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네크로맨서의 수석 언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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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3 14:54
최근연재일 :
2024.09.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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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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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

DUMMY

남쪽 구역은 완전히 정리했다. 모은 마석들은 한 쪽 구석에 치우고, 거름을 멋있게 뿌리기까지 했다.


와중에 여유가 생겼다며 프레드가 밭을 아예 정리까지 해줬으니.


'완벽한데?'


멀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중앙 구역을 개간할 때는 그냥 정신이 없었지만, 남쪽 구역을 개간하고 보니 꽤나 기분이 상쾌했다.


뭐랄까. 진짜 큰 영지의 주인이 된 느낌이랄까.


"그거 네가 일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야?"

"······."


캐서린의 말은 무시했다.


아무튼.


마석은 전부 레나에게 줬다. 보는 눈이 많기도 했고, 멀린에게 급한 건 마석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거라면! 선물을 다시 수정해올게요!


라며 레나는 다시 10층으로 오지 않았다. 캐서린의 말로는 이것저것 준비 중이라는 모양이었다.


'대체 뭘 주려고.'


멀린은 혀를 쯧 차고는 손을 튕겼다. 이제는 익숙해진 마력량 계산, 마나 농도 조절, 마법진 전개였다.


새하얀 빛이 움직이며 흐르는 물이 됐다가 화살처럼 뾰족해지기도 했다.


'마나회로를 덧대는 작업.'


쉽게 말해 술자의 의지를 마법진에 개입시키는 작업이었다. 마족들이나 멀린 같은 경우는 그게 마법을 발동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된다. 고대의 마법은 그래서 감을 중요시했다.


허나 현대에서는 그 감을 계산과 적절한 방식을 통해 유도했다. 그렇게 한다면, 멀린 같은 '천재'가 아닌 범재들도 마법을 쓸 수 있을 터였다.


"표정 되게 기분 나쁘네."


캐서린은 한숨을 쉬며 실실 웃는 멀린을 일별했다. 슬쩍 뒤를 돌아 멀린이 키우고 있는 감자밭을 바라봤다.


'쓸데없이 훌륭해.'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골탕 먹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곧 있으면 휴식 시간이었다.


"난 간다."

"음. 오늘도 고맙다."

"흥."


멀린이 종을 건네자 캐서린이 종을 흔들며 말했다.


"슬슬 레나 님이 오실 거야."

"그래야지. 오래 기다렸으니."

"난 네가 싫어."


대뜸 쏟아진 역고백에 멀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널 그리 싫어하지 않아."


캐서린의 얼굴이 못 볼 거라도 본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뭐라는거야, 미친놈아!"


귀를 쫑긋거리는 캐서린이 뭐라 하기도 전에 땅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다가 멀린이 중얼거렸다.


'이제 역소환 마법진이 이해가 되는 거 같기도.'


슬쩍 종이랑 마법진을 번갈아보다 코를 잡았다.


"아직 멀었군."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


"자, 마석이에요."

"음. 마석이지."


멀린이 레나의 뿌듯한 표정을 보며 떨떠름하게 답했다.


눈을 깜빡거리던 레나가 미간을 구겼다.


"아. 맞다. 구식 마법사셨죠?"

"구식이 아니라 근본···."

"아무튼. 뭐, 알겠어요."


멀린의 말을 조용히 누른 레나에 멀린이 속으로 침음했다. 거역할 수 없는 간지러운 목소리였다.


레나가 품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현대의 마법에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요소가 있어요."

"뭐지?"

"마법진에 마석을 이용하는 거에요."

"근본 없군."


바로 말을 내뱉었다. 절대 레나의 구식 마법사라는 말에 반박하려는 건 아니었다. 참고로, 절대 심사가 뒤틀려서도 아니었다.


실제로 따지자면 근본 없는 짓이기도 했다. 마법은 마법사가 쓰는 것이지 도구 따위에 의존한단 말인가.


"...그렇게 하면 마법의 자동화가 가능해요. 마법진만 완벽하게 그린다면 마법을 술자가 없이도 작동할 수 있는 거에요."


멀린의 눈빛이 바뀌었다. 레나가 예상했다는 듯 물었다.


"어때요?"


그래, 인정하자. 이건 거부할 수 없는 미끼였다.


"혁신적이군."


멀린이 바로 책에 눈을 꽂았다.


'마법의 자동화?'


처음 듣는 개념이었다. 아까 근본 없다고 말한 걸 취소하고 싶을 정도로 놀라운 방식이다.


하지만 근본 없기도 했다.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마법이라니. 이만큼 바보 같은 명제가 어디 있나?


하지만, 멀린은 이미 자신의 상식을 부수고 있었다. 현대의 인간들이 어떻게 마법을 최신화해왔는지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곧장 중얼거렸다.


"음. 마력을 공급하는 위치에 있는 마법진에 마석을 배치하는 방식이겠군. 그렇게 한다면 마법의 정밀함은 떨어지더라도."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죠."


레나가 바로 이해한 멀린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현대의 고루한 마법사들도 바로 납득하지 못하는 게 이 마석의 활용이었다. 오죽하면 지금 마법계가 정통파와 혁신파로 나뉘어있겠는가.


그런데도 200년 전. 그러니까 정통파라는 것들이 숭배하는 근본에 가까운 마법사가 저런 반응이라니.


"어때요. 배워볼래요?"

"마석을 이용하면 굳이 매일 신경쓰지 않아도 밭의 비를 내릴 수 있고, 잘만 하면 작물의 성장 속도도 빠르게 할 수 있지. 안 배울 이유가 있나?"


멀린의 말에 레나가 웃었다. 뒷말이 예상되어서였다.


"내 마법 연구 시간이 늘 텐데."


역시.


동시에 레나는 멀린을 지긋이 바라봤다. 고작 한, 두 달 남짓에 3위계를 뚫고 4위계에 입문한 마법사.

레나가 정리한 마법서와 마법만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 줄지 않는 체력의 몸을 감안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못해도 멀린은 고대의 마법사 중에서 꽤나 이름을 날렸던 마법사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자신을 그저 그런 마법사라 칭한다는 건.'


레나는 어느새 자신의 손에서 책을 가져가 읽는 멀린을 보다 생각했다.


멀린은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천재를 목격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최초의 대마법사의 제자인가.'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애초에 저 사람을 살린 반지의 매개체가 최초의 대마법사의 제자가 쓰곤 했다던 반지였으니까.


잠시 멀린을 보던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슬슬 준비할 때가 됐다.


아늑한 그녀의 정원에서 나갈 준비를-.


***


프레드는 이제 10층을 자주 왕래하게 됐다. 올 때마다 남쪽 구역의 밭을 관리해줬다.


딱딱.


뒤에서 들려오는 스켈레톤들이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다른 언데드들도 잔뜩 신난 채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올 때마다 멀린이 그들의 몸을 고쳐줬기 때문이다. 살리거나 재생하는 식은 아니었지만, 정교하게 이어붙여줬다.


프레드의 몸도 이제는 삐걱거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심지어는 스켈레톤의 관절과 인대마저 묘한 마법으로 이어줬다.


사실, 여기 올 때마다 몸이 고쳐지니 안 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에 몸을 맡겨 10층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으음. 여긴 이렇게."


프레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멀린을 바라봤다. 멀린이 저번에 봤던 지팡이로 바닥에 금을 긋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적절하게 공간이 난 곳에.


푸욱.


마석을 꽂았다. 이제 보니 전보다 더 가공된 모양이었다. 외부에 음각된 묘한 문양도 많이 보였다.


"자, 이제 됐다."


멀린이 짧게 숨을 내뱉고는 몸을 일으켰다. 프레드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이게 다 뭡니까?"

"아, 이거."


멀린이 턱을 들었다. 묘하게 꼴보기 싫었지만, 동시에 기대도 됐다. 이럴 때마다 멀린이 보여준 것들이 있어서였다.


"이건 자네가 이어보게."

"예?"


멀린이 프레드에게 지팡이를 건넨다. 눈짓을 하는 곳을 보니, 마법진의 외곽에 그려진 원이 딱 점 하나만큼 비어있었다.


프레드가 불편한 표정으로 멀린을 바라봤다.


'지금 나는 마법을 못 쓴다고 놀리는 건가?'


이래놓고 자기가 그으면서 놀릴 생각 같았다. 프레드는 잠시 멀린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전 마법을 못 씁니다."

"아.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어. 빨리 이어봐."


아니, 이렇게까지 사람을 놀리고 싶나?


프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저 사람도 언데드다. 외모가 저리 멀쩡하니 성격 조금 비뚫어진 건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프레드가 원을 이었을 때였다.


우웅.


바람이 불었다.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마법진에 놓인 마석들이 빛나는 게 보였다.


동시에.


슈웅!


하늘로 짧은 빛이 쏘아진다. 멍하니 하늘을 보자, 구름이 모여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가···. 마법을 쓴 겁니까?"

"하하. 그런 셈이지. 이게 '최신식' 마법이야. 최고지?"


얼마 전까진 최신식 마법사들을 무시하지 않았나?


아무튼, 프레드는 그런 의문을 가질 새가 없었다. 사실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비를 내리다니.'


기분이 엄청 좋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이만한 규모의 마법을 완성했다는 게 묘한 감상을 줬다.


멀린은 그런 프레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필요한 분야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 이거라면, 마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겠지.'


이 분야가 완성된다면, 인류는 순식간에 발전할 터다.


멀린은 멍 때리는 프레드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탁 짚었다. 전과 달리 프레드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정기 검진을 받으러 오는 만큼 신체는 튼튼했다.


프레드가 뒤늦게 멀린을 바라봤다.


"내가 자네들이 관리하는 밭에 이걸 달아주지."


프레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사용법은 차차 알려주겠네."


멀린의 표정에 프레드가 침을 삼켰다. 침이 나오진 않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대가는 뭡니까."

"저기."


멀린의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바구니에 담긴 소복한 씨앗.


"새로 받은 마력 작물인데, 자네들이 심어주면 안 되겠나? 덤으로 우리 밭의 잡일도 좀 도와주고."


즉, 짬처리였다.


멀린의 생각을 알면서도 프레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있으면, 더 이상 중급 언데드 마법사들의 수로에 왔다갔다 할 필요가 없다. 매일매일 물을 준다고 개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관리만 조금 잘 해주면 된다. 그리고 그건 어렵지 않았다.


'비를 내린다는 게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프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맡기십쇼."

"잘 부탁한다."

"예!"


'지치지 않는 무료 언데드 획득!'


멀린은 짙게 웃었다.


***


1층의 한 오두막. 어두운 공간에서 말소리가 울렸다.


"음. 요새 언데드들이 수로 물을 빌려가는 일이 줄었군?"

"좋지! 오히려 좋지! 그 녀석들 올 때마다 끔찍한 기분이 드는데! 그 놈들 생김새 때문에 내가 언데드라는 사실을 자꾸 상기시켜준다니까?"

"하지만 봤잖은가. 그 녀석들···."

"비를 내리던데?"


담소를 나누던 언데드 마법사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끼, 이 사람아. 거기 관리할 사람이래야봤자, 프레드인데. 프레드가 무슨 수로 비를 내리겠는가?"

"그 분이 도와주시는 거 아닐까?"

"어허. 그 분이 우리 농사를 왜 도와주나. 가끔 저 하급들이 폭주할 때나 도와주시지."

"그렇다면 왜."


한 언데드 마법사가 지팡이로 바깥을 가리켰다. 정확히 외곽 지역의 하늘이었다.


우르르.


구름이 모여들더니 비가 내린다.


"저기 비가 내리는가?"

"음."


이내 모두가 침음한다. 그들조차도 비를 내리는 마법은 모른다.

각자 분야가 달랐고, 그나마 물을 공부한 마법사도, 구름이 없는 곳에서 저만큼의 우비를 내릴 순 없어서였다. 심지어 날씨가 없는 이 곳이니 오죽하겠는가?


"우리가 이럴 게 아니라 직접 물어보면 되잖은가?"

"아, 그렇군!"


중급 언데드 마법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관리하는 작물은 어차피 만드라고라였다. 오늘의 마력 할당치는 이미 전부 주입했다.


레나가 쓸 만드라고라들은 이제 놔두기만 하면 됐다.


그들이 이번에 열 대회 상품의 만드라고라도 완숙해졌으니, 여유는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내릴 선택지는 하나였다.


"물어보러 가자!"


그들은 곧장 우르르 프레드에게 향했다.


그리고 약간 굳었다. 프레드와 언데드들이 마치 휴양지에라도 온 것처럼 일광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전과 달리 뭔가······.


'번쩍번쩍한데.'


마치 누가 관리라도 해주는 것처럼 피부도, 뼈 때깔도 좋았다.


아니, 빌어먹을. 이게 언데드들한테 맞는 표현인가?


아무튼.


팔을 베개삼아 누워있던 프레드가 그들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십니까?"

"흠흠."


그들이 슬쩍 눈치를 보자, 제일 젊은 외형의 언데드 마법사가 다가와 손으로 구름을 가리켰다


"저건 뭔가?"

"아, 저거 말입니까."


묘하게 콧대가 높아진 프레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 언데드 분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마법사시더군요."

"비를 내리는 마법사라니! 조금 더 알려줄 수 있겠나?"

"예. 약 200년 전의 마법사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그저 그런."


언데드 마법사들의 눈···. 아니, 눈구멍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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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석 24.09.09 8 0 13쪽
8 전투 24.09.08 6 0 13쪽
7 200년 전의 마법사 24.09.07 8 0 12쪽
6 프레드 24.09.06 9 0 13쪽
5 퇴비통 24.09.05 13 0 13쪽
4 이슬비 24.09.04 15 0 16쪽
3 마법 24.09.03 24 0 14쪽
2 레나 24.09.03 31 0 14쪽
1 부활 24.09.03 3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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