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연기하는 천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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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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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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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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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역 배우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DUMMY


* * * *


“아역 배우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뭐, 그런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올해로 9년 차에 접어든 캐스팅 디렉터, 임동원이 숟가락으로 국밥을 휘휘 젓다 한숨을 삼켰다.


“그러니까, 제 말은.”

“네 말은.”

“다른 건 몰라도 아역 배우는 그대로 가는 게 어떠냐는 거죠. 아역 배우들 사이에서는 소식도 빠르게 돌고···, 보호자가 또 조금 드세요? 말은 직접적으로 안 하는데 어디서 듣고 왔는지 매일 기프티콘에, 전화에···다시 촬영해달라고 무언의 압박이 진짜···! 아! 아니면 PD님이 대신 나서주시던가요.”


임동원의 말에 김성태 PD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임동원 진짜 많이 컸네. 내 밑에서 촬영 스태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캐스팅 디렉터가 되더니···하이고, 진짜. 하여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배터리 들던 건 10년도 더 지났는데 만날 때마다 그 얘기야.”

“뭔마?”

“···아뇨.”


임동원이 국밥에 얼굴을 박을 기세로 고개를 숙였다. 본능. 본능 같은 움직임이었다.


어떻게 10년이 넘었는데도 잊히지가 않아.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소문만 몇 년째 들었는데 임동원은 여전히 김성태가 무서웠다. 스태프 냄새는 10년이 넘어도 안 빠진다더니. 이게 그런 건가. 임동원이 속으로 푸념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진짜 왜 바꾸려는 거예요? 이제 두 달 뒤에 방영 아니었어요?”

“두 달 뒤에 방영? 맞지.”

“그때 무조건 예쁜 데서 촬영해야 한다고, 지방으로 막, 야촬(야외촬영) 가고 그러지 않았어요?”

“야촬. 그랬었지.”


김성태가 오랜 옛 추억을 떠올리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상은 바로 2주 전이었지만.


“아, 그렇게까지 해놓고 진짜 뭐 때문에 다시 뽑겠다는 건데요. 이러지 마시고 딱 1화에만 나오는 단역이니까 그냥 아무나···”

“아무나가 해도 되면 이렇게 안 하지.”


김성태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임동원이 김성태의 바뀐 분위기에 입술을 말았다. 합죽이. 이럴 때 말대꾸하면 죽는다는 걸 임동원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림이 안 나와. 그림이. 야. 동원아. 봐라. 주인공이 죽으려고 옥상에 올라갔어. 이미 뛰어내릴 결심도 다 했고. 눈에 희망이 없어. 당장 그냥 죽고 말 거야. 뛰어내릴 거라고. 근데 어떤 아이를 봤어. 그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 해맑아.”


김성태가 뭔가를 바라보듯 국밥과 국밥 사이에 빈 곳을 응시했다.


“···아. 예뻐. 그 아이한테 나쁜 추억을 주고 싶지 않아. 그래서 버텨. 근데 죽어야 하는데 이 아이가 더럽게 안 가. 그러다 문득 아이를 보는데, 그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 예뻐서. 너무 아름다워서. 그래서 죽기가 싫어져. 시발. 그렇게 드라마가 시작한다고.”

“············.”

“납득이 가냐? 어, 난 안 가는데.”


김성태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미 죽을 결심을 했는데 아이가 예쁜 게 보이나.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예쁜 게 보여? 그리고 그 눈에 비치는 세상이 아름다운 건 또 어떻게 보이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보였길래 죽지 않고 살려고 해.


“그래도 일단 찍었지. 근데도 납득이 안 가더라고.”

“·········대본을 수정하는 건요?”


사전제작 드라마도 아니고, 공중파 드라마에서 뭐 그렇게 어려운 시작을 하나. 임동원이 새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장작가가 하겠냐?”

“······안 하죠.”


맞다. 대본을 장미지 작가님이 쓰셨었지. 임동원이 이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국밥을 펐다.


장미지.

그녀가 누군가. 1996년, 나라가 시끄러울 때 조용히 데뷔. 데뷔부터 지금까지 휴머니즘이 가득 담긴 대본으로 이 드라마 판에서 살아남은 시골 태생 여장군. 그게 바로 장미지였다.


순박하고 정중하지만, 대본에 대한 뚝심은 목욕탕 보일러 굴뚝보다 높고 단단하여, 대본대로 하지 않으면 그날이 바로 방송국 폭파 날이었다.


“아역 잘 안 쓰기로 유명하신 분이···”

“그러니까 말이다.”


김성태가 소주가 생각난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1화 그 장면은 장작가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장면이야. 애초에 아역 배우 다시 뽑자고 한 것도 그 양반이다.”

“진짜요?”

“어. 대본하고 다르단다.”

“그럼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김성태가 물을 컵에 부으며 말했다.


“아역은 신이 주시는 거라며. 신께서 좋은 걸 내려주시길 빌어봐야지. 아.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 좀 드렸다.”

“누구한테요?”

“누구긴 누구야. 아이한테 간택당하기로 유명한 삼신 할배 하나 있잖아.”

“······네?”

“고산 선생님. 기억하지?”


김성태의 말에 임동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산?!”


* * * *


“천혜서어엉! 이 꼬맹이!”

“너 오디션 본다며?”

“붙기만 하면 우리보다 데뷔가 빠르겠던데?”

“······.”


늦은 오후.

칠성 극장으로 하교한 혜성이, 연습하다 말고 뛰어오는 형님들에게 들어 올려졌다. 혜성은 죽부인처럼 강수한과 김하빈에게 들린 채로 무대 쪽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혜성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일단 오디션을 보는 것은 맞지만 여덟 살 어린아이 역이고, 데뷔를 할지 안 할지는 오디션을 붙어야지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열네 살이 여덟 살을 연기해도 되는 거야? 혜성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침묵했다.


그때였다.

저 앞에서 진성한에게 피드백을 하던 고산이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그 직후, 혜성과 고산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

.

.


푸하하하하!

악···! 허리! 너무 웃어서 허리 아파!

혜성과 고산을 남겨두고 육성관을 빠져나온 강수한과 김하빈이 문을 부여잡고 웃어댔다. 도정우 역시도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


“근데 나쁘지 않은데?”


웃고 있던 조재욱이 숨을 몰아 내쉬며 말했다. 나쁘지 않다. 혜성이 여덟 살을 연기하는 게 나쁘지 않단 뜻이었다.


“필모그래피는 다양할수록 좋잖아.”


성과물.

감독이라면 자신이 연출한 영화 작품 리스트가 필모그래피고, 배우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필모그래피가 되는 세상. 요즘에는 영화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작품 활동도 필모그래피라는 말로 한 데 묶어주는 추세였다.


“열넷에 여덟 살 아이를 연기할 수 있는 건 좋은 거지.”


겉으로 보기에는 아홉 살 아이하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성장이 더딘 혜성이만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


조재욱이 좋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열 살 전후, 이르게는 다섯 살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하는 게 이쪽 업계 상식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열네 살은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기에는 애매한 나이였다.


원래라면.


‘정말 놓치기 아까운 기회가 아닌 이상에야 연기 수업만 조용히 받다가 고등학생 때 데뷔를 노렸겠지.’


섣불리 달려들어 봤자 아역 배우의 이점은 가져갈 수 없고, 이미지 탈피는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성장이 늦된 점을 이용해서 아역 필모부터 성인 필모까지 성장기에 발맞춰 빠르게 가져간다면···’


도정우 역시 조재욱이 하는 말이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선생님이시네.”

“어떻게 혜성이를 단원으로 딱 뽑자마자 이런 전략을 척척 가져오시지.”


도정우와 조재욱이 감탄을 이어 나가는 그때, 진성한이 조금 가라앉은 낯빛으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엉?”

“······그럼, 형은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선생님치고는 오히려 너무 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성한이 속엣말을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혜성이 재능이 생각보다 상당한가 봐.”

“어? 그렇지! 그런 것 같다니까! 사실, 열넷이 여덟 살 어린애를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들어보니까 대사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던데.”

“혜성이라면 가능할 거라 생각하신거지!”


육성관 앞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 * * *


“···는, 그런 역이지.”

“예.”


배역을 다시 한번 설명받은 혜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려고 올라갈 만한 높이의 건물이 있는 곳에서, 혼자 비행기를 날리고 놀며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


어렵다.

대사도 비행기를 날리다가 이야아, 와, 하는 정도고. 그마저도 편집될 수도 있다. 무려 몇 시간을 비행기 하나 가지고 논다는 설정이니 같은 연기를 여러 번 해내야 할 터였다.


대사나 대사를 주고받는 상대 없이 아이가 정말 행복해하고 있고,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아름답고, 그걸로 죽을 결심을 번복하게 된다는 걸 표정과 몸짓 연기만으로 시청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거다.


어렵다.

아직 연기에 대해 잘 모르는 혜성이 듣기에도 상당히 난도가 있어 보이는 연기였다.


“오디션은 나흘 뒤다.”


그것도 주어진 시간은 겨우 나흘.

오늘 낭비한 반나절과 오디션 보는 시간을 빼면 실제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사흘. 거기에 학교까지 다녀온다고 하면 시간은 더더욱 줄 터였다.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혜성에게는 벅찬 과제였다.


“···할아버지는.”

“음?”

“할아버지는 제가 할 수 있다고 보신 거죠?”


그럼에도 혜성에게 문자를 보낸 이유가 있을 터였다.

혜성이 고산을 바라보았다. 이런 어려운 과제를 자신에게 준 이유가 믿음, 신뢰, 그런 거냐고. 혜성이 눈으로 고산을 향해 물었다.


물음에 고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군요.”


그거면 되었다.

혜성이 고산을 따라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

.

.


“혜성이는?”


8월 29일 늦은 밤.

오늘 연습을 빠졌던 백건호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혜성을 찾았다. 그의 손에는 열량이나 당 걱정이 없는 젤리가 한 손 가득 들려있었다. 혜성이 젤리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채고 대형마트들을 전전하며 공수해 온 것들이었다.


백건호의 물음에 우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2층에서 비행기 접는 중.”

“···비행기?”


백건호가 되물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생라면을 부숴 먹으며 TV를 보던 조재욱이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혜성이 9월 2일에 드라마 아역 오디션 나간다고 했잖아. 그 배역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거든. 그래서 지금 세 시간째 비행기 접는 중이야.”


조재욱의 말에 운동을 하던 김하빈이 잠깐만 기다리라는 듯 검지 손가락을 들더니 구석에서 비행기를 꺼냈다.


종이비행기네.

백건호가 인식하는 순간, 김하빈이 백건호 쪽으로 비행기를 날렸다. 비행기는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뭐야. 백건호가 살짝 놀란 눈으로 종이비행기를 붙잡았다.


“빠르지? 그거 혜성이가 만들었다? 처음에는 비행기 접는 법도 몰라서 내가 알려줬거든?”


김하빈이 데드리프트 자세를 다시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한 열 번 만에 나보다 잘 접기 시작하더니 장난도 아니야. 한 번 올라가 보던지.”


김하빈의 말에 백건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행기를 날리는 연기를 맡아서 종이비행기를 접어본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실제로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던 여배우는 살림살이를 고되게 했던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집에서 뒤늦은 신부 수업을 받았다 하지 않았던가.


선생님이 해보라 하신 건가?

기특하긴 한데 밥은 먹여야 하지 않나, 생각하며 2층 방문 앞에 섰다. 백건호가 문을 두들겼다.


“혜성아.”

“············.”

“들어간다.”


문을 두어 차례 더 두들긴 백건호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목도한 것은 종이비행기를 컴퓨터 화면을 향해 날리는 혜성이었다. 혜성은 입을 벌리고 화면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 저거 저렇게 날리는 거 아닌데.”

“···천혜성?”


백건호의 부름에 혜성이 고개를 돌렸다.

방 안에는 하얀색 종이비행기가 구름처럼 깔려있었고, 방 안에는 방금 날린 종이비행기 하나가 허공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제 집어 들었는지 한쪽 손에 새로운 종이비행기를 든 혜성이 백건호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꼬리를 움직였다.


환기를 얼마나 안 했는지 열이 올라서 발개진 두 볼,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붕 뜬 머리, 눈빛은 악동, 고생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순수한 한때가 그 얼굴에 스치고 있었다.


백건호가 입을 벌리는 순간, 아이 또한 따라 입을 연다.

볼이 부푸는가 싶더니 아이가 말했다.


“형!”


사랑스러운 부름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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