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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9.04 06:41
최근연재일 :
2024.09.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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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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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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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살 좋아하세요 IV

DUMMY

"춤을 춰라."


그놈이었다.


"가락을 읊어라."


녀석이 땅바닥에 떨어진 샘의 얼굴을 발로 치댔다.


공포에 절은 소리는 온몸이 굳었고, 사책이는 도깨비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흥을 돋워라."


건강한 육체에 맑은 정신이 깃든다고 하던데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보통의 아이라면 제 몸 챙기기 급급했을 텐데, 유도부 출신 사책이가 의협심을 발휘하며 우리들의 손목을 낚아챘다.


"멀뚱멀뚱 보고만 있지 말고 튀어!!"

"ㅅ.. 샘이?!"

"야 하소리, 봐서 알잖아. 사람 목이 몸뚱어리에서 분리됐는데 샘이 살아 있을 거 같아? 산 사람마저 살기에도 위급한 상황이라고. 뒤돌아보지 말고 뛰기나 해."


부상만 없었다면 엘리트 체육인이 되었을 거란 주변의 평가가 괜한 말이 아니었다.


1회차 때는 나도 경향이 없어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지만, 권사책 이놈 의외로 담력이 세고 상황 판단 능력이 우수하다.


"사 책아 어디로 가는 거야?"

"나도 몰라. 그냥 길 따라서 가는 거야."

"그 괴물은? 왜 안 보이지?"

"아 시발 나도 모른다니까!!"


그래도 애는 애였다. 북받치는 감정을 못 이기고 비속어를 난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 같아도 당장 1회차 때 '시발' '좆같네' '개싀부랄'을 쏟아내며 구슬땀을 흘렸으니까.


"저게 그 버려진 절 아니야? 일단 저기로 가서 몸을 숨기자."

"누가 있으면 어떻게 해?"

"버려진 절에 누가 있으면 그게 버려진 거겠냐."


1회차 때와 비교하면 세세한 부분들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은 유사하다.


곧 있으면 도깨비가 절간에 숨은 우리를 찾아내어 농락할 테지.


"벌거숭이들은 듣거라."


우리는 서로를 한 몸처럼 여기며 밀착했다.


"너희 중 하나가 자발적으로 나오면, 나머지는 살려주겠다."


역시 저번과 똑같다. 도깨비의 회유에 우리 셋은 눈치싸움을 시작할 테지.


"재인아 그리고 소리야. 우리 중에 저놈한테 직접 기어가고 싶은 사람 있냐."


있을 리 없다. 고로 선뜻 '예, 아니요'라고 대답할 사람도 없었다.


"하기야 어떤 또라이가 저 새끼랑 친구 먹고 싶겠어."


사책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꽉 잡은 소리의 손을 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사책아 너 어디 가려고?"

"어차피 이대로 있다가는 전부 다 절명해. 네들도 봐서 알잖아, 저놈 덩치에 우리 셋이 맞붙어도 승산이 없어."


사책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3년 동안 몸과 몸을 겨루면 산 새끼다.

여기서 그 누구보다 체급의 격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르는 게 약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데 체급 차이를 모른 척하기엔 사책이는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저놈 제안에 따라 봐야지."

"저 괴물이 약속 지킨다는 보장도 없잖아. 하물며 약속을 지켜준다 해도 그럼 네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넌 재인이랑 무사히 돌아갈 생각만 해."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고 하던가. 사책이는 우리를 등진 채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의 떨리는 등줄기가 눈에 어렸다.


***


[임무 '도깨비 터'에 실패하셨습니다.]


[생존(현재): 0/3]


호기롭게 도전했다만, 이번에도 실패다.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한 순간에 죽어버렸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도감 소유자가 사망하셨습니다.]


[사인: 타살 - 손상사(損傷死) ]


매 죽음의 순간마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나는 적어도 죽음으로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으니까.


[징벌 효과 '무한 부활'이 발동됩니다.]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10]


[9]


[...]


[...]


[2]


[1]


***


"샘아 네 아랫도리가?!"

"어? 시발."


종전과 같이 샘이 죽음의 첫 타석에 섰다. 결과는 어림없는 똥볼-외야 플레이 아웃이었다.


"사책아 가지마!! 어차피 죽는다니까!!"


다음은 사책이, 그다음은 소리, 마지막은..


"또 나만 남았네."


도깨비와 벌써 세 번째 독대다. 제아무리 크나큰 두려움일지언정 이쯤 되면 익숙하다.


괜히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너는 대체 무엇이고 누구인 게냐. 인간이 주제에 누구에게 감히 눈을 부라리는 것이냐."

"긴말 필요 없고 하던 대로 합시다."


시발 신호 좀 주고 때릴 것이지.


녀석의 수직으로 내리꽂는 발길질에 내 몸체가 깡통마냥 찌그러졌다.


[징벌 효과 '무한 부활'이 발동됩니다.]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10]


[9]


***


샘 - 사책 - 소리가 갖가지 방법으로 '또' 죽었다.


머지 않아 나도 또 죽겠지.


"어차피 죽일 거. 재미 볼 거 다 봤으면 얼른 끝내주십쇼."

"어이가 없는 놈이구나. 제 목숨을 그리 하찮게 여기다니."


"하찮은 게 누군데."

"이놈!!! 벌레만도 못한 놈이 감히 누구에게 으름장을!"


근육, 신장, 근력. 이놈을 상대로 어느 것 하나 따져봐도 열세다.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싸움은 기세다.


"죽여. 죽이라고. 죽이고 또 죽여. 그게 네놈이 원하는 거잖아."


내 추측대로라면 이놈은 독심술(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능력) 소유자다.


"바라는 것이 그거라면 내 원 없이 들어주겠다!"


그 독심술을 역이용해야 한다. 승리할 방법은 그뿐이다.


[부활합니다.]


***


"네... 네놈.."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무슨 짓을 벌이고 있었던 게냐?!!"


지금껏 있었던 일을 가라지 않고 생각해 주겠다.


"몇 번을 죽은 게냐? 몇 번을 죽어서야 멈출 생각인 게냐? 왜? 대체 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냐!"

"잔말 말고 또 죽여."

"이놈!!!"

"죽이고 또 죽여도 네놈 앞에 다시 나설 테니까 속 시원히 죽여라. 설령 네 놈이 내 목숨을 살려줘도 소용없어. 내가 내 손으로 죽으면 그만이니까."


이번 죽음은 좀 많이 아팠다.


설마 산 채로 잡아먹을 줄이야. 그것도 질겅질겅 고통을 음미하면서.


[부활합니다.]


***


"....."

"....."


도깨비와 나는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마주 봤다. 비록 대화는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많은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래도 시행착오가 마냥 쓸모 없진 않았나 보다.


양샘, 권사책, 하소리. 내 친구들이 모두 살아 있다.


아니 애초에 죽을 필요가 없다. 죽여봤자 또 되살아날 테니까.


"애들은 보내주시죠. 당신과 나 우리 둘만 있으면 되잖아."


아무리 재밌는 게임도 목적 없이 반복되면 물리기 일쑤다.


이놈의 잔악한 살생도 마찬가지다. 다음이 없는 노력은 무의미할 뿐이다.


"네 바람대로 친구들을 보냈으니 말해보거라. 원하는 게 무엇이냐."

"순순히 봉인되십쇼."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그럼 부탁처럼 들립니까?"


나는 수중에서 부적을 꺼내 들었다.


"이 부적 익히 보셨겠죠?"

"땡중의 장난감 아니더냐."

"장난감..? 글쎄 적어도 당신한텐 아닐 텐데요?"


녀석의 일그러진 표정으로 예컨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부적과 녀석의 상관관계.


"당신이야 상대방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내 밑잔 들춰내는 거야 어렵지 않겠죠."


내가 입 아프게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고로 지금의 난 대화가 아니리 경청의 시간을 가질 때다.


"꾀가 많은 놈이로구나."

"힘없는 입장이라서요. 잔머리라도 굴려야죠."


녀석이 흙바닥에 철퍽 앉았다. 나도 녀석을 따라서 아빠 다리를 했다.


"땡중이 나를 속였다. 이곳에서 악귀가 퍼져나가지 않게 도와주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겠다고."

"그런데요?"

"그렇게 날 이곳에 가뒀지."


비가 내렸다.


가랑비와 소나기 그 중간쯤의 빗줄기였다.


마치 하늘이 서글프게 우는 것 같았다.


"도깨비가 뭐가 아쉽다고 사람에게 보상을 바란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무거나."

"네?"

"무엇이 되었건 상관없었다. 단지 치..ㄴ.."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친구가 나를 필요로 했으니까.


내 쓰임을 증명하고 친구와 놀이를 즐기고 싶었다.


"땡중이 그쪽 친구라고요?"

"말은 바로 해야지. 친구인 줄 알았었다."

"아니. 도통 무슨 소리인지.."


녀석이 나뭇가지를 이쑤시개 삼아 아랫니를 후볐다.


"이해할 필요 없다. 속인 놈보다 속은 놈이 병신 취급 받는 시대 아니더냐. 다 내 잘못이로다."

"잘잘못은 애초에 관심 없었습니다. 근데 왜 애꿎은 사람을 죽여가며 화풀이를 하는 겁니까?"

"근묵자흑이라는 말 알더냐?"


검은 데 가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몸담는 환경과 어울리는 사람에 따라서 자기 자신이 변한다는 사자성어다.


"이곳에 갇혀 악귀와 동고동락하니 내 마음속 원한이 갈수록 깊어지더구나. 결국 사람을 헤치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 허나 오해하지 말거라. 네놈에게 동정이니 구하고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니니."


누군가의 이익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처녀들.


그 누구보다 사람을 증오하는 사람들.


산 재물의 원한이 서린 이곳. 그 원한이 도깨비를 오염시켰다.


"악귀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한 명도 보이지 않던데요."

"기백 년이 흘렀다. 제아무리 원한 깊은 영혼이라 할지라도 육체 없이 이승에 오래도록 머물 순 없다. 몇몇 심지가 굳은 놈들이 있었지만 내 몸에 흡수된 지 오래로다."

"당신이 악귀를?"

"사람도 먹는데 악귀라고 못 먹을 것 같더냐?"


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곤 도깨비가 웃어 보였다.


"농담이다 이놈아. 나도 입맛이란 게 있는데 아무거나 주워 먹을 것 같더냐."

"그럼요?"

"말 그대로 흡수당했다."


흡..수 당했다?


"원한을 갚지 아니하고는 이승을 떠날 수 없다면서 자기들 멋대로 내 몸에 달라붙더구나. 하루 이틀이면 모르겠지만 허구한 날 남의 몸에 붙어 기생하려 드니 나라도 별수 없었지."


도깨비가 제 머리를 치댔다.


"가거라. 제 정신을 붙잡고 있는데도 한계가 있다. 내 머지않아 의지와 상관없이 네 녀석을 해할 것이다."

"못 갑니다."

"그럼 또 죽을 테냐."

"아뇨. 대신 당신을 봉인할 것입니다."


녀석이 뿌리째 뽑아버린 나무 밑동이 내 정수리를 스치고 갔다.


"내 아무리 죽지 못해 사는 입장이라 해도 네놈 같은 애송이게 전복당할 마음은 없다!!"

"조건을 내걸죠."

"조건? 거 한 번 씨부려 보거라."

"저와 계약을 맺으시지요. 한시적으로나마 이승에 머물 수 있으실 겁니다."

"갖지도 않은 소리."

"그럼 죽이십쇼. 저는 되살아나 또 찾아올 테니까요."

"끝도 없는 싸움을 자초하겠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없다.


이 녀석을 방치했다가 또 어떤 파급효과를 맞이할지 모른다.


변수는 최대한 없애는 게 상책이다.


"저를 죽이시겠습니까?"

"너를 죽이겠다면."

"그리하십쇼."

"허면 또 죽으러 올 테냐."

"기꺼이요."


도깨비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재밌도다!! 내 일평생 이처럼 흥겨웠던 적이 없도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찢어질 것 같았다.


"후회 말거라!! 네놈이 선택한 계약이로다!"


새벽이 밝아왔고 도깨비의 몸이 잿빛이 되어 산화했다.


"내 기대하겠다, 네놈과의 동행을. 어디 한 번 원 없이 즐겨보자꾸나."


***


[] 임무 []


축하합니다.


'도깨비 터'를 완수하셨습니다.


생존 3/3


완성도: ☆☆☆☆☆]


[] 닫기 []


[?]


[?]


[?]


[?]


[완성도를 모두 충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임무의 숨겨진 이름을 해독합니다.]


[?] 도**ㅁㄴㅇ** 터 [?]

[?] ㄷ**깨비ㅅ** 터 [?]

[?] 도**억시 *ㅁㄴ* [?]

[?] 두*억*ㄴ**ㅁ ** [?]

[?] 두억*ㄴㅁ** 의*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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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억시니의 터가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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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에필로그 24.09.17 3 0 2쪽
14 도깨비 터(完) 24.09.17 3 0 14쪽
13 귀접(鬼接) 24.09.16 3 0 14쪽
12 홍청전(紅靑戰) 24.09.15 6 0 12쪽
11 소꿉놀이 II 24.09.14 7 0 7쪽
10 소꿉 놀이 I 24.09.13 6 0 5쪽
9 눈먼 자들의 괴담 II 24.09.12 6 0 9쪽
8 눈먼 자들의 괴담 I 24.09.11 6 0 6쪽
» 자살 좋아하세요 IV 24.09.10 6 0 12쪽
6 자살 좋아하세요? III 24.09.09 6 0 11쪽
5 자살 좋아하세요? II 24.09.08 6 0 9쪽
4 자살 좋아하세요? I 24.09.07 6 0 15쪽
3 흉가 체험 Ⅲ 24.09.06 7 0 8쪽
2 흉가 체험 Ⅱ 24.09.05 7 0 7쪽
1 흉가 체험 Ⅰ 24.09.04 15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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