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우주 대스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린딩동
작품등록일 :
2024.09.10 13:08
최근연재일 :
2024.09.19 20:2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54
추천수 :
12
글자수 :
66,004

작성
24.09.16 20:20
조회
18
추천
0
글자
12쪽

묵언수행

DUMMY

노트북을 켜고 대본을 읽던 유한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대사가······ 없어?”


유한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1차 오디션에선 평범하게 대본을 리딩하라고 했는데 막상 2차 오디션의 진짜 대본엔 대사가 없었다.

1차 때는 비공개였던 배역의 이름은 ‘선철’이었고 작중 설정은 벙어리였다.


“분명 등장하는 장면은 꽤 되는데, 내용상 비중도 있는데, 대사가 한 마디도 없다니.”


이런 황당한 역할은 또 처음이었다. 그러나 선철은 작중에서 유일하게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로 비중은 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만일 이 배역을 따낸다면 유한의 입지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사도 없는 대본을 두고 어떻게 연습한단 말인가.


[현실 상황을 반영하여 돌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애써서 얻은 배역이 벙어리라니, 그래서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다니.

그런데 돌발 퀘스트라니?


[돌발 퀘스트는 일시적인 상황에 의하여 일시적인 시간에 한하는 퀘스트입니다.]


과연, 그래서인지 상태창에 붉은 글씨가 떴다.

보라색이 에픽, 노란색이 메인, 연두색이 서브이니 한눈에 알기 쉬웠다.


[돌발 퀘스트 : 내가 곧 배역이다.]

[벙어리 배역을 위해 묵언수행을 한다.]

[진행도 100% 달성 시 랜덤 스킬 한 개 해금 혹은 기존 스킬 업그레이드.]


“정확히 어떤 개념이지? 묵언수행처럼 말을 아예 하지 말라는 거야?”

[그렇습니다. 퀘스트 시작을 선택하신 후, 한 마디라도 하시면 돌발 퀘스트는 그대로 종료됩니다.]

“즉, 시작하고 나서는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중간 보상도 없다는 뜻?”

[그렇습니다. 돌발 퀘스트는 모두 100% 달성이 아니면 클리어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새로운 것을 배웠다.

유한은 시험 삼아 마음속으로 시작을 외쳤다.


[돌발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드디어 왔구나.

좀처럼 새로운 스킬을 해방할 기회가 오지 않아서 초조했던 참이었다.

스킬은 능력치와 결이 다른 감각이었는데 <속독>과 <호소>를 체험해 보니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이 나서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야.’


유한이 입을 다물고 대본에 집중했다.

선철은 작중 유일하게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에게만 알리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선철이 등장할 때마다 시선과 표정, 행동 연기가 관건이었다.

아예 말할 수 없는 선철이 감정을 표현할 수단이 곧 연기가 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말을 못 한다면······.’


선철은 비밀을 털어놓을 순간을 기다리며 작중 인물들을 관찰하거나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전달력도 중요했다.

선철의 감정과 생각을 대사 없이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연기력이 공을 들여 만든 화살이라면, 나머지 능력치와 스킬은 그걸 적중시키게 하는 힘이었다.

특히나 이번엔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역할이다. 그러니 <속독>으로 대본의 행간까지 파악하고 <호소>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연기를 펼쳐야 했다.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암시, 극 중에서 이따금 등장해서 주인공과 관객 모두를 몰래 지켜보는 모습.

그 모든 걸 언어 없이 해내려면 모든 능력치와 스킬이 다 절실했다.


‘상태창.’

[예.]


묵언수행이라지만, 상태창이 있으니, 생각보다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돌발 퀘스트 중에도 서브 퀘스트를 동시에 할 수 있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묵언수행을 하며 대본을 정독할 수 있다.

그러면 소중한 스킬을 얻을 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유한은 얼마 전 스킬 <호소>를 얻느라 가진 룬이 하나도 없었다.


‘대사 한마디 없는 대본이라지만······ <속독>이 있어서인지 감독의 의도가 보여.’


스킬 <속독>은 단지 읽기만 빠르게 해 주는 게 아니다. 글자 하나하나, 심지어 행간의 공백까지도 이해력을 극도로 높여 인지하게 하는 사기급 능력이었다.

대본에 충실해야 하는 배우인 유한이 초회 특전으로 <속독>을 받은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대본에 집중해서였을까.


[현재 상황을 반영하여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순간, 유한은 반가운 나머지 묵언수행을 잊고 소리를 낼뻔 했다.


‘뭔데?’


유한이 마음을 가다듬고 머릿속으로 질문을 띄웠다.


[메인 퀘스트 : 내일의 무비 스타.]

[영화에 캐스팅되라.]

[보상 : 능력치 ‘연기력’ 한 단계 업그레이드]


연기력은 유한이 그토록 소망하던 능력이자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다. 만일 최익현 감독과 촬영할 때 연기력이 올라간다면 그의 뮤즈가 되는 것도 헛꿈은 아니었다.


[또한, 추가로 서브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는 무한히 반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태 하나밖에 없었던 탓에 지루함이 컸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서브 퀘스트 : 연기는 모방부터.]

[기존 영화 작품을 감상한다.]


안 그래도 참고할 영화를 찾아보려던 참인데 마음에 쏙 드는 퀘스트였다.

오디션에 성공해서 선철 역할을 따내고 촬영에 들어가면 만사형통이란 생각을 하자 유한은 불쑥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의 감정선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유한이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러자 상태창도 덩달아 조용해졌다.

다른 은하에서 온 시스템과 침묵을 공유하다니.

아마 지금 유한의 상황을 누군가 안다면 분명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


순간, 유한은 또 한번 소리를 지를뻔 했다.

비밀을 간직한 인물의 심리를 알아내는 건 아주 쉬웠다.

바로 지금 유한이 커다란 비밀을 품고 있지 않은가.

유한과 선철의 차이점은 그 비밀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건 영화 후반에나 나오는 감정이고 시작부터 대부분 분량에서 선철은 비밀을 숨기려고 한다.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고 관찰하는 처지라······.’


선철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비밀을 품은 채 주위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다.

즉, 작중의 비밀이 곧 선철인 셈이었다.


‘혹시라도 내 비밀을 누가 알아낸다면 나는 미친놈으로 몰려 정신병원에 갇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주위를 조심스레 관찰하며 조심하는 선철의 눈빛과 태도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래, 나는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역할이야.’


유한이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고 눈을 감았다.



***



이틀 후, 오디션장에 나타난 유한의 모습은 첫 번째 오디션 때와 사뭇 달랐다.

처음엔 간절한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고립되고 고독한 느낌이 풍겼다.

마치, 배역인 선철처럼 말이다.


“이유한 씨 차례입니다.”


스탭의 말에 유한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예상대로 감독과 신태욱이 유한을 바라봤다.


“대본은 됐고, 자유연기로 캐릭터를 구현해 보세요.”


이건 생각지 못했던 전개였지만, 못 할 것도 없었다.

이미 묵언수행으로 29시간 30분을 채운 유한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입을 여는 게 더 어색할 지경이었다.


‘만일, 이들에게 내 비밀을 들킨다면······.’


유한이 감독과 신태욱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자 자연히 몸이 움츠러들면서 눈치를 보는 표정이 지어졌다.

지금 유한은 서브 퀘스트로 룬을 모아 스킬 <호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참이었다.

그건 대사가 없는 선철 역에 힘을 실어줄 중요한 방점이었다.


‘언제 저들에게 비밀을 들킬지 몰라.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다 끝장이야.’


유한은 밤을 새워가며 다른 작품을 봤고 그건 자연히 몰입도로 바뀌었다.

그건 확실히 유한의 연기에 무언가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누구세요?”


신태욱이 예고도 없이 입을 열자 유한이 흠칫 놀랐다.

그러고는 소심한 눈초리로 신태욱을 훑어보다가 몸을 낮추고 등을 돌렸다.


“여기까지.”


감독이 커트를 외쳤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제 감독의 결정만 남은 셈이었다.


“벙어리 역할로 자유연기를 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요.”


이제는 입을 떼는 게 더 어색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한은 그 정도로 선철이란 인물에 몰입해 있었다.


“선··· 철이란 인물의 심상을 생각하며 연습해 봤습니다.”


유한의 담담한 대답에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는 곧 통보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잠시, 신태욱과 유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나 유한은 아까와 달리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은 선철이 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다른 이도 아닌 신태욱에게 기가 눌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유한은 눈치채지 못한 채 방을 나섰지만, 최 감독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메소드 연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메소드 연기는 자신이 곧 배역이 되는 것이었다. 연극에서 감독이 눈여겨봤던 부분도 바로 노인에게 완전히 동화된 것 같은 유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 자유연기를 마친 유한은 선철이 아니라 이유한으로 돌아와 자리를 마무리했다.


“악평이 자자했던 것 치고는 괜찮은데?”


그 말에 신태욱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태욱은 유한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항상 자신보다 앞서서 조명을 받던 유한을 어떻게 잊겠는가.


“이제 한물갔다고 하니, 간절함이라도 생긴 모양이죠.”


아역 시절 태욱은 항상 유한에게 치이기만 했다.

촬영은 언제나 유한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는 어린 나이에도 한밤중까지 기약 없는 대기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연기 선생을 붙이고 레슨을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던 유한은 모든 빛을 아역에 쏟아부은 듯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건 공교롭게도 드라마를 잘 만난 태욱이 국민 남친으로 부상하게 된 것과 비슷한 시기였다.

태욱은 유한의 재능은 아역이 한계였고 자신이야말로 성장하는 배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몰랐지만, 유한의 성장이 멈춰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어떻게, 합이 좀 맞을 거 같아?”


최 감독의 질문에 태욱이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합 정도가 아니라 제가 추천하고 싶어질 정도예요.”

“그 정도야?”

“네.”

“뭐, 인상 깊긴 했지.”


유한이 선철 역할을 맡는다면 아역 시절과 정반대의 그림이 나올 것이다.

태욱은 이미 잘나가는 최고의 스타였지만, 과거의 열패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런 기회가 온 것이다.


“저는 저 친구를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의견도 염두에 두지.”


최 감독의 말에 태욱이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흘 후, 유한은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톡으로 전해 듣고 침대 위에서 점프했다.


“됐어!”


싸구려 침대의 스프링이 삐걱거렸지만, 유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내 성장은 멈춰있던 거였어.”


[메인 퀘스트 : 내일의 무비 스타.]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능력치 ‘연기력’이 C+가 되었습니다.]


지난 9년은 노력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 무색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기 쉬운 퀘스트 제도와 자신의 노력으로 얻고 싶은 걸 쟁취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일이었다.


“이젠 아무 문제 없어. 나만 잘하면 뭐든 할 수 있는 거야.”


유한은 다시 한번 침대 위에서 크게 점프하며 막 얻은 배역의 기쁨을 누렸다.


“또 해낸 거야!”


상태창을 얻고 도전한 모든 일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신태욱을 따라잡는 날도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는 탄탄대로만 걷는 거야.”


유한이 강한 바람을 담아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알고보니 우주 대스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변경 : 무한 퀘스트로 괴물배우 ▶ 알고보니 우주 대스타 24.09.18 6 0 -
12 애드리브의 장인 NEW 6시간 전 6 0 12쪽
11 돌려 받은 조언 24.09.18 14 0 11쪽
10 다짐 24.09.17 14 0 11쪽
» 묵언수행 24.09.16 19 0 12쪽
8 거장의 관심 24.09.16 19 0 12쪽
7 다시, 한 걸음 24.09.15 22 0 12쪽
6 청년과 노인 24.09.14 25 0 12쪽
5 계약의 조건 24.09.13 31 1 12쪽
4 돌멩이의 가능성 24.09.12 37 2 12쪽
3 아닌 밤중에 홍두깨 24.09.11 40 2 12쪽
2 은하의 영웅 24.09.10 51 3 15쪽
1 우주에서 온 시스템 24.09.10 75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