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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9.04 06:41
최근연재일 :
2024.09.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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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6

작성
24.09.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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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체험 Ⅱ

DUMMY

살아보겠다고 친구들 죽음까지 들먹이는 꼴이 우스웠을까. 녀석이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검은 실루엣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 하얀 치아. 그 백색의 인상은 가히 기괴하다 못해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춤을 춰라."


철판을 찢는듯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게 꽂혔다.


"가락을 읊어라."


일순간 나는 내 위치를 깨달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인간은 존엄한 생명체가 아니라 한낱 장난감에 불과했다. 당신의 눈과 귀를 쾌락으로 점칠 의무가 있는 노리개. 언제든 싫증 나면 먹잇감으로 전락할 운명. 그게 바로 내 분수다.


하기야 내 처지가 어떻든 간에 목숨만 살려주면 무슨 짓을 못 할까.


나는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몸을 일으켰고 양손을 허리춤에 얹혀놓은 채 골반을 튕겼다.


발성과 애원 그 어딘가의 목소리로 흥얼거렸고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웃어 보였다.


수치스러운 쇼(Show)였다.


"더- 더 해봐! 더!"


내 근본 없는 춤사위와 가사 없는 콧노래에 흡족했는지 녀석이 소리내어 웃었다.


관객의 응원에 힘 입어 나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치욕을 연기했다.


더 병신같이. 더 구차하게. 살려달라며 춤을 췄다.


"재밌어, 재밌다고!! 이래서 사람은 재밌어!! 살라 달라며 아등바등 애원하는 네 꼴을 봐라! 열등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시간이 흐를수록 내 동공은 어둠에 적응해 갔다. 머지않아 녀석의 실루엣이 뚜렷해졌다.


녀석의 안면은 흉측하면서도 권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마치 돌을 깎아 만든 이무기의 조각상 같다고나 할까.


괴이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3척에 달하는 녀석의 신장만큼이나 다부진 근육들이 눈에 띄었다.


이 모습은 흡사 도깨비와 같았다. 아니, 직감한다. 녀석은 도깨비였다.


"벌거숭이 같은 놈들. 남의 집에 허락도 받지 않고 난동을 부릴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살려달라 애원하는지. 그래도 네놈만큼은 썩 흥겨웠으니 아량을 베풀어주겠다."

"살려주시는 겁니까.."

"살려? 누구를? 너를? 내가? 왜?!"


도깨비가 어둠 속을 빠져나와 내게로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자 녀석의 손에 들린 형체가 달빛에 반사됐다. 처음에는 당연히 도깨비 하면 빠질 수 없는 방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선입견에 불과한 착각이었다.


녀석의 손아귀에 들린 것은 소리의 얼굴이었다.


"말해보거라. 얼마나 더 살고 싶으더냐?"

"....."

"살려달라 사정하지 않았느냐."

"....."

"10초면 되겠느냐? 아니면 더 필요한 것이더냐? 네놈의 모가지를 언제쯤 가져가면 만족하겠느냐??"


아그작 와그작. 녀석은 소리의 얼굴을 요기꺼리 삼아 한 입 베어 물었다.


학교에서 제법 인기몰이 좀 하던 이쁘장한 이목구비였는데.. 절반 가까이 도륙나버린 소리의 얼굴은 그 고운 자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가히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이 아이를 다 먹어 치울 동안만이다. 그 안에 도망가면 살 것이고 아니라면 네놈 또한 친구와 같은 꼴을 모면하지 못할 테지."


도깨비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내 품에 안긴 소리의 팔목을 끄집어 올렸다.


"도망가지 않고 뭐하더냐?! 가라! 살고 싶으면 뛰고 또 뛰어 이 숲을 헤집어라!"


도깨비 말대로다. 살고 싶으면 뛰어야 한다. 설령 녀석에게 잡힌들 기회는 지금뿐이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신발 한 짝이 어디 갔는지 왼발이 흙더미에 마구잡이로 긁혔다. 아프다며 징징거릴 때가 아니다. 시답잖은 생채기에 앓아누웠다가는 발이 아니라 내 전신이 아작난다.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을 때쯤 내 뒤안 켠으로 녀석의 함박웃음이 들려왔다.


과연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내 쇼가 즐거웠다면 적어도 1분은 주지 않을까. 설마 야박하게 진짜로 10초만 주진 않을 테지.


닭도 영계가 맛있다는데 부디 소리의 젊디젊은 육신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먹었으면 좋겠다. 맛이 썩 괜찮았다면 샘과 사책이의 고깃덩어리도 즐겨줬으면 좋겠다. 제발. 제발. 내가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때까지만 시간을..


"다 숨었더냐!!!!! 냐!!!!! 나!!! 아!!!"


1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 찾는 녀석의 목소리가 이 숲에 울려 퍼졌다. 그뿐만 아니라 '쿵 쿵' 녀석의 걸음걸이마다 지면이 흔들려 왔다.


걸음걸이는 점차 빠르게, 점점 거세게, 이윽고 빈번해졌다. 녀석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날 즐겁게 해줄 테냐? 내 눈을 피해 달아날 테냐? 털끝 하나 보이지 않게끔 꼭꼭 숨어 보거라. 살고 싶거든 숨 죽여 있거라. 너와의 놀이에 나는 몹시 흥분되노라!!"


저놈이 도망칠 기회를 준 이유. 그건 희망이나 자비가 아니었다.


진부한 인생살이에 즐거움을 선사할 유희. 마치 일진들의 인간 장난감 격에 가까웠다.


괴롭힐수록 움츠러들고, 하지 말라며 울부짖고, 도와달라며 애원하는 내 모습에 정복감을 느끼고 있던 거다.


내 필사적인 도망조차 저놈에게는 의도된 쇼(Show)란 말이다.


"발자국 찾았다!"


불길한 예감에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어둠 속으로 안광이 번뜩였다.


짐승의 눈이라고 하기에는 타점이 너무 높았다. 그래, 저놈이 그새 뒤쫓아와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불빛..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숲길 너머로 불꽃이 일렁거렸다.


희망이어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틀림없다.


나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를 이끌고 질주했다.


나뭇가지가 내 눈동자를 할퀴어도 멈추지 않았다.


잘못 밟은 이끼에 발목이 돌아가도 이 악물고 달려갔다.


차라리 죽는 게 속 편하다며 정말 다 포기하고 드러눕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나아갔다.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고 불빛에 닿은 내가 말한다.


"시... 발."


기껏 달려 도착한 곳은 녀석의 집(?)이자 사건의 원흉인 버려진 절이었고.


일렁거리던 불빛의 정체. 그것은 육수가 팔팔 끓고 있는 가마솥의 화로였다.


그리고 그 솥 안에는 내 친구들의 육체가 먹음직스럽게 도살되어 있었다.


저만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말했다.


"살고 싶더냐? 그럼 어디 남김없이 먹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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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24.09.04 4 0 -
15 에필로그 24.09.17 3 0 2쪽
14 도깨비 터(完) 24.09.17 3 0 14쪽
13 귀접(鬼接) 24.09.16 3 0 14쪽
12 홍청전(紅靑戰) 24.09.15 5 0 12쪽
11 소꿉놀이 II 24.09.14 7 0 7쪽
10 소꿉 놀이 I 24.09.13 5 0 5쪽
9 눈먼 자들의 괴담 II 24.09.12 5 0 9쪽
8 눈먼 자들의 괴담 I 24.09.11 5 0 6쪽
7 자살 좋아하세요 IV 24.09.10 5 0 12쪽
6 자살 좋아하세요? III 24.09.09 5 0 11쪽
5 자살 좋아하세요? II 24.09.08 5 0 9쪽
4 자살 좋아하세요? I 24.09.07 5 0 15쪽
3 흉가 체험 Ⅲ 24.09.06 6 0 8쪽
» 흉가 체험 Ⅱ 24.09.05 7 0 7쪽
1 흉가 체험 Ⅰ 24.09.04 14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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