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네크로맨서의 수석 언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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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3 14:54
최근연재일 :
2024.09.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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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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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퇴비통

DUMMY

"확실히 달라."


멀린은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가 개간의 보상으로 준 마법서는 3위계 마법을 익히는 방법에 대한 정보였다. 그에 더해 이번에는 작물을 키울 때 쓸만한 마법이 몇 개 있었다.


그를 전부 읽으며 깨달은 점은, 인간은 생각보다도 더 마법에 진심이라는 점이었다.


마족이 가볍게 일궈낸 불 하나를 분석하기 위해, 그에 쓰이는 마력량, 수식, 마법진에 들어갈 획 하나하나를 연구했다. 그렇게 완성시킨 마법은 어딜 움직여야 어떻게 변화하는 지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항상 감으로만 움직였던 멀린이 뒤늦게서야 왜 마법이 변하는 지 알게 될 정도다.


'여길 움직이면 불꽃의 온도가 올라가고.'


마력을 조정하며 손가락 위에 띄운 불을 바라봤다.


'이렇게 하면 불꽃의 크기가 올라가지.'


이제야 조금씩 뭐가 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저번에 레나가 줬던 4위계 마법을 쓰면서 느꼈던 감각과 마법서의 해석을 비교분석한 결과였다.


물론, 아직 4위계 마법의 움직임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다.


그래도 확실한 건.


"3위계군."


멀린의 이해도는 벌써 3위계에 올랐다. 심지어 4위계에 가까운.


멀린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딱 자신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내리는 이슬비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이면 흙은 완전히 살아났어.'


표면에 머물던 물을 흡수하고 흡수한 흙의 색은 어느새 비옥한 검은색이었다. 오죽하면 위에 띄운 물이 아래로 스며들며, 흙의 뿌리까지 살아날 지경이었다.


즉, 슬슬 씨감자를 심을 때가 됐다는 말이었다.


"그 전에."


딸랑딸랑.


멀린은 품에서 종을 꺼내 캐서린을 불렀다. 그의 앞에 있던 흙이 울먹거리더니 마법진이 생기며 캐서린이 나타났다.


아예 천으로 마스크를 쓰고 먼지떨이를 흔들고 있던 것으로 보니 타이밍이 안 좋았던 모양.


"왜 맨날 나 청소할 때만 부르는건데?"


캐서린이 인상을 쓰며 멀린을 노려봤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매일 오전, 오후에 한 번이라니까? 아침 저녁 먹고. 몰라?"

"난 밥 안 먹는다."


당당한 멀린의 말에 캐서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랬지."


마스크를 내리고 먼지떨이를 어깨에 걸쳤다. 캐서린은 메이드복을 잠깐 훌훌 털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전보다는 확실히 유한 태도였다. 얼마 전이었으면 먼지털이로 위협을 갈겼을 터였다.


멀린의 예상대로였다. 캐서린은 이제 멀린을 단순한 식충이 언데드로 보지 않았다. 아직도 내리고 있는 이슬비는 멀린이 가벼운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법을 원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던 때.


"거름 좀 밭에 뿌려줘라."


캐서린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땅을 가는 것은 내가 하지."

"야. 너. 그런 것까지 나보고 하라고?"

"정 그렇다면, 거름을 모을 퇴비통을 여기 설치해주든가. 내가 할 테니까."

"······."


캐서린은 멀린의 표정을 보다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어쩌다 이런 거한테 내 종을 맡겨서."


멀린이 씨익 웃으며 종을 건네자, 캐서린이 종을 흔들어 땅으로 들어갔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멀린의 땅 한 쪽에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통이 소환됐다. 그리고.


푸두둑.


그 위로 거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음.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


뭐, 어쩔 수 없었다. 멀린은 몸을 돌려 땅으로 향했다. 땅을 고르는 작업은 충분히 돼있었다. 이슬비를 내리는 동안 열심히 마법을 쓴 덕분이었다.


어느새 가득찬 퇴비통을 염력 마법으로 들어올렸다. 전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계산된 마력량으로 시전한 마법이었다.


3위계 마법사 멀린의 첫 현대 마법이다.


"후우."


진지한 표정으로 호흡을 진정시켰다. 이건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거름을 정확하게 땅에 흩뿌리는 작업이다. 실수했다간 멀린 자신이 똥밭에 구르게 되는 수가 있었다.


그런 건 정말 사양이었다.


"흩날려라."


파아앗!


퇴비통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회전량과 확실한 마력 조정. 어떤 마법을 쓸 때보다도 더 집중하며 마법을 마칠 때쯤.


"후우."


잔뜩 올라온 식은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완벽하군.'


씨감자를 심을 곳에 정확히 분배된 거름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음···."

"미친 놈."


멀린의 바로 뒤에서 보호 마법으로 온몸을 감싼 레나와 캐서린이 보였다.


"앗."


이런.


"흩날려라는 대체 뭐냐?"


멀린은 무시했다. 모른 체하며 씨감자통에 향했다.


"엄청 즐거워보이던데?"

"닥쳐."

"얼마 전엔 네 마법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달라졌어. 조금··· 더럽네."

"닥치라고."


캐서린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레나를 바라봤다. 레나는 약간 경악한 표정으로 멀린을 보고 있었다.

하기야, 멀린 같아도 똥 뿌리고는 만족스럽게 웃는 마법사를 보면 놀라기부터 할 것 같다.


'제기랄.'


인상을 이렇게 조지다니.


"크흠."


레나는 이내 정신을 차린 듯 헛기침을 하고는 다가왔다. 뭔가 전보다 거리가 생긴 듯 했다.


"향기롭네요."


제기랄.


***


레나의 구경과 캐서린의 도움 속에서 씨감자를 심는 작업을 마쳤다. 그리 어렵진 않았다. 이미 땅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거름 작업도 깔끔하게 들어갔으니까.

레나가 건넨 책대로 이랑을 적당한 너비로 만들고, 씨감자를 잘 잘라 심었다.


이젠 기다림의 시간.


레나는 감자밭을 구경하러 오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도 완벽하네요."


살짝 감탄하며 땅을 쿡쿡 쑤셨다. 보아하니 흙의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네가 준 농사 필독서에 어떻게 해야할 지 다 적혀있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이건 멀린이 노력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시행착오도 필요없이 그냥 모든 데이터가 정리되어 책에 써있었으니까다.


이랑의 너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씨감자를 자르는 방법이나 심는 간격. 심지어는 2열 파종 등의 디테일까지 다 적혀있었다.

굳이 꽃을 따줄 필요가 없다든지, 줄기를 두 세 개 남기라든가 등등.


그러니 그걸 따라만 하면 됐다. 진짜 어렵지가 않았다.


"하하. 설명서를 줘도 그대로 완벽하게 따라하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그것도 마법까지 써서 여러모로 신경쓸 게 더 많을 텐데."


멀린은 슬쩍 콧대를 높였다.


"나는 고대의 그저 그런 마법사가 아니···."

"또 시작이네."


캐서린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끊었다. 멀린이 잠시 캐서린을 보다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빗자루나 휘두르는 언데드가 무얼 알겠어."

"이게 오냐오냐 했더니."


슬쩍 레나의 뒤에 숨자, 캐서린이 씩씩 대더니 고개를 떨궜다.


'하하. 쌤통이다.'


그때.


꼬르륵.


어디선가 익숙한 듯 어색한 소리가 들려왔다.자신의 배를 살핀 멀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멀린은 여기 들어오고 나서부터 한 번도 식욕을 느낀 적이 없어서였다. 캐서린이 뭘 먹는 걸 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둘은 언데드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한 곳은 레나. 레나의 귀는 새빨개져있었다. 캐서린이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빗자루를 멀린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주인님 그만 놀려!"

"놀리다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레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갑자기 팔을 걷었다.


"뭐, 그럼 한 번 맛을 봐볼까요?"

"무슨 맛?"


아직 빨간 귀에 손부채를 하며 밭에 다가갔다.


"뭐긴 뭐에요. 감자 맛 좀 보자는거죠."


동시에 주변의 마나가 레나의 심장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척 봐도 알 수 있을 만큼의 고위계 마법이었다.


그 운용이 복잡하다 못해 너무 화려한 탓에 읽으려 시도한 멀린의 코가 시큰거렸다.


"자, 캐서린."


레나가 캐서린에게 눈짓하자, 캐서린이 곧장 레나의 지시대로 땅을 팠다.

뭐하는 거냐고 꾸짖으려다가 눈을 크게 떴다.


거기에는 장성하게 굵은 알감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건···."


하. 또 다시 나를 놀라게 하는군.


멀린은 레나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생명의 성장을 촉진하는 마법이라니. 게다가 아무리봐도 저 감자는 건강해보였다. 억지로 크기만 늘리거나 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완벽하게 자란 거다.


"가끔은 미리 성장시킨 햇감자가 맛있거든요."


레나가 말하며 캐서린과 감자를 조리했다. 그 사이에 쓰인 마법을 구경하려다 코피가 날 것 같았다.


"자, 먹어봐요."


레나가 감자를 건넸다. 언제 소환했는지, 의자와 식탁까지 있었다. 캐서린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준비를 마쳤다.


'농사는 뒤지게 못하더니.'


확실히 시중 하나만큼은 잘 드는 모양이었다. 허구한 날 씨감자를 잘못 잘라 버리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


멀린은 레나가 찐 감자를 한 입 베어물고는.


"허."

"어때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다시 감자를 입에 가져갔다.


"맛있어."

"또요?"


의도가 다분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당해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베어문 감자가 몸에 들어오며 느껴진 건 분명한 마나였다. 그러니까, 고작 감자 주제에 마나 약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심지어 그 농도도 장난이 아니다. 고작 감자 한 알 먹었다고 이만큼이면, 전생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열 알 당 하루 치 마나 흡수율이군.'


온몸에 흡수되는 마나를 보다가 레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감자가 마나 작물이 된 거지? 아까 그 마법인가?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말이야?"


어느새 식탁을 손으로 짚고 얼굴을 들이미는 멀린을 캐서린이 빗자루로 밀었다.


레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제가 아까 쓴 마법은 성장을 촉진하는 마법이 맞아요."

"그럼 어떻게 이 감자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건가."

"이 공간의 특성이죠."


레나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괜히 속이 간지러워질 정도로 레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긴 마나가 가득한 공간이에요. 그것도 이 아공간에서 제일. 그래서 땅을 일굴 난이도가 높죠. 고작 땅을 좀 갈고 씨앗을 심는다고 작물이 자라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마력 밀도가 높은 물을 머금게 해야하는 거였군. 땅이 죽은 게 아니라, 과하게 살아있던 거였어."

"정확해요."


멀린은 아직도 하늘을 바라보는 레나를 보며 시선을 가라앉혔다.


'이런 공간을 만들 정도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는 위화감이 머리를 두드렸다.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 최상의 공간임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 멀린 자기 입으로 레나의 생각에 공감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레나가 건네는 마법서에는 가끔 직접 쓴 흔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레나가 마법을 연구했다는 증거였다.


다만, 그것가지고는 이 공간의 존재 자체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1층부터 10층의 존재. 수많은 언데드들과 마력을 담는 작물들.


'지금은 알 수 없겠지.'


어쩔 수 없었다. 멀린은 결국 레나가 소환한 언데드와 다르지 않다. 완벽하느니 뭐니 해도, 레나의 목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뭔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은 없나.'


어차피 멀린은 현대의 마법을 배우면 그만이었다. 언젠가 수준이 올라 레나의 마법까지 흉내내는 데에 성공하면, 이 주종관계를 끊을 수 있을 터다.


그때가서 물어보든가 하면 되겠지.


상념을 끝마치는 사이, 레나가 감자를 몇 개 더 먹더니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면 중앙 구역은 완벽하게 일궜다고 볼 수 있겠어요."


멀린은 따라 일어서며 레나의 걸음의 뒤에 붙었다.


"그렇지."

"그럼 다음 단계에요. 다음에 일굴 곳은 남쪽 구역. 저길 개간하는 데 성공하면 감자보다 더 좋은 마력 작물을 선물할게요."

"고작?"


멀린의 말에 레나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멀린에게 필요한 마법서를 드릴게요. 3위계 마법이면 되나요?"


멀린이 감자를 입에 털어넣고는 씨익 웃었다.


"4위계를 주는 거로 하지. 이제 3위계 정도는 할 수 있어서 말이야."


투둑.


멀린의 신호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보며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진지한 표정이었다.


'내 마법에 놀란 모양이군.'


"하하. 난 그저 그런 마법사가 아니라고."


결국 뱉어낸 말에 캐서린이 이마를 탁 치고, 레나가 배를 움켜쥐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멀린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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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법 24.09.03 24 0 14쪽
2 레나 24.09.03 31 0 14쪽
1 부활 24.09.03 3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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