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재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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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랑
작품등록일 :
2024.09.09 20:33
최근연재일 :
2024.09.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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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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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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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

DUMMY

* 2020년, 10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오늘은 볼질 하지 말고.”


주장인 오원주 선배가 차갑게 한마디 한다.

시합 준비로 부산하던 더그아웃이 일 순간 조용해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엘리펀츠의 주장,

이 넓은 잠실 야구장에서 홈런왕만 2번.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주전 2루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어떠한가.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한 최대훈 감독도 그의 행동을 묵인했다.


“저 새끼는 대답도 맥아리가 없어.”


팀 내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그는

자기 눈에 거슬리는 선수는 끝없이 괴롭혔다.

그리고 지금 그의 타깃은 나다.


그래도 오늘은 흔들릴 수 없다.

아니 흔들려서는 안 된다.


내 야구 인생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날.


“데뷔 첫 선발 등판 축하한다. 부담 갖지 마. 쟤네도 대부분 주전 쉬니까.”


투수 코치님이 원주 선배의 눈치를 쓱 보더니 한 마디 건넸다.

순위도 결정되었고, 부담 가질 필요 없는 경기.

그럼에도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데뷔 첫 선발.

그래, 3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처음 갖는 선발 등판의 기회.

전력 분석지를 얼마나 읽었는지,

상대 타자의 얼굴만 봐도 약점이 떠올랐다.


- 퍽! 퍽!


경기 시작 전 몸을 충분히 풀었다.

롱토스부터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불펜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간다.


이어진 불펜 연습 투구.

경기 준비로 바쁜 현정의 선배에게 억지로 부탁했다.


국가대표 안방마님.

까칠해 보여도 어린 투수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하는 그다.


“준비 많이 했네.”


생각한 대로 공이 들어간다.

무엇보다 현정의 선배의 칭찬!

저 정도면 극찬이다.

오늘은 정말이지 느낌이 좋다.


“선발투수! 강대휘!”


“강대휘! 강대휘!”


시즌 말미임에도 수많은 팬이 야구장을 찾아왔다.

상대는 홈구장을 나누어 쓰는 썬더즈.

엘리펀츠의 팬들은 목이 터져라 내 이름을 부른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가.

지금, 이 순간 이 마운드에서 쓰러져도 여한이 없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하지 말아야 했다.


"선두타자 황연호."


장내 아나운서의 멋진 소개와 함께 타석에 황연호가 들어왔다.

타석에 선 그의 모습을 훑으며 타격 리포트를 떠올렸다.

훌륭한 선구안. 한 층 업그레이드된 타격 능력.

2군에서는 꽤 먹히는지는 모르지만...


"스트라이크 투!"


빠른 템포로 가볍게 직구 2개를 뿌렸다.


연호는 생각이 많은 스타일.

게다가 2군에서 올라와서 첫 리드오프 임무.

지금 그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첫 2개의 직구를 거의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초구는 그럴 수 있다.

내 제구야 워낙에 악명이 높으니까.

그러나 2구를 던지기 전 그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적잖이 당황한 표정.

이 친구는 지금 압박감에 잡아먹혔구나.


그렇다면 내 선택지는 단 하나.


몰아붙인다!


곧바로 와인드업.


- 퍽!


마지막 공 역시 직구.

전광판에는 152km가 찍혔다.

전력 분석 내용 그대로,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완벽한 삼진 아웃.


“2번 타자. 김의영.”


베테랑 타자.

올해 쏠쏠하게 1루에서 역할을 해준 선수.

집중력이 좋은 선수이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스트라이크 원!”


노림수가 뭔지 뻔히 보인다.

의영 선배는 지금 직구 하나만 타이밍을 잡고 들어왔다.

그런데 내 초구에는 배트를 낼 수가 없다.


오늘 내 직구는

그래, 소위 말하는 긁히는 날의 그것이다.

그리고, 4개의 공이 다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들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 걸까?


그러나 2구는 볼.

제구는 참 잡히는 거 같다가도 헷갈린다.


‘체인지업 하나 가자.’


정의 선배는 빠르게 3구 싸인을 냈다.

내 생각과 딱 맞다.

타자 의영 선배는 어차피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듯하니.


“스트라이크 투!”


내가 던지기 가장 편한 위치.

의영 선배가 가장 싫어하는 위치로 공이 간다.


확실히 국대 포수는 다르다.

모든 것이 환상적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심판이 춤을 춘다.


다시 한번 직구.

앞선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흩었다.


전성기에 의영 선배라면 모를까.

지금 정도 배트 스피드라면,

정답은 역시 ‘몰아붙인다.’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좋아!”


정의 선배는 계속 힘을 북돋아 주며 소리쳤다.

마지막 타자는 힘 없이 뜬 공 아웃.

1회는 완전히 나의 독무대였다.


더그아웃으로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퓨처스 수준 라인업 잡고 건방 떨지 마라."


오원주는 굳이 옆으로 걸어와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이겠지.

짐작되는 사건은 하나 있지만,

어쩌겠는지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수밖에.


"건방 떨지 않겠습니다."


오원주는 세상 싸늘한 표정으로 타석에 설 준비를 했다.

타석에서나 수비에서는 최선을 다해주니 그나마 감사할 뿐.

지금 나에게는 이 기회를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좌측 담장 넘어갑니다. 여지없습니다!!! 투런으로 분위기 가져오는 오원주!"


초구. 몰리지도 않았다.

상대 투수는 사이드암에 까다로운 공을 구사하는 정현 선배.

공들여 던진 공을 저렇게 넘기다니···

확실히 실력으론 그를 욕할 수 없다.

저 아름다운 스윙을 보면 그 어떤 패악질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2점 리드. 내친김에 첫 승까지 달려봐."


옆에 앉은 투수 코치님이 밝은 얼굴로 힘을 북돋아 줬다.


그리고 2회 첫 타자.

라인업을 듣고, 잠깐이지만 절망감까지 들게 한 타자.

홈런왕 경쟁 중이니 나오는 건 당연한데.


백윤찬. 대한민국 최고의 재능. 일명 ‘천재 검객’.

데뷔 시즌3 할, 2년 차인 올해는 30-30을 치고 있는 천재 타자.


"거, 기세 한 번 흉폭하네."


초구부터 정직하게 줄 필요는 없다.

내 첫 선택은 바깥쪽으로 직구.

긴장했나. 제구가 흔들리며 크게 공이 빠졌다.

3루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나 참, 이제 하나 던졌다고.


오원주 선배와 백윤찬은 홈런왕 레이스 중.

방금의 홈런으로 둘의 격차는 이제 단 1개 차!

그러니 원주 선배가 저토록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도망갈 수 있으면 도망가고 싶다.

머릿속에 도망이라는 두 글자만 계속 떠올랐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직구.


오늘 등판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이제 곧 포스트시즌!

오늘 결과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선발 경쟁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는다!

그러기 위해 여기서 카운트를 못 잡으면 힘들다.


- 따악!


타이밍이 살짝 늦어서 다행이지 여지없이 넘어갈 공이었다.

나름 제구도 잘 되고 로케이션도 좋았는데.

윤찬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

그는 배트를 살짝 흔들며 빨리 던져보라는 듯 웃고 있었다.


“후··· 후···”


계속 심호흡을 하며 공을 다시 잡는다.

전체 44순위 5라운드 입단.

공은 꽤 빠르나 제구가 매우 불안한 좌완.

그놈의 제구, 제구, 제구.

애매하다면 애매한 재능 때문에 얼마나 노력을 해왔던가.

또 하나의 직구가 높게 들어간다.


- 팡! 팡!


이놈의 천재들 아주 사방에서 지랄들이구만.

3루에서는 계속해서 똑바로 던지라는 주장의 미트 소리.

앞쪽 타자는 완전히 미친 괴물.


“천천히 하나씩.”


심호흡을 한다.

이럴 때일수록 흥분은 금물.

늘 치열하게 버텨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살아남는다!


갈고 닦은 체인지업이 타자의 무릎 쪽으로 날카롭게 꺾여 들어간다.


- 따악!


다시 한번 커트.


“이걸 커트한다고?”


분명 직구에 초점을 맞춘 스윙이었다.

그러나, 윤찬은 엄청난 배트 스피드로 내 체인지업에 대응했다.

무엇보다 그의 여유로운 저 표정.


“역시 천재인가.”


나름 1군 레귤러 불펜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각 팀의 수위급들에게 전혀 힘을 못 쓴다는 평가.

말 그대로 강타자들에게 약한,

천재들의 맛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


혼잣말을 되뇐다.

그리고, 그립을 다시 잡는다.


내 선택은 슬라이더, 지금 내 자리를 만들어준 공.


윤찬이도 아마 알 것이다.

나한테는 이 선택지가 유일하다는 것을.

여지없이 날카로운 각도로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꽂혀 들어간다.


- 찌릿


팔꿈치에 무리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가장 효과적인 결정구.


투 스트라이크, 투 볼. 배팅 타이밍.

다시 한번 승부구를 선택한다.


슬라이더.


이 공이 먹힌다면, 선발 자리에서 경쟁할 수 있다.

특히, 저 무지막지한 천재를 삼진으로 잡을 수 있다면.


간절하다.


내 야구는 항상 간절했다.

그리고, 드디어 꿈꾸던 기회를 받았다.

와인드업하고 힘차게 공을 던진다.


“윽···”


순간 팔꿈치의 찌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그러나 눈은 끝까지 공을 쫓는다.

다행히 생각했던 궤도로 날아간다.


됐다.


꺾이는 각도, 위치,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다.

안도감은 금세 절망으로 바뀐다.


- 딱!


“와아아아!”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커진다.

고개를 살짝 돌려 공을 바라본다.

왼손은 바들바들 떨린다.


“벌레 같은 새끼.”


홈런 타구를 바라보다 쳐다본 3루.

오원주의 입에는 분명 저 말이 담겨있었다.

그 말보다 그의 입가에 걸린 비릿한 웃음.

저 비웃음은 그 어떤 장면보다 뇌리에 강하게 새겨졌다.

손으로 팔꿈치를 한번 매만진다.


완전히 끝났군.


통증이 몰려온다.

치열했던 나의 야구가 그렇게 무너졌다.

팔꿈치 더럽게 아프네.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간절히 되뇐다.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나의 야구는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이대로 날개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이렇게 잡아먹히기만 하다 끝날 수는 없다.


‘벌레 같은 새끼.'


귓가에는 오원주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맞는 말이다. 나는 애벌레.

일찍 일어나서 일찍 잡아먹힌 먹잇감.

팔꿈치를 부여잡고 서서히 마운드를 내려간다.

아파서 쓰러지는 순간에도 어느 동료 하나 나서지 못한다.

오원주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지.


“움직일 수 있겠어?”


투수코치님이 급하게 올라와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팔꿈치만 매만졌다.

지독한 팔꿈치 통증.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 동료들, 그것이 훨씬 아팠다.

그들의 사정을 이해한다.

오원주 눈 밖에 나봤기에 오히려 내가 더 잘 안다.

나는 슬쩍 다시 3루를 본다.

바들거리는 팔을 매만지면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너만은 내가 무너뜨려 주마.


언젠가 나비가 되어 화려하게 비상할 그날.

반드시 이 마운드에서 너를 무너뜨려 주마.


작가의말

‘나는 나비’의 초반 부분 들으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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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괴물들과의 대결(2) 24.09.16 9 3 11쪽
13 괴물들과의 대결(1) 24.09.16 9 3 11쪽
12 해변에서 생긴 일(2) 24.09.16 9 3 11쪽
11 해변에서 생긴 일(1) 24.09.16 10 3 11쪽
10 예비 메이저리거(2) 24.09.16 11 3 11쪽
9 예비 메이저리거(1) 24.09.15 12 3 11쪽
8 너클볼 사관학교로(2) 24.09.15 11 3 11쪽
7 너클볼 사관학교로(1) 24.09.14 20 4 11쪽
6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24.09.13 28 4 11쪽
5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2) 24.09.12 26 4 11쪽
4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1) 24.09.11 36 4 11쪽
3 움츠려들지 않아 24.09.10 38 4 12쪽
» 애벌레 24.09.09 62 5 11쪽
1 Prologue) 나비 24.09.09 69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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