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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9.04 06:41
최근연재일 :
2024.09.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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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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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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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체험 Ⅲ

DUMMY

먹으면 살려준다는 말일까.


먹으면 도망갈 시간을 준다는 뜻일까.


먹으면 뭘 해주기야 할까?


"맛있더냐?"


그 어느 것 하나 약속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난 친구의 살점을 씹고 있다.


"볼수록 종잡을 수 없는 놈이구나! 내 지루함에 사무쳐 골이 쑤실 지경이었는데 참으로 재밌구나!"

"...사 살려주십쇼."

"그리도 살고 싶더냐? 이거야 원 제 목숨만 유지할 수 있다면 애미, 애비도 팔아먹을 새끼구나."

"죄송합니다. 저는 단지 살고 싶은 마음에.."


뭐가 그리 재밌는지 도깨비가 꺼이꺼이 목청을 울어대며 털썩 앉았다.


살다 살다 가마솥을 가운데 두고 도깨비와 겸상하는 꼴이라니..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내 그 간절함이 기특하여 들어줄 테니 말해보거라."

"살려주세..."

"친구들과 똑같은 부탁만 되풀이하는구나?"


양샘, 하소리, 권사책.

고깃덩어리로 전락한 내 친구들이 죽기 직전까지 애원하던 그 부탁.


녀석이 결코 들어주지 않은 그 부탁.


살려달라고 암만 부탁해 봤자 녀석은 들어줄 생각조차 없는 게 틀림없다.


"6분."

"네?"

"6분 뒤면 동이 튼다. 그때까지 잘 도망가 보거라."


도깨비는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끼는 날씨에 주로 활동하다가 닭이 울어 동이 트면 그 모습을 감춘다는 설화를 들어본 적 있다.


만일 설화가 사실이라면 내게도 마지막 찬스가 남아 있다.


딱 6분. 버티면 여명이 밝아올 테고 녀석은 사라진다.


"헌데 내 궁금한 게 있다."

"마.. 마... 말씀하세요."

"이곳엔 대체 무엇하여 온 것이냐?"

"괴담을 들었습니다. 이곳 버려진 절에 부적이 있다고. 그 부적을 가지고파 왔습니다."


도깨비가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 땡중이 남기고 간 유품을 말하는 게냐?"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

"그간의 죄를 반성하라며 다짜고짜 날 이곳에 가둔 그놈 말이다. 이 빌어먹을 숲에서 삼백-해만 채운다면 풀어준다더니!! 약속을 냉패겨치고 여태 잠적해 버렸단 말이다?!!"


현대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고작 82.7세다.


그런데 300년 뒤에 다시 찾아오겠다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영겁의 시간 약속이다.

즉, 그 땡중은 처음부터 이놈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겠지..


"내 그놈의 그림자라도 눈에 밟힌다면 사지를 찢어발길 터인데!!!"


녀석이 옛일을 꺼내 드는 동안 어느새 6분 중 절반이 지났다. 그래 지금처럼 과거에 발목 잡혀가며 쓰잘때기 없이 시간을 낭비해라. 머지않아 이 밤이 끝날 테고 난 집으로 돌아갈 테다.


'부디 3분만 더 더.' 라고 바라던 찰나에.. 돌연 그놈이 '풋'하고 웃음을 토해냈다.


"어떻터냐? 이만큼 말벗이 되어줬으면 만족하겄느냐?"


마치 내 속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듯 녀석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3분 남았을 테지?"

"사.. 살려주..."

"줄 것 같으냐?"


소 몸뚱아리에 비견되는 육중한 팔.

녀셕의 그 괴랄한 팔이 대각을 가로지르며 가마솥을 내팽개쳤다.


팔팔 끊던 육수는 공중에 흩날렸고 친구들의 토막 난 오체가 땅바닥에 뒹굴었다.


나는 당황할 새도 없이 즉시 엉덩이를 일으키고는 반대편으로 도망갔다.


'어디로 가야 할까? 과연 도망치는 게 유의미할까? 왜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거지? 차라리 자살할까? 그러면 마음이라도 좀 편할까?"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머리. 이와 반대로 쉬지 않고 내달리는 몸.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논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나는 '내가' 아닌 지경에 이르러서야 희망이 번뜩였다.


'이제 2분 남았다. 버티자. 버티면 살 수 있다.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거다.'


녀석이 아무리 재빨라봤자 설마 2분 남짓한 시간을 못 버틸까. 나는 닥치는 대로 뛰어다가 곧장 절로 들어갔다.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했는지 본능적으로 불상 아래로 기어들어 갔고 굼벵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살려면 지 친구도 잡아먹을 놈. 지 애미, 애비도 팔아먹을 호로새끼. 그리하면서까지 이승에 발을 붙이고 싶더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라 자신할 수 있더냐?"


녀석이 절 주변을 겉돌며 내게 갖은 모욕을 쏟아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왜지? 왜 절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거지? 설마 이곳에 무슨 결계라도 쳐져 있는 걸까? 그래서 들어오지 못하고 겉도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면 미안하구나!! 핰 학 학 하!!"


마치 이번에도 내 속마음을 알아챘다는 듯, 녀석이 보기 좋게 벽을 부수며 내부로 들어왔다.


어쩌면 저 새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읽을 줄 안다면 어찌하겠느냐?"


이런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속내를 들춰보고 있었던 건가.


역시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녀석의 다부진 몸에 비하면 내 육체는 너무나 나약했고, 하물며 원인 불명의 이유로 정신세계마저 간파당한다.


이토록 열등한 내가 강자를 상대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게 여기 있었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불상 이마빡에 붙은 붉은색 종이가 눈에 띄었다.



모든 사건의 원흉인 그 부적이다. 난 원망스러운 마음에 왼손으로 부적을 움켜쥐었다.


이걸 가지고 오자고 객기만 부리지 않았다면..


"내 즐거움도 만끽할 수 없었겠지!!"


녀석이 다가온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녀석이 가까워진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시간이 거의 다 되지 않았을까. 대체 얼마나 뻐기고 있어야 하는 거지. 이럴 때면 돌처럼 굳은 시간이 원망스럽다. 이젠 그런 시간을 기다리는 것조차 지친다.


"꼬끼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수탉이 울어댔다. 이는 곧 여명이 밝는다는 신호탄.


내 기대대로 새벽이 가시고 날이 차올랐다.


도깨비는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길이 날뛰었다. 시뻘건 눈으로 나를 보며 방언 터진 것처럼 무어라 씨부렸다.


흡사 당장이라도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랄하지 마. 새벽이 트면 사라진다는 것도 구라잖아."

"흣흑흫흨흥흐흐흣흐."

"재밌냐. 사람 가지고 노니까?"

"흨흨흐흗흩흨흨흣."


시발놈이 한 손으로 내 몸통을 움켜쥐었다. 그 악력에 흉부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어서 내 오른 다리부터 베어 물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추가로 내 왼쪽 다리를 씹어댔다. 사람이 충격만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땀에 흠뻑 젖은 내 오른팔을 쪽쪽 빨아댄다. 목구멍이 쉬어버린 나머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참으로 재밌었도다!!"


끝으로 내 남은 육신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곳은 동굴마냥 어두컴컴했고 악취가 코를 찔러댔다.


곧이어 혓바닥이 내 몸을 휘감고 침을 묻혔다. 머지않아 어금니가 위아래로 나를 짓누르려 했다.


그 순간.


[도감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왼손에 들린 부적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작성 수락 시 강제적으로 도감을 취득합니다.]


[도감 취득자는 패널티로 무한 부활합니다.]


[동의하실 경우 부적에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최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핏기를 먹물 삼아 검지 끝으로 이름 넉 자를 새겨넣었다. 말 그대로 혈서였다.


[제갈재인]


[서명이 완료되었습니다.]


[체크 포인트로 환생합니다.]


***


정신을 차렸을 땐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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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24.09.04 5 0 -
15 에필로그 24.09.17 3 0 2쪽
14 도깨비 터(完) 24.09.17 3 0 14쪽
13 귀접(鬼接) 24.09.16 3 0 14쪽
12 홍청전(紅靑戰) 24.09.15 6 0 12쪽
11 소꿉놀이 II 24.09.14 7 0 7쪽
10 소꿉 놀이 I 24.09.13 6 0 5쪽
9 눈먼 자들의 괴담 II 24.09.12 6 0 9쪽
8 눈먼 자들의 괴담 I 24.09.11 6 0 6쪽
7 자살 좋아하세요 IV 24.09.10 5 0 12쪽
6 자살 좋아하세요? III 24.09.09 5 0 11쪽
5 자살 좋아하세요? II 24.09.08 6 0 9쪽
4 자살 좋아하세요? I 24.09.07 6 0 15쪽
» 흉가 체험 Ⅲ 24.09.06 7 0 8쪽
2 흉가 체험 Ⅱ 24.09.05 7 0 7쪽
1 흉가 체험 Ⅰ 24.09.04 14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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