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재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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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랑
작품등록일 :
2024.09.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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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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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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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 사관학교로(1)

DUMMY

*** 2022년 2월, 인천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실.

“감사합니다!”


앞뒤 가릴 것이 없다.

미국 가는 걸 도와준다잖아.


“저희가 제공하는 조건은 최소한의 생활비용 정도입니다.”


“무조건 좋습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차피 비행기 값이랑 추천서는 해결했거든요.”


내 말에 선 코치가 먹던 커피를 뿜으며 기침했다.


“내기는 내기니까.”


선 코치가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


도윤이 삼진의 효용가치가 이렇게 크다니.

이따 고기라도 사 먹여야지.

아. 아니다. 나 돈 아껴야지.


“그럼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봅시다.”


선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별 단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감독실을 나갔다.


“네 눈빛을 보고 투자한 거다. 그러니 가서 꼭 해내.”


선 코치는 내 등을 토닥이고 나갔다.

다시 체육관으로 걸어간다.

처음 다시 여기 왔을 때가 떠올랐다.

간절하게 잡아낸 기회.

그리고, 코치실 책상에 책이 한 권 놓여있었다.


기초 영어 회화.


언제 또 듣고 사 오셨데.

감독님의 마지막 선물이 분명했다.


내가 이긴다고 거셨구나.

예전과 같이.

그렇게 응원해 주셨구나.


캐리어 하나, 그 안에도 글러브 2개, 야구공 몇 개, 회화책 한 권.

입을 옷이라고는 유니폼 제외하면 두어 벌.

이제 다시 새로운 승부가 시작되려 한다.


*** 애틀란타 너클볼 사관학교.

전설적인 너클볼러가 은퇴하고 만든 베이스볼 센터.

하지만 명성에 비해서는 그렇게 큰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숙소 건물, 피칭장, 체력 단련장.

처음에는 몇백 명도 찾아왔다.


‘Go back. It needs your life.’


일생을 바쳐야만 던질 수 있다는 저 문의 글귀처럼.

수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떠나갔다.

특히, 그의 사후에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코치진도 거의 다 떠났다.

다행히 그의 아들을 비롯하여 후배 너클볼러 몇몇이 지원해 주어 버티는 정도.


“그래도 꼭 여기서 배워야 해.”


마음을 다잡고 들어간다.

정석을 꼭 배워야 내가 던지려는 방식으로 던질 수 있다.


“Oh! You must be Gan. *%#*”


뭐라는 거야. 하나도 모르겠는데.

여기서 첫 시험이 시작됐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오케. 땡큐!”


일단 웃자.

웃는 이에게 침 뱉을 사람 없으니.

남자의 뒤를 졸졸 따라가니 숙소로 보이는 곳이 나왔다.


“Hey! *#@%. Good Luck!


“오케. 굿! 굿!”


남자가 뭐라고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알아들은 건 굿 하나니까.


“어떡하지. 뭘 알아들어야 할 텐데. 진짜 번역기 작전이라도 써야 하나.”


“진짜 한국인이네?”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력적인 목소리, 그보다 더 매력적인 얼굴의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한국인이세요?”


“네! 한국 선수가 온다길래 와봤어요.”


맑은 미소와 함께 그녀가 대답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순간 그녀를 힘껏 안을 뻔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한국인들은 없는 동네라던데.”


“아. 저는 기자 비슷한 일을 하는데요. 여기 취재하러 왔어요.”


도희는 애틀란타 지역의 유명 스포츠 블로거였다.

유학생인 그녀는 야구에 빠져들었고 최근에 너클볼에 빠지게 되었다.


“재밌는 공이잖아요. 데이터로 잡아낼 수 없는?”


밝은 목소리와 눈웃음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다행이에요. 혹시 저 조금 도와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도희는 활짝 웃었다.


“뭐 주실 건데요?”


생각하자. 내가 지금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돈도 없고,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뿐인데.

때마침 도희는 내 몸에 손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그··· 취잿거리요!”


“하하하.”


나의 말에 도희는 그야말로 빵 터졌다.


“한국에서 온 너클볼러라. 재밌겠네요. 어차피 여기 코치와도 친하니 뭐 도와드리죠.”


어차피 야구는 전 세계 공용어다.

초창기에 필요한 거 배울 때만 도와주면 나머지야 헤쳐 나가면 그만!


'드디어 나도 여기 코칭법에 대해 직접 들어보겠네요. 사실 코치가 허락을 안 해줬거든요.'


선수가 아닌 도희에게 로버트 코치는 너클볼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심지어 훈련 세션에도 출입할 수 없었다.

선수들의 집중력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였다.


"아 방금 코치님하고 인사는 잘 나눴어요?"


"코치님이요?"


나의 의아한 표정에 그녀는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그것도 몰랐어요. 근데 왜 따라갔어요? 아무나 잘 따라가는 스타일?"


"그냥 이 건물 안에 있으니까 관계자일 거라고···."


아 쪽팔리네, 진짜.

어쨌든 영어 때문에 정신 팔려서 제대로 못 봤긴 한데.

근데 거의 할아버지던데.


"하긴, 로버트 정도면 그냥 인상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잠시 기다려주세요. 오늘 바로 던지는 법부터 배울 거라."


"방금 입국하신 거 아니에요? 아직 시차도 적응 안 됐을 텐데."


"제가 좀 급해서요!"


말을 마친 나는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메일로 방의 호수를 이미 받았기에 다행이었다.

순식간에 옷까지 갈아입고 나와 피칭장으로 향했다.


*** 너클볼 사관학교 피칭장.

도희와 로버트 코치가 한참을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국 드라마 같은 멋진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도희는 지금 사기 치는 중이다.

영어가 익숙해질 때까지, 아니 기초를 익힐 때까지

나의 개인 통역이자 훈련을 돕기 위해 왔다는.

로버트는 의아한 표정이지만 나를 스윽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좀 쉬지 벌써 나왔냐고 물어보시네요."


도희가 살짝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이야기는 잘 된 건가요?"


"네! 한 일주일 정도 오전 훈련 세션 때 저도 들어올 거예요!"


"아니요. 저 공 던지는 거 배우는 거요."


나의 말에 무안한 듯 도희가 급히 로버트 코치에게 몇 마디 더 했다.

로버트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풀라고 지시했다.

나는 가져온 밴드를 이용해 팔을 풀기 시작했다.

도희는 눈을 반짝이며 피칭장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너클볼은 쉬운 공입니다. 10분이면 배우죠.”


도희는 맑은 목소리로 로버트의 말을 통역했다.


너클볼은 배우는데 단 10분.

그러나 정문에 적힌 글씨처럼 그 공을 던지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 퍽!


로버트의 시범 투구가 이어졌다.

로버트 코치는 마이너리그까지 뛰었다.

불의의 차 사고가 아니었다면 메이저도 가능했을 재능.

그래도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너클볼이 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던져보라고 하네요.”


도희가 기대감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투핑거 그립으로 공을 꽉 쥔다.

드디어 몇 개월 동안 연구했던 그 공을 실제로 던져본다.

내 인생 최초의 너클볼.

와인드업!


- 퍽


모두의 표정이 충격으로 바뀌었다.


"와···."


그리고 이내 도희와 코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땅바닥에 완전히 처박힌 공이 애처롭게 굴러가고 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갔데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이 폼 외에 선택지가 없다.

공을 최대한 앞으로 끌어당겨 던지는 직구.

너클볼과 직구의 조합으로 승부하려 했기 때문.


“일단 힘 빼고 몇 개 더 던져보라고 하세요.”


너무 굳은 표정을 지어서였을까 코치가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몇 번의 투구에도 너클볼이라 불릴 공은 없었다.

역동적인 폼으로 쭉 끌었다기다가 마지막 공을 놓는 순간에만 힘을 뺀다.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일이다.


“너클볼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네요.”


내 투구를 지켜보던 로버트 코치가 물었다.

그는 궁금했다.

시차도 적응 안 된 주제에 너클볼을 가르쳐달라는 이 남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는지.


“우선 팔꿈치 때문입니다.”


다른 변화구들을 아무리 던져 보려 해도 팔꿈치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슬라이더는 한번 던지면 주저앉을 정도로 강력한 통증이 느껴졌다.

당연히 포크볼 계열은 손에 공을 끼고 던지는 시늉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130km 똥볼러.

1군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천재들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설명에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클볼은 악력이 꽤 많이 드는 공이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는 한계투구수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너클볼러는 다른 부차적인 구종이 필요 없다.

너클볼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한계 투구 수도 200개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니 내 말은 완전히 어이없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팔꿈치.

팔꿈치의 통증은 마치 누적 데미지와 같았다.

아무리 힘을 덜 준다고 해도 팔꿈치에도 힘이 들어간다.

악력을 많이 소모하는 너클볼만은 30개 정도 던지는 것도 힘들 것이다.


“중간계투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너클볼 하나는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 대한 대비.

너클볼은 통제되지 않는 공.

포수가 잡을 수 없는 이 변화무쌍한 공은 팀에 부담이 된다.


로버트 코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연구하고 온 것이 느껴진다고 하네요. 일단은 오늘은 쉬라고 하셔요.”


도희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달했다.

우리는 말없이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 숙소 앞

“너무 상실하지 마요. 이제 시작이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도희의 위로.

쫓겨가던 마음이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감사해요. 내일 오전 세션도 오시는 거죠?”


“당연하죠!”


도희는 밝게 인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숙제가 많구나.”


방에 앉아서 오늘의 일을 정리했다.

지금 던지는 빠른 템포의 직구 폼으로 너클볼을 던지기는 쉽지 않다.

직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으로 밀어붙여야 회전력이 높아진다.

너클볼은 반대다.

회전력을 줄이기 위해 허리도 팔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벤트도 준비해야 한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이라고 했나?"


애틀랜타의 레전드였던 학교장(?)님 덕분일까?

마이너리그 타자들과 한 번씩 시험 삼아 붙어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이곳에서 너클볼을 배워 스카우터의 눈에 완벽하게 눈도장을 찍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이번 달에 온다는 타자는 신인 리포트에서 평균 그레이드로 55 받은 재능.

타자의 영상을 보았다.


"배트 스피드가 윤찬이보다 한 수 위인데."

각이 엄청 큰 슬라이더에도 반응을 보이며 쳐낸다.

무엇보다 정확하게 스위트 스팟(Sweet Spot)에 공을 맞힌다.

메이저의 괴물이라 불릴 만한 반응 속도였다.

물론, 파워는 아직 아쉬운 수준이라 강속구로 몰아붙인다면 붙어볼 만할 것이다.

전성기 때 내 직구 정도면 충분히···. 아닌가?


"그래도 나름 괜찮았는데. 나."


직구를 떠올리니 옛날 생각이 났다.

투구자세부터 몸 관리까지 치열하게 야구하면서 불펜에 한 자리도 차지했었다.

계속 강조하는 건 절대 자격지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결국 너도 1라운더라는 거지?"


메이저든 한국 야구든 상관없다.

결국은 그놈의 천재들.

나는 그놈들을 꼭 무릎 꿇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포수한테 공을 보내는 것이다.



작가의말

즐거운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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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괴물들과의 대결(4) 24.09.16 10 3 11쪽
15 괴물들과의 대결(3) 24.09.16 9 3 11쪽
14 괴물들과의 대결(2) 24.09.16 9 3 11쪽
13 괴물들과의 대결(1) 24.09.16 9 3 11쪽
12 해변에서 생긴 일(2) 24.09.16 9 3 11쪽
11 해변에서 생긴 일(1) 24.09.16 10 3 11쪽
10 예비 메이저리거(2) 24.09.16 10 3 11쪽
9 예비 메이저리거(1) 24.09.15 11 3 11쪽
8 너클볼 사관학교로(2) 24.09.15 11 3 11쪽
» 너클볼 사관학교로(1) 24.09.14 20 4 11쪽
6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24.09.13 27 4 11쪽
5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2) 24.09.12 26 4 11쪽
4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1) 24.09.11 36 4 11쪽
3 움츠려들지 않아 24.09.10 38 4 12쪽
2 애벌레 24.09.09 61 5 11쪽
1 Prologue) 나비 24.09.09 68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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