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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9.04 06:41
최근연재일 :
2024.09.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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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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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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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체험 Ⅰ

DUMMY

언제부터 꼬인 거지. 어디서부터 글러 먹은 걸까.


어쩌면 시기와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이 따위 시답잖은 장난질을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되지도 않은 객기에 목숨을 저당 잡혀서는 안 됐다.


우린 늘상 그래왔듯, 평소처럼 집에 있었어야 했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달밤에 '그곳'에 발걸음을 옮겨선 안 됐다.


"샘아 네 오른팔 어디 갔어?"

"팔이 어디 있긴 어딨어. 당연히 여기.. 어? 왜 없냐?"

"야 양샘! 네 왼쪽에?!"


만일 우리가 야밤에 집을 빠져나오지 않았다면? 샘의 사지가 뜯기지 않았을 테지.


만일 우리가 어른들 없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소리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지 않았겠지.


만일 우리가 버려진 절에서 희희낙락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사책이의 등줄기에서 척추가 적출될 일은 없었겠지.


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겁대가리 없이 싸돌아다니지 않았다면 우린 저 녀석에게 도륙 나지 않았을 테지.


"애들아.."


어둠 속에 들려오던 친구들의 비명이 일순간 멎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마지막임을 깨달았다.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절망감]


[정체 모를 괴한에 대한 공포]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


삽시간에 전해오는 감정들이 내 살갗을 타고 전신으로 흩어졌다.


결국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애새끼마냥 양손으로 땅을 짚어가며 주변을 훑었다.


'물컹'


무언가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단숨에 이것이 여자의 유방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소리야 정신 차려봐. 괘.. 괜찮아?"


애착인형마냥 소리의 전신을 껴안고는 연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역시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의 팔뚝, 쇄골, 목선을 어루만지며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역시나. 아니 어째서. 아니 예상했을지도. 암만 그래도 그렇지. 대체 소리의 얼굴은 어디 있는 거지.'


친구의 시체를 품에 안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편, 난 지금 소리의 처지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에 이토록 사무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가장 먼저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어쭙잖은 희망 고문보다는 확실한 절망이 나으리라.


"춤을 춰라."


그것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이윽고 얼마 안 가 암흑을 등진 채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둠에 가려진 실루엣은 얼추 보기에도 13척(4M)에 육박했다.


"가락을 읊어라."


식은 땀에 등줄기가 젖어갔다. 분뇨에 젖은 아랫도리가 따스했다.


"흥을 돋워라."


양샘.


하소리.


권사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제갈재인.


넷이서 시작한 흉가 체험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 걸까. 아닌 밤중에 나타난 식인에게 일용할 야식이 되어야 하는 걸까. 유언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 이럴 수는 없다. 나는 아직.. 더.. 조금 더..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곳에 발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누구에게도 이 광경을 이르지 않겠습니다. 제발 저만큼은, 제 목숨만큼은 살려주십쇼. 어른들이 친구들의 행방을 묻거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제발.."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열일곱의 꽃다운 젊음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에 눈물이 겨워서가 아니다. 오로지 동물적인 생존 본능에 의거한 애걸이었다.


일언반구 할 것 없이 나는 더 살고 싶었다. 내 친구들을 팔아서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오직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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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도깨비 터(完) 24.09.17 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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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눈먼 자들의 괴담 II 24.09.12 6 0 9쪽
8 눈먼 자들의 괴담 I 24.09.11 6 0 6쪽
7 자살 좋아하세요 IV 24.09.10 5 0 12쪽
6 자살 좋아하세요? III 24.09.09 6 0 11쪽
5 자살 좋아하세요? II 24.09.08 6 0 9쪽
4 자살 좋아하세요? I 24.09.07 6 0 15쪽
3 흉가 체험 Ⅲ 24.09.06 7 0 8쪽
2 흉가 체험 Ⅱ 24.09.05 7 0 7쪽
» 흉가 체험 Ⅰ 24.09.04 15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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