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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9.04 06:41
최근연재일 :
2024.09.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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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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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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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좋아하세요? III

DUMMY

난간 밖으로 몸을 내던지자 중력이 '얼씨구나'하고 나를 끌어당겼다. 떨어지는 내내 바람결이 전신을 타고 수직으로 용솟음쳤다. 이보다 가벼웠던 순간이 있었을까. 자살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유로움이었다.

두 차례 호흡을 마셨을 때쯤. 그래, 찰나의 순간 만에 내 정수리가 지면에 닿아있었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인생 2회차?) 이승에서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의식을 차렸을 땐 당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안락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 중력에 짓눌려 이마부터 발끝까지 온통 무거운 느낌이다. 내 의식이 닿는 곳이라곤 가늘게 눈을 뜨거나 혹은 손끝을 움직이는 것뿐이다.

마치 검게 그을린 물웅덩이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아무래 몽롱한 정신이 채 가시지 않았나 보다.


[10]


[9]


[...]


[...]


[2]


[1]


눈꺼풀 사이로 환한 빛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신기한 것은 눈이 부시지도 따갑지도 않았다.

되려 아늑했다,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을 쬐는 것처럼.


이내 미라처럼 전신이 부적으로 뒤덮였고 수심 아래로 깊게 잠기어 갔다.


수장이었다.


[부활합니다.]


***


4교시 수학 시간 이동수업이었다.


1학년 1반으로 건너와 소리 옆에 앉았다. 수업 준비는 제쳐두고 이마에 손을 집은 채 생각을 더듬었다.


'다시 돌아온 게 확실하다. 죽으면 부활하는 거야.'


12시 정각이 되자 선생님이 교단 앞에 섰다. 평소처럼 칠판을 수학 공식으로 도배하며 수업을 이어가셨다.


옆자리에 앉은 소리가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이어서 교과서 상단에 무어라 적었다.


⌜너도 가기로 한 거야?⌝


⌜응?⌝


⌜기구가 말한 곳 있잖아. 버려진 절이라고 했던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이마를 뒤로 쓸어 넘기고. 입술에 침을 바른 후. 대답했다.


⌜가자, 같이.⌝


***


현재 시각 9시. 약속 시간까지 1시간가량 남았다.


샤워를 마친 나는 마음의 준비나 할 겸 의자에 앉았다.


아무래도 상태창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 같다. 약소 시간까지 여유도 있는데 틈틈이 정보를 파악해 두는 게 좋겠지.


요령 전수를 실행하자 부적이 진동했다.


[] 요령전수 []


<임무 실패와 파급 효과>


몇몇 임무는 실패 상태로 유보할 수 있습니다.


실패 여파는 현실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며,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도감 소유자에게 돌아갑니다.


해당 임무가 아니더라도 기타 괴담과 괴인을 기록하며 도감을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 확인 []


메인 퀘스트는 전적으로 도감을 채워나가는 건가. 서브 퀘스트는 실패 상태로 방치해도 게임 진행에 무리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아까부터 장비창이 번쩍거리던데 확인해 볼까나.


[] 장비 []


[몇몇 장비는 타인에게 한시적 양도가 가능합니다.]


[몇몇 장비는 현실에 구현됩니다.]


[총보유 장비 1개]


⏀추첨기(사용횟수 0회)


[] 확인 []


추첨기를 눌렀더니 '초심자의 행운 추첨권'이 생성되었다.


사용횟수가 0회에서 1회로 변경된 것으로 보아 사용 권한이 생긴 듯하다.


[추첨기를 통해 임무•효과•장비를 뽑으실 수 있습니다.]


[추첨기 이용 시 사용권 1회가 차감되며 보상은 각각 무작위로 선정됩니다.]


[추첨기를 돌리겠습니까?]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통용되는 유구한 격언이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아끼면 똥 된다'일 것이다.


지금 내가 뒤를 생각할 팔자가 아니므로 즉시 추첨기를 돌리기로 했다.


[축하합니다. '계약 환구'를 뽑았습니다.]


[] 효과 []


[총보유 효과 2개]


⏀요령 전수

⏀계약 환구


[] 확인 []


계약 환구는 봉인한 괴생 중 하나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효과라고 한다.


주의 사항에 '단, 수준에 걸맞은 괴생하고만 계약을 맺으십쇼.'라고 적혀있는 걸로 봐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뭐 첫 뽑기치고는 수준급인 것 같아 썩 만족스럽다.


상태창을 더 연구해 보고 싶다만 아까부터 핸드폰이 진동한다.


⌜재인아, 애들 다 모였어.


⌜너만 오면 고.⌝


슬슬 애들이 찾는다. 이만 떠나볼까.


***


"다 왔지? 출발한다."


우린 계단을 밟고 한층 한층 산을 올랐다.


숲은 두 얼굴의 백작처럼 낮과 밤이 확연히 달랐다.


갖은 색깔을 뽐내던 잎사귀와 꽃은 어둠에 물들어 그 형체를 구분할 수 없었고.


산뜻하던 분위기는 밤공기 특유의 중압감에 짓눌러 있었다.


"비 온다. 우산 챙겨온 사람?"

"일기 예보에 비는 없다던데.."


때아닌 내린 비에 온몸이 젖어 들어갔다.


"기구한테 들은 얘기인데. 우리가 지금 가려는 사원도 비 때문에 지어졌데."


조잘조잘 잘만 떠들던 아이들이 일시에 입을 잠갔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샘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옛이야기에 집중했다.


"옛날 농경사회 시절에 가뭄은 재난을 넘어 죄악으로 여겨졌다잖아. 이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안 그래도 흉년이 잦아서 먹을 것이 부족한데 올해도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백성이며, 땅 좀 있다고 으름장을 내던 지주며, 때야 볕에 시름을 앓아가고 있었지. 그런데 때마침 스님이 나타나서 '이곳 산 중턱에 절을 지으면 가뭄이 멎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했고.

그 소식을 들은 지역 백성들이 없는 살림, 있는 살림 죄다 떼와서 사원 건설에 열을 올렸더래.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절이 완성되자마자 비가 내렸고 백성들은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었지."

"해피엔딩이야?"

"행복할 뻔했지. 문제는 인간의 욕심에 끝이 없었다는 거야. 가뭄을 멈추고 기우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절에 몰려 들어 기도를 올렸지.

그렇다고 기도에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야. 단지 신묘한 힘에 의지해 개인의 안녕과 번영을 바랐을 뿐이지."


이야기에 집중한 사이에 우린 어느덧 산 중턱에 올라와 있었다.


"절 터가 좋긴 좋았나 봐. 사람들의 기도가 이뤄지고 저마다 복을 받았다고 하니깐. 그런데 스님께서 당부하신 말이 있었거든.

「바라는 것을 이뤄줄수록 효험이 떨어집니다. 필시 필요할 때만 기도를 올리며, 그 힘이 다 떨어지면 공양을 바치십쇼.」

스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 욕심 채우겠다며 무분별하게 기도를 올렸지.

결과는 안 봐도 뻔해. 머지않아 신묘한 힘은 그 기운을 다 했고. 더 이상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어."


겁에 질린 소리가 내 팔뚝에 손을 얹혔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사람들은 공양을 바치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쌀이나 감자 같이 가벼운 음식부터, 나중에 가서는 잔칫날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귀한 고기까지."

"그래서? 갖다 바치니까 소원을 들어줬데?"

"응. 그치만 기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더 큰 제물을 바쳐야만 했어. 만일 같잖은 공양을 바쳤다가는 약빨이 안 먹혔데. 문제는 여기서 터진 거야. 또 가뭄이 찾아온 거지. 그것도 역사에 남을만한 대기근이 말이야."


소리는 나와 팔짱을 끼다 못해 거의 품 안에 안겨 오려 했다.


"비 좀 내리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올렸는데 물 구경은커녕 먹구름조차 안 끼더래."

"공양 갖다 바치면 되잖아."

"이미 진작에 갖다 바쳤지. 질 좋은 사슴 고기부터 금은보화까지 불에 태워 가며 기도를 올렸는데도 비가 안 오더래."


"와- 시발 설마."

"응. 결국 제물 중의 제물이라는 불리는 걸 바치기로 했어."


샘이 눈을 부라렸다.


"사람. 사람을 바치기로 한 거."


불행 중 다행인지(?) 제물로 사람을 바치자, 비가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전술했듯 욕심에는 끝이 없었고 사람들은 제 욕망을 채우려 또 사적인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힘없는 노인부터 과부가 된 여인 그리고 부모 없는 고아.

흔히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돌팔매질하며 제단 위에 올리는 게 어느새 마을 전통이 되어 있었다.


"나중가서는 급기야 인신 공양의 꽃이라고 불리는 걸 바치기로 했지."


샘이 소리를 가리켰다.


"어린 처녀!"


일순간 천둥이 쳤고 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제 이야기에 스스로 취한 샘은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마을에 여자애들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었겠어? 있다고 해도 자기 집 애를 제물로 바치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을 거 아니야?

그래서 마을 지주들이 모여서 결론을 내렸어. 전국적으로 어린 처녀를 사 오자고."

"그걸 누가 팔아?"

"거짓말 좀 보내면 어렵지 않아. 부자 마을에 시집 보낼 여자를 모집한다고 하면 되거든. 여자 부모에게는 딸 시집보내는 조건으로 지참금을 쥐여주면 되고. 지금이야 먼 타지로 시집 보내도 연락하기가 쉬웠지만 옛날에는 산 하나만 넘어도 남이었으니까."


우리는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결국 절은 악귀에 의해 타락해 갔어. 어느 날부터 소원은커녕 그 주변에만 가도 오한이 쏟아지고 없던 우환이 집안에서 터져 나왔지. 급기야 절 주변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병에 걸렸다니까. 천연두라는 전염병 들어봤어?"

"호환마마라고 불리는 거 아니야?"

"그래 그 병이 삽시간에 마을에 퍼진 거야. 노인이며 애들까지 싹 다 죽어갔고 건장한 사내들까지 주검이 되어 지푸라기로 엮은 수의를 입었었지.

마을 후미진 골목까지 곡소리로 한창이던 그때 그 스님이 나타난 거야.

「이미 검게 물든 곳을 깨끗이 씻겨줄 순 없습니다. 대신 부적 하나를 내어줄 테니 불상 머리에 붙이십쇼. 우환이 퍼지는 것을 막아줄 겁니다.」

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어."

"그게 우리가 가져가려는 부적이야?"


샘이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샘... 샘아 너 목이.. 괜차..ㄴㅎ.. 아..어?"


샘은 대답 대신 눈만 치켜올렸다. 그의 코앞에서 주인 잃은 몸뚱아리가 휘청거렸다.


내가 나를 올려다보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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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24.09.04 5 0 -
15 에필로그 24.09.17 3 0 2쪽
14 도깨비 터(完) 24.09.17 3 0 14쪽
13 귀접(鬼接) 24.09.16 3 0 14쪽
12 홍청전(紅靑戰) 24.09.15 6 0 12쪽
11 소꿉놀이 II 24.09.14 7 0 7쪽
10 소꿉 놀이 I 24.09.13 6 0 5쪽
9 눈먼 자들의 괴담 II 24.09.12 6 0 9쪽
8 눈먼 자들의 괴담 I 24.09.11 6 0 6쪽
7 자살 좋아하세요 IV 24.09.10 5 0 12쪽
» 자살 좋아하세요? III 24.09.09 6 0 11쪽
5 자살 좋아하세요? II 24.09.08 6 0 9쪽
4 자살 좋아하세요? I 24.09.07 6 0 15쪽
3 흉가 체험 Ⅲ 24.09.06 7 0 8쪽
2 흉가 체험 Ⅱ 24.09.05 7 0 7쪽
1 흉가 체험 Ⅰ 24.09.04 14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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