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재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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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랑
작품등록일 :
2024.09.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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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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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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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메이저리거(2)

DUMMY

*** 너클볼 사관학교 야구장.

초구.

느린 템포의 직구.

스트라이드 폭을 줄이고 회전력을 끌어올린다.

베이커는 거칠 것 없이 배트가 나온다.


그러나.


"Ball!"


베이커는 씩 웃으며 마운드를 바라보았다.


'재밌는 투수다. 구속이 82마일? 그것보다 빨라 보였는데 무엇보다 살짝 떠오르는 느낌.'


프레이밍이 괜찮은 포수였다면 스트라이크도 받아볼 만한 볼이었다.

특히 직구의 움직임과 볼끝은 이제 합격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운은 일단 내 편이 아닌 거 같다.

그나마 앞쪽 너클볼의 잔상을 지웠다면 손해는 아니겠지만....


"오늘 직구는 처음일 텐데 반응하는구나."


메이저를 목전에 둔 타자라.

직구만으로 승부했던 고등학생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2구 와인드업.


느린 템포 직구.

아까보다 묵직한 직구가 다시 스트라이크 하단으로 향한다.


'폼도 묘하게 달라진 거 같고···. 숨겨놓은 수가 더 있으려나?'


베이커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트 스피드와 컨택.

그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


2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 천재들한테 당한 것만 얼마인가.

근데 도망칠 수 없다.

리키도 도희도 지금, 이 승부를 보고 있다.


2가지 템포의 직구, 한 번 정도는 분명 통한다.

아니 통해야만 한다.


- 딱!


"야···. 이건 너무한데?"


파울이긴 했지만, 타이밍이 거의 맞았다.

역시 고등학교 수준과는 완전히 다르다.

너클볼에 대한 대비로 손목을 풀어놓지 않았다면 정타였을 것이다.


'재밌는 아이디어야. 그래도 잔재주에 불과해.'


베이커는 살짝 아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그림은 나왔다."


누가 봐도 이제는 너클볼 타이밍이다.

어떤 템포의 직구든 메이저의 괴물 앞에서는 경쟁력이 없다.


3구.

선택을 하자.

기존 내가 던지는 방식의 너클볼은 어차피 들어갈 확률이 낮다.

쓰리핑거로 던져도 가능성은 작다.

던지는 감과 안정감.

나비 한 마리가 눈에 아른거린다.


"어차피 모험을 할 때."


발을 살짝 들어 올린다.

원래 던지던 방식은 최대한 발을 끌어올렸다.

극단적인 익스텐션을 위한 자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안정을 생각한다.


빠른 템포 직구가 맞을 때 직감했다.

이 직구 하나만으론 절대 오원주를 잡을 수 없다.


익스텐션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몸은 최대한 타자 쪽으로 끌어간다.

팔도 뻗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뻗는다.

이 자세가 가능한 이유.

그것은 안정적인 하체 덕이다.

떡 하니 버텨주니 훨씬 힘 조절하기가 쉽다.


공을 놓는 타이밍을 계속 떠올린다.

쓰리핑거 그립으로 공을 잡은 손은 더없이 안정적이다.

공이 손에서 떠나 날아간다.

회전이 거의 걸리지 않았다. 속도도 110km 후반은 나올 거 같은데?


베이커는 기다렸다는 듯이 배트를 낸다.

배트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다.

앞선 헨리의 공과 비교하면 훨씬 부족한 너클볼.


그러나.


- 부웅


마치 배트를 피하듯 공은 포수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그아웃의 리키가 박수를 보냈다.


"Amazing!"


베이커도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변칙적인 타이밍.


이전과 달리 발을 살짝 들어 올리고 바로 쭉 뻗었다.

그러면서도 상체는 최대한 끌어당겼다.

그 모든 것이 베이커의 타격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


"헤이! 리키! 유 굿 어드바이스!"


나는 더그아웃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자, 이제는 투 스트라이크 원 볼.

방금 너클볼은 분명 상대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정도 타자라면 직구에도 대비가 되어있겠지.


"시험해 볼 차례."


너클볼은 이제 방향성을 정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4구 다시 다리를 쭉 들어 올린다.

딱 한 번이기에 할 수 있는 도박.


'직구. 그러나 잔재주가 많은 타입.'


너클을 두 가지 타입으로 던질 재주는 없다.

그럼에도 베이커는 혹시나 하는 일말의 불안이 있다.

연습 투구 때 분명 기존 폼으로 너클볼을 던졌으니까.


그러나, 지금 난 100% 직구만 생각한다.

몸의 밸런스, 허리의 회전, 팔의 넘김.

그리고 강력한 회전.


좌타인 베이커에게 가장 먼 쪽 상단.


- 딱!


양쪽에 다 대비한 베이커는 그럼에도 공을 가져다 맞혔다.

3루 땅볼 원아웃.


"진짜 한다면 하는 사람이구나."


도희가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리키는 크게 손뼉을 치며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헨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베이커는 씩 웃더니 다시 배트를 든다.


다시 와인드업.

느린 템포, 쓰리 핑거로 너클볼을 던진다.


- 퍽!


공이 땅에 처박힌다.


요행.

아까 한번 멋들어지게 던졌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요행이었다.


2구는 더 최악의 결과였다.

빠른 템포의 직구.


- 딱!


오늘 경기 최고의 홈런을 뽑자면 바로 이 홈런일 것이다.


고놈 야구 참 잘하네.


너클볼 없이 직구만으로 잡는 건 불가능이다.

그리고 그의 배트 나오는 모습만 봐도 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타격을 100% 믿는다.

다시 손목을 잠갔다.


"너클이 와도 자기 스윙으로 넘기겠다는 거지."


적잖이 화가 났을 것이다.

‘예비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부족하다.


이후 ‘괴물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을 손에 넣을 재능.

그렇기에 고작 한 달짜리 너클볼러에게 아웃카운트를 준 것은 수치일 것이다.


- 딱!


여지가 없다. 3아웃 기준으로 2개의 홈런을 허용한다.

사실 오늘 던진 5명의 투수 중 내 성적이 가장 한심할 것이다.

너클볼은 제대로 던져보지도 못했으니까.

홈런을 2방이나 허용한 것도 유일하다.

그러나 유일한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확실히 졌다.”


그럼에도 절망감이 들지 않는다.

내 너클볼이 나아갈 방향성은 오히려 확실해졌다.

그리고 2가지 템포의 직구의 힘도 확인했다.

피칭 방향성이 완전히 결정되었다.


“멋졌어요. 홈런 2방!”


도희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창피하네요. 근데 리키는 어디 갔어요?”


“피칭장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도희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밝았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에게 다가왔다.


“Hey, I am sorry.”


레오였다.


“마운드에서 어떻게 그렇게 차분한지 이야기해달라고 하네요.”


도희는 마뜩잖은 듯 레오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윽고 잭슨도 다가왔다.


“다들 피칭이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죠.”


나는 안다.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텃세 부리고 싶었을까.

너클볼을 배우겠다고 와선 3일도 안 되어 포기한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자들을 욕하고 저주한다.

'너희는 성공할 수 없어.'라고

인간이란 원래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니까.


“일단 오늘 맛있는 거 좀 먹자고 전해줘요.”


“저도 같이 가도 되죠?”


“당연하죠. 통역사님.”


로버트 코치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는 같은 꿈을 꾼다.

각자 환경과 던지는 방식은 다 다를 지라도.

서로가 깨달은 어떤 것이든 나눠야 한다.


‘학교가 부침을 겪다 보니 서로에게 소홀했다.’


로버트는 저 동양 사내가 팀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헨리를 바라봤다.


자신의 아들이자, 아버지를 가장 닮은 너클볼러.

대휘가 오기 전 가장 잘 던지던 너클볼 사관학교의 희망.

나비를 던지다는 것이 어떻게 쉽겠는가.

어쩌면 헨리는 날개를 펴기 무서워 번데기에 갇혀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 기회로 저마다의 문제를 깨야 할 텐데.’


로버트의 바람과는 달리 헨리는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서 피칭장으로 향했다.


“리키! 밥 먹자!”


나는 햄버거를 먹는 시늉을 하며 리키를 불렀다.

그는 피칭장에서 이곳저곳을 사진 찍고 있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 사진 찍는 걸까요?”


도희의 표정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은 밥부터 먹읍시다.”


우리는 시내의 피자집으로 갔다.

헨리는 처음에 피칭장에 남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로버트가 함께 가자고 하니 그제야 차에 올랐다.


“근데 쟤는 왜 같이 가는 거래요?”


나는 뒷자리에 구겨 탄 베이커를 보고 말했다.

도희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좁은 차에서 오늘 결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 안토니오 피자.

베이커는 차례대로 상대한 소감을 말했다.


리키의 공은 변화는 까다롭지만, 힘이 떨어진다.

잭슨은 당황한 것이 너무 눈에 보여 기다리기 쉬웠다.

레오는 템포가 너무 빠르다 보니 스스로 무너진다.

헨리는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


베이커는 헨리의 공을 칭찬만 했다.

헨리의 표정은 오히려 일그러졌다.


“강, 당신은 너클볼러로서는 아직 낙제인 거 같습니다.”


도희는 차분하게 베이커의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신의 첫 너클볼이 완성된다면 투수로서 당신과 붙어보고 싶습니다.”


베이커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베이커의 눈에는 누구보다 진심이 가득했다.


“그 말 취소하지 말라고 전해줘요. 10월에 한 번 더 보여주겠다고.”


그렇게 모두가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한참 식사 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 리키가 말을 꺼냈다.


“이제 전 너클볼러로서의 길을 포기하려 합니다.”


도희는 깜짝 놀랐지만,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통역했다.


“그러나 이 학교를 떠날 생각은 없어요. 힘이 다할 때까지 여러분을 돕고자 합니다.”


이 말에 적잖이 당황한 것은 로버트였다.


“수익이 없더라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모두가 식사를 멈추고 리키를 주목했다.


“나름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었죠.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 직구 등 여러 가지를 가르칠 수 있을 겁니다.”


로버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 이곳에는 관리인, 포수를 봐주는 코치 외에는 아무도 없다.

간혹 있는 경기는 지역 고교 야구부에 도움을 받는다.

잡일은 외부 청소 업체들을 사용한다.

이 모든 것은 열악한 학교 재정에서 기인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코치님이 해준 말씀이죠?”


정적을 깨고 말을 꺼낸 건 나였다.

도희는 로버트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맞는 말이야. 야구는 수없이 진화해 왔다. 너클볼도 진화할 때야.”


그는 결심한 듯 리키의 손을 잡았다.

세이버메트릭스, 발사각, 구속 혁명 등.

메이저리그는 한 해 한 해 그 수준과 상황이 발전하고 있다.

빠른 구속을 갖춘 투수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너클볼을 배울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기에 이제는 성과를 보여야 한다.

너클볼로 강타자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너클볼러 이전에 투수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 경기에서 아웃카운트를 만든 건 투수인 강 뿐이었어.’


그것이 로버트가 리키와 손을 잡은 이유였다.

그러나 헨리의 표정은 계속해서 어두워졌다.


할아버지의 너클볼로 메이저를 다시 평정하겠다는 그의 바람.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장인의 솜씨는 바뀌지 않는다.

헨리는 이 변화가 어쩌면 그의 할아버지를 욕보인다고 생각했다.

자연히 그의 눈은 나에게로 향했다.


아주 날카롭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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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괴물들과의 대결(3) 24.09.16 11 4 11쪽
14 괴물들과의 대결(2) 24.09.16 11 4 11쪽
13 괴물들과의 대결(1) 24.09.16 10 4 12쪽
12 해변에서 생긴 일(2) 24.09.16 11 4 11쪽
11 해변에서 생긴 일(1) 24.09.16 14 4 11쪽
» 예비 메이저리거(2) 24.09.16 14 4 11쪽
9 예비 메이저리거(1) 24.09.15 14 4 11쪽
8 너클볼 사관학교로(2) 24.09.15 15 4 11쪽
7 너클볼 사관학교로(1) 24.09.14 23 4 11쪽
6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24.09.13 30 4 11쪽
5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2) 24.09.12 31 4 11쪽
4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1) 24.09.11 41 4 11쪽
3 움츠려들지 않아 24.09.10 45 4 12쪽
2 애벌레 24.09.09 70 5 11쪽
1 Prologue) 나비 24.09.09 78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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