그에게 죽은 당시의 마족의 왕은 말했다.


-너에게 30년도 채 되지 않는 수명만 주어져, 나에게 이렇게 죽다니. 인간의 마법이 이렇게 지는구나.


우스운 말이었다. 고작 30년 만에 추월당해 죽은 녀석이 할 말은 아니었다.


침을 뱉어 놈을 죽였다. 웃으며 말했었지.


-나는 씨앗일 뿐이지. 인류의 마법은 이어질 거다. 그러기 위해 남긴 것이니까.


이렇게 죽는 것이 아쉽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이었다.


언제나 마법을 연구했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고 재미였으니까. 더 퍼뜨리고 세상을 마법으로 더 편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그가 더 이상 마법을 만질 수 없다는 건, 절망에 가까운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았다.


그의 말대로, 인류는 마법을 이어갈 테니까.


그조차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인류는 나아갈 테니까.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마법을 연구했으니까.'


마족의 왕의 마법을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마법이 자리잡을 테니 상관이 없기도 했고.


결국 그는 마왕을 죽인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잡히는 빛. 들리는 풀소리들. 몸에 닿는 바람. 혀 끝에 맺히는 흙냄새.


그는 다시 살아났다.


'왜 살아났지?'


천천히 걸어 바깥으로 향한다. 문이 열리고, 광활한 대지가 그를 맞이했다.


광활한 대지에 자리잡은 밭. 묘하게 밝기만 한 하늘. 하나같이 농사를 짓고 있는 수많은 사람... 아니, 잠깐.


'사람이 아니라... 언데드잖아?'


다시 살아난 것만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인데 풍경까지 이 지경이다. 저도 모르게 중앙에서 언데드들을 통제하는 여인을 바라봤다.


언데드들을 통제하는 건 언제나 한 존재.


'네크로맨서인가.'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래, 고위 마족 중 간혹 급이 애매하게 떨어지는 것들이 쓰던 고유 마법이었다. 잡졸들을 언데드로 부리고 물량으로 밀어붙이던 귀찮은 것들.


끔찍한 마법이다보니 흉내내려 하지 않았다. 퍼뜨린 적은 더더욱이 없었고.


그걸 쓰는 인간이라니.


'날 살린 게 저 여자인가.'


그 사이, 그 여인이 그를 발견한 듯 손을 흔든다.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자연스러운 인삿말에 오히려 당황했다. 간지러운 말소리는 부드럽게 귓가에 맺혔다. 사람을 홀리는 듯했다.


'이게 강령의 주종 관계인가보군.'


거역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넌... 아니, 이게 다 무엇이냐."

"전 네크로맨서입니다. 저 언데드들의 주인도 저고요. 당신은... 짠! 돌아왔네요! 제 덕분에. 그것도 최고위 언데드로. 신체 나이는 대강 스물셋이고요."


해맑은 여인의 표정에 그가 말을 내뱉었다.


"웃으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이가 없어 가볍게 내뱉은 말에 여인이 킥킥 웃었다.


"하하. 저 같은 칙칙한 마법사는 웃지 않으면 보기 싫으니까요."


싱긋 웃는 그녀를 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살린 거냐?"


그의 정체를 알고 살린 거라면, 그녀에게 무언가 목적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의 마법적인 재능은 남들과는 다르니까.


아니, 사실 그의 정체를 알고 살린 게 분명했다. 이 여자의 목적이 중요했다. 그를 이용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할 테니까.


그것이 최악의 결과를 낸다면, 지금 이 여자를 죽여야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했을 때.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모르는데요?"


'어?'


그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뭐?"

"그냥 강령의 최종 형태를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살아있는 몸. 뛰는 심장. 그리고 이렇게 완전한 인격까지."


바람이 불어 여인의 잿빛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잠시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정리한다.


"다시 태어나는 언데드들은 대부분 하나씩 나사가 빠져있었거든요. 어지간하면 최근 것들은 인격은 유지시켰지만. 사소한 곳에서 다들 찐빠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완벽해요. 제 모든 힘을 다 끌어써 만든 거니까."


언뜻 보면 살벌한 말인데도 그녀는 순수하게 웃었다. 일그러진 맥락.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이해했다.


자신의 마법이 자랑스러워 미치겠다는 저 표정은 흔하디 흔한 마법사의 것이니까.


잠시 그의 몸을 살피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제 말해줄래요? 당신이 누군지."


그는 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했다. 마법사는 탐욕스러운 존재다. 그가 최초의 대마법사, 미크리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른다.


게다가 이건 엄연한 강령술. 상대와의 주종 관계가 확실한 마법이다.


그녀가 원한다면 그의 지식을 빼는 것 쯤은 아무렇지도 않겠지.


'다행히 완전히 정신을 뺏기지는 않았군.'


속이려 마음 먹었는데도 딱히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가볍게 답했다.


"난. 그냥 그저 그런 마법사였다. 이름은 ㅁ..멀린이다."

"음. 전 레나에요. 멀린은 어느 시대에 사셨는데요?"

"마족의 왕이... 죽은 직후에 활동했다."

"와아. 벌써 이백년이 지났는 걸요. 마법도 정립되지 않은 그때 마법사였다는 건."


레나는 피식 웃으며 멀린을 바라봤다.


정말 그저 그런 마법사였겠네.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음. 이건 조금 기분이 나쁘군.


'사실대로 말할 걸 그랬나.'


미간을 찌푸리자 레나가 말했다.


"일단 따라오세요. 전달 사항이 몇 개 있으니까."

"전달 사항?"

"그 전에."


레나가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몸을 다시 돌렸다. 부드럽게 부는 바람이 레나의 치마를 흔들었다. 마법인 듯 했다.

레나가 쓰던 모자를 가볍게 내리며 고개 숙였다.


"환영해요. 마녀의 정원에 오신 것을."


때마침 거름을 묻히며 지나치는 언데드. 지독한 냄새가 레나가 부른 바람에 섞여들었다.


"······."

"······."

"음. 향기로운 정원에 초대해줘서 고맙군."


레나의 귀가 약간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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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레나 24.09.03 31 0 14쪽
» 부활 24.09.03 3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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