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재 너클볼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새글

강유랑
작품등록일 :
2024.09.09 20:33
최근연재일 :
2024.09.19 22:2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42
추천수 :
62
글자수 :
77,634

작성
24.09.10 22:20
조회
46
추천
4
글자
12쪽

움츠려들지 않아

DUMMY

*** 부상 2년 후, 2022년 10월, 이천 엘리펀츠 숙소

“강대휘 선수를 방출 명단에 올려 안내 차 연락드렸습니다.”


구단 직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팠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활은 내가 예상한 바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토미 존 수술, 우리말로는 팔꿈치 내측 인대 재건 수술.

팔꿈치 안에 돌아다니는 뼛조각도 몇 개 제거했다.


그 여파였을까

최고 150km까지 나왔던 직구가 135km도 간당간당했다.


어떤 선수는 오히려 구속이 올랐다고도 하던데···


무엇보다 주력으로 쓰던 슬라이더를 던지면 찌릿한 통증이 계속되었다.

1년 반의 재활. 그리고 실전에 나섰던 6개월.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X 됐다.


이건 뭐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삼진을 잡지.

치료를 받고 좋은 곳은 다 가봐도 슬라이더 던질 때 팔꿈치 통증은 여전했다.


“짐은 다 챙겨뒀고, 이제 정말 안녕이구만.”


올해 이 방에서 참 많이도 좌절했다.

아픈 기억을 다 보듬지도 못하고 나가려는 찰나.


“그래도 인사는 좀 하고 나가지. 도둑고양이처럼 나가냐.”


진태영 2군 투수코치가 들어왔다.

현역 때도 그렇게 훌륭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그런 그가 2군에서 투수코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오원주와의 친분 때문이었다.


“코치님께 제대로 배우고 갑니다.”


“이 판에서 돌고 돌다 보면 얼굴 계속 마주칠 텐데 앞으로는 예의 차리자. 내가 먼저 오는 게 맞냐?”


그는 퉁명스럽게 한 마디 뱉었다.


“뭐 지금이라도 그때 그 선택 후회한다고 하면 1년 정도 방출 미뤄줄 수 있다고 하더라.”


“그게 무슨···?”


“오원주가 말이야. 사람이 이렇게 사려 깊다. 너한테 한 번 더 기회 주는 거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저 코치님.”


“그래, 너도 1년이라도 더 프로 붙어있어야지. 그래야 월급이라도 받고.”


“개소리도 정도가 있는 겁니다.”


“뭐···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그랬어?”


진태영 코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방출 전화를 받고 한 가지 결심했다.


이제는 더는 움츠러들지 않아.


그래도 진 코치의 말 덕에 의문은 해소됐다.

아무리 그래도 나름 1군 불펜 레귤러였다.

느려터진 구속과 엉망인 제구로도 간신히 간신히 2군에서 버텼다.

즉, 나는 타자와 싸우는 법은 안다.

그리고 기껏해야 5년 차, 올해 속도가 좀 안 나온다고 이렇게나 빨리 방출?

뒤끝이 긴 사람이고 사람 괴롭히는데 정통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그 빌어먹을 기회 필요 없다고요.”


“130km 똥볼 하나 있는 게! 너 프로에서 내 인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구나.”


“코치님. 제가 2군에서 코치님께 배운 건 당신처럼 되지 말아야겠다. 딱 그거 하나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나섰다.

다시 생각해도 그는 최악의 코치였다.

불펜피칭 후 더 이상 예전 투구가 불가능한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피칭 디자인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투구 방향성을 다시 잡으려고 했다.


내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2군에서 지는 경기에 연달아 등판했다.

자연히 초반 2군 성적은 박살이 났다.

그는 지는 경기마다 마치 내 탓인 양 면박을 줬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6개월을 마운드에서 그야말로 버텼다.

그때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배후에 오원주가 있었다.


“아, 뒤끝 쩌는 그 양반한테 이 말은 전해줘요. 덕분에 거지 같은 2군 코치에게서 벗어난다고.”


“야!! 이 개XX야!!!”


조용하던 복도가 그의 고함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야 다시 시작할 시간이 생기는구나.

오히려 안도감과 기대감이 들었다.

2군 숙소 문을 막 나서는 순간

이번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대휘야!"


나보다 한 해 위인 장우한 형이었다.


"뭘 마중까지 나오셨어요."


"그... 미안하다. 미안해."


"형이 뭘요. 다 제 성적 때문인걸요."


우한이 형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 한 마디 더했다.


"그날, 너한테 원주 선배가 제안한 내용 다 들었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놀라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야구에는 좀 외골수적이지만,

그래도 사람은 깊게 사귀는 편이다.


팀의 경조사에는 무조건 끝까지 남는 게 내 철칙.

우한이형 아버지 장례에도 끝까지 남았었다.

그럼에도 형은 나를 외면했었다.


"그때는 나도 1군에서 살아남아야 했어. 그래도 너한테는 그러면 안 됐는데... 지금이라도 돕고 싶다."


"형. 이미 많이 늦었네요. 지금 우리 둘이 문제 삼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사실이 그러하다.

구단은 방출을 무마하려는 시도로 볼 것이다.

팬들은 어떠한가.

리그 최강 타자를 잃게 한 우리가 절대 예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방식으로 복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형. 진짜 절 돕고 싶다면 1군에서 꼭 살아남으세요. 그러면 한번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올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우한이 형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후배들 편에 서주세요. 제게는 못그러셨지만..."

지금 고발한다면 어쩌면 피해자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오원주가 어디까지 방비했는지 알 수 없다.


철저하게 준비하자. 야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마지막까지 결의를 다지며 다음 행선지를 향해 몸을 실었다.


* 인천의 한 고등학교.

"감독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짐은 다 뭐냐? 이놈들이 죄다 여기와서는..."


나이가 지긋이 든 김영일 감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무도 없는 운동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들이라는 건 선 코치도 왔다는 거죠?”


“모른다. 이놈아.”


준비한 홍삼 세트를 올려놓으며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다.


“감독님, 겨울 훈련만 같이하고 가겠습니다. 코치부터 잡일까지 편하게 시켜만 주세요.”


감독님은 한참을 말없이 운동장을 지켜보고 계셨다.


“체육관에 코치실 있다. 필요한 거 다 있으니까 거기서 자.”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리고···”


다음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감독님은 그야말로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 같은 분.

감독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프로 지명도 힘들었을 것이다.


늘 자랑거리이고 싶었다.

성공하고 잘 나가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쉰 소리 말고 가.”


간신히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돌아서 문으로 향했다.

그때 감독님께서 일어나시더니 저벅저벅 걸어오셨다.


“선주원이, 그러니까 네 선배는 언제 올지 몰라. 한 번씩 들려서 애들 봐주고 가긴 하는데.”


“감사합니다.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너 나갈 때 그 물건도 꼭 좀 데리고 가. 내가 머리 빠지는 건 다 네 두 놈 때문이다.”


감독님은 그 말을 마치시고는 내 어깨를 두드리시고 나가셨다.

나도 그저 말없이 감독실을 떠나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매번 방출된 선배들 올까 봐, 코치실에 이거저거 두신다더니.”


야구장을 지나, 체력 단련실을 보고, 코치실로 들어갔다.

앞으로 3개월을 지낼 곳.

작은 침상에 라디에이터도 잘 작동됐다.

우선, 단백질 쉐이크를 비롯하여 건강식품들을 냉장고에 정리했다.

그리고 유니폼을 걸어두려 옷장을 열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37번 강대휘’


연락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는데.

혹시라도 제자가 올까 미리 유니폼까지 준비해 두셨다.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야.”


눈물을 흘리면서 수도 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트레이닝복을 챙겨입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볍게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열 바퀴나 뛰었을까.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내 앞에서 속도를 올리며 뛰었다.


“하··· 언제 올 지 모른다더니.”


한눈에 봐도 선주원 코치였다.

대한민국을 넘어 MLB까지 다녀온 전설의 투수.

투수의 무덤이라는 인천 울브스에서 3번의 우승을 써낸 전설.


질 수 없지!


나는 속도를 더욱 높여 뛰었다.

그의 뒤에 딱 붙어서 열심히 달렸다.

15바퀴 정도 더 돌자 선 코치는 발걸음을 멈췄다.


“10km 페이스는 괜찮네.”


“네! 이상 없습니다!”


크게 소리쳤지만, 속으로는 죽을 거 같았다.

이 양반 은퇴한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짱짱하시구만.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리냐?”


“코치님, 미국 연수 다녀오시고 다음 단계 고민하신다면서요? 생각 정리하실 때 꼭 일로 오시니까요.”


사실 어느정도는 찍었다.

고등학교 야구부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또 오시리라곤.

선 코치님을 뵌 곳도 여기가 처음이었으니까.

그가 은퇴를 한참 고려하던 때였다.

본격적으로 지도자를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모교 후배들을 봐주러 왔다.

고등학생 주제에 겁도 없이 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엔 이상한 이야기도 했다.

집어치우자. 그 기억은 나에게 흑역사에 가깝다.


“고등학생 때는 귀여웠었는데 이제 많이 컸구나.”


“울브스 가실 거죠?”


지금은 앞뒤 잴 것이 없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

그리고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과감하게 찔렀다.


“이야 이제는 승부할 줄 아네.”


한치에 흔들림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


“근데 완전히 잘 못 짚었다. 울브스로 돌아갈 생각 없어.”


그리고 누구보다 단호한 대답.

마치 바위와도 같은 안정적인 사람, 그것이 선주원이었다.


"외부 인스트럭터 형태로 울브스 선수들 봐주고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울브스 구단과 나의 관계를 알면 그 정도는 별것 아닌 건 알 테고."


그는 한치에 동요도 없이 나의 말을 받아쳤다.

더 이상 승부를 끄는 것은 위험하다.

이제 과감하게 던져야 한다.


"울브스 재건. 목표가 그거 아니십니까? 그래서 찾고 계신 거 아닙니까. 그 계획의 키맨을."


처음으로 선 코치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몰락한 왕조, 울브스의 재건. 그에게는 숙원과도 같은 일.

감히 그 앞에서 울브스 재건을 논했으니, 얼굴빛이 바뀌는 건 당연했다.


“그게 너는 아닐 거 같은데?”


부드러워 보이는 그이지만,

선 코치는 말 그대로 한 ‘성깔’하는 사람.

아직도 그의 벤치클리어링 영상은 아주 핫하게 돌아다닌다.

펀치가 아주 제대로 들어갔으니까.

그런 승부사 앞에서 이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여러 말 하기 싫다. 방금 실수는 그냥 잊어주마.”


“아니요! 이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감독님도 부탁하셨거든요.”


선 코치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묘한 미소가 걸렸다.


‘눈빛은 쓸모가 있는데, 말뿐인지 아닌지는 봐야겠지.’


잠시 고민을 마친 선 코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 팀 꽤 좋은 팀이더구나. 특히 타선이.”


“감독님께서 특별히 관심 가지고 가르치신다고 들었어요.”


“얘네랑 3이닝 붙어봐. 실점하면 바로 지는 거다.”


고등학생과의 승부.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얘네 전국 대회 4강 팀 아닌가요?”


“그래봤자 고딩이지. 참고로 2학년이 주축이었어! 이 팀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선수들의 성장 속도는 무섭다.

2학년인 그들이 3학년이 되어 대부분 더 좋은 기량을 보이겠지.

무엇보다 나는 지금 130km 똥볼러라고.


“제가 이기면 하나 더 들어주시죠. 그거면 저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승부를 피하는 건 내 성격에 내키지 않거든.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천재들과 다시 맞붙는 건데 고등학생한테 쫄면 쓰나.


- 따악!


타격 훈련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쭉 쭉 뻗어나가는 공들.


어라? 쟤들 왜 이렇게 잘 쳐?


작가의말

빌드업이 조금 길어서 죄송합니다! 꾸준히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도 천재 너클볼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반연재 승격에 따른 재연재 안내 NEW 15시간 전 3 0 -
공지 연재 주기 공지 24.09.11 22 0 -
16 괴물들과의 대결(4) NEW 4시간 전 3 0 12쪽
15 괴물들과의 대결(3) 24.09.16 12 4 11쪽
14 괴물들과의 대결(2) 24.09.16 11 4 11쪽
13 괴물들과의 대결(1) 24.09.16 12 4 12쪽
12 해변에서 생긴 일(2) 24.09.16 13 4 11쪽
11 해변에서 생긴 일(1) 24.09.16 15 4 11쪽
10 예비 메이저리거(2) 24.09.16 15 4 11쪽
9 예비 메이저리거(1) 24.09.15 15 4 11쪽
8 너클볼 사관학교로(2) 24.09.15 16 4 11쪽
7 너클볼 사관학교로(1) 24.09.14 25 4 11쪽
6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24.09.13 32 4 11쪽
5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2) 24.09.12 32 4 11쪽
4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1) 24.09.11 43 4 11쪽
» 움츠려들지 않아 24.09.10 47 4 12쪽
2 애벌레 24.09.09 72 5 11쪽
1 Prologue) 나비 24.09.09 80 5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