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네크로맨서의 수석 언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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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3 14:54
최근연재일 :
2024.09.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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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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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레나

DUMMY

"크흠. 일단 이 공간을 소개할게요."


레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귀가 새빨간데."

"기분탓이에요."


단호한 말투다. 멀린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레나를 따랐다.


"중앙에는 제 거처가 있어요. 멀린 님의 강령을 시도한 곳이 제 연구실이었고요."

"연구실?"

"네. 저도 나름 마법사니까요. 이것저것 해봐야죠."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가 혀를 굴리다가 슬쩍 걸음을 옮겼다.


중앙에서부터 외곽으로 향하는 길 한쪽으로 멀린을 이끌었다.


"넓군."


멀린의 말대로였다. 고작 한 사람에게 이만큼의 영지가 주어졌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심지어 성벽도, 마을도, 어떤 무슨 시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건 농사를 위한 수로나 장치들 뿐.


"버려진 땅인가."

"하하. 버려진 땅이긴 하죠."


레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어떤 게 보여요?"

"밝은 하늘. 그리고 구름들."

"보이지 않는 것은 뭐죠?"


멀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하지만 레나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내 다시 멀린이 하늘을 바라본다. 밝고 푸른 하늘. 구름이 이따금씩 떠다니고, 바람이 불어온다.


그런데.


"허."


헛웃음을 내뱉었다. 멀린이 죽고 난 후로 200년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고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크게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다.

200년은 결코 가벼운 세월이 아니니까.


허나, 바뀌어선 안 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니까.


"태양이 없군."


그래, 해가 없었다. 하늘이 한없이 밝은데도 불구하고, 그 근원이 되어야할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없는 하늘. 광활한 대지. 이상하게 밝기만 한 하늘.


이상한 것들 투성이인 이 공간에 대한 어색함이 이제야 인지된다.


'레나의 저택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몇몇 밭과 오두막, 언데드들이 보이는 것의 전부였다. 산도, 동물의 소리도, 심지어는 벌레 조차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여긴 너의 공간이군."


여긴 현실과 분리된 곳이다.


"정신계 마법인가?"


하나 유추할 것은 그것 뿐이다. 고위 마족이 쓰던 정신계 마법은 이따금씩 사람을 아예 다른 곳에 들인 것처럼 만들기도 했으니까.


레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듯한 추리였지만, 틀렸어요. 여긴 저의 아공간이에요."

"아공간?"

"네. 음. 뭐라 설명해야 좋을까. 간단히 말해서 시간과 정신의 방이죠."

"뭐?"

"실재하는 공간을 따로 마법으로 만든 거에요."


레나의 덤덤한 말에 멀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게 가능한가?"

"저는요."

"어떻게 가능하지?"


멀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공간이라는 마법은 아무리 봐도 말도 안되는 수준의 고위 마법이다.

흥미로웠다. 어떤 고위 마족도 가지고 있지 않은 마법이었다.


잔뜩 올라간 멀린의 분위기에 레나가 장난기 담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밀이에요."

"그냥 말해주면 안 되나?"

"제 마법인걸요."

"으음..."


쳇. 아쉽군.


허나 레나의 태도가 강경했다. 잠시 한숨을 내쉬자 레나가 다시 멀린을 이끌었다.


"뭐, 다시 설명하자면, 이 공간은 제 정원이에요."

"향기로운 정원."

"윽. 그건 잊어줄래요?"


이번에도 귀가 살짝 빨개졌다.


'투명한 여자군.'


"아무튼 구역마다 키우는 작물이 다르고, 담당하는 언데드가 다르죠. 최외곽에는 최하급 언데드들부터 시작해서, 중앙으로 올수록 상급 언데드들로 가득 차요."

"언데드들을 모은 건가?"

"네."


'이유는.'


물으려다 멈췄다.


짧은 대답이었다. 더 이상 묻기를 원하지 않아 보였다. 레나의 침묵에 멀린이 침묵하다 말했다.


"키우는 작물은 뭐지?"


그러자 레나가 눈을 크게 뜨며 멀린을 바라봤다.


"뭐야. 왜 언데드들을 모은 건지 궁금하지 않은 거에요?"

"대답하길 원치 않은 것 같아서."


레나가 구렛나루를 손으로 문질렀다.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요."

"그럼 물어보지."


이번엔 픽 웃고는 말했다.


"역시 비밀로 할래요."

"치사하시군."

"아무튼. 그렇게 이 아공간은 제 정원이 되는 거죠."


쯧. 괜히 배려했어. 중얼거리는 멀린에 레나가 웃었다. 멀린은 물었다.


"날 강령시킨 이유는 뭐냐. 고작 네 마법의 실험을 위해서가 맞나?"

"아뇨.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


레나의 말에 멀린이 눈을 가라앉혔다.


'역시. 무언가 더 있나.'


그때.


"농사 좀 지어주세요."

"뭐?"


멀린이 얼굴을 구기자 레나가 가슴을 펴며 말했다.


"제 정원에서 다시 태어난 언데드들의 의무에요. 고위 언데드들조차 각자 자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굳이 농사를 하는 이유가 뭐지?"

"제 마법 연구를 위해서도 있고요."

"또?"

"기사들이랑 같은 이유죠. 할 거 다 했으니 이제 내 땅 키워보면서 잘 먹고 잘 살아보자 같은."


레나는 진심을 꾹꾹 담아 말을 이었다.


"심지어 언데드라 돈도 안 받지, 불평불만도 없는 데다 잘 지치지도 않아. 그러니 나는 그냥 좋아하는 마법 연구만 해도 돼. 이게 천국 아닐까요?"


멀린이 반박하려다 입을 닫았다.


'확실히.'


전생에서 멀린이 마족의 왕을 잡고 하려던 것도 이거긴 했다. 땅을 적당히 받아 귀족 노릇하면서 마법 연구를 하는 게 일생의 목적이었다.


심지어 레나는 네크로맨서다. 귀족이 되어 땅을 다스린다고 피똥쌀 필요도 없이 그냥 언데드들 소환하고 놀고 먹으면 알아서 재산이 쌓인다.


오로지 자신의 마법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멀린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국이군."

"그렇죠?"


레나가 배시시 웃다 품에서 종을 꺼냈다.


"그건?"


레나는 대답 없이 종을 딸랑딸랑 울렸다.


그러자, 레나가 서있던 곳 앞에서 땅이 울먹이며 흘렀다. 묘한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그 자리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아니, 솟아났다겠군.'


말 그대로 언데드 하나가 땅에서 솟아났다.


"이게 도대체."

"소환이죠. 네크로맨서가 언데드 소환 정도는 해야죠."

"...음. 그도 그렇군."


그 사이 완전히 소환된 언데드가 레나에게 다가왔다.


멀린은 그 꼴을 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메이드?'


하지만 고작 메이드라기엔 과하게 다른 느낌이...


"레나 님. 결국 해내신 거군요."

"응. 캐서린."


'이름이 캐서린이군.'


잠시 그녀를 보자, 캐서린이 묘하게 날카로운 눈으로 멀린을 바라봤다.


"수준은 최고위고요."

"맞아."


인사를 해야하는지 고민하자, 캐서린이 멀린의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난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알아서 기어."

"아앗. 캐서리인!"


레나가 급히 캐서린을 뒤로 밀었다. 멀린이 얼굴을 찌푸리자, 레나가 말했다.


"얘가 나한테 좀 집착이 심해서 그래요. 내가 고위급 언데드만 소환하면 이런다니까."

"'저것'도 고위 언데드인가?"


그 말에 캐서린이 허! 하고 헛숨을 내뱉었다.


"지금 나보고 '저것' 이라고 했나?"

"음. 했다만."


멀린의 말에 캐서린이 품에서 검... 아니, 빗자루를 꺼냈다.


'메이드군.'


멀린이 속으로 웃으며 캐서린을 내려다보는 그 순간.


우웅.


캐서린의 빗자루에서 빛이 났다.


음. 그러니까. 검도 아니고, 그냥 청소 도구에서 빛이 났다.


'뭐?'


"...오러?"

"캐서린. 그만."


레나의 말에 캐서린이 멈춘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레나의 곁으로 갔다.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언데드라니. 안 그래도 지금 고위 언데드들 때문에 속이 썩고 있잖아요. 그들은 전부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요?"

"캐서린. 부탁해."


레나가 부드럽게 말하자 캐서린이 한숨을 내쉬고는 빗자루를 집어넣는다.


멀린은 괜히 서늘해진 목을 문지르다 헛기침을 했다.


"사과하지."


사람은 굽힐 땐 굽힐 줄 알아야한다. 그것도 상대가 존나 센 사람이라면.


'쯧! 내가 전처럼 마력만 많았어도.'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던지 말이다.


"상관없어."


캐서린의 말에 레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캐서린. 멀린이 지을 땅을 소개해줘."

"더 남은 땅은..."


캐서린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 거기 말이군요."


이제는 완전히 웃는 캐서린에 멀린의 표정이 굳었다.


'불길하군.'


"따라오시죠."

"다른 곳은 없나?"

"제가 데려가는 곳이 어딘 줄 알고요?"

"...아무튼. 없나?"

"네. 없습니다."


싱긋 웃는 캐서린. 멀린이 뒷걸음질 치자, 빗자루를 잡는다.


"어쩔 수 없지. 따라가겠다."

"그럼요."


레나가 잠시 주문을 외우더니 작은 워프를 열었다.


'공간 이동 마법까지?'


놀라며 자세히 들여다보자, 레나가 말했다.


"이건 제 공간 안에서만 한정되는 마법이에요."

"그렇군."


잠시 마법의 운용을 보다가 하! 하고 웃었다.


캐서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감히 주인님을 비웃어? 라고 말하는 듯 했으나, 레나가 검지로 입술을 막았다.

캐서린이 그런 레나에게 의문의 눈길을 보냈지만,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에 멀린은 숨을 깊게 내뱉었다.


"아까 캐서린을 소환한 마법진과 비슷하군. 마력의 운용도 엇비슷해. 다른 것은 단 하나."


레나가 만들어낸 워프의 주변을 만지며 멀린이 말했다.


"이건 역소환이군. 애초에 네크로맨서의 공간이라 가능한 거였어."

"와아-."


멀린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너무 많이 말해버렸다.


'쯧. 오랜만의 새 마법이라 넋을 놨군.'


두근대는 심장과 빠르게 도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놀라는 레나와 옆에서 입만 멍청하게 벌리는 캐서린을 보다 둘러댔다.


"크흠. 어디서 본 적 있는 마법이라 오랜만에 봐서 익숙했을 뿐이야."

"기억력이 대단하시네요."


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덧붙였다.


"맞아요.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소환의 역소환진이죠. 원래는 바깥에서 여기로 들어오는 마법진이지만, 적당히 응용만 하면 제 공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워프가 되는 거고요."


멀린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마법을 많이 써보고 많이 흉내내봤기에 안다.

단순히 같은 불꽃 마법이라도, 어떤 마족은 그걸 구로 뭉쳐 터뜨리기도, 어떤 마족은 화살로 만들어 쏘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때에 따라 마법은 형태를 바꿔 자신의 효율을 올린다.


그런 관점에서 레나의 마법에 대한 응용력은.


"천재군."


언데드들을 만들고 소환하는 어떤 마족도 이런 식으로 언데드들의 공간을 활용하지 못했다. 아니, 할 생각조차 못했다. 그나마 가장 강했던 네크로맨서 마족조차 단순히 언데드들을 뭉쳐 강화하는 게 그만이었다.


그만큼이나, 레나가 자신의 마법에 진심이라는 뜻.


멀린이 그렇게 말하자, 레나는 쓰게 웃었다.


"말은 감사합니다."

"아니, 진심이다."


그때, 멀린이 레나의 양어깨를 잡았다. 캐서린조차 반응하지 못한 돌발 상황.


멀린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네 마법에 대한 응용력은 최고다. 언젠가 내가 네 마법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수준이지."


집착하는 듯한 말에 레나가 이를 문 채 가득 놀랐다가, 눈을 위로 올렸다.


"앗. 멀린, 머리."

"머리? 그래. 나도 머리가 좋은 편이지."

"그게 아니라 위에요."


음? 멀린이 그에 고개를 들자.


"아."


빛나는 빗자루가 아주 시원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막을까.'


고민하며 곧장 마나를 돌렸지만.


'아.'


몸에 남은 마나가 없었다. 레나가 묘하게 자신의 마법에 자신이 없는 것도 이 탓인 듯 했다. 일반적으로 강령은 영혼이 가지고 있던 힘까지 전부 돌리는 것이었으니까.


'사망자의 힘까지 전부 돌리지는 못하는 건가.'


어쩌면 그냥 멀린이 죽은 지 너무 오래 돼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저건.


'못 피하겠군.'


퍼억!


멀린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캐서린이 씩씩대며 말했다.


"이렇게 무례할 수가! 감히 주인님한테 손을 대다니. 이 놈은 오늘 제가 제대로 교육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레나는 무릎을 꿇어 쓰러진 멀린의 볼을 꼬집었다. 이리저리 주물럭대다 말했다.


"내 마법을 처음부터 그 자체로 봐준 사람이 얼마만이지?"

"······."


캐서린은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그렇기에 더 대답해주기 싫었다.


허나, 레나의 눈에 이를 살짝 갈고 고개를 숙였다.


"처음···이군요."

"맞아. 캐서린도 처음엔 내 마법에 놀랐으니까."

"···그건!"

"알아. 일부러가 아니라는 거."


레나는 잠깐 멀린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묻은 흙을 탁탁 털고는 몸을 돌렸다.


"생각보다 좋은 마법사를 살린 모양이야."

"···그래도 적당히는 교육하겠습니다."

"응. 도와줘."

"······예."


레나는 잠시 멀린을 보다 피식 웃었다.


'마법을 훔치고 싶다라.'


지금의 바깥에서 이런 말을 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무슨 말을 들을까?


잠시 상상하다가 배시시 웃었다.


그건 그거대로 재밌을 거 같네.


'200년 전의 마법사라면, 지금의 마법 체계를 알려주는 게 좋겠어.'


아니, 애초에 본인이 원하려나.


잠시 고민하던 레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캐서린은 레나가 사라지자 괜히 멀린의 이마를 뒷꿈치로 꾹꾹 누르다가 멀린의 뒷발을 잡았다. 아직 남아있는 워프로 멀린을 끌고 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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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투 24.09.08 6 0 13쪽
7 200년 전의 마법사 24.09.07 7 0 12쪽
6 프레드 24.09.06 9 0 13쪽
5 퇴비통 24.09.05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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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법 24.09.03 23 0 14쪽
» 레나 24.09.03 31 0 14쪽
1 부활 24.09.03 3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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