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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9.04 06:41
최근연재일 :
2024.09.17 18:1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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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6

작성
24.09.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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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소꿉놀이 II

DUMMY

[부활하셨습니다.]


저년이 다시 방문을 열고 나타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


상태창을 요리조리 뜯어보던 중 요령전수가 빤짝이는 걸 발견했다.


[] 요령전수 []


몇 몇 특수한 임무는 단계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확인 []


하- 하나 통과하기도 빡센데, 와중에 n개를 넘어야 한다는 건가?


이만하면 고생에 체념할 때도 됐지만, 마음이 좀처럼 놓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번 테마는 소꿉놀이라고 했으니 최대한 상황에 맞게 연기하면 되는 걸까?


팔이면 다리며 제각각 노는 사람을 코앞에 두고 어떻게 태연하라는 건지.


곧 있으면 엄마 행색을 하며 나타날 텐데 내가 지금 앓는 소리할 때가 아니지..


상태창.. 상태창..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볼까..


다시금 상태창을 점검해보던 중 '설정'이 눈에 밟혔다.


게임을 하다 보면 스킬, 장비, 스텟에만 열중하느라 설정을 경시하기 바빴는데..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보자.


[] 설정 []


•사운드

•그래픽

•감도


[] 닫기 []


그래픽?


그래픽 수준을 낮춘다면 시야를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래픽 []


0-1-2-3-4-5


[] 닫기 []


가족 놀이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칭 엄마를 보고 놀래면 안 된다.


필요한 순간이 오면 시야를 차단해보자.


"아들~ 엄마 잠깐 들어간다~ 너 자는 척하는 거면 혼날 줄 알아~~ 홍호홍."


우선 첫 번째 스테이지는 자는 척 연기하는 거다.


눈이야 감고 있으면 되는 거고 문제는 소리인데..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소리가 나면 무의식적으로 귓바퀴가 움직인다.


[] 사운드 []


0-1-2-3-4-5



[] 닫기 []


소리를 3에서 0으로 맞췄다.


백색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무음이다.


이제 소리에 반응조차 할 수 없겠지..


「쿠웅-」


비록 청각은 멎었지만, 촉각은 살아있다. 방문 근처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녀석이 방 안으로 들어온 거다.


"****.....*.*.*.*....***"


성공이다. 바닥이나 침대맡에서 느껴지는 진동 말고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


당분간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첫 번째 단계는 무사통과다.


「쿵!」


방문 근처에서 진동이 또 느껴졌다.


1회차 때는 페이크 였으니까 계속 누워있자.


"***-**...? ***?♩*♩♩····"


인중에서 느껴지는 콧바람.. 역시 아직 근처에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보자.


[첫 번째 스테이지를 완료하셨습니다.]


됐다, 성공이다!


***


저 녀석을 다시 마주한다는 게 꺼림칙하지만 여기서 누워만 있을 순 없다.


소리를 0에서 1로 재설정한 후 거실로 나갔다.


"아들~ 밥 먹어~~"


저 거지 같은 상판대기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할 수 있을까?


여차하면 그래픽을 최하로 맞추면 되니까 한 번 해보자.


"호호호홍! 우리 개구쟁이 이제 일어났어요?"


다행히 엄마(?)는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다.


"식탁 위에 밥 차려놨으니까 가서 먹어~ 다 먹어야 한다!!!!!! 꼭!!"


두 번째 스테이지는 식사 끝내기인 건가?


밥만 먹는 거야 어렵지 않지.


"......?!"


식탁 위에 차려진 육첩밥상은 식사라기보다는 사육에 가까웠다.


쌀과 고기 그리고 야채는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지네, 구더기, 사마귀, 장수풍뎅이가 그릇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내가 무슨 닭도 아니고.. 곤충을 먹으라는 거야?


"꼭! 꼭! 씹어먹어야 해요!"


먹어야 한다. 임무를 완수하고 도감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이건 쌀이고 저건 고기다. 그렇게 믿고 그냥 먹어 보자.


제발. 제발. 제갈재인 제발. 눈 딱 감고 입에 쳐넣자.


... ... 음... 입안에서 터져 나오는 자연의 풍미. 혀를 뽑아버리고 싶은 맛이다.


"어머멋~ 우리 아가 그렇게 맛있어요~ 엄마가 밥 한 그릇 더 줘애겠네."


돌연 엄마(?)가 등을 돌렸다. 차마 그 면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황급히 그래픽을 차단하고 나 스스로 시야를 박탈시켰다.


「탁」


지네가 꿈틀거리는 밥그릇을 가져와 내 코앞에 놔둔 것 같다.


"왜 안 먹어? 엄마가 해준 음식이 맛.없.어?!"

"...마.. 맛있어요."

"어머~ 기뻐라! 우리 아들 먹으라고 많이 해뒀으니까 배고프면 말해~"


먹어야 한다. 먹어야 한다. 역겨움에 사무쳐 속을 게워 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물고 뜯고 봐야 한다.


"뜸.들.이.지. 말고 먹.어."


그래픽을 낮춘 관계로 앞이 흐끄므리하게 보인다.


이래서는 제대로 젓가락질조차 할 수 없다.


생각해 보니까 이걸 일일이 젓가락으로 집어 가며 먹는 게 더 고역 아닌가?


쇠뿔도 단김에 뽑고. 고통은 짧을수록 좋다고.


차라리 두 손으로 집어 먹자.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기뻐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밥도 맛있게 먹어주고!"


과즙처럼 벌레 몸통에서 액기스가 스며 나온다.


벌레 다리 특유의 까슬거리는 촉감이 잇몸 사이사이를 간지럽힌다.


몇몇 살아남은 벌레들이 식도에서 꿈틀거린다.


길고 긴 미각의 고통 끝에 결국 밥과 반찬을 모두 비웠다.


[축하합니다. 두 번째 스테이지를 넘겼습니다.]


***


등교 준비를 위해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원래는 아침 세면까지 끝내야 하지만 차마 세면대에 얼굴을 처박을 자신이 없었다.


눈감고 세수하고 있는 타이밍에 저 새끼가 내 뒤통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장 졸도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아들~ 호호홍. 학교 조심히 갔다 와!"

"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정면이 안 보여서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으므로 그래픽 수준을 0에서 1로 조정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사방이 뿌옇게 보인다.


"그냥 등교하겠다고????????? 호호호???"

"하.. 학교.. 지각해서요.. 빨리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엄마한테 뽀뽀 안 해줄거야~~~~~~~~?"

"저도 이제 다 컸고.."

"뽀뽀해야지. 가족끼리는 헤어질 때 뽀뽀 해! 야! 한! 다! 고!"


싀발.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핑크색 촉수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다.


차마 저 주둥아리에 내 입술을 갖다 대는 건..


"뽀.뽀."

"엄마.." "뽀. 뽀. 뽀. 뽀. 뽀. 뽀. 뽀."

"해.. 해드릴게요. 뽀뽀."


그날 난 순정을 잃어버렸다.


***


[추.. 축하합니다.]


[소꿉놀이 세 단계를 모두 완료하셨습니다.]


[순정을 바친 대가로 히든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상점이 개설됩니다.]


***


어느 고등학교의 화장실 네 번째 칸.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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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24.09.04 5 0 -
15 에필로그 24.09.17 3 0 2쪽
14 도깨비 터(完) 24.09.17 3 0 14쪽
13 귀접(鬼接) 24.09.16 3 0 14쪽
12 홍청전(紅靑戰) 24.09.15 6 0 12쪽
» 소꿉놀이 II 24.09.14 8 0 7쪽
10 소꿉 놀이 I 24.09.13 6 0 5쪽
9 눈먼 자들의 괴담 II 24.09.12 6 0 9쪽
8 눈먼 자들의 괴담 I 24.09.11 6 0 6쪽
7 자살 좋아하세요 IV 24.09.10 6 0 12쪽
6 자살 좋아하세요? III 24.09.09 6 0 11쪽
5 자살 좋아하세요? II 24.09.08 6 0 9쪽
4 자살 좋아하세요? I 24.09.07 6 0 15쪽
3 흉가 체험 Ⅲ 24.09.06 7 0 8쪽
2 흉가 체험 Ⅱ 24.09.05 7 0 7쪽
1 흉가 체험 Ⅰ 24.09.04 15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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