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 놀이 I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출장 가셨다.
정신없이 지낸 나머지 부모님의 입국 날짜를 잊어버렸던가.
달력을 확인해 봤다. 역시 입국일은 오늘이 아니다.
그러면 대체 거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일 테지?
"호호호호홍 아들~ 일어나야지."
경박한 웃음소리에 확신했다. 저 녀석은 엄마가 아니다. 우리 엄마는 저딴 근본 없는 소리를 내시지 않는다.
엄마 연기를 할 거면 좀 제대로 할 것이지. 누가 봐도 작위적인 엄마 흉내다.
"너~ 정말로~ 이 개구쟁이. 안 되겠다, 엄마가 직접 깨우러 가야지."
인기척이 가까워진다. 아마 내 방문 앞으로 걸어오는 것이겠지.
"아들 자니? 엄마가 깨우러 왔는데 방문도 안 열어줄 거야?"
긴장감 탓에 온몸이 경직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체마냥 침대에 누워있는 게 전부다.
이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 하는데 뇌조차 멈춰 버린 거 같다.
[] 임무 []
임무 -소꿉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맡은 역할에 충실하십쇼.
[] 닫기 []
역시 자칭 엄마라고 하던 녀석은 괴담이었다.
그나저나 방금 막 임무를 완수했는데 곧바로 다음 임무라니 숨 쉴 틈조차 안 주는구나.
[] 요령전수 []
상태창에는 다양한 기능이 내포되었습니다.
소유자의 역량에 따라 다방면으로 활용될 수 있으니 잦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 확인 []
요령 전수대로 상태창을 쭉 한 번 훑어봤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아들 자니? 혹시 어디 아픈 거야? 엄마가 걱정되잖아, 문 좀 열어줘 봐."
문고리를 잡아끄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지, 문고리를 밀어내는 소리인가?
"아들~ 아들~~ 우리 예쁜 아들~ 왜 엄마가 하는 말 다 들었으면 못 들은 척하는 거야?"
퍽 퍽 퍽.
자칭 엄마라 부르는 존재가 방문을 두들겼다.
손으로 두들겼다기엔 소리가 둔탁하다. 이건 마치 이마빡으로 찍어 누르는 것 같았다.
"너~어~ 마지막 경고다! 지금 문 안 열면 엄마가 맴매할 거예요~ 호호호호홍"
결국 방문이 자칭 엄마의 힘에 못 이겨 부서졌다.
"너~어. 엄.마.한.테. 혼나야지-"
시발. 시발. 시발.
역시나 저 새끼는 엄마인 척 날 속일 생각이 없었다.
속일 생각이 있었다면 최소한 엄마 모습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분명 목 위로는 엄마 얼굴인데, 그 아래로는 팔 세 개, 다리 한 짝반으로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거기다가 몸통은 만들다 만 것처럼 장기가 배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왜 문 안 열어줘? 너 내가 우스워? 엄마가 네 친구야? 불효자 자식.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다 사줬더니 네가 엄마를 투명 인간 취급을 해?"
차마 사람 같지도 않은 저 모습을 정면으로 볼 용기기 안 났다.
녀석의 손가락이 눈에 밟혔다. 손목마다 손가락은 한 개 혹은 많아야 두 개뿐이다.
하물며 그 팔목도 반쯤 날아가 있었다.
마네킹처럼 한 발 한 발 부자연스럽게 다리를 떼며 걸어온다.
점차 가까워지더니 침대맡에 나란히 섰다.
"엄마 얼굴 봐 봐!! 얼굴 얼굴 보라고!!"
아니, 봐선 안 된다.
저게 괴물인지 귀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살려면 최대한 못 본 척 숨죽여 있어야 한다.
나는 눈을 꼬옥 감고 숫자를 셌다.
열 일곱(17)을 세어갈 때 동안 자칭 엄마는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대신 누워있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녀석의 콧바람이 내 인증에 닿는다. 눈을 뜨지 않아서 불확실하지만, 아마 내 코앞에 있겠지.
"진짜 자나 보내~호호홍. 우리 아기 코~ 잘 자요."
인중에서 느껴지던 콧바람이 사라졌다. 질척질척 바닥을 걷는 소리가 들린다. 끝으로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간 걸까? 인기척은 사라졌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분명 사람은 없는데 시선은 느껴진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실눈을 떴다.
"시...바.ㄹㄹㄹ아."
어디 갔나 했더니 녀석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얇게 뜬 눈꺼풀 사이로 녀석의 동공과 딱 마주쳤다.
"호호호호홍."
녀석의 세 팔 중 하나가 안 보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팔 하나만 우두커니 선 채 문지방을 오가고 있었다.
"아들 자는 척했어?"
"........"
"왜 자는 척했냐고!!!!! 호호호호홓호홍"
"........"
"못된 아기는 엄마한테 혼나야 해요!! !! !!! 호호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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