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재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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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랑
작품등록일 :
2024.09.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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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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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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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DUMMY

8번 타자. 진영근.

우타에 꽤 소심한 스타일.

그리고 BQ, 즉 야구 지능이 엄청 좋은 아이.


"번트 대는 건 다들 기가 막히던데."


나는 답답하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수비, 작전 능력,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타격.

이것이 고교 명감독으로 명성이 자자한 김 감독이 강조하는 3가지.

영근 역시 번트에 자신이 있었다.


'선배님도 머리 좋다고 유명하시더라고요. 그렇지만···'


소심한 영근이지만, 자신의 BQ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김 감독은 선수의 장점을 부각하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니까.


'반드시 주자를 3루로 보낼 겁니다. 반드시.'


내 공의 구위는 번트하려다 타격하기에는 확실히 구위가 있다.

타격 아니면 번트 일단 그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영근의 시야는 이미 좁아져 있었다.


'몸쪽을 공략하는데 능하다. 타격도 번트도 까다로울 거야.'


3루 쪽으로 공을 보내기 까다롭고 뜬공도 유도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는 어디일까.

타자에게 그 코스는 몸쪽일 것이다.

나는 영근이 생각을 마칠 수 있도록 충분히 공을 길게 잡았다.


근데 그거 아냐?


"장고 끝에는 악수가 두어지기 마련이지."


한 마디를 마치고 바로 와인드업했다.


- 툭.


'이것도 예상은 했다고.'


오히려 번트를 대기 쉬운 위치로 공을 던졌다.

우타자인 영근의 바깥쪽 딱 좋은 코스로 공을 보낸다.

3루는 이미 도착.

차분하게 1루로 공을 던져 원 아웃.


"공 한 개로 원아웃이면 싸게 잘 막았네."


나는 돌아가는 영근을 보며 웃었다.

벤치에서는 영근의 판단을 믿었다.

그의 성향상 쉽게 승부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고3 학생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게임을 보는 눈이 있다는 영근일지라도.

앞선 타자들의 끈질긴 승부와 장점을 보고 영근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가 해야 할 일이 '번트'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부터가 이미 번트였어, 그것도 굉장히 원하는 것이 느껴지고."


이 승부는 어쨌거나 1점만 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일의 승부는 어떨까?

내일은 나도 살 수 있는 세이프티 번트가 필요할 수 있다.

또는 치열하게 공을 더 늘려주면서 부딪힐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여기서 단순한 번트 성공은 B+. 평범한 결과라는 것이다.


"내가 너의 눈만 봤구나. 마음은 못 보고. 그래도 잘했다."


감독님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영근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타자는 투수를 괴롭히고 압박해야 한다.

영근은 여기서 번트를 주는 것이 투수를 가장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고등학생 수준의 얘기다.

프로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작전을 해야 살아남는다.

물론, 다른 타자였다면 번트도 충분히 잘한 일이고, 실제로 B+면 평균 이상이다.

그러나, 영근에게는 분명 게임을 보는 눈과 작전 수행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조금 더 투수를 괴롭히고 출루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인마. 이 정도 벼랑 끝은 아무것도 아니야."


영근이 들릴 리는 없지만 마운드에서 계속 혼잣말을 했다.

1사 주자 3루.

솔직히 쫄리긴 하거든.


9번 타자, 홍시훈.

유일한 1학년 타자.

체격만 보면 고3 선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우월한 피지컬.

타격만 보면, 저 촘촘한 타선에서도 자기 자리를 만들 정도의 재능.

그러나.


"의외성에 대한 대처로 넣었는데 패착이군."


선 코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스스로부터 이 승부를 얕보지 않았는가.

그저 직구 하나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강한 구위로 찍어 누른다.

지금까지 승부의 핵심을 가르는 것은 ‘경험’.

이제 막 고등학생 된 아이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코치의 마음에 불길이 제대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어떤 승부든."


이례적으로 타임을 부른 선 코치가 시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대타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은 고2, 3 친구들은 오히려 분석되어 더 쉬울 것이다.

오히려 이제 막 들어온, 이 재능 넘치는 1학년을 믿는다.

승부사답게 그는 나의 약점인 천재를 내려 하고 있었다.


"그래, 너 재능이 있는 건 알겠다."


와인드업.

그런데 그렇게 급조된 타자, 아직 원석인 천재로는 못 이겨요.


- 부웅!


배트가 크게 헛돈다.

느린 템포의 직구가 스트라이크존 높은 곳으로 들어간다.


"스트라이크 아웃!'


시훈은 끝끝내 공을 건드리지 못하고 들어간다.

그가 2학년만 되었더라도 오늘 이 승부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 타석엔 다시 1번 타자 박원이 들어섰다.


"한 수 더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부터 군기가 가득.

아까와는 다른 태도다.

배트를 짧게 잡고 나왔다.

대타를 내지 않은 이유는 그다음 타자가 원이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타이밍 잡기 까다로운 직구임은 분명하다. 즉, 정타는 힘들다.’


원은 배트를 더욱더 짧게 잡는다.

단타 하나.

이제 타자도 도망칠 곳이 없다.


“짧게 잡으면 느린 템포 직구는 어떻게든 대처할 건데.”


주자인 도윤도 집중도를 끌어올렸다.

나는 가만히 주자의 움직임을 살피고, 타자를 바라봤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가슴 뛰는 승부를 한 것이.

모두가 승리 하나만을 생각하며 경기에 뛰어든다.

내 한계 투구 수는 냉정하게 30개 전후.

왼팔이 미세하게 떨려온다.


“아!”


힘차게 소리친다.

다시 힘을 모은다.

지금은 힘으로 눌러야 한다.

지금 상대하는 타자가 메이저리그 4번 타자라고 할지라도.


나는 이긴다!


- 딱!


공은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2루수가 안정적으로 포구하며 경기 종료.


“길게 잡고 나왔으면 승부가 됐으려나.”


원은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첫 타석,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흔들렸다.

그리고 이번 타석 자신의 색채를 잃고 흔들렸다.

1번으로 나오든 3번으로 나오든, 감독님이 그에게 기대한 것.

그것은 그의 장타를 뽑아내는 능력이었을 것이다.

힘으로 제대로 붙어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원은 너무나 아쉬웠다.


“도열해야지!”


주장 석민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도열하기 시작했다.

더그아웃의 감독님과 선 코치도 걸어 나왔다.


“선배님. 많이 배웠습니다.”


아이들이 모자를 벗고 인사한다.


“얘들아. 꼰대 소리이긴 한데. 너의 길을 가라. 흔들리지 말고.”


나의 말은 딱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경험’은 무엇일까.

내 장점을 믿는 자신감.

이 길이 옳다는 확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아이들은 흔들리며 경험을 쌓는 시기에 있다.

내 공과 방식에 확신이 있는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 승부를 가른 ‘경험’이다.


“오늘 잘 던졌다.”


감독님께서 한 마디하셨다.

나는 냅다 감독님께 큰절을 올렸다.

아이들이 박수를 쳐주며 나의 길을 응원해 줬다.


“이제 정산하러 가자. 손님도 오래 기다리셨으니.”


선 코치가 나를 불렀다.

텅 빈 관중석에 양산하나 쓰고 앉아 있는 여자.

선 코치가 말한 손님은 바로 저 여자일 것이다.


“자! 자! 130km 똥볼러한테 졌으니까 다들 훈련 시작이다!”


김 감독의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렸다.

아이들의 기합 찬 모습으로,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다.


그래, 오늘 이 똥볼러랑 붙어줘서 고맙다.

너희의 야구 인생에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뛰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선 코치와 감독실로 향했다.


*** 감독실

“감독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이 공간에서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선 코치는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여자에게 존칭을 쓰며 이야기했다.


“네. 괜찮습니다.”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

정장 차림에 긴 생머리, 무엇보다 아름다운 외모.

이 묘령의 여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아, 여기가 그 강대휘입니다.”


“네. 엘리펀츠··· 아니, 그 강대휘입니다.”


야구 관계자인 거 같아 습관적으로 팀명을 붙이며 말했다.

그러나 이제 ‘엘리펀츠의 강대휘’는 없다.

뼈저리게 그 의미가 느껴졌다.


“임별입니다. 울브스 단장이고요.”


어라? 울브스 단장님은 주현택 단장님일 텐데.

선주원 코치가 모셔 온 걸로 봐서는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인사 나눴으니, 본론으로 가시죠.”


선주원 코치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울브스 감독직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때 말씀드렸던 계획대로.”


“마무리 캠프까지 다 끝나서야 확답을 주시는 군요.”


별 단장이 차갑게 대답했다.


“2군 총괄로 취임하겠습니다. 인스트럭터로 계속 다녔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물론, 그 쪽으로 생각했죠. 이번 시즌은 탱킹, 리빌딩으로 방향을 잡았으니.”


별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나로 향했다.


“3개월을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니 자기 PR해보세요.”


목소리 때문일까?

별 단장의 말에는 한없는 냉기가 느껴졌다.


“고등학생들 상대로 3이닝 무실점. 직구 하나. 제가 체크한 건 이게 전분데 맞나요?”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압박했다.


“맞습니다.”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지금 제공으론 1군 불펜 패전조도 힘들 겁니다.”


선 코치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은 약속이니. 선수 한 명 계약은 어려운 건 아니에요.”


“다만··· 우리의 플랜에 도움이 되느냐겠죠?”


선 코치의 말에 별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울브스 왕조.”


내 입에서 이 단어가 튀어나오자, 둘은 흠칫 놀랐다.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소속된 선수들의 엄청난 자부심.

명실상부 2010년대 최강팀 울브스.


“두 분이 바라는 것이 그 왕조의 재건입니까?”


두 사람은 대답 없이 그저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울브스 왕조에는 직구 하나 던지는 투수의 자리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요?”


나의 말에 흔들림 없던 별 단장의 표정에 동요가 생겼다.

승부할 때.


“사상 최강의 투수를 얻을 겁니다. 울브스는.”


별 단장은 이내 평정을 되찾고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임기 내 그저 우승이 목표라면 저놈은 필요 없네.”


선주원 코치가 한마디 했다.

이 말엔 내가 가장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다음 말이 더 충격적이었으니까.


“왕조 재건이라면 나도 이 친구한테 걸어보고 싶어.”


선 코치는 지난 3개월을 보았다.

말도 안 되는 너클볼 플랜.

그걸 계획이라며 운동하는 모습.

근데 오늘 승부를 보면서 한 가지를 느꼈다.


‘저놈은 한다면 하는 놈이다.’


그리고 정말 해낸다면.

그 말도 안 되는 공을 던져낸다면.

어차피 밑져봐야 본전이다.

너클볼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계획으로 돌아가면 된다.

불안하겠지만 울브스는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이다.


“선수 계약은 너클볼을 제대로 던졌을 때 하겠습니다.”


별 단장은 냉정하게 말했다.

선 코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도박을 할 순 없겠지.


“그래도··· 말씀하신 미국 건을 돕는 정도로 하죠.”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차갑게만 보이던 별 단장의 얼굴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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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괴물들과의 대결(3) 24.09.16 9 3 11쪽
14 괴물들과의 대결(2) 24.09.16 9 3 11쪽
13 괴물들과의 대결(1) 24.09.16 9 3 11쪽
12 해변에서 생긴 일(2) 24.09.16 9 3 11쪽
11 해변에서 생긴 일(1) 24.09.16 10 3 11쪽
10 예비 메이저리거(2) 24.09.16 11 3 11쪽
9 예비 메이저리거(1) 24.09.15 12 3 11쪽
8 너클볼 사관학교로(2) 24.09.15 11 3 11쪽
7 너클볼 사관학교로(1) 24.09.14 20 4 11쪽
»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24.09.13 28 4 11쪽
5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2) 24.09.12 26 4 11쪽
4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1) 24.09.11 36 4 11쪽
3 움츠려들지 않아 24.09.10 38 4 12쪽
2 애벌레 24.09.09 61 5 11쪽
1 Prologue) 나비 24.09.09 68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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