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재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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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랑
작품등록일 :
2024.09.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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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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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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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 사관학교로(2)

DUMMY

*** 너클볼 사관학교 야구장.

눈을 뜨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달리기를 뛴다.

너클볼러의 은퇴 순간은 1루로 달릴 힘이 없어질 때라고 했던가.


그리고 급한 건 나만이 아니지.


이곳에 남은 괴짜들.

이들은 진짜다.

모두가 1년도 채 안 되어 떠나는 이곳에서 악착같이 버티는 그들.

다들 늦게 피는 꽃인 만큼

오래 버티기 위해 기초 체력 훈련에 아낌없이 시간을 쓴다.

개인 운동들을 하고 난 후, 이곳의 꽃인 단체 훈련 세션이 열렸다.


"덕분에 눈 호강하네요."


도희가 밝은 얼굴로 나와 농담을 건넸다.


“우선 주자 역할을 한번 해보라고 하네요.”


도희의 말에 따라 일단 1루로 천천히 걸어갔다.

투수는 친절한 잭슨.

어젯밤 숙소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빵을 가져다준 녀석이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우선, 습관과 빈틈을 찾기 위해 연습 투구를 면밀히 살핀다.


"주자로서 흉내만 내는 거예요. 대신 생각은 주자와 일치시켜야 해요."


"말하면서도 엄청 모순된 거 느껴지죠?"


다쳐서는 안 되니 당연히 무리한 주루는 안 된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대충 주자인 척하는 건

훈련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될 리 없다.

일단 리드를 길게 잡는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통역사님은 통역사님 역할만 하시죠."


도희에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딱 간신히 돌아올 수 있는 거리.

당연히 첫 번째 견제구가 들어왔다.


"귀루하는 데 힘 다 쓰겠어요."


도희의 잔소리.

그럼에도 아까보다 반보 정도 적은,

그러나 여전히 넓은 폭을 보였다.


다시 한번 들어오는 견제.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여유로운 세이프다.


"흠···. 생각보다 쉽겠는데?"


잭슨.

순수한 성품이라서 그런지 속이 훤히 다 보인다.

1군 마운드에 처음 올라갔을 때, 주자들은 다 빨라 보인다.

몸을 살짝만 흔들어도 뛰는 것처럼 느껴 황급히 견제한다.

경험 부족, 데이터 부족.


"폼이 이미 무너졌어. 쿠세도 보인다고."


나는 아까보다 반보 더 리드폭을 줄였다.

그리고, 잭슨의 발이 올라가자마자, 2루로 가볍게 뛰었다.

잭슨의 공은 제구가 되지 않음은 물론, 포수가 잡지 못하는 폭투로 이어졌다.


"연습 투구 때는 5개 중에 1, 2개로 위협적인 공도 들어가던데. 흠···."


도희는 어느새 잭슨을 분석하고 있었다.

순서를 바꿔 이번엔 내 차례였다.


"오늘은 포수한테까지는 던지실 수 있죠?"


도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잠시 이야기하는 사이 주자로 레오가 들어갔다.


"Hey, yellow @#$%."


그리고 이 레오라는 친구. 아주 공격적이었다.

지금 저놈이 나한테 하는 말은 분명 안 좋은 말이다.

도희의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가 나 보이니까.


"잠깐 만요. 이건 제가 한마디 해야겠어요."


"아니!"


나는 가만히 레오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싱긋 웃었다.


"웃는 놈 얼굴에 침 못 뱉거든요.

그리고, 주자는 그렇게 조련하는 게 아니야."


아직 너클볼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는 내가 마운드에 서는 이유.

이건 너클볼을 던지는 시험이 아니다.

연습 투구 때 던진 너클볼은 일단 이 시험을 위해 급조한,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너클볼'이 아니었다.


"자자, 어디로 던져볼까나."


저놈 리드폭 보소.

레오는 나름 대학 선수.

타석에도 꽤 많이 서봤으며, 주력도 괜찮았다.

좌완인 나는 주자를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몸의 중심, 표정, 그리고 자세를 가만히 보기 시작했다.


'너 내가 필승조까지 올라간 건 아냐?'


휙 고개를 돌리며 발을 들어 올린다.

레오는 이때다 싶어 중심이 이동되기 시작한다.

나는 순간 발을 풀었다.

화들짝 놀란 레오가 1루로 돌아왔다.

하지만, 공은 내 손에 있었다.


"You little !@#$"


또 알 수 없는 외계어가 막 날아온다.

코치 저놈 입 좀 막아줘요.

이거부터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배워야겠어.

대한민국 탑 주자들도 상대한 내가 이 정도가 힘들까.

물론 그들을 다 잡은 건 아니지만.


"주자는 충분히 묶었는데."


나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의 폼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로버트 코치는 세션을 조정했다.

내가 가장 먼저 참여해야 할 세션을 바로 이 주자 견제로 생각한 것이다.

엄청난 익스텐션.

하체를 쭉 뻗기 위해 크게 다리를 들어 올린다고.

아무리 좌완이라도 주자에게 그냥 달리라는 신호를 주는 셈이다.


'직접 말하지 않고 문제를 깨닫게 하는구만.'


순간 코치가 타임을 불렀다.


"견제는 엄청 훌륭하다고 하네요. 역시 문제는 폼이 크면 견제가 쉽다는 거죠."


"숙제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네요."


코치는 내 말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저놈 저거 어떻게 해봐."


옆에는 빨갛게 얼굴이 상기된 레오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마운드에서 내려가 그의 투구를 지켜봤다.

그는 꽤나 상급의 너클볼을 던졌다.

회전도 적었고 무엇보다 구속도 100km 중반까지 나왔다.


“투쟁심이 굉장해서 마운드나 훈련에서는 미친놈이래요.”


도희는 레오가 내게 한 실수가 신경 쓰이는지 연신 설명했다.


“텃세 부리는 거야 어느 정도 내성이 있어서 괜찮아요. 그보다 지금 던지는 투수는 누구죠?”


어차피 오원주에 비하면 레오야 귀여운 정도.

어디서나 텃세는 있기 마련이고,

그는 코치의 주의에 꽤 주눅 들어 보였다.


덩치가 아깝다 정말...


그보다 지금 던지는 투수.

그야말로 창립자인 필이 던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겁나 잘생겼다.


“조각상이 공 던지는 느낌이네요.”


“저기요, 아직 대답 안 하셨거든요?”


도희는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창립자의 손자예요. 헨리.”


지금 당장 마이너는 폭격하고도 남을 좋은 수준의 너클볼.

빠르면서도 일정한 제구가 되는 너클볼이었다.


“저 친구는 왜 아직 여기에···”


“할아버지의 공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지기 전에는 나가지 않는데요.”


우완인 그는 견제도 꽤 능숙하게 해냈다.


“그 고집 때문에 대학으로 진학했고, 졸업을 앞두고도 드래프트 포기까지 생각한다더라고요.”


그게 다 집이 잘살아서 그래요.

목구멍 끝까지 이 말이 차올랐지만 참았다.

그래도 이제 시작인 나에게는 훨씬 높은 경지.

한참을 감탄하다보니 어느새 단체 훈련 세션이 종료되었다.


*** 피칭장

견제에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너클볼러로서 견제는 난이도가 배로 어려워진다.

타자는 칠 수 없고 포수는 잡을 수 없다.

지금까지 무기였던 이 말이 단점으로 바뀐다.

보통 정도 주력의 타자라도 마음껏 2루, 아니 3루도 욕심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생각한 폼으로는 제구는커녕 너클볼을 못 던진다는 거지."


여러고민을 안으며 팔과 어깨를 풀고 있었다.


"일단 던지는 감부터 익혀보자고 하시네요."


코치와 함께 등장한 도희가 말했다.

코치는 보통의 너클볼 투구 방식과 느낌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상이나 자료와 달리 실제 투구 모습을 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직접 던져보니 그 감을 잡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평생을 던져도 못 던질지 모르는 공이라."


1구, 1구 계속해서 던진다.

손에 힘을 빼고 회전을 없앤다.

끌고 가다가 공을 놓치는 포인트에서.

오늘은 다른 것 없이 거기에 초점을 맞춰 가볍게만 공을 뿌렸다.


"손가락 감이 좋다고 해요. 다만, 어제 말씀하신 폼 있잖아요."


"불가능하다고 하셨어요?"


"뭐 비슷하죠. 급격한 회전을 하되 손아귀의 힘을 적절히 컨트롤해서 회전을 줄여야 하니까요."


이제껏 메이저리그를 평정한 투수들의 투구폼도 역동적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너클볼러의 목표는 무회전.

극단적으로 회전을 줄여 변화무쌍함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너무 느린 구속의 공은 그저 아리랑 볼에 불과하다.

즉 힘을 주면서, 힘을 받지 않게 해야 하는 아주 특별한 공이다.


"근데 만약 할 수 있다면, 완전히 다른 너클볼러가 될 수도 있겠다고 하시네요. 기대된다고."


도희는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말했다.

애초에 가장 기초가 되는 직구만 해도 던지는 방식이 갈린다.

사람마다 손의 크기도, 손가락의 길이도 다르다.

그렇다면 당연히 너클볼도 다를 수 있다.

코치는 그런 다름을 이해하고 최적의 방법을 함께 찾는 사람이었다.


"너클볼러는 남들이 다 평지로 다닐 때, 혼자 산으로 가는 사람이래요. 어차피 편한 산길은 없죠. 다만, 대휘 선수가 가려는 길은 그냥 등산이 아니라 절벽을 넘어야 하는 등산 같다고 해요."


"문제는 그 절벽을 넘어도 정상이 아니라, 낭떠러지만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죠."


나의 말에 도희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 꽤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하신 분이었군요.”


“네?”


“영어 한마디 못 해. 지구 반대편으로 너클볼 배우러 와. 정상적인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장난 아니던데?”


도희의 블로그를 보고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했으니까.

우린 살짝 웃음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실 거죠?”


“인생을 걸고 왔으니까요.”


담담히 내뱉은 말.

그리고 나는 다시 공을 잡았다.


와인드업.

계획했던 폼을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온몸에 힘을 가득 준 상태에서 마지막 릴리즈에만 힘을 푼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감각을 살려본다.


떼구루루


다시 공은 바닥에 처박히고 회전도 세게 걸렸다.


"크크크크."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레오 녀석.

저놈은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하지?

한국 구단한테 사기라도 당했나?


"Your ball is sucks"


이 정도는 나도 알아듣겠다.

그리고, 의외로 헨리도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That isn’t knuckle ball.”


그는 내게 걸어와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도희는 난처한 듯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는 이해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우선 도희를 달랬다.


“그니까. 그럼, 너클볼이 뭔데?”


나는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음···. 앗 이즈 너클볼. 맞죠?”


그는 지지 않고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꽤나 건장한 신체, 팔 길이도 길었다.

마음먹고 던진다면 직구도 꽤 괜찮을 밸런스.

그러나, 헨리는 오로지 너클볼만을 던진다.


"Knuckle is art."


"이 정도는 알아들으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낭만적이네. 근데 나한테 너클볼은 생존이거든."


도희는 헨리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헨리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는 투구판에 올라섰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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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괴물들과의 대결(2) 24.09.16 11 4 11쪽
13 괴물들과의 대결(1) 24.09.16 10 4 12쪽
12 해변에서 생긴 일(2) 24.09.16 11 4 11쪽
11 해변에서 생긴 일(1) 24.09.16 13 4 11쪽
10 예비 메이저리거(2) 24.09.16 13 4 11쪽
9 예비 메이저리거(1) 24.09.15 14 4 11쪽
» 너클볼 사관학교로(2) 24.09.15 15 4 11쪽
7 너클볼 사관학교로(1) 24.09.14 23 4 11쪽
6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24.09.13 30 4 11쪽
5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2) 24.09.12 31 4 11쪽
4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1) 24.09.11 41 4 11쪽
3 움츠려들지 않아 24.09.10 45 4 12쪽
2 애벌레 24.09.09 70 5 11쪽
1 Prologue) 나비 24.09.09 78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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