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재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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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랑
작품등록일 :
2024.09.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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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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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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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생긴 일(2)

DUMMY

*** 플로리다 호텔

- 똑! 똑!


“도희예요!”


“네! 나갑니다.”


문을 열고 본 도희의 모습은 나를 안도하게 했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태블릿과 자료들을 잔뜩 든 모습.


“안경 쓰셨네요?”


“알 없어요. 패션이죠.”


까르르 웃는 도희의 모습.

괜한 기대를 한 내가 갑자기 창피해졌다.


"그 밑에 라운지로 가시죠. 풍경도 좋던데."


"그런 방법이!"


하여튼 여우인지 그냥 순수한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쨌거나 내려가서 본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야경을 보니까 마음이 더 편해지네요."


도희는 싱긋 웃더니 태블릿으로 영상을 틀었다.


와인드업부터 피칭까지.

완벽하게 들어간 너클볼이 나왔다.


"일단 너클볼의 회전이 걸리지 않고 속도도 꽤 괜찮게 나온 공이에요."


안경까지 쓰고 설명하는 도희의 모습은 정말 지적이었다.

약간 임별 단장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회전이 걸리면서 스트라이크존에 멀리 벗어난 공이었다.


"내일 만나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거예요."


어느새 도희는 코치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구력? 아니면 역시 하체일까요?"


내 말에 도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심리적인 요인이라고 봅니다."


"네, 그게 무슨?"


도희의 진단에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하체가 무너지는 것도 맞아요. 특히 밸런스 잡기 어려운 폼이다 보니. 그래도 진짜 문제는 멘탈이에요."


내 투구폼의 핵심은 극단적인 스트라이드 폭.

거의 점프하듯 발을 멀리 뻗다 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든다.

그래도 운동을 통해 개선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멘탈 문제라는 것은 여전히 인정하기 힘들었다.


"지금 너클볼이 주 무기 맞나요?"


"당연하죠? 도희 씨 분석에 토를 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정하긴 힘드네요."


"아니요. 지금 직구, 그리고 구위로 상대하던 시절의 습관이 그대로 나와요."


솔직히 깜짝 놀랐다.

너클볼을 던지면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직구는 생각보다 쓸만하다는 생각.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직구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짜고 있었다.


"불안은 스트라이드 폭에 영향을 줬죠."


도희의 말을 듣고 다시 본 영상에는 미묘하지만, 차이가 보였다.


"그리고 스트라이드 폭에 따라 투구가 완전히 달라져요."


"되게 미묘한 차인데 잘 캐치하셨네요."


직구가 주 무기가 된다면 스트라이드 폭이 넓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빠르게 보일 테니까.

그러나 너클볼은 조금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힘을 발휘한다.


"딜레마네요."


"정신적인 문제의 해답은 간단할 때가 많죠."


도희는 잠시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내려놓기가 가장 좋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


맞는 말이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


"내일 만나는 팀에게 해답을 구해봐요."


팀은 메이저에서 가장 느린 직구와 너클볼로 살아남은 너클볼러.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목표로 해야 하는 피칭 메커니즘을 가진 선수.


"여러모로 신세만 지네요."


나의 말에 도희는 손을 턱에 괴더니 말했다.


"나중에 제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어려운 거 아니에요."


나는 잠시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죠. 대신 오늘 이 바다에 우리 둘 다 마음의 짐은 두고 갑시다."


도희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듯 보였다.


"어떤 상처도 평생을 안고 갈 만큼 가치 있지 않으니까요."


도희는 내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고마워요. 나도."


도희는 면밀하게 분석한 자료를 건네주었다.

내 하체 디딤발의 위치에 따른 스트라이크 비율, 회전수까지.

자리에 누워 보면 볼수록 수준이 상당했다.

학교 다니느라, 블로그 관리하랴 정신없었을 텐데.

어쨌거나 소원이라는 게 뭘까?


잡생각 그만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 플로리다 전설의 너클볼러 '팀'의 집.

"Welcome!"


팀의 첫인상은 정말 선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수척해보였다.

한 때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도희는 그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제 영어가 조금 익숙해졌는지 너클볼과 관련한 내용은 조금씩 들어왔다.

너클볼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너클볼 사관학교 창립자인 필을 만나기까지.

그의 우여곡절 많은 인생사를 들으니 나의 알량한 경력이 우스워보였다.


"질문 없어요? 내가 잘 소개해 뒀어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도희는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흔들린 적 없나요?"


나의 첫 물음은 제구력의 비밀이 아니다.

내가 팀과 같은 커리어를 경험했다면 수도 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너클볼을 믿었다.

나는 그 비밀이 가장 궁금했다.

내 질문에 팀은 가만히 웃으며 나를 지켜봤다.


"너클볼의 움직임보다 더 불안한 인생이었지요."


팀의 첫 마디에 나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당신을 보니 나의 젊은 날이 떠올라요. 필을 만나기 전 나의 모습이요."


팀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오겠다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실까요? 투병 중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아무 대꾸 없이 그저 팀을 기다렸다.

팀은 부들거리는 손에 공을 쥔 채 내려왔다.


"강이라고 했죠? 나는 지금도 공을 던지는데 두렵지 않습니다."


그는 나를 불러내더니 힘겹게 자세를 취했다.


와인드업.

현역 때도 캐치볼이라고 불렸던 그의 투구폼.

나이가 들어 이제는 더욱 짧은 스트라이드 폭.

악력이 빠져서 회전도 많은 엉성한 직구가 들어왔다.


팀은 씩 웃더니.

한 번 더 와인드업했다.

그리고 너클볼을 하나 던졌다.

속도가 줄어들고 회전도 많아졌지만 너클볼이었다.


"어때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겠나요?"


팀은 스스로 말하고 크게 웃었다.


"이런 자신감으로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칠 테면 쳐봐라. 내 너클볼은 천하무적이다."


리그에서 4점대, 5점대 방어율로 무너졌을 때도 다시 기사회생한 팀의 말이다.

그 무게감이 상당했다.


"내 너클볼의 위력을 믿었을 때 비로소 130km 직구로 삼진을 잡아냈어요."


로버트에게 들어서일까?

그는 나의 고민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소. 너클볼에 인생을 걸었다면 그 공은 무적이라는 거지."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광기가 넘실거렸다.

그는 정말이지 너클볼에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이것만 기억해요. 안타를 맞고, 팀에서 방출되고···. 수많은 위기가 있을 겁니다."


팀은 많이 이야기해서 힘든지 기침을 콜록거렸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힘을 주어 말했다.


"너클볼은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이지만 그러기에 가장 위력적인 공입니다. 잠시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저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 됩니다."


팀의 말을 들으니, 확신이 생겼다.

내 야구는 늘 간절했다.

생존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다 잃었다.

내 방식은 실패했고, 알게 모르게 두려움이 생겼다.


"그리고 피칭을 보니 재능이 있습니다. 아주 재밌는 방식이더군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저마다의 너클볼이 다 다릅니다. 내 스승 필과 내 것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답은 하나입니다. 기억하죠?"


"인생을 걸고 던지는 너클볼은 무적이라는 거죠."


팀은 만족했다는 듯 웃었다.

그는 힘에 부쳤는지 천천히 다시 방 쪽으로 걸어갔다.


"저녁 먹기 전까지 잠시 쉬고, 이어서 하지.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했구먼."


가만히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무수한 실패, 수도 없이 맞았던 홈런.

방금 던진 공은 분명 나이 든 노인의 아무것도 아닌 공이었다.

그러나 정말 그의 자신감과 기운이 실려 날아온 거 같았다.


"자신의 공을 믿는다."


그동안 내가 던졌던 공들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실렸다.

참 고마운 투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에 다른 것을 담아봐야겠다.


"저 먼저 갑니다! 팀에게 감사 인사 전해주세요."


"네? 저녁도 같이 먹자고···."


나는 멈추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꽤 먼 거리를, 차를 타고 왔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게 과연 될까?

마음속에 꼬리를 물던 의심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다시 노력이다.


나는 플로리다의 모래사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팀의 투구는 단순히 멘탈만 케어한 것이 아니다.

그의 다리 근육, 안정적인 지탱.

그 나이에, 심지어 투병하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직구를 던질 때와 너클볼을 던질 때의 투구 폼과 디딤발이 자로 잰 듯 정확했다.


모래사장에 줄을 긋는다.


와인드업.

하체를 딛는다.

많이 달려서 그런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럼에도 확신이 든다.

내가 나의 힘을 가장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스트라이드 폭.


해는 애초에 넘어갔다.

그러나 연습은 끝날 줄 모른다.


"얼마나 이러고 계셨던 거예요?"


도희가 이제까지와 다른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식사는 잘하셨나요?"


나는 비처럼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기억은 몸에 새겨야 해서요. 안 그러면 까먹어서···."


나는 도희의 표정을 스윽 살폈다.

도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이었다.


"많이 걱정했어요?"


"당연하죠!"


나는 도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영원히 잊지 못할 바닷가네요."


"그러게요."


도희는 그제야 씩 웃었다.


"제구력의 비밀을 알아냈나요?"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알아낸 거 같네요."


도희의 눈이 반짝인다.


"블로그에 쓰게 알려주세요!"


"나중에 제가 던지는 거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돌아가면 다시 시합인가요?"


"네. 이번에도 쉽지 않을 거예요."


이번 달 말, 다시 한번 실전 등판이다.

시즌 중임에도 좋은 선수가 온다.

1군에서도 꽤 얼굴을 비췄던 배테랑 타자, 로돈.


핸드-아이 코디네이터.

손과 눈의 협응력이 뛰어나다는 의미.

그는 3-4-5 슬래시 라인을 몇 번이나 기록했다

비록 큰 부상을 당해 이제 막 재활을 마쳤지만.

그는 트리플A에서 점검을 앞두고 이곳으로 온다.


"돌아가면 잭슨과 레오한테도···. 그리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헨리에게도 말해줘야 할 게 많겠네요."


"로버트 코치가 강대휘 선수 보낸 이유가 이거군요."


"네?"


"왜 헨리가 아닌 당신을 보내냐고 물었는데, 가보면 알 거라고 했어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도희를 바라봤다.


"사람이 참···. 깊어요. 대휘 선수."


"혼자 해보니까 힘들더라고요. 너클볼이라는 길이."


"아무튼 앞으로 나아가요. 우리."


우리의 바닷가에서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아침이 밝으면 도희는 다시 학교로 떠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 피칭장으로 향할 것이다.


로돈이라는 이름값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묘한 두려움이 들었다.

어쩌면 베이커에 경험이라는 큰 무기가 합쳐진 타자.

전성기에서 살짝 내려왔다는 평가도 있지만.

존 설정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그다.

제구력을 평가받을 최적의 상대.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내 너클볼은 무적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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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괴물들과의 대결(3) 24.09.16 11 4 11쪽
14 괴물들과의 대결(2) 24.09.16 11 4 11쪽
13 괴물들과의 대결(1) 24.09.16 10 4 12쪽
» 해변에서 생긴 일(2) 24.09.16 12 4 11쪽
11 해변에서 생긴 일(1) 24.09.16 14 4 11쪽
10 예비 메이저리거(2) 24.09.16 14 4 11쪽
9 예비 메이저리거(1) 24.09.15 14 4 11쪽
8 너클볼 사관학교로(2) 24.09.15 15 4 11쪽
7 너클볼 사관학교로(1) 24.09.14 23 4 11쪽
6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3) 24.09.13 30 4 11쪽
5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2) 24.09.12 31 4 11쪽
4 직구 하나로 고교 최강 타선 잡는 법(1) 24.09.11 41 4 11쪽
3 움츠려들지 않아 24.09.10 45 4 12쪽
2 애벌레 24.09.09 70 5 11쪽
1 Prologue) 나비 24.09.09 78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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